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큼 쌉쌀한 유쾌가이사람냄새 풍기는 능청연기, 평범한 캐릭터로 모두에게 대리만족

[스타탐구] 손현주
달큼 쌉쌀한 유쾌가이
사람냄새 풍기는 능청연기, 평범한 캐릭터로 모두에게 대리만족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는 드라마 속에서 그는 다분히 비드라마적이다. 본인 스스로도 가장 많이 맡았던 역할이 ‘사위’라고 밝혔듯 그는 극에서 욕망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지는 않는다. 바로 그 ‘평범함’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내세워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연기자 손현주. ‘파~’하고 웃는 시원한 웃음이 기분좋은 이 유쾌가이에 대한 짧은 보고서.

- 약방의 감초 같은 연기자

“쉿! 비밀이에요. 집사람은 끊은 줄 알거든요.” 그는 ‘도라지’를 피운다. 언젠가 연기자 신하균이 비 오는 촬영장에서 달게 피우고 있는 걸 본적이 있는데 ‘아직도’ 이걸 피우는 사람이 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섬세함과 편안함이 교차하는 특유의 연기를 구사하는 그는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도라지향과 참 많이 비슷하다.

약방의 감초, 브라운관의 웃음 제조기로 그만의 능청 연기를 인정받고 있는 손현주는 애초 연극 배우 출신이다. 여의도를 들락거리기 전에는 대학로에서 살다시피했는데 대학 졸업 후에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이 하드 트레이닝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다. 한 작품에 1인 10역까지 감행하며 내공을 쌓았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이 연기자 권해효와 이두일, 연출가 권석장(<앞집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연출)이다.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잔을 기울이던 어제의 ‘동지’들. 지금도 만나면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는 반가운 사이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인생을, 연기를 배운 나날들이었지만 차츰 열정과 노력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막연한 연기자의 미래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 길로 뒤도 안 돌아보고 차린 것이 포장마차. 주 메뉴는 곱창구이였는데 장사는 생각보다 잘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님들이 남기고 간 소주를 한 두잔 마신 새벽이면 알 수 없는 헛헛함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장사가 잘돼서 돈버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그럼 뭐해요? 마음이 허전해 죽겠는 걸.” 보다 못한 친형이 방송사의 탤런트 모집 원서를 들이밀었다. 지켜보기만 하던 어머니도 사진까지 붙여주며 응원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면서 연기자 손현주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 드라마 <첫사랑>의 주정남으로 떠

1991년 KBS 공채로 합격해 그가 제일 먼저 맡은 역할은 <드라마 게임- 의사> 편에서 ‘의사 3’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병원을 지나가는 엑스트라였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오금이 저린단다. 그 후 <형>,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등에 쉬지 않고 얼굴을 내밀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린 건 <첫사랑>을 통해서다. 느리면서도 리드미컬한 전라도 사투리에 어수룩한 표정으로 찬옥(송채환)과 깨소금 사랑을 나누는 ‘주정남’이라는 인물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이라는 노래까지 유행을 시키며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 그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고, 당시 취입한 <주정남 메들리 음반>은 일명 ‘관광버스 송’으로 통하며 전국의 고속도로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앞집 여자>에서도 그만의 ‘울트라 짱 내추럴 연기’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넥타이를 머리에 질끈 두르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아내의 호출만 떨어지면 재깍 달려가야 하는 ‘상태’는 딸의 미술 선생과 바람이 나지만 어딘지 측은해 보였다. 아내의 잔소리에 방귀로 대응하고 삼겹살에 소주를 즐겨 아랫배는 나왔지만 현실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이는 그는 푸근한 대리만족까지 가져다 줬다.


- 묘하고 독창적인 연기색깔

멋진 대사를 읊어대는 것도, 스케일 큰 액션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그가 펼치는 연기는 묘하게 드라마틱하다. 영화 <라이어>의 박형사, <맹부삼천지교>의 돼지아빠만 보더라도 아무나 쉬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독창적인 연기색깔을 감지할 수 있다. ‘DNA 속에 연기 잘하는 유전자라도 들어있나봐요. 어쩜 그리도 천연덕스러워요?’라고 그가 출연하는 아침 드라마 <열정> 홈페이지에 누군가가 올린 글처럼 그의 연기는 시간이 갈수록 무르익는 듯 하다.

“주연급 조연이니, 조연급 주연이니 하는 말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로서 얼마나 성취감을 느끼며 에너지를 발산하느냐가 문제죠. 그래서 전 단막극을 좋아해요. 연기력이 쉽게 들통나기 때문에 열심히 안 할 수가 없거든요.” 그의 단막극 사랑은 유명한데 <불새>의 연출가 오경훈과는 신인 시절부터 단막극만 8편을 함께 했다. “오경훈 PD는 단막극을 통해 내공을 쌓은 사람이에요. 옆에서 봐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죠. <불새>가 잘 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제 기분이 더 날아갈 듯 하네요.”


- 초심잃지 않는 성실함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로 바쁜 나날이지만 건강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자가용 대신 자전거로 집과 촬영장을 오고가는데 페달을 힘껏 밟으며 도로변을 달리면 온갖 스트레스가 사라진단다. “혹 알아보는 사람은 없냐?”고 묻자 헬멧을 눌러 쓰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없었다며, 또 설령 알아보면 어떠냐고 싱글벙글이다.

검증된 연기력에 예의와 겸손까지 겸비한 손현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화면을 채우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이 된다. 반대로 그는 연기라는 괴물 앞에 서 있을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리는 건 마찬가지에요. 안 떨리면 안 되죠. 매너리즘, 이게 사실 제일 무섭거든요. 인기 좀 얻었다고 붕 뜨면 안 되잖아요. 이제 시작인 걸요?”

도대체 얼마나 더 포근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려고 이러는가 싶지만 이 남자의 이유있는 욕심 덕에 브라운관은 풍성해지고 있다. 내심 기대했던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을 시종일관 보이며 나직히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에게선 스타가 아닌 인간의 향기가 났다. 그는 정말이지 인간의 탈을 쓴 배우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6-16 13:25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