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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42] 조세전문 시민운동가 김선택
"보람과 성취감이 내 월급"
사재 털어 불합리한 세금 되찾아주는 봉사의 삶


한국납세자연맹(이하 연맹.www.koreatax.org) 김선택(44)씨는 북 치고 장구치는 회장이다. 이름은 회장이지만 손이 닿지 않는 일이 없다. 간사 3명의 보조 아래 사업기획에서부터 재정 마련, 인터넷 상담, 그 외 시시콜콜한 잡무까지 직접 다 뛴다. 대외적인 ‘사교’는 커녕, 아침부터 밤까지, 귀가후 집에서조차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붙잡혀있다.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있던 재산도 판판이 쏟아부었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저희 인력이나 규모는 상당히 미약한 편입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전문단체이면서도 상근자중 전문인력은 사실상 저 혼자입니다. 그래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당당한 본업이다. 세무 전문가이면서 전업, 상근직으로 일하는 경우로도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 덕에 설립 4년째를 맞는 현재 인터넷 랭킹 1위, 가입회원 70만명을 기록해 남다른 위상을 굳혔다. 그간 자신의 시간과 땀, 1억원에 가까운 사재까지 모두 털고 이젠 마이너스 통장을 안고 있지만, 그 대가로 시민들의 잠자는 세금 수억원이 제 주인에게 되찾아갔다. 그 보람과 성취감이 현재로선 그의 유일한 월급이다.


- 순수 독립 비정부기구로 출범





전업 시민운동가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험한 길을 택한 셈이다.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힘을 합쳐 2001년 순수 독립 비정부기구로 연맹을 출범시켰다. 주로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로, 정치인이든, 정부기관이든, 또 기업에서든 밖으로 지원금 한 푼 받지 않는다. 오로지 시민 후원회의 힘으로 살려보겠다는 포부를 실었다. 기존 시민단체들과는 또 다른 생존실험을 자청한 셈이다.

짧은 역사에 비해 높은 호응도를 끌어낸 것은 김씨가 기획한 특색 있는 주력사업 때문일 것이다. 이들 연맹에서는 시민들의 주머니와 피부에 직접 와닿는 문제점들을 주로 다룬다. 설립 첫 사업인 자동차세 불복운동으로부터 시작해 건강보험료 감액조정운동, 근로소득세 환급운동, 교통분담금 환급, 학교용지 부담금 불복운동 등에 이어 현재도 범국민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불복운동에 전력을 쏟고 있다.

국민연금 문제의 경우, 이미 그는 작년부터 사전조사에 착수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해 온 과제다. 그 외 각종 세금제도 개선운동에다 정보 제공, 웹매거진 발행 등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고민과 땀이 스치고 지난다. ‘말단 같은 회장’ 김씨의 일거리들이다.

보람이라면 이런 것들이다. 2001년 자동차세 불복운동 때, 갓 탄생한 신생 시민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3만~4만명이 몰려들어 가입했다. 전체 접속자 수는 수십만명을 헤아렸다. 워낙 접속자들이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여러번 치뤘다.

“저희 인력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될 만큼 엄청나게 모여들었습니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어요. 시민운동을 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가 그처럼 시민들의 높은 반응을 얻어냈을 때, 그리고 추진한 운동이 성공했을 때지요.”

같은 해 5월에 터뜨린 근로소득세 환급운동도 이를테면 ‘빅셀러’다. 근로소득세 환급이란 납세자가 연말정산 때 누락한 것을 5월에 추가로 확정신고하면 필요 이상 초과부담한 세금을 되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 점을 모르고 있는 이들이 거의 대다수라 할만큼 세무상식이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대부분 놓치고 지나가는 자기권리다. 몇 년전부터 이를 공개적으로 알린 것은 물론, 세무사나 변호사 등 전문인에게서나 겨우 구할 법한 관련 신청서 양식까지 직접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며 무상으로 나눠준 김 회장. 연맹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약 2,300여명이 세금을 되찾았다. 금액으로 약 7억8,000만원에 이르는 액수다. 이들이 남긴 감사의 인사가 홈페이지 곳곳을 채운다. 또 다른 이웃을 위해 자신이 환급받은 액수의 10%를 기꺼이 연맹의 후원금으로 내놓기도 한다. 요즘도 이같은 시민들의 환급 신청서가 전국 각지에서 우편물로 날아든다.


- 책임감ㆍ재정난 불구, 시민들 호응에 위안

뜨거운 호응만큼 책임도, 할 일도 무거워진다. 회장, 간사를 가릴 것 없이 이들이 인터넷 밖에서 치르는 고생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도 정책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문역을 맡은 변호사, 세무사, 공인회계사 등 비상근 전문가들이 다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활발하게 도울 수 있는 이는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평균 30~40건씩 밀려드는 인터넷 상담은 특히 전문가라야 답변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회장인 김씨가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토,일요일 없?붙어앉아 직접 답변을 써올린다.

그래도 3년전 자동차세 불복 운동 때에 비하면 한결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당시엔 도와줄 간사조차 단 한명. 회원 1,000명을 모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을 상대로 각 관할 법원마다 본격적인 소송 제기에 들어간 그 해 11월은 너무나 혹독했다. 소송비용 1,000만원도 김씨 주머니에서 나왔다. 시간은 촉박하고, 서류 작업은 엄청난 노동이었다. 1,000명이나 되는 시민들의 서류를 일일이 받고 도장을 찍는 등,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살았다. 지금도 떠올리면 아득한 일이다. 이윽고 ‘위헌 가능성이 높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고도 결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이 비껴나가는 바람에 실제 환급은 수포로 돌아갔다. 납세자들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만으로 일단 위안을 삼아야했다.

가장 큰 타격은 재정난이었다. 지난 3년여간 돈 문제에 관한 한 산전수전 다 겪었다. 회원이 늘고, 덩달아 지출해야 할 일은 점점 많아지는 반면, 들어오는 수입이라곤 몇몇 독지가들이 도와주는 후원금 얼마간 뿐이었다. 운영비를 충당하느라 자신이 모아뒀던 돈은 일찌감치 바닥냈고, 나중엔 카드 돌려막기로 버틴 시간만 2년이 넘었다. 사채를 빌려 급히 틈을 메꾼 일도 있다. 워낙 돌려막기가 잦다 보니 연체 한번 한 일이 없는데도 느닷없이 ‘잠재적 신용불량자’취급을 받아 거래은행으로부터 카드이용정지를 당한 적도 있다.

하긴, 지금도 신용카드 결재일만 다가오면 스트레스다. 그래도 낙심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일찌감치 치른 어려움 속에서 또 다른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다.

“어렵기는 했어도 늘 조금씩은 나아져왔습니다. 처음엔 자체 사무실도 없이 남의 사무실에 책상 하나 두고 지내다가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면서 계속 옮긴 것이 현재의 10평짜리 사무실까지 온 겁니다. 여전히 비좁은 공간이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허세 부리지 않고 한발 한발 꾸준히 내디딘 것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기도 합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 역시 여늬 직장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88년 모 대기업에 입사해 10년간 경리부서에서 세금 업무를 담당했다. 그중에서도 회사의 세무팀장을 맡아 국내의 뛰어난 세금 전문 변호사들과 호흡을 맞추며 열심히 법지식을 쌓았던 경험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밑천이 되었다. 천성적으로 공부와 연구를 좋아하는 학구파. 재직중에 이미 ‘조세법 실무’ 전문서를 집필한 데 이어 98년 퇴사한 후에도 꼬박 1년간 공을 들여 세금과 관련된 여러 판례들을 수집, 분석한 현장지침서 ‘판례 법인 세법’을 발표한 저자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남다른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내 굴지의 모 회계법인에 전문직으로 스카웃되었다. 일반기업 실무자 출신으로 전문직에 기용되기는 이례적인 예였다. 그리고 재직중 인터넷 활동을 시작한 것이 씨앗이 되어, 1년만에 회계법인 생활을 접고 나와 납세자연맹을 발족시켰다.

“사실 이 길은 제 자신도 원래 예정했던 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어떤 피할 수 없는 순간 같은 거지요. 세금문제에 대해 공부했고, 살아가면서 느껴온 사회의 모순과 제 개인적인 동기에서, 단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누군가는 이러한 일을 꼭 해줬으면 좋겠다 했던 바람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제가 된 것 뿐입니다.”


- “결국은 나 혼자” 심한 외로움

국가시책을 거스르는 입장에 있다 보니 공무원들에게 달갑지 않은 시선도 많이 받았다. 한때 연맹의 홈페이지에 삼삼오오 몰려와 사이버 시위를 벌이고 가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때로는 회장인 김씨를 인신공격하는 글도 올랐다. 그래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한편으론 많이 외로왔습니다. 말이 회장이지, 거의 모든 일을 직접 다 해결해야 했던 데다 하다못해 다른 시민단체 같으면 주위에 마음이 맞는 동료라도 있어서 힘들 때 서로 위로라도 해 줄 수 있지만 저는 혼자였거든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 때덫염塑뮈?나 혼자밖에 없다는 것을 자주 느꼈습니다.”

가족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사표를 낼 때조차 아내에게 한마디 의논도 없이 그만두고 나와 연맹활동을 시작한 뒤론 수입 대신 빚만 안겨주었다. 주말조차 연맹 일로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이다 보니 아이들에겐 오래 전부터 ‘나쁜 아빠’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제게는 이 일이 재미있고, 이 일 자체가 제 신념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 아픕니다. 지금도 집사람이 가끔씩 제게 ‘직업을 바꾸면 안되냐’고 말할 때 참 괴롭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잘 참아주고 잘 버텨준 집사람이 너무나 고마울 뿐입니다.”

아직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많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새로운 힘이 솟는다. 연맹에는 현재 매달 1만원 이상의 후원자가 약 1,200명, 그 이하의 후원자들까지 합친다면 거의 1만명이 십시일반으로 뒤를 보살피고 있다. 언젠가 넉넉한 재정이 모이는 날이 오면 김씨는 맨먼저 연맹내에 전문 조세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익집단과는 전연 무관한, 온전히 시민의 편에 서서 현실을 바로잡아줄 전문가 집단을 만들고 싶다.

워낙 밤낮없이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부터는 안구건조증이 악화돼 자주 눈이 마르고 아프다. 수시로 병원을 찾기는 하지만, 일이 줄지 않으니 치료가 될 리 없다. 다가오는 토요일은 특히 더 바쁘고 설레는 일이 있다. 국민연금 제도의 폐해에 항의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를 준비중이다. 사실 본인부터가 ‘피해자’다. 곧이곧대로 무소득으로 신고하기가 뭣해 연소득을 약 3,000여만원으로 ‘과대신고’했다가 업종평균의 잣대에 휘둘려 결국 분수 이상의 부담액에 1년6개월이나 돈을 내지 못한 처지다. 이미 압류예고장까지 받은 바 있는 이 ‘돈 없는 회장’은 그래서 더더욱 ‘없는 자의 고통’에 공감이 크다. 이번 촛불시위는 그에게 있어 ‘우리 국민들이 살아있다는 본때를 보여줄’ 자리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간사들이 달려와 회장을 찾았다. 전언이 두가지였다. 하나는 연금문제로 상담을 청하는 전화가 계속 밀려든다는 것. 또 하나는 한 중년남자가 꼭 전해달라고 한 통화내용이었다. ‘그렇게 있지 말고 당장 청와대로 가라. 그리고 노 대통령이 만나줄 때까진 절대 돌아올 생각을 하지말고 꼭 담판을 짓고 오라’는 것. 성 난 국민들 앞에서 그는 백의종군 중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6-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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