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발력과 육감의 승부사기업경영 진단하는 자본주의의 파수꾼

[직업의 세계-41] 공인회계사 전현철
순발력과 육감의 승부사
기업경영 진단하는 자본주의의 파수꾼


공인회계사(CPAㆍ Certified Public Accountant)들끼리 통하는 농담이 있다. CPA는 공인회계사의 약자가 아니라 자르고, 풀칠하고, 붙이는(Cut, Paste, Attach) 사람이라는 얘기다. 우표가 일반적으로 쓰이던 옛날에는 실제로 편지봉투에 서류를 넣고 일일이 침 발라 우표를 붙이고 보내는 일이 신참 공인회계사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다. 공인회계사라서 지켜야 할 것도 무지 많았다.

“수습사원 때 한번은 의뢰인이 있는 앞에서 별 생각없이 선임자에게 ‘과천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되느냐’고 물어 봤다가 엄청 혼 난 일이 있어요. 공인회계사의 품위가 떨어지게 고객 앞에서 버스 타고 다니는 얘기를 꺼냈다구요.”


- 자본주의 3대 꽃중 하나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3대 꽃으로 불리는 공인회계사. 자본주의의 파수꾼, 공인회계사 전현철(47ㆍ안진회계법인 전무이사)씨의 첫 걸음도 그렇듯 각별한 시선 속에서 시작됐다.

공인회계사가 하는 일은 크게 회계감사와 세무, 경영컨설팅 업무 등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임무는 역시 기업의 경영상태를 진단하는 회계감사 업무다. 농사로 치자면 1년 중 10월부터 3월까지가 이들의 농번기, 4월부터 9월까지가 그나마 여유로운 농한기다. 10월부터 바빠지는 것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실시되는 중간감사가 대개 10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뒤이어 12월에 기업들의 결산이 끝나면 연말의 본격 감사가 뒤따른다. 특히 1월 중순부터 눈코 뜰새 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대략 3월까지는 새벽 출퇴근도 밥 먹듯이 돌아온다.

“ 가장 일이 밀릴 때가 2월부터 3월초입니다. 이 직업이 힘든 것은 특히 데드라인에 쫓기는 일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것도 몇 달에 집중적으로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하다 보니 상당히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현행법상 자산총액 70억원 이상의 주식회사는 반드시 공인회계사들의 회계감사를 받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회계감사 때 중소기업의 경우 평균 3,4명, 대기업의 경우 약 5,6명의 공인회계사가 조를 이뤄 투입된다. 기업에 따라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씩 걸리기도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기업의 재무재표에 문제점을 찾고 바로잡는 역할이다. 그 중에서도 의도적으로 장부를 조작한 것이 없는지 수많은 서류와 현장, 실무자들 사이를 오가며 철저히 확인한다.

지난 20여년간 직접 목격한 부정행위들도 많다. 외형상 수익을 부풀리기 위해 매출원가를 실제보다 줄이거나, 있지도 않은 회사를 만들어 재고 자산이 있는 듯 속이는 일도 있다. 또는 상품 가치가 없는 불량품을 정품처럼 재고 자산으로 처리해 눈속임을 시도하기도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외형상 견실한 기업의 순간 몰락도 대부분 기업의 부채비율을 감추기 위해 장부상 누락시켰다가 파탄을 맞은 결과다. 이러한 회계 조작이 ‘분식(粉飾)회계’다. 공인회계사들 사이에 떠도는 ‘마사지’라는 말도 그와 비슷한 뜻의 은어다.

감사가 시작되면 관련된 각종 장부는 물론, 공장과 사무실까지 모두 공인회계사들의 검색 대상이다. 그 많은 서류를 전량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중 중요도나 무작위 방법에 맞추어 일정량을 표본으로 추려낸 뒤 정밀 검색에 들어간다. 컴퓨터가 일반화된 요즘은 각종 계약서나 세금계산서 등 자질구레한 증빙자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당 기업의 전산망에 직접 들어가 재무재표를 검토한다. 어떤 서류를 보든 이들의 머릿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만 맴돈다. ‘어떤 문제가 감춰져 있지 않을까’라는 전제다. 이들의 용어로 ‘건전한 의구심’이라는 것이다.


- 장부와의 전쟁 ‘회계감사’

장부상 조금만 매출이 들쭉날쭉 해도 기업 실무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뜯어본다. 각 장부마다 서로의 숫자와 숫자의 아귀를 맞춰보며 헛점을 찾아 파고들어간다. 노련한 베테랑에겐 계산기를 넘어선 순발력과 육감도 등장한다.

“ 계산기를 두들기다 보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문제점이 있을 경우 뭔가 이상한 게 잡히게 돼 있습니다. 어떤 감각이나 느낌 같은 것도 작용하구요.”

제조 또는 유통기업의 경우엔 재고 자산도 요주의 확인대상이다. 특히 재고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백화점의 경우엔 이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회계사들이 대거 투입된다. 이들이 직접 창고와 매장을 돌아다니며 실사를 벌인다. 한 손에는 장부를 들고 현장에 놓인 재고품 더미를 무작위로 지정해 장부상 어느 기록에 올라있는지 불쑥 기耽喚窩悶“?확인하거나 반대로 장부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장의 실물을 찾아 확인하기도 한다.

80년대 후반 전씨가 적발한 회계 조작 사건 하나. 거액의 사채빚을 진 모 건설기업이 이를 속이려다 회계감사에서 들통난 일이다. 당시 전씨팀은 감사가 시작되면서 이들이 건네 준 전산자료 프린트물을 건네받아 하나씩 확인해나가고 있었다. 일단 장부상 월별로 정리된 12월말 잔액과 재무재표의 차입금 총액은 흠 잡을 데 없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연이어 이 곳 저곳 뒤적이며 계산을 맞춰보던 전씨에게 얼마 지나지않아 이상한 흔적이 잡혔다.

“ 월별로 다시 특정 샘플을 잡아서 셈을 맞춰보니까 어느 순간 서로 합계가 다른 것이 나오는 거예요. 이것을 시작으로 뒤쫓으면서 결국 숨겨져 있던 거액의 차입금을 찾아냈습니다. 말하자면 감사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장부를 꿰어 맞추다보니 최종금액은 그럭저럭 맞췄는데 세부내용까지는 미처 다 뜯어고치지 못한 상태에서 들통이 난 거지요. 대개 전산장부는 믿을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것도 얼마든지 조작가능하다는 거지요.”

더 어려운 순간이 아직 남아있다. 문제를 발견한 후 해당기업과 치르게 되는 일전이다. 문제사항을 기업측에 통고하고 바로 잡도록 경고하면 상대의 반응은 대개 둘 중 하나다. 순수한 착오인 경우 별 무리없이 반영된다. 하지만 의도적인 조작인 경우 백이면 백 거의 전형적인 반응법이 정해져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아예 반박하거나 잡아떼는 일조차 깨끗이 생략한다. 당황해하면서도 첫 마디부터 ‘우리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다’며 장황한 설명으로 일관해 결국 ‘모른 척 하고 넘어가 달라’는 결론으로 끝난다. 공인회계사들에게 이보다 더 힘겨운 순간은 인간적으로 호소해 올 때다.

“ 50대 중반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울기도 했습니다.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 실제로 저희가 발견한 문제를 그대로 반영할 경우 그 회사는 곧장 망하게 됩니다. 은행 대출도 안 되고, 코스닥에서도 바로 퇴출이지요. ‘몇 십년 고생해 겨우 일군 회사다, 한번만 봐달라, 안 그러면 우리는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할 땐 너무나 딱하고 마음이 안됐습니다.”

하지만 공인회계사들의 결론 또한 이미 정해진 것이다. 결국 전씨팀은 그대로 강행했고, 얼마 뒤 그 기업은 자금난으로 부도를 맞아 문을 닫았다. 잘못된 재무재표를 믿고 투자하게 될 투자자들과 자금을 대출해 줄 은행 등 선의의 피해자를 미리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와 비슷한 경우였던 또 다른 기업은 어찌어찌 되살아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전씨네 회계법인과 계약을 맺지 않았다. 감사가 너무 깐깐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인회계사로서의 공정성과 소신, 그리고 그 자신 또한 회계법인이라는 한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생존의 책임을 나눠 진 입장 틈 사이에서 심정적으로 적잖이 곤혹스러운 딜레마를 겪는다.

“ 대기업보다는 주로 중소기업들의 회계감사를 맡았을 때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회계지식들이나 세무, 경영 전반의 조언을 해드리면 나중에 감사가 끝날 때쯤 ‘그 동안 몰랐던 것을 많이 배웠다,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할 때 저희도 보람을 느끼지요.”


- 경제난 거치며 사회적 책임 통감

전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 대학 4학년 때인 82년이었다. 같은 해 한 회계법인에 취업하면서 이 길에 첫 발을 떼었다. 학교에서 바로 직행한 처지이다 보니 초창기엔 장부나 전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직접 현장을 뛰고서야 처음 알았다. 한동안 실수연발이었다.

“ 원래 법인세라는 건 특별히 장부가 없습니다. 1년간 소득을 계산해서 세금을 내는 건데 그것도 모르고 기업에 ‘법인세 장부를 달라’고 한 적도 있고(웃음), 시니어가 은행 거래 조회 양식을 작성해 보내라고 했는데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 의뢰인 앞에서 식은 땀을 줄줄 흘린 일도 있습니다.”

회계감사외에도 기업의 매수, 합병, 매각, 마케팅 조사 등 기업의 경제, 경영활동에 관한 한 그 무엇이든 공인회계사들이 다룰 수 있다. 87년, 한 이동통신회사의 의뢰를 받아 ‘접속료 모델’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해 낸 일은 지금도 기분좋은 기억이다. 접속료 모델이란 간단히 말해 대튁옘?洲봇?개입된 유,무선 기업 당사자들간의 수익배분 방식을 정한 틀이다. 현재 통신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접속료 모델도 그가 처음으로 정리한 원안을 변형, 발전시킨 결과다. 준 통신전문가로 인정받아 현재까지도 내부적으로 통신분야 경영 자문을 전담하다시피 하게 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 3개월 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얼마나 엄청나게 공부하고 고민했는지 꿈에서도 그 문제만 나타나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그 생각밖에 안 났어요. 그러다 한번은 사무실에 나와 평소처럼 일하는데 갑자기 코피가 양쪽에서 터지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파트너’(회계법인내 최상위 직급)가 지나가다가 그걸 보시는 바람에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해서, 회사 내에서 한때 영웅이 됐던 일도 있습니다(웃음).”

그는 IMF와 함께 몰아닥친 금융가의 대규모 구조조정 때 그 핵을 쥐고 있던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에서 위촉한 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약 2년간 활동하며 종금사, 리스사 등 거의 모든 국내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경영진단을 실시, 퇴출과 통폐합 여부를 결정짓는데 영향력을 미쳤다. 국가적 위기의 절박함 속에서 공인회계사의 사회적 책임감을 새삼 절감한 경험이기도 했다.

IMF때처럼 파란 많은 경제난국일수록 오히려 그 반대급부로 호황을 보는 이들이지만, 그렇다고 불온한 눈빛으로 보지는 말기를! 기업들이 꽃 피는 호경기 역시 공인회계사들의 활황기이자 축제기간이다. 공인회계사 전씨의 직업적인 삶도 세상의 파노라마와 같은 리듬을 탄다. 사상 최대의 불황기라며 다들 힘겨워하던 작년, 이제껏 오르막만 오르던 그도 20여년 경력 중 개인 기록 최악의 불황을 만나고 왔다. 희망으로 재무장하며 오늘을 더욱 치열하게 보내기는 이 최고의 인기직종, 상종가의 베테랑에게도 마찬가지 일이다.

“ 앞으로는 다시 좋아질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 침체되고 힘들었던 만큼 저만의 문제도 아니었고, 실제로 올해 들어서는 작년보다 조금씩 계속 나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6-02 11:03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