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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김해숙
풍상의 세월 견뎌내는 우리시대의 어머니
푸근함과 넉넉함으로 산 연기인생 30년






여배우를 만나 존경하는 연기자를 묻는 질문에 약속이나 한 듯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김해숙. TV 속에서는 푸근한 어머니의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그가 실제 생활에서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드넓은 아량과 사랑을 베푸나 보다. 1974년 연기에 데뷔해 어느덧 연기 인생 30년을 내다 보고 있는 그 깊은 연기의 원천을 들여다봤다.

번잡한 촬영 현장에서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그는 정중히 1시간만 기다려 줄 것을 요구했다. 너무나 예의 바른 그의 언행에 감탄하며 1시간을 족히 기다리자 그는 촬영 스태프의 발길이 뜸한 비교적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 휴~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그러더니 대뜸 초콜릿 알갱이를 입안 가득 털어 넣는다. “초콜릿을 좋아하시나 봐요?” 단 냄새가 옆자리까지 풍기는 것 같아 아는 척하며 거들었더니 웬 걸, 돌아오는 대답은… “아~ 이거 비타민이예요. 요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건 틈틈히 챙겨 먹고 있어요.” 하긴, 하루 다섯 시간도 못 자가며 스케줄에 ?기고 있는데 초콜렛은 커녕 삼시 세끼 따뜻한 쌀밥이 그리울 만하다.

“ 얼마 전에 누가 그러드라구요. 요새, 제 얼굴이 뉴스 빼고 다 나오는 것 같다고. 한꺼번에 다작하는 편은 아닌데 요즘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한 작품이 끝나면 쉬지 않고 바로 또 다른 작품에 들어가서 그런가 봐요. 마음이 약해서 섭외가 들어오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도 문제구요.” 말마따나 김해숙은 요즘 정말 바쁘다.


- 연기에 몰입할 때가 가장 행복



저녁 밥상 물리고 TV앞에 앉으면 채널 고정하지 않고도 그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있다. 각 방송사는 물론이고 얼마 전 부터는 스크린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가문의 영광> <국화꽃 향기> <오! 해피데이> 등에 츨연했고 원빈, 신하균과 함께 출연하는 <우리 형>을 열심히 찍고 있다. “전 연기를 철저히 즐기는 편이에요. 연기하는 게 스트레스라고 생각되면 이렇게까지는 못할 거에요.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음주가무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맞다! 먹는 건 좋아한다. (웃음) 연기에 몰입해서 그 사람이 되고 그 인물에 시청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실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 이런, 넘 교과서적인 멘트였나요?”

아니다. 그의 말대로 대다수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또 그 순간만큼은 참으로 경건해진다. 그러고 보면 그는 좋아하는 연기를 업으로 삼아서 행복하고, 또 그 연기를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한 번 더 행복하겠다. 아무튼 그는 행복의 요소들을 여기저기서 충전받고 있다.

“ 근데, 제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들을 떠올려 보세요. 극중에서는 감히 행복이라는 단어를 꺼내 놓지도 못하는 역할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뭔가에 뒤틀려서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어서 얼굴은 늘 그늘져 있죠. 또 왜 항상 그렇게 가난은 한지…. 얼굴에 제대로 화장하고 나온 적도 별로 없었어요.” 드라마 <그 여자네 집> <로망스> <황금마차> 만 봐도 그렇다.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먼저 챙기며 현실의 아픔을 가슴으로만 삭히고 또 삭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오랜 풍상의 세월을 견뎌 꽃을 피운다는 상수리 나무를 떠오르게 한다. 그나마 <로망스>를 찍을 때는 의류업체 사모님이라 제대로 차려 입은 모습을 기대 했건만 1회 이후 회사가 망한 걸로 설정이 돼 다시 익숙한(?) 옷가지들을 걸치며 극을 이어나갔다. “지지리 운도 없는 팔자 센 인물들이지만 전 이상하게 그런 역할들이 끌리네요. 제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머니들의 심정이 금방 이해가 되거든요. 혼자 있을 땐 생각 많은 여자지만 가족들 속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 어머니잖아요. 희생을 희생으로 보지 않고 일생을 사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 하고 있어요.”

김해숙만큼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해본 연기자도 드물 게다. “ 하루는 배두나가 그러드라구요. ‘ 선생님! 저희 소속사 여자 배우들 엄마 역할은 다 해 보셨어요’라고.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엄지원이는 <황금마차>에서, 장진영이는 <국화꽃 향기>를 찍으면서 같이 했드라구요. 제 나이 또래 여자 연기자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유독 엄마 역할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 횟수는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에요.” 그렇다고 데뷔부터 어머니 역할만 맡았던 것은 분명 아니다.

고등학교때 활동했던 방송반 시절의 경험으로 1974년 MBC 7기 탤런트 공채에 합격, 연기에 입문한 후 <최후의 증인> <백년 손님> <고백> 등의 드라마에서는 그 역시 청순가련형의 20대 여성을 연기해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다. 또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까지 받으며 큰 인기를 모았던 <허준>에서의 그의 모습은 어떤가? 탤런트 이희도와 찰떡 조화를 이룬 푼수데기 해학 연기로 한바탕 웃음을 몰고 와 모 보일러 CF까지 거머쥔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연기는 어느 한 가지 색으로 규정 지을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하나 보다. 이 모두가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중견 연기자들만이 자연스레 내뿜는 빛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 정도 걷는 분주한 연기자로 존경

“아직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떨려요. 떨림이 없으면 발전도 없잖아요. 전 후배 연기자들한테도 많이 많이 떨고 긴장하라고 그래요. 자기 스스로한테 익숙해지는 것 만큼 슬퍼지는 일도 없어요. 그리고 적어도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조급해 하면 안되요. 저 역시 한동안 일이 없어 슬펌프와 좌절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 걸요. 적당히 담담한 마음자세로 연기에 대한 열정만 놓치 않으면 언제고 기회는 오거든요.” 그 정도의 연기 경력이면 적당한 요령과 지름길을 택할 법도 한데 아직도 김해숙은 더 많이 깨지고 상처받고 싶어한다. 익숙한 것들과 매순간 결별하는 그의 일상 속 분주함들이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연기자, 연기 잘하는 연기자 김해숙을 만들고 있다고 있나보다. 나이들수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의 연기 열정을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6-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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