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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34] 채권추심 전문가 이희성
연체자와 고통을 나누는 '천사표' 빚쟁이

“약속한 날짜에 전화를 걸었더니 연체자가 전날 자살했다는 겁니다. 신문에서나 보던 얘기를 직접 겪고 보니 너무 충격이 커서 한참 동안 힘들었습니다.”

채권관리 전문가 이희성(38)씨의 새 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혹시 내가 그를 죽인 게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건 채권관리가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 고민한 끝에 결국 나만의 노하우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 햇볕정책으로 연체금 회수율 1위





이씨는 국내 채권추심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다. 비씨카드 인천지점 관리팀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채무 회수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엄포를 잘 놓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빚 속에 좌절하는 연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건네준 결과다. 이씨가 교육한 한 지점의 경우, 연체금 회수율에서 자사내 3년 연속 전국 1위를 달렸다.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 그의 총과 화약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제 자신이 원해 8년이나 있어온 것은 이 분야에 전문성을 키워보고 싶었고, 제가 가진 노하우를 마음껏 펼쳐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게는 이 일이 재미있고 보람 있습니다.”

채권 추심은 금융관련 업무 중에서도 최고의 3D 직종이다. 고의든 아니든 빌린 돈을 갚지 않는 이들을 찾아 돈을 되받아내야 하는, 피치 못할 ‘악역’을 맡았다. 연체자 사정도 괴롭겠지만, 담당자들의 마음도 적잖이 심란하다.

신용카드사의 경우, 연체자 명단이 채권추심팀으로 넘어오는 것은 카드 결제일로부터 약 3일 뒤다. 실수로 결제일을 놓쳤을 이들을 위해 맨먼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체 사실을 통보하고 시간을 준다. 결제일 후 약 15일째가 마감등록일이다. 최초 연체자 명단의 약 90%는 한달이 지나기 전에 대부분 돈을 갚아 명단에서 지워진다.

꾸준히 상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3개월쯤 지나면 나머지 10%의 상당수도 마저 돈을 갚고 명단에서 빠져 나간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악성’ 연체자들이다. 이씨네 지점의 경우, 최초 1개월내 연체자 수를 2,700명쯤으로 보면, 최종 악성 연체자는 그중 100~150명 선이다.

웬만한 경우는 모두 전화상담으로 진행한다. 이씨의 남다른 부분은 전화통화에서부터 드러난다.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팁 하나를 공개하자면, 대화 때 목소리의 높이를 ‘솔’음으로 맞추는 것이다. 최소한 ‘파’음까지도 무방하지만, 낮고 무거운 느낌의 도, 레, 미 음은 절대 금물이다. 가뜩이나 상처받은 상대에게는 무거운 목소리만으로도 고통이 더해질 수 있다.

“첫 말을 꺼낼 때 ‘왜 이렇게 연체를 많이 하셨어요!’가 아니라 ‘이렇게까지 연체가 많이 된 걸 보니 아주 힘드신가봐요’하는 식으로 건넵니다. 지난번 통화 때 아이가 아프다고 했던 분에게는 다른 인사는 다 제쳐두고 아이 건강부터 물어봅니다. 그리고 돈 얘기보다 주로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얘기를 많이 들려드립니다. 실제로 막다른 골목에 선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이 아닙니다. 살아갈 꿈과 희망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굳이 빚을 갚으려 애쓸 이유도 없는 거지요.”

- 희망을 주는 전화통화



진심어린 위로 한 두 마디에도 곧잘 상대의 울음이 터지는 것을 본다. 워낙 마음을 많이 다친 이들이다. ‘얼마나 힘든지 상황을 얘기해 주시면 저희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방법을 함께 찾아보겠다’고 이씨가 말한다. 실제로 함께 대안을 찾아 돕는다. 상대가 현실을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법률적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연체금 상환 시기를 조금 더 늦춰 주거나, 심지어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는 이씨 스스로 개인파산 신청을 권할 때도 있다. 필요한 경우 연체자의 대리인 역할을 위임 받아, 상대가 혼자 가슴을 앓고 있던 또 다른 채무문제를 해결해 줄 때도 있다. 인간적인 믿음이 오가는 사이 ‘돈이 마련되면 제일 먼저 당신쪽 연체금부터 갚겠다’는 반응이 연체자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온다. 이씨팀의 회수율이 높은 비결이다.

아예 연락 자체가 닿지 않는 이들도 많다. 연체 두달이 넘도록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 ‘행방불명자’는 직접 주소지로 찾아간다. 한편으론 법적인 절차도 동시에 진행시킨다. 관련 관청을 찾아다니며 등기부 등본 등 재산 자료를 확인하는 등 사람을 찾으랴, 서류를 떼러 다니랴 종일 뛰고도 하루에 한 두건 마치기가 빠듯하다.

빚을 진 이유도 다양하다. 인;瑛?그늘이 함께 숨어 있다. 사업의 부도나 과소비는 이미 잘 알려진 경우다. 한 30대 여성은 동거하는 남자를 위해 돈을 쓰다가 1년만에 약 8,000만원의 빚더미에 올랐다. 본인의 월 수입이 채 100만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동거남에게는 카드로 오토바이를 사주는 등 사랑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헌신에도 불구하고 동거남은 여성을 버리고 떠났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과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고급승용차를 두 세대씩 굴릴 만큼 잘 나가던 한 사업가는 IMF때 파산을 만났다. 사채놀이와 친구들 문제로 얽혀 약 5억원의 빚이 생겼지만, 워낙 마음이 착해 자신의 빚을 갚아나가는 중에도 여전히 주위를 돕다가 더욱 더 곤경에 빠졌다. 어느날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니 ‘자살하려고 동맥을 끊었다가 방금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했다. ‘아이들을 그렇게 예뻐하면서 왜 바보같은 짓을 하셨냐’고 대꾸는 했지만, 이씨의 마음도 착잡했다. 사업가는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술집 여성과 ‘눈이 맞아’ 노모와 아이도 버린 채 퇴직금 1억2,000만원을 챙겨 종적을 감춘 공무원도 있었다.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아 직접 집을 찾았을 때 그를 붙들고 하소연하며 눈물 흘리는 노모의 손을 붙들고 이씨도 한참 울었다.

가끔은 이씨의 호의를 ‘이용’하는 이들도 열에 둘쯤은 나타난다. 30대 중반의 사기꾼에게 당한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도중에 결혼을 한다길래 진심으로 축하도 해주고 4개월 여유를 더 줬는데 그대로 달아나버렸어요. 알고 보니 친구들 돈도 4억원이나 떼어 먹었고, 결혼한 남자도 사기 결혼 당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쪽보다도 그 친구들이 너무 큰 피해를 입은 게 안타까워서 그들을 돕기 위해 소송까지 냈었어요. 잡힌 뒤에도 또 조사 중 도망을 가지 않나, 얼굴 한번 못 봤지만 정말 대단한 여자였어요.”

연체자를 찾으러 갔다가 당사자는 못 만난 채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볼 때도 있다. 물어보면 하루종일 쫄쫄 굶어 기운도 다 빠져 있다. 주머니를 털어 아이들 빵이라도 사먹이고서야 발길이 돌려진다. 어른들 빚 틈에서 죄없이 고생하는 아이들을 볼 때가 가장 마음 아프다. 때로는 아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카드 빚을 썼다가 갚지 못한 부모들도 본다. 아이들 문제가 걸려있을 때 몹시 마음 무겁다.

“IMF때 가장 길게는 27개월 연체자도 있었어요. 약속도 자주 어기고, 속도 많이 썩혔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저희도 최대한 돕겠다고 했어요. 결국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해서 조금씩 갚아나갔는데 마침내 빚을 다 갚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 왔을 때 참 뿌듯했습니다.”

- 마음을 연 인생상담



채무상담 겸 인생상담이나 다름없다. 돈 문제로 이혼하겠다는 이들을 말리고 설득한 것도 여러 번이다. 채권관리를 맡은 이후 휴대폰 번호를 일부러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귀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이씨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90년 현재의 회사에 입사했다. 신용카드 업무 8년차에 접어들던 97년에 갑자기 영업부로 인사발령을 받아 채권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도처에 파산자가 속출하던 IMF 상황. 황당하고도 막막하기만 했다.

“법대 출신도 아니고, 가압류 신청서 하나 써 본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이 일을 맡으려니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용어 자체도 낯설어서 도무지 뭔 소린지 이해조차 안 돼 직접 용어집도 사서 읽고, 관련 법률도 공부하고, 그래도 모르는 건 선임자나 법학 전공 후배들을 쫓아다니며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차차 파악이 되더군요.”

현장에 대해서도 따로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지침서 하나 없었다. 그저 어깨 너머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방법은 독촉과 압박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대에게 윽박지르기 일쑤, 자연히 상대와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업무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씨 자신에게도 적지않은 스트레스였다.

매달 마지막 일요일이면 늘 도선사를 찾아가 밤새 기도를 드렸다. 자신이 괴롭힌 이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그렇게라도 기도를 올리고 와야 마음이 다소 가벼워졌다. 하지만 다음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같은 모습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연체자의 자살사건을 겪었다. 채권관리 업무를 맡은 지 약 5개월째 접어든 무렵이었다. 큰 충격과 회의에 빠지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역지사지’가 모든 것의 답이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하나둘씩 깨닫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즐겨 읽었던 ‘카네기 대화론’이나 ‘바디랭귀지’ 등의 책에 나오는 이론들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현장 경험까지 더해 상담에 필요한 화법과 심리분석부터 법률 문제에 이르기까지 차츰 탄탄한 노하우가 쌓였다.

- 채권관리 전문회사 설립이 꿈

2000년 7월 춘천 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뒤,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들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았다. 자신의 노하우대로 직원들을 집중 교육한 결과, 해당 지점의 회수율이 3년 내내 정상을 차지했다. 점점 주위에 소문이 퍼지면서 이제는 전국에 걸쳐 그의 상담기법을 배워가는 직원들이 많다.

그의 귀가 시간은 매일 자정 전후다. 집에 돌아가면 그도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가장이다. 머리속이 너무 복잡할 때는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PC 게임이나 영화에 정신을 맡기며 털어버린다. 훗날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될 때가 오면 직접 채권관리 전문회사를 세워 볼 꿈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일 하나 없는 이 험난한 분야에서도 희망과 사랑의 효력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지금도 벼랑끝 누군가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상대일지도 모를 그로부터 던져진 로프를 기꺼이 잡고 있다.

“요즘도 여전히 절에 다닙니다. 하지만, 초창기와는 다른 기도를 올립니다. 제가 이 분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힘을 제게 달라고 빕니다. 제가 못 갈 때는 집사람에게라도 대신 기도를 부탁합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4-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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