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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김형자
"내가 원조 몸짱 공주였다우"
어느새 연기생활 30년, 공주에서 여왕으로
생동감 넘치는 일상 "20대 팬클럽까지 생겼어요"


뱃속 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릴 무렵, 휴대폰에 ‘ 여왕’이라는 발신자 이름이 떴다. 김형자다. “ 난데, 일단 밥부터 먹고 하면 안 되것수?” 갑자기 생긴 촬영 일정 때문에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잰다. 얼떨결에 식사를 가장한 인터뷰를 감행하게 됐는데 주위 사람들이 “ 김형자다!”며 연신 자지러진다. 쉰이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온 몸에 생동의 에네르기가 넘쳐흐르는 배우 김형자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진행됐다.






- ‘여왕’이 ‘공주’이던 시절

밥알을 입안 가득 한 움큼 집어 넣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좀 이뻤거든.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날 공주로 만들었어. 그땐 이쁘면 당연히 배우 되는 거였고, 내가 또 연기를 좀 했잖아. 호호호.” 딸 부잣집, 다섯 중 제일 예쁜 넷째 딸로 동네에서도 유명했던 그는 1970년 이효춘, 박혜숙, 김성환 등과 함께 TBC 공채 10기로 데뷔해 한때는 멜로물의 주연급 연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정윤희, 김창숙 등과 함께 ‘ 예쁜 여배우’에 속하며 청춘스타의 반열에 올라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누구보다 분주한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유명세에 걸맞게 당시 박봉의 탤런트 월급을 쪼개 이태원과 남대문을 누비며 구입한 옷을 밤새 멋지게 수선해 입기도 했다. “ 그땐 뭘 입어도 예쁠 때였어. 어렵게 구한 일본 패션 잡지를 보고 나름대로 코디해서 명동에 나가면 남자들이 줄줄 쫓아왔지. 덕분에 돈 한푼 안들이고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었어. 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잊지 못할 낭만이지.”

한동안 김형자가 22살 때 찍은 음료수 CF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 원조 몸짱’을 떠오르게 한다. 164㎝ 키가 당시 여자 탤런트로선 상당히 큰 편으로 유독 광고주들이 핫팬츠, 미니 스커트를 많이 입혔단다.

- 톡톡튀는 감초 연기로 제 2의 전성기

1980년대 초반 TBC가 KBS로 통폐합되면서는 잠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1년 이상의 큰 공백없이 30년간 한 우물만 파며 지금에 이르렀다. 출연 작품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며 주ㆍ조연 가리지 않고 작품을 빛낼 수 있는 역할이라면 최선을 다해 매달렸다. 연기가 좋아 선택한 길이기에 꼭 주인공이어야만 한다는 욕심은 일찌감치 버렸다. 욕심이라면 더 다양한 삶, 극적인 삶을 연기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 뿐이라고.





지금이야 괄괄한 아줌마의 대표 표상이지만 그도 한땐 청순가련의 대명사였다. 흑발에 수줍은 미소 한번 지으면 뭇 남성들은 사정없이 쓰러졌고, 간혹 출연하는 쇼 프로그램에서도 늘 공주풍의 옷을 입고 다소곳한 노래만 불렀다. 그런 그가 이제 연기 생활 30년이 넘은 중견 배우가 돼 맛깔스러운 조연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있다. 얼마 전 시트콤 <연인들>에서 20년 연하남 공형진과 보여준 닭살 연기 덕에 “ 아줌마 연기 짱이다”며 20대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현재 출연중인 일일연속극 <귀여운 여인>에서 펼치는 문혜숙 연기도 반응이 좋다. 사주팔자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첫사랑이던 장중훈(백일섭)과 헤어져 산전수전 다 겪은 후 찜질방 매점 한 귀퉁이에서 일하던 중, 부자가 된 중훈을 우연히 다시 만나 목하 열애중이다.

여린 풀꽃같이 굴지만, 알고 보면 암코양이 같은 캐릭터로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귀여운 악녀다. “백일섭 씨는 눈만봐도 웃음이 나와, 그래서 힘들어. 그래도 어째? 얼마만에 하는 로맨스 연긴데…. 연애하는 기분으로 찍고 있어.”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영화에서도 그 활약이 대단했다. 상당부분 투박한 시골 아낙이나 거칠게 삶을 살아내는 술집 작부 역이 많았는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꼬방동네 사람들> <씨받이> <감자> <인간시장 3> 등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 당시는 필름을 아껴야 할 때라 NG가 나면 감독이 화를 냈어. 지금이야 찍고 또 찍고 하지만 그때는 얼마나 빨리 빨리 찍었다구. 경제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냄새 나는 그 때가 그리워.”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라는 지론을 지닌 그는 서둘러 만개하기 보다 오랫동안 은은한 향을 발산하며 사는 삶을 선택했다. 우정에 죽고 사는 의리파이기도 해 친구나 후배의 좋은 카운셀러가 되기도 하는데 친한 친구가 하는 사업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 주고, 대신 친한 사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게 행동하면 바른 말을 아끼지 않아 친구를 잃기도 했다. “ 나이 쉰을 넘으니 이제야 좀 인생이 보여.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잖아. 서울역 가봤수? 노숙자들이 넘쳐 나? 갈수록 웃을 일이 드물어지는 세상에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얼마나 좋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기쁨과 행복을 준다는 것이….”

덧붙여 그는 인생이란 사는 것 보다 설명하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끝이 안 보이는 삶, 답답한 일상일지라도 잠시 숨 한번 크게 들이 쉬고 ‘ 언 삶’을 따사로이 하고픈 사람들이 감히 연기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시들지 않는 한결같은 웃음으로 서민들의 듬직한 벗이 되고 있는 김형자. 우리시대의 보기 드문 연기자이자 나이 들수록 귀여운 브라운관의 ‘ 여왕’이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5-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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