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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37] 물류관리전문가 구교훈
거미줄 수송망을 지휘하는 거대조직의 컨트롤 타워
물류는 수만 명이 움직이는 종합예술, 일년 중 363일이 '비상'


1년중 363일을 일 한다. 쉬는 날이라곤 딱 이틀이다. 항운노조가 쉴 때다. “ 토ㆍ일요일도 없습니다. 배가 들어오면 언제든 일 하는거지요.”

세방기업 총무팀장 구교훈(45)씨의 363일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기상 시간이 매일 새벽 5시. 10년째 똑같다. 공부 삼아 영어 관련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해 회사에 도착하면 아침 7시다. 앉자마자 밤사이 밀려든 이메일 약 2백통을 읽고 회신을 띄운다. 대부분 물류관리사나 국제무역 등에 관한 문의다. 구씨는 물류 관리 분야에서만 21년째 뛰어 온 현장 전문가다. 그것도 회사 한번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만 일했다.

퇴근 때까지 주로 팀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거나 그 외 자신이 직접 맡은 일들을 처리한다. 대개 사고 처리 건이 많다. 그의 책상 위를 뒤덮고 있는 문서 더미 중 상당 부분도 작업 중 사고 보고서들이다. 매일매일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살아 간다. 1년 내내 비상연락망을 옆에 끼고 일한다.

물류 업무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특히 그가 다니는 회사처럼 물류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서는 국내 운송뿐 아니라 국제 무역 등 온갖 형태의 작업들이 거대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화물의 수송, 보관, 하역, 포장 등 물류가 움직이는 모든 통로에 빠짐없이 물류관리사의 손과 눈이 닿는다. 물류 시스템 기획에서부터 관리자, 컨설턴트, 준 변호사, 사고처리반 등 100가지에 가까운 역할을 맡으며 상황마다 수시 변신해야하는 1인다역의 전문가다.






- 육해공 수송망 동시 가동

돈으로 치면 수백억원에 이르는 첨단 장비들과 수천명의 인력이 그 아래에 뛰고 있다. 육,해,공 수송망이 동시에 가동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화물 물동량의 약 95%는 해운과 항만 등을 통해 들어온다. 구씨네 회사처럼 항만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직접 운영하는 물류업체에서는 업무스케일이 자못 크다.

선박 운송은 특히 노련한 경험을 요한다. 까딱 잘못되면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가 일어나 금전적인 손실은 물론 인명재난까지 부른다. 운송 장비부터가 엄청난 고가다. 물건을 실은 선박에서 컨테이너 부두로 화물을 옮기는 장비인 컨테이너 크레인은 한 대에 50~70억원짜리다. 보관구역의 블록에 맞춰 컨테이너를 옮겨주는 ‘ㄷ’자 모양의 장비, 트랜스퍼 크레인은 대당 12-14억원이다. 적재된 컨테이너중 일부를 끄집어내는 일 등에 쓰는 장비인 리치 스태커도 약 5억원짜리. 작년만해도 승용차 3,500대를 한번에 들어 옮길 수 있는 특수 장비 한 세트를 사는데 48억원이나 들었다.

광양과 부산 등 전국 곳곳에 세워져 있는 자사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합쳐 관련 작업자들 수를 합치면 정식직원만 약 1천명 규모다. 일용직 등 이들과 함께 여러 형태로 현장을 함께 뛰는 이들을 계산하면 수천, 수만명이 움직이는 거대조직 중심점에 물류관리사가 서 있다. 다루는 품목도 다양하다. 사소한 공산품에서부터 철강, 곡물, 원목 수송, 심지어는 건설중인 교량을 통째로 옮기는 일까지 광범위하게 접한다.

“물류 관리도 건설처럼 종합예술입니다. 사전에 물류비 진단과 분석, 운송 계획을 짜는 일에서부터 사고와 배상문제 처리, 물류 거점 확보나 물류 센터 건립, 관련 장비의 선정과 구매, 운용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일을 물류전문가가 맡게 됩니다.”

가장 마음 고단한 것은 역시 사고를 만났을 때다. 인재든 천재든 도처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 난다. 작업 중 컨테이너가 추락하기도 하고, 얼마 전만해도 크레인을 작동하던 중 기계의 ‘팔’ 부분이 선박을 치는 바람에 크레인은 크레인대로 해당 부분이 떨어져나가 크게 파손되고, 선박은 선박대로 반으로 부서져 온 주위를 기름 바다로 만드는 대형사고를 만나기도 했다.

사고 수습이 여간 어렵지 않다. 개입된 이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운송업체와 상대 화주, 운송 업체측 변호사와 보험사, 그리고 상대측 변호사와 보험사, 운송 장비 판매사와 보험사 등등 협상 과정이 사뭇 복잡하다. 배상 범위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원두 커피를 실은 컨테이너 박스가 그 옆에 있던 운송업체 대기실의 원인 모를 화재로 함께 불이 건너 붙어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실제로 불에 탄 것은 원두 커피의 약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화주쪽에서 전액 배상을 요구했다. 불에 타지 않은 다른 커피까지 고유의 향을 잃게 됐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 사고 터지면 해결에 1년 걸리기도



“한번은 빈 음료수 깡통을 실은 컨테이너를 떨어뜨린 사고도 있었어요. 그때도 나머지는 다 멀쩡하고 아주 일부 깡통만 찌그러졌는데, 멀쩡한 깡통들도 어쨌든 충격으로 미세한 구멍이 나서 나중에 그 안에 식품을 넣으면 더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며 화주측에서 주장해서 결국 합의 하에 몇1,000만원을 물었지요. 사고가 터지면 해결하는데 6개월이나 1년씩 걸리는 일도 있습니다.”회사측 변호사가 있지만 담당 관리자도 그 못지않은 법 지식이 있어야 현장처리가 원활하다. 스스로 관련 보험법에 관한 지식은 물론, 유사 판례와 크게는 국제법, 해상법, 국제 조약 등까지 공부하고 식견을 갖춰둬야 한다.

명절에는 특히 비상이다. 이상하게도 명절 연휴 때 사고가 잘 일어나는 징크스가 있다. 작년 태풍 매미가 덮칠 때에도 이미 추석 전날 구씨는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채 초비상 근무 중이었다. ‘태풍이 심상치 않다’는 지역 근무자들의 긴급연락을 받은 뒤 밤새도록 전국의 사업장에 전화를 걸어 비상대비를 당부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부산항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인명사고는 더욱 착잡한 문제다. 작업 중에 근무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에서부터 떨어진 컨테이너에 깔려 작업자가 사망하는 등 안타까운 일들이 현장 곳곳에서 벌어진다. 2001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도 그랬다. 구씨네 선박이 한밤중 여수 앞바다를 지나던 중 한 어선이 들이박아 2명이 실종하고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구씨에게 연락이 날아들었다. 그로부터 7개월 동안 사후 처리문제로 유족들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7개월만에라도 상황이 마무리된건 ‘ 법대로’의 힘이 아니었다.

“와중에 곧 설날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사고 원인이나 책임이야 해당심판원에서 밝혀줄 일이지만, 어쨌든 그 사고로 아빠 없는 첫 설날을 보낼 아이들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 아프더라구요. 아직 유족들과 서로 한참 싸우던 중이었는데, 회사에서 얼마간 돈을 모아 아이들 설날이라도 좀 따뜻하게 챙겨주시라고 드렸더니 그 일에 아주 고마워하셨어요. 그 후부터는 상황이 순조롭게 풀렸어요.”

- 미친 듯이 일했던 초년시절

구씨는 홍익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1983년 현재의 회사에 입사했다. 신입 시절, ‘맡은 일에서 반드시 최고가 되라’며 철저히 훈련시킨직속 상사 아래에서 가혹하리만큼 힘들게 일을 배우며 실전을 쌓았다. 점심 한번 제대로 챙겨 먹어 본 기억이 없을 만큼 ‘미친 듯이’ 일한 시절이었다.

“ 어찌나 일을 무섭게 시키시는지 나중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혹독하게 일을 배우고 단련된 덕분에 지금의 저도 있는 거지요. 제 일과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었는데, 얼마 뒤 45세로 간경화로 돌아가셨어요. 원래 저는 골초였는데, 그 분 장례를 치른 난 다음날부터 담배를 끊고서 단 한 개피도 핀 적이 없어요.”현재 자사에서 쓰고 있는 장비 대부분도 그의 손을 거친 것들이다. 장비의 선정과 구매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판단착오로 장비를 잘못 도입할 경우 용도에 맞지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회삿돈 수십억원을 날리는 꼴이 된다.

아무리 조심해도 돌발 사고의 덫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지난해 48억원짜리 장비를 들여올 때도 가슴을 쓸어 내린 적이 있다. 해상수송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때는 마지막으로 선박에서 부두로 물건을 옮길 때다. 파도로 출렁이는 선박과 고정된 부두 사이에서 거대하고 육중한 크레인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특히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조수 현상이 복병이다. 미리 조수차와 시간대를 정확히 파악해 두지 않으면 운반 중 크레인이 뒤집혀 대형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48억원짜리 크레인도 그렇게 조심조심 이동하던 중, 갑자기 중간에서 멈춰 서 버렸다.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부랴부랴 원인을 찾아보니 장비의 전자카드가 고장난 것이었다. 다급한대로 다른 장비의 전자카드를 빼내 임시로 교체해 쓰면서 임기응변으로 무사히 운반을 마쳤다. 그나마 천우신조였다. 만약 물이 빠질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재앙’을 면치 못할 뻔 했다.

1999년 광양만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을 담당한 일은 그에게 아주 힘들고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프 - 도크, 즉 내륙의 컨테이너 부두 건설 경험은 있어도 바다에 인접한 부두인 온 - 도크를 세워 본 경험은 없었다.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 관리지원팀장으로 임무를 받고 내려가 현장 지휘를 맡았다. 대개 다른 기업에서는 3~6개월씩 소요되는 일을 결국 1개월 20일만에 완성해냈다. 비결은 다름이 아니다.

“ 매일마다 밤 늦도록 정신없이 일했어요. 그리고 16년동안 쌓은 경험이 부분부분 다 유용하게 쓰이더군요. 컨테이너 창고 지붕의 로고까지 제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 그 터미널에 마침내 첫 배가 들어왔을 때 그 성취감과 기쁨이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 자격증만 10개, 열성 학구파



그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꿈을 쫓는 열성 학구파다. 그동안 빈 시간을 투자해 따놓은 자격증만 10개다. 물류관리사, 국제무역사, 사이버무역사, 아웃소싱 컨설턴트 등이다. 지난해부터 서강대 경영대학원 MBA과정도 시작했다. 그간 ‘ 물류서비스 산업의 리스크와 손해배상책임에 따른 공정계약방안’ 등 여러 편의 논문을 관련 협회와 학회, 업계 등의 포럼을 통해 발표하기도 한 그는 현재 한국물류관리사협회 부회장이자 ‘ 무역을 사랑하는 사람들(cafe.daum.net/eTradeSpecialist)’이라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아온 자료 파일이 그의 비장의 무기다. 이를 바탕으로 ‘ 실무 100% 가미형’ 전문서를 펴낼 계획을 갖고 있다. 머리말과 목차까지 이미 써 둔 상태. 빠르면 내년쯤 세상에 부려놓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업무 중. 책 얘기나 할 때가 아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하역, 운송, 선적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순간순간이 사고의 위험 속에 움직이고 있는 거죠.”



글ㆍ사진/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5-0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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