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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NGO 활동가 곽형모
"우리는 정신적 궁핍에 빠져있다"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시민운동가


어쩌면 모든 일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교육 받고 성장한 한국 청년의 의분이자 공분으로서 시작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함께 대오를 형성했던 사람들이 더러는 생활에 쫓겨, 더러는 현실 논리에 굴복해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온 타성의 시간들을 이겨 냈다. 요컨대 그는 스스로 체득한 문제 의식이 자신에게 말하는 바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NGO 활동가 곽형모(49)씨가 보여 주는 삶의 시간들 속에는 지난 시절, 한국의 지식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또 지금의 몸짓들은 시대적 요구와 문제의 틀, 흔히들 하는 말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모한 현재에도 끊임 없이 ‘ 참여’해야 한다는 당위를 웅변한다. 변혁할 대상이 변했으니, 변혁의 주체도 변화의 도를 수용해야 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논리다.

“우리가 독재 정권이라는, 도저히 무너지지 않는 적과 싸우다 보면 화염병을 들게 됐고 강철 조직도 필요했죠. 그런데 열심히 싸우다,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적이 사라져 버린 거죠.”일종의 공황 상태는 그렇게 왔다. 변혁을 위해 그렇게 싸워 온 우리는 이제 무어란 말인가? 남을, 사회를 변화시키려고만 했을 뿐, 과연 나의 내면을 보았는가 하는 반성이 밀려 왔다. 정작 필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른 데는 그 같은 필연이 준비돼 있었다.






- 시민운동의 담론틀 생산

2002년 9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만들어진 ‘한국시민교육원’. 다른 이름으로는 ‘성찰과 비전’이다. 이 단체의 회원이기도 한 원불교 마포 교단 최진선 대표가 무료 임대 형식으로 선뜻 내 준 자리다. 현재 회원으로는 온 라인(www.religionship.org)에 80명, 오프 라인에는 50명이 가입해 있다. 현재는 그리 많지 않아, 소수 정예라 해야 더 어울릴 법하지만,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결코 만만찮다. 그들이 지난 5월 펴낸 책 ‘대안’을 보자(이채刊).

책은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의 문지방을 넘어 서자마자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목도하면서 몸서리를 치고 있다”며 “ 대안, 성찰, 영성, 종교성을 화두로 함께 고민을 나누려 한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손혁재(성공회대 ㆍ 정치학), 김진엽(홍익대 ㆍ 미학) 등 교수를 비롯, 기업인ㆍ시민활동가ㆍ시민활동가 등이 찾는 새 세상의 얼개다. 그것을 한 마디로 뭉뚱그려 ‘대안’이라 이름 했다.

곽씨는 이 만만찮은 단체의 상임교육위원이다. 회원들을 모아, 그들이 NGO 활동가로 거듭 나기 위한 재교육이나 워크숍 등 일체의 실질 활동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또 현재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 담론을 생산해 내는 일도 중요하죠.” 사람을 변화시키며 시민 운동의 담론틀을 생산해 내는 일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관장한다는 것.

3월 26일 춘천에서의 2박으로 열렸던 ‘되살리기와 소통을 위하여’ 현장을 살짝 들여다 보자. 정작 자신들이 사는 속내를 들여다 보면 허리띠를 몇 번은 바짝 졸라 매야 하는 한국의 NGO 활동가들이 이날을 한자리에 모여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들의 일상을 죄는 경제적 궁핍은 둘째 치고라도, 현재 사회 내에서 뭔가 뚜렷한 비전을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었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갈등 상황을 조정해 내는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는 매우 취약하죠. 갈등 상황을 나쁘게만 봤기 때문이고, 경제ㆍ문화ㆍ교육ㆍ여성 문제 등을 보는 수준이 들쑥날쑥한 때문이기도 하죠.” 가까이는 북한의 용천 참사 구호 대책을 두고서도 견해가 달랐다. 10여년 전, 통일 관련 시위를 하다 경찰 간부와 언쟁을 벌였던 당시 아프게 느꼈던 ‘건널 수 없는 강’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이에 대해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대안에 대한 갈증이 만연해 있다”고 압축한다.

크게 보자면 사물의 근본 원리로서의 종교성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帽遮?것이다. 이 같은 통찰은 격렬했던, 그러나 운동은 매우 경직돼 있었던 1980년대를 되돌아 본 결과다. “다양성보다도, 군사 독재를 때려 잡아야 한다는 목표에만 몰두한 결과죠.”

- 맨딴에 헤딩하는 한국의 NGO

21세기 들어 NGO 활동가라고 통칭되는 그들은 현재 평균 월 70~80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영세민이 따로 없다.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세속적인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은 없어요.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죠. 자신이 하는 일들이 사회에 이바지 된다는 것, 나아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표죠.” 맨땅에 헤딩하기 아니면 가미가제식 생활로 21세기 한국의 NGO, 즉 시민운동은 연명해 가고 있는 셈이다. “ 그래서 모이면 다들 걱정해요. 과연 10년 뒤에도 이 땅에서 시민운동이란 게 살아 남을까 하고 말이죠.”



그의 말에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 벌어 지고 있는 현실 모순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독거 노인과 소년 소녀 가장들의 생활 조건은 지금 더 이상 아래로 내려 갈 데가 없다. 대한변협이 5월 5일 발표한 ‘2003년 인권보고서’를 보자.하루가 멀다 하고 실업자는 양산되는 추세에 발맞추듯, 임금이 정규직의 51%에 겨우 미치는 비정규직은 1년새 12만명이나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듯 신빈곤층 급증하고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가운데 ‘생계형 자살’은 하루 3명꼴이다. 그들은 결국 ‘사회적 타살’의 희생자라고 관련 학자들은 말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 한국의 노사경쟁력은 조사 대상국 60개국 중 60위”라는 연구 결과를 내 놓은 다음날 나온 조사치다. 여기에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돼 간다. 21세기에 이념 대결이 종언을 고했다는 현실은 바꿔 말하면 운동이 주적(主敵)을 상실했다는, 다시 말해 한국의 변혁 세력들에게 ‘반제 - 반파쇼’ 처럼 단일한 공동 목표가 사라졌다는 사실과 곧 바로 통한다.

시민 운동의 리더들부터가 내부적으로 고갈돼 온 것이다. 그 해결책, ‘에니어그램’을 그는 2000년 지도적 사회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미내사(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습득했다. 에니어그램(Enneagam)이란 7세기 마호멧 교도 사이에 성행하던 영성 프로그램으로 2000여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창안됐다. 그것은 투쟁으로 무뎌진 자기 내면을 일깨워 주는 실천적 방침이었다. “예를 들어 산사(山寺)의 고요를 느껴본다든지, 낙엽을 밟는다든지 하는 식이죠.”낯선 것은 아니었다. 격렬한 투쟁의 현장에 있던 10여년 전, 어느 민중불교 스님으로부터 얻은 지혜의 요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성찰을 이뤄 낼 비법을 전수한다. “앉든 걷든 명상하는 법이라든지, 춤 세러피(therapy)를 실행하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자신이 어떤 조각품을 떠 올려 그 동작을 취해 있는다던가, 타인을 조각품으로 만들어 보는 등의 과정을 통해 해방의 희열을 느끼는 독특한 자기 수행법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활동가들은 의사소통, 그리고 인간 관계의 평화를 위한 대화의 훈련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죠.”그의 진술은 젊은 시절, 최루탄 하얗게 덮어 쓰며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했던 당사자의 것이라 더욱 설득력 있다.

- 유신시대를 살며 직업운동가로

동국대 영문학과 75학번인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1980년 봄, ‘서울의 봄’을 시위 현장에서 열심히 체감하고 있었다. 그해 5월 18일 검열의 흔적이 역력한 석간 가판대에서 ‘광주 폭도 운운’ 하는 소식을 보고는, 영국문화원으로 가 ‘전 장군, 루비콘 강을 건너다’라는 기사를 확인했다. 이어 출판사에 근무하며 시흥공단에서 노동야학 교사로 일하던 중 공장에 다니던 제자가 분신을 시도하는 사건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시국사건 관련자는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던 시절, 경찰에 시신을 뺏겨야 했다.

그가 직업 운동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불온서적 소지ㆍ배포 혐의로 1년 동안 교도소 신세를 지고부터. “직업 운동가로 거듭나겠다고 결심한 게 바로 그 수감 생활중이었죠. 군부 정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어요.”부인을 만난 것도 운동의 인연이었다. 민주쟁취국민운동 서울 본부에서 ‘자살자를 위한 위령제’ 준비 중 끈이 닿게 된 것. 이후 그에게 닥친 시간은 운동가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간의 전형이다.



“xx 두쪽 밖에 없던 처지라, 친척의 회사에 경리 과장으로도 1년 있어 봤지만 도저히 못 할 일이더군요.” 그가 말하는 방황의 변이다. 이후, 국민운동 서대문 지부장과 새벽 우유 배달 일을 8년 동안 겸했다. 그가 맡은 홍제동 구역에는 고지대가 많아 깜깜한 새벽길을 오토바이로 돌아 다녔지만, 낮이면 활동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족했다. 그것은 동시에 소중한 반성의 시간이었다.

“미시적 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뜬거죠. 90년대 초반, 범민족대회라는 통일운동을 보면서 이질적인 것(북한)을 받아 들이는 (남한) 사회의 건설이 관건이라는 깨달음의 요체였어요.” 1988년의 사건이 구체적 계기였다. 당시 연대생 수천명이 홍제동 4거리를 지나 북으로 가겠다며 도로에 누워서 시위를 벌이는데, 백골단이 바로 그 위에 최루탄을 퍼부은 일이 벌어졌다. “아, 반통일 세력을 물리력으로는 넘어뜨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결정적 계기였죠. 이제는 거시적 투쟁보다는 미시적으로 사람과 문화를 변화시키고, 서로의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통찰이었죠.” 그 일은 2년 뒤, ‘ 조국은 하나다’라는 문구를 써 넣은 한반도 깃발을 펼치자 마자 연행돼 서대문경찰서 정보과장과 때 아닌 통일 언쟁을 벌였던, 바로 그 사건의 단초였다.

이제 그는 영성(靈性) 또는 종교성(宗敎性)이 사회 운동의 정당성과 비전을 든든히 받쳐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변함없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멀리 왔다. 지금 그는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먼저 6월 5일이면 인제 내린천에 연구원, 회원, 교수 등을 모아 1박2일로 수련회를 갖는다. “새벽 명상, 아침 토론과 대화는 물론 춤도 함께 출 겁니다. 맑은 개울물에 발 담그고 노래도 부르면서, 또 약간의 맥주도 하면서 말이죠.”

이른바 386 정치인에 대해서 그는 “안희정은 고백했다는 점에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다”며 “흔히들 말하는 386의 동질성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경계와 견제의 태도를 견지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이 있는데, 걔들한테 특히 강조하는 말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공부 잘 하는 것, 원치 않는다고 한다”고. 슬쩍 김 빼놓고는, 씩 웃는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5-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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