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을 끼고 사는 '세균 킬러'인체에 유해한 '세균과의 전쟁', 시민운동가와 다름 없는 과학자

[직업의 세계-40] 식품 미생물검사 전문가 정윤희
세균을 끼고 사는 '세균 킬러'
인체에 유해한 '세균과의 전쟁', 시민운동가와 다름 없는 과학자


새 불안에 떨었다. 전날밤 실험을 위해 가져다 둔 요구르트를 냉장고에 넣고 왔는지 아닌지, 자다말고 깨어나 헷갈리기 시작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더니, 해가 뜨자마자 정신없이 차를 몰고 실험실을 찾았다. 요구르트는 얌전히 냉장고 속에 앉아있었다. 모처럼 쉬고 있던 일요일 새벽 바람에 사라졌다 나타난 아내를 보고 남편이 놀랐다.

“ 남편이 무지 황당해 하더라구요(웃음). 워낙 일에 신경이 몰려있다 보니 제가 해 놓고도 행여나 걱정이 됐던거지요. 그 후론 무엇을 하든 꼭 두 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박혔어요. ”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 정윤희(42) 박사는 세균 킬러다. 세균을 살리고 죽이는 일만 20년째 해 왔다. 현재 소보원 시험검사소 식품미생물팀 팀장으로, 미생물학 이학박사다.

- 소비자를 지키는 식품 파수꾼

소보원은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재정경제부 산하 특수공익법인이다. 피해 상담, 분쟁 조정, 시험 검사, 정책 연구 등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여러 사업들을 맡고 있다. 정박사는 그 중 소보원이 갖춘 자체 시험검사소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 미생물팀은 주로 식품의 대장균, 식중독균, 내성균 등 인체에 유해한 세균들을 찾고 쫓아내는 일이 주업무다. 과학자이면서도 반은 시민 운동가나 다름없는, 인문계와 자연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독특한 자리다.

지금도 한창 어느 가공식품류에 대한 작업이 은밀히 진행중이다. 한 두달 뒤면 본격적인 시료 채취에도 나설 예정이다. 언론을 통해 발표되기 전까지는 전 과정이 일체 대외비로 다뤄진다. “ 식약청 등 정부에서도 미처 다 감당하기 힘든 사각 지대를 감시하고 보완하는 것이 저희들의 역할입니다. 소비자들을 지키는 식품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지요. ”

검사소팀의 검사는 약 90%가 자체적으로 기획해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이다. 검사 대상과 스케줄이 이미 한해 전에 정해진다. 미생물팀이라 해 봐야 전부 5명. 검사소내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소수 정예 부대다. 일사불란하게 공동으로 호흡을 맞추고도 팀 전체로 약 7건쯤 처리하고 나면 한 해가 훌쩍 지난다. 한 건당 짧으면 4개월, 길면 1년쯤 걸린다.

인력이 적은 만큼,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문제점만을 선별해 프로젝트를 기획한 뒤 내부 결재를 받는다. 결재가 떨어지면 바로 실험 검사 작업에 착수한다.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 도, 소매점 등 직접 시장에 나가 문제의 식품을 채취한다. 자신들의 신분을 표시내지 않은 채 여늬 사람들과 똑같이 자연스레 물건을 사고 값도 지불하고 가져온다. 다른 것이 있다면 미리 준비해 온 아이스 박스에 넣어, 집이 아닌 소보원내 뒤편 건물에 자리한 시험 검사소로 옮긴다는 것이다.

- 음식 샘플채취땐 비밀작전 방불

일반 유통ㆍ판매 식품이면 그나마 수집하기가 쉽지만, 가끔 식당의 음식을 조사할 때는 과정이 복잡해 진다. 강제 단속권이 없는만큼 스스로 요령껏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언젠가 열차 식당 칸의 음식을 샘플 채취할 때도 비밀 작전을 방불케 했다. 연구원 한명은 망을 보고, 다른 연구원 세 명이 역무원들 몰래 사진도 찍고, 준비해 간 멸균 백에 음식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 중에는 절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침이라도 튀면 또 다른 세균이 섞여 들어가기 때문이다. 각자 손에는 위생 장갑을 끼고, 준비해 온 멸균팩에 위생 숟가락이나 핀셋 등으로 조심스레 음식을 집어 담는다. 한번에 대략 4~5인분의 양이 채취된다.

아이스박스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실험이 착수된? 이 때부터 한두 달 동안 연구원들은 실험실에 살다시피 한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식품 샘플은 곧 클린벤치라 불리는 멸균작업대위에 올려진 뒤 차례대로 실험 과정을 밟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해당 식품에 숨어 있는 다양한 세균들 중 인체에 해로운 ‘유해균 후보’들을 찾아낸 뒤, 다양한 생물학적 방법 등을 동원해 집중 실험함으로써 그 유해성을 확인하는 것이 끝이다.

실험 자체로만 치면 한번 실험에 대장균은 약 5일, 식중독균은 10일 정도 걸린다. 실험에 쓰이는 크고 작은 기구 및 장비가 70여종, 그 중엔 1억여원대의 실시간 유전자 증폭 장치를 비롯해 수천만원짜리 검사 장비들도 즐비하다. 세균을 배양하는데 쓰이는 시약, 쉽게 말해 ‘미생물의 밥’이라 할 수 있는 ‘배지’는 약 150종에 이른다.

실험 기간이 두달 가까이 걸리는 이유는 만약의 오류를 막기위해 같은 실험을 몇 차례씩 반복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문제와 관련된 논문도 검토하고, 새로운 과학 기법이 있는지도 놓침 없이 확인한다. 실험 데이터의 정확도는 이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 일단 이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뒤에는 해당 업계의 매출이나 이미지 등에 큰 타격이 미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파장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실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 실험 결과 ‘혐의’가 사실로 입증되면 공식 보고서가 작성된다. 적으면 약 20페이지, 많으면 4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다. 실험실의 전문 용어를 두고 일반인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다시 풀어 쓰는 숙제도 간단치 않다.

언론에 공개하기 한 달전쯤, 해당 업체 또는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연다. 당사자들에게 소명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워낙 철저한 실험으로 입증된 사실이다보니 대개 업계가 반박하거나 항의하는 경우는 없다. 주로 ‘한 번 봐 달라’는 읍소들이다.

“ 저희도 심정적으로는 그분들 입장을 듣고 가슴 아플 때가 많아요. 특히 문제가 지적된 백화점에서 해당 식품의 일하는 아주머니를 쫓아 내거나 해서 그 아주머니가 저희에게 ‘ 밥 먹고 살 길이 끊어졌다’고 전화를 하실 땐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외부 발표를 저희 마음대로 취소하거나 미룰 수 있는 사항도 아니고, 전체 소비자들이나 미래를 생각하면 그래서도 안 되지요. 문제가 된 기업측에게도 발전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며 나중에는 기업에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계속 설득합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구요. ”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 예전에는 ‘가만두지 않겠다, 어두운 길을 조심하라’는 협박 전화를 심심찮게 받았다. 소비자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의식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 소송에 휘말리면 업무 마비 상태

물론 요즘도 모두가 순순히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엔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맞서는 대기업도 있다. 99년 유전자 변형식품(GMO) 문제를 다뤘다가 모 기업으로부터 피소 당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유전자 변형 콩과 이를 사용해 만든 두부였다. 정박사 팀에서는 이 문제를 1년동안 연구하고 추적한 끝에 마침내 결과를 얻은 뒤 이를 공개했다. 발표 전 가졌던 간담회때만 해도 문제의 기업이 보인 태도는 이후의 소송때와 사뭇 달랐다.

‘미처 우리가 검토하지 못했다, 발표를 연기해달라’는 호소에다 ‘소보원의 기술력을 배우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들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법원의 통지가 소보원에 날아들었다.

소송이 제기된 날로부터 거의 3년간 미생물팀의 원래의 업무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11명의 변호사들이 이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맡았고, 20여차례의 변론이라는 뜨거운 공방을 거친 뒤 3년 6개월만에 돌연 상대 기업이 법원에 소 취하서를 내면서 비로소 끝이 났다. 기업측에서 밝힌 소 취하 이유는 ‘소보원의 실험 방법이나 실험 내용에 아무런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고, 공익 기관으로서의 공신력 등을 깊이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정박사에게는 지금도 악몽같은 시간들이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한 채 3년이나 허송세월을 보냈다. 소송 대응 자료를 준비하느라 주말과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두 세시에 퇴근했다. 몸과 정신이 지칠대로 지쳐있던 어느 저녁 퇴근길엔 차를 몰고 가다가 덤프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도 있었다.

“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를 보는 국민들이 ‘에이, 소보원에서 뭘 잘못 했나봐’라고 말할 때였어요.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있는 사람들이고, 저희는 이 일을 한다고 해서 아무 것도 더 얻을 게 없는 순수한 사명감으로 일하는 입장인데, 왜 저희 말을 안 믿는지. 그럴 때 우울했어요. 친구들중에도 ‘그거 진짜 맞는거야?’라고 물어볼 때 참 가슴 아프더라구요. ”

간담회가 정리된 뒤 최종 보고서가 작성되고 마저 내부 승인이 끝나면 언론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내용이 발표된다. 이로부터 첫 이틀간은 전화에 불이 난다. 관련 업자들의 항의 아니면 시민들의 격려 전화, 둘 중 하나다. “우리는 몰랐던 사실인데, 잘 했다. 수고했다”는 얼굴도 모르는 소비자의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낀다.

- 긴장의 연속, 실험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

정박사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85년 국립보건원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며 첫 발을 디뎠다. 보건원에서는 주로 실험실안에서 병원성 세균을 다뤘다. 소보원으로 옮긴 것이 88년이었다.

일은 흥미로왔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와 긴장도 늘어났다. 미리 문제점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아이디어 싸움 등 실험실에서도, 간담회장에서도, 발표후에도 끊임없는 긴장이 몰려 들었다. 어떤 점에서는 이곳 역시 또 다른 이름의 학교였다. 과학이 빠르게 급전, 반전을 맞고 있는 세상이다. 왓슨과 크릭에 의해 처음으로 DNA 이중 나선구조라는 것이 발견된 뒤 최근 인류의 대사건으로 불리는 복제양 돌리 탄생 소식을 맞기까지 단 5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실험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새로운 지식을 따라잡아야 했다. 일과 함께 공부를 계속해 2003년 건국대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장 행복할 때는 실험실에 파묻힐 때다. 한번 멸균작업대와 벽면, 배양균과 시약만 있으면 그는 하루 10시간이라도 군소리 없이 꼼짝 않고 지낼 수 있다. 워낙 지독하게 눌러앉아 있는 그를 보고 언젠가 한 교수는 ‘멸균 작업대 안에 애인이 있냐?’는 농담을 던진 적도 있다.

요즘 고민하는 주제 중 하나는 일명 ‘수퍼 박테리아’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소보원에서 10년을 내다보고 진행중인 ‘항생제 내성균 억제 대책’에 대한 프로젝트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7년째 매일 새벽마다 원내 헬스장에서 1시간이 넘도록 땀을 흘린다. 이것도 알고 보면 직업병 때문이다.

“ 20년동안 세균과 함께 일하고 얻은 결론은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는 것보다 더 정직하고 안전한 대책은 없더라는 겁니다. 설령 오염된 식품을 먹더라도 면역력이 약한 사람보다는 그 피해가 덜 하다는 거지요. 개인적으로도 실험을 계속 하자면 체력이 상당히 중요하구요. “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5-26 20:25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