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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38] 관세사 오규상
"만물박사가 다 됐습니다"
수출입 통관절차 관리·대행, 전문 관세법인 설립 계획


“꼭 왕진 가방을 들고 사람들을 치료하러 다니는 기분 비슷합니다.”


이 의사 아닌 의사는 관세사 오규상(44. 서울유신합동관세사무소)씨다. “문제는, 분명 ‘아픈 곳’이 제 눈에는 보이는 데도 본인들이 무조건 ‘괜찮다, 우린 건강하다’고 할 때 제일 속이 탑니다. 정말 괜찮은 것과 본인이 몰라서 못 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일깨워드리느냐가 저의 숙제입니다.”

관세사는 관세 제도와 무역업체를 연결하는 전문가다. 이들은 수출 또는 수입 현장의 모든 일을 돌본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상담과 자문은 물론, 관세 평가, 품목 분류, 관세 환급 문제 등 수출 또는 수입 통관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관리하고 대행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분쟁에서도 일종의 변호사 역할로 뛴다. 이의 신청, 심사 청구, 심판 청구 등을 통해 수출입 업체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수출입 통관 절차는 대략 이렇게 이뤄진다. 수출의 경우, 송품장과 포장명세서 등을 수출업자측에서 작성해 관세사에게 주면 이 자료를 기반으로 관세청과 연결된 전자시스템을 통해 관세사가 수출신고를 한다. 이를 접수한 세관으로부터 승인이 떨어지면 관세사가 수출신고필증을 발급해 해당업체나 지정 운송인에게 전달한다. 수출신고필증이 있어야 비로소 선적이 시작된다.

수입의 경우에는 기본서류로 송품장, 포장명세서와 함께 선하증권(BL)이 추가된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뒤, 해당 물품이 ‘검사 대상’ 품목으로 지정될 경우에는 정해진 날짜에 맞춰 검사까지 마친 다음 관세사를 통해 수입신고필증이 발급된다. 역시 출고와 배송이 진행되는 것도 수입신고필증이 나온 다음의 일이다.

- '세번’에 따라 몇십억원이 오락가락

절차 자체로만 보면 사실 간단한 역할이다. 품목에 따라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번거로울 만큼 다양한 관련 법과 특정 검사기관의 검사 확인 절차 등이 복잡하게 끼어 들지만, 어차피 형식의 문제다. 당사자들이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보조하는 것으로도 웬만큼 충분하다.

‘사고’는 주로 여기에서 터진다. 관세사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품목 분류다. 즉, 수출입 신고 때마다 관세사들이 관세청에서 규정한 원칙에 따라 각 품목에 해당되는 세번(稅番)을 찾아 붙이게 된다. 같은 재료라도 용도나 가공법 등에 따라 적용되는 항목이 제각각 달라진다. 이 일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어느 품목으로 구분되느냐에 따라 관세 비율이 달라진다. 이를 위해 ‘수출입 통관 편람’이라는 한 뼘 두께나 되는 분류표 책자가 있지만, 세상의 모든 물품을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다. 그 틈에서 자칫 실수나 오판이라도 빚어지면 업체의 피해로 이어진다. 많으면 몇억, 몇십억원이 세번 하나에 오락가락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젖소의 초유를 그대로 수입할 경우 관세가 176%지만, 같은 초유를 조금이라도 가공해 유제품으로 만들어 들여오면 8%로 관세률이 뚝 떨어진다. 그나마 이렇게 똑 떨어지게 구분되는 제품이면 다행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시제품들이 쏟아지는 전자제품쪽은 특히 이들에게 난감한 복병이다. 딱 잘라 분류하기 애매한 것들이 많다. 까딱하면 이현령 비현령이다. 관세청과 관세사, 수출입 업체간에 행정구제사건이 터지는 것도 주로 이 함정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오씨가 겪은 일이 있다. 당시 그는 모 기업의 자동 라벨 인쇄기 수출 통관 문제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인쇄기가 애물단지였다. 기존 인쇄기의 다기능 업그레이드판인 이 인쇄기로는 정확히 해당되는 항목이 없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제품이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심사숙고 끝에 ‘기타’ 항목으로 분류한 오씨. 그리고 만약의 문제를 대비해 관세청에 ‘품목 분류 사전심사’를 신청했다. 그런데 관세청으로부터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관세청이 통보한 세번은 오씨가 붙인 항목과 다른 것이었다.

두 개의 차이는 간단히 말해 5,000만원의 차이였다. 오씨의 의견대로 적용하면 관세 환급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관세청의 결정대로라면 관세 환급 혜택이 없었다. 관세 환급이란 국내 수출장려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으로, 기업에서 어떤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 과거에 그 기초 원재료를 수입하면서 납부했던 관세를 수출 시점에서 소급해 되돌려 받게 한 제도다. 당시 오씨가 맡았던 회사의 경우 그렇게 찾을 수 있는 관세 환급액이 5,000만원이었다. 관세청과 관세사 오씨간에 벌어진 논란의 최대 쟁점은 ‘이 인쇄기가 분리가능한 결합구조인가, 별도의 단위기기인가’ 여부였다.

“제 의견을 관철시키자면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 설득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 주장을 뒷받침할 반박자료를 만들기 위해 직접 서점에서 인쇄기에 대한 책도 사서 공부했고, 그 외 제품 설명서라든가 카탈로그 등 관련된 자료란 자료는 최대한 모아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분석했어요. 관세청에 보낸 서류에도 ‘물품의 내부 구성 및 구성 요소별 기능 설명서’등의 전문적인 분석 자료를 직접 작성해 첨부하구요. 인쇄기 회사 사장님이 그 자료를 읽어보시더니 ‘어떻게 이걸 다 아느냐, 저보다 더 많이 아시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만큼 철저히 준비한 거지요.”

- 관세청과의 끝나지 않는 공방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7개월간 힘겨운 공방이 이어졌다. 탄탄한 논리전 덕분에 결국 오씨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자칫 허공에 날릴뻔한 5,000만원이 수출업체로 돌아갔다.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관세청에서도 고민이 많았다는 증거였다.

당장 통관이 끝났다고 마냥 방심할 상황도 아니다. 통관심사가 점차 자율, 사후 심사쪽으로 바뀌는 추세다. 통관이 끝난 몇 년후라도 언제 어떤 문제가 지적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가 2년 전 겪은 일이 바로 그랬다. 그 해 5월 이맘때 갑자기 관세청으로부터 ‘과세전통지서’란 것이 날아들었다. 두 해 전인 2000년에 이미 끝냈던 모 기업의 휴대폰 모바일 이동국 테스트 기기 수입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후 심사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해당기업에 3억 7,000만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는 통지였다. 5%의 관세가 누락된 것으로 계산해 2년치를 합한 금액이었다.

이번에도 품목 분류가 불씨였다. 예의 논쟁이 벌어졌다. 오씨의 ‘불복 이유서’와 ‘반대 의견서’등이 연이어 관세청에 제출됐다. 8월에 최종 통보를 받기까지 그에게는 3억7,000만원의 기업 재산을 책임진, 진땀나는 석달이었다.

“다행히 제 주장이 수용되기는 했지만, 그러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보니 불복 이유서 한 줄 한 줄을 쓰는 데에도 너무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따르는 거지요. 24시간 내내 그 생각에만 시달렸습니다.”

오씨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1978년 부산세관 근무를 시작으로 20년간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다 관세사로 독립한 케이스다. 5년 전인 1999년 관세사라는 두 번째 출사표를 던지기까지, 사실상 관세 분야의 모든 업무를 현장에서 익혔다. 88년 서울 올림픽 때에는 포항 항만세관에서 안보감시대책 실무자로 고군분투하며 성실성을 인정받아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창 인정받던 30대 후반의 나이에 갑자기 관세사가 되겠다고 사표를 내밀었다. 가족은 물론, 무엇보다 세관 동료들의 반대와 만류가 심했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사람이 왜 굳이 황야로 나서려 하느냐’는얘기였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관세사로 전업하는 예는 많지만, 오씨와 같은 경우는 지금도 관세청 내부에서 파격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물론 그에게는 나름의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세관에 근무하는 동안 관세법과 제도에 대해 잘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민원 상담 전화를 많이 받으면서 참 안타까왔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고 싶어도 공무원 신분으로 드릴 수 있는 도움이란 게 한계가 있고, 자칫하면 상대가 오해하거나 부담을 느낄 수도 있구요. 차라리 자유로운 신분으로 나가서 마음껏 도움을 드리며 소신껏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 자원봉사 1년 뒤 업계 안착

관세사가 된 후 첫 1년간 어려움이 많았다. 공무원 시절과는 달리 스스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알려야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홍보가 아닌 봉사로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특기 분야이자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관세 환급 문제를 비롯해 당시 정부가 갓 시행하며 강력 추진하고 있던 자율소요량 제도 등, 기업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와 권리들을 매일 서너업체씩 찾아다니며 무료로 안내하고 교육했다. 이 자원봉사 행진이 1년쯤 계속되자 서서히 고객이 제 발로 찾아 들기 시작했다. 한때 관세청에서 8,000여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하며 ‘잠자는 관세 환급분’을 찾아가도록 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이를 알려 휴면 환급액을 되찾도록 도왔다.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영세업체라도 어떻게든 계속 행방을 수소문해서 당사자들도 모르고 있던 돈을 찾게 해드리고 나면 그렇게 고마워하실 수가 없었어요. 그럴 때 보람과 성취감을 다시금 느끼곤 했어요.”

관세사 업계의 생존경쟁은 대단히 치열하다. 배출되는 공인 관세사들 수맨巒?해마다 20%씩 늘어난다. 수요와 상관없이 공급이 넘친다. 관세사 자격증을 갖고도 사무실을 갖지 못한 이들이 50%가 넘는다. 이 삼엄한 시장에서 개업 1년만에 안착한 사례로도 그는 이례적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진짜 문제다. 무엇보다 그가 원하는 목표치가 만만치 않아서다.

“전문화된 관세법인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계획입니다. 이제까지는 주로 법무법인으로 스카웃돼 빠져나가던 관세청의 유능한 인력들을 앞으로는 이리로 흡수해 명실상부한 전문 분야로 개척하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이제까지 한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지요.”

관세사가 된 무렵부터 시작해 그는 5년째 기(氣) 수련 연마중이다. 매일 새벽 5시면 시계처럼 일어나 어김없이 집 근처의 기 수련장에 나가 1시간반동안 체조와 명상으로 자신을 다스린 뒤 아침을 맞는다. 공무원 시절 ‘검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차갑게 비쳤던 그가 예전보다 더 뜨거운 생존의 스트레스에 부딪치고 있을 관세사 생활에서 오히려 만면에 여유를 풍기며 다니는 것도 어쩌면 그 덕분인지 모른다. 하지만 무념무상의 세계를 찾으러 간 그 자리에서마저 그는 가끔 하지 말라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이 버릇을 고치기란 아예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거기에서도 자꾸 일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아요. 실제로 그렇게 명상 중에 해답을 얻은 일도 많구요. 아직 수행이 엉터리라서 그런 거지요.(웃음)”



글·사진/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5-1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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