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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종교학교수 김승혜 수녀
생태의 길은 그리스도의 길
그리스도의 꿈으로 도가·유가를 포섭
수녀원장이자 대학교수가 실천


‘ 기뻐하라. 아이 못 낳은 여인아. 의로운 여인의 자손들이 남편 가진 여인들의 자손들보다 더 많이 나으리라.’ 신약 성서 중 갈리디아서에 나오는 말이다(4장 27절). 인터뷰 말미, 그가 기자의 몽매함을 깨우치려는 듯 들려 준 구절이었다. 육체의 굴레를 벗어 난, ‘영적 어머니’로서의 기쁨을 그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여인, 김승혜(61) 선생은 수녀 공동체의 수장이면서 대학생들의 스승이다. 서울 성북동 ‘사랑의 씨튼 수녀원’에서 함께 사는 200여 수녀들의 어른이고, 자신이 나온 서강대의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 그 같은 형식논리학적 구분법은 그에 이르러 탈색된다. 생태적으로 은둔적이고 내밀한 공동체적이기 십상인 수녀, 라는 선입관은 그를 만나 휘발된다. 동양과 서양, 성(聖)과 속(俗) 등 서로 무관한 듯한 사물들이 그를 만나 교유한다. 그리스도교와 도교, 그리스도교와 논어…, 모두가 그를 만나 하나다. 윤번제로 돌아 오는 학과장 일도 마다 않는 것은 작은 일례이리라. 그에게서는 이 세상이 원융(圓隆)의 세계다.

잔뜩 하늘을 누르던 구름이 모처럼 개어 너무 눈부신 날, 선생을 만났다. 좋은 영상을 얻고 싶다는 취재팀의 반요청 반강권에 못 이겨 교내 산책로를 올라 가며 때때로 포즈를 취해주면서도 그는 전혀 언짢아 하지 않았다. 동양사상과 그리스도교를 나란히 놓고 그들 간의 의사를 소통시켜 준 일련의 저작을 꾸준히 발표해 온, 편벽되지 않은 태도는 이 단아한 체구속에 깃든 깊이를 쉬 가늠케 하기 어렵게 한다. 일반인들에게서는 “ 수녀님”이라고, 학생들에게서는 “교수님”이라 불리우는 사람.


- ‘영적 어머니, 그 풍요의 이름

“현재 학과장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어, 두 과목 이상은 못 해요”라며 선생은 교수로서의 생활을 소개했다. 학부생들의 과목인 ‘도교의 중심 사상’, 대학원 과목 ‘종교와 환경’ 등 두 강좌. 올해 신규 개설돼, 6월 26일 세미나식의 논문 발표라는 최종 평가를 남기고 있는 ‘종교와 환경’ 강좌는 그가 신규 개설한 강좌다. ‘교수 김승혜’는 21세기 최대의 화두, 생태 문제를 화두로 붙잡고 있다. 생태, 마치 하나의 시대적 화두인 양 사회적 이슈로 대두하던 그 무렵, 선생은 그 중요성을 꿰고 있었다.

“생태라는 문제를 자연과 인간의 공존으로 이해하고 탐구해 왔죠. 한 10년 됐을까요?” 2003년 미국서 출판된 ‘환경 윤리학’을 주조로, ‘도(道)와 생태학’, ‘유가(儒家) 사상과 생태학’ 등 생태와 관련한 최근의 주요 저작들을 강독해 나가는 강좌다. 덴마크 루벵대에서 펼쳐진 ‘다종교 시각에서 본 환경 문제’란 강좌를 귀 기울여 들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선생의 연구실에는 몇몇 기념물이 그 동안의 시간을 증거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 박사인 진월스님은 ‘칼처럼 날카로운데, 물처럼 편안하다’는 요지의 한시가 씌어진 족자를, 한양대 중문학과 정민 교수는 ‘우직(牛直)’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증정했다.

촘촘한 한문테스트를 천착해 들어가는 공부 태도를 일컫는다. 동양적 가치에도 통달한 선생의 독특한 이력은 준비된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님께서 우리 세 자매에게 궁중무용과 탈춤 같은 것을 가르치셨어요. 한국 무용을 하면서 동양사상과 가까워 진 것 같아요.” 딸 세 명에게 궁중무, 탈춤, 판소리 등을 가르쳤던 모친이다.

칼로 무 베듯 단선적으로 구획돼야만 이해되고 유의미한 것으로 인식하는 이 시대 디지털 문명의 입장으로 봤을 때, 그의 길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대화 부재와 독선이 종교라는 표피를 썼을 때, 얼마나 가공할 결과를 낳는 지를 세계는 똑똑하게 목도하지 않았던가.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해 이뤄내는 새로움의 지평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적극적ㆍ긍정적 측면이라면이라면, 선생의 열린 태도는 진작부터 종교적 공존을 화두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1994년부터 쭉 펴 내고 있는 시리즈 ‘종교 대화 강좌’는 스님과 종교 연구자 등 여러 종교의 입장을 대?求?사람들 10명이 한 주제 아래 서술한 글 모음집으로서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열린 사고의 귀감을 보여 준다.


- 디지털 문명의 독기를 순화



최근의 ‘도교와 그리스도교’(바오로딸 刊)를 보자. 노자와 장자의 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유사점과 소통가능성을 논한 선생의 글이 전체 10편 중 7편이다. 광대무변한 도(道)의 길과, 신약성서가 논하는 자유가 서로 소통되는 가치라는 사실을 마치 소설이나 수필처럼 풀어 헤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자유와 장자(莊子)의 자유는 인간이 만든 모든 차별적 범주, 예컨대 율법이나 예의 등의 한계성을 지적하며 해방될 것을 요구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접근법은 오만과 편견의 시대에 숨통을 틔워주며, 정밀한 학문에 근거한 실증은 웬만한 풍파가 넘보지 못 할 학문적 구축물로서의 무게에 값한다.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와 무교’, ‘한국의 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등 선생은 동서고금의 종교적 현상을 주유해 왔다. 10개월의 세미나면 책 한 권이 탄생하는 꼴이다.

“경제적으로 풍요해졌을 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메말라만 가고 있어요. 모든 걸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물론, 이혼마저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무얼 말할까요?” 바로 이 시대가 종교성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증표라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사람들의 관심이 극히 자기중심적인 문제로 집약됐죠. 그러다 최근 들어 공동선(善)이라는 문제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잖아요?” 금강산 관강, 서해 조업 등 10년 준비 작업 덕분에 현실화되고 있는 남북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시대는 또 다른 갈증을 관통해 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강퍅해져 가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자연스런 반동으로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는 종교적ㆍ영적 목마름을 지적한다. 대체종교의 유행을 말하는 것일까? “아녜요. 이른바 ‘신영성 운동’이란 일시적 패스트 푸드예요. 초종교적 움직임이 아니라, 기성 종교가 자기 쇄신을 통해 현대에 답을 줘야 해요. 틱낫한 스님처럼, 깨어 있는 영적 지도자가 각 종교를 이끌어간다면.” 그렇다면 프로테스탄티즘적 가치관을 절대시하고 타종교와의 간극만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미국은 부정적 모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미국은 부정적 종교의 모델”

선생은 감리교 계통의 학교인 이화여고에 다니다, 2학년때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한 수녀님의 자서전에서 받은 감명이 확신으로 다가 온 까닭이다. 세례명을 데레사로 받은 선생은 대학 졸업 후 수녀원으로 들어 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선생의 독특한 문제 의식이 빛난다. 선생은 역사학, 구체적으로는 교회사 문헌학을 천착해 들어 갔다. 그 속내에는 독특한 주체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를 토착화하고 싶었죠. 성당과 교회를 무조건 뾰족하게 만드는 식의 타성적 신앙 행태를 학문적으로 따져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 끝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보편성과 원융함이었다. “모든 종교안에서 하느님의 발자취를 보는 거죠. 타종교안에도 진리가 있으니까요.” 종교학 공부가 깊어지면서 불교든, 유교든 인간을 보다 성숙되게 하는 진리의 길로 이끈다는 확신에 닿은 것. 그것은 1965년 수녀원에 들어간 직후 공표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선언의 내용과 놀랍게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제 입장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환희에 넘쳐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유학 가서 만난 것은 동양적 가치의 진수였다.

먼저 위스콘신주의 예수회 대학인 마켓대 에서 논문 ‘도덕경과 지혜서’로 신학석사를 땄다. 지혜서라 함은 개신교에서 흔히들 위경(僞經)이라며 배제하는 텍스트다. 또 성균관대 철학과에 청강하면서 본격 입문한 한문 공부는 하버드대에 들어가서 더욱 심화됐다. 그 곳의 비교종교학 과정은 그야말로 전세계의 종교를 현지어를 통해 만나는 길을 터주었다. “하버드대 부설 세계종교연구소 부속 아파트에서 5년 꼬박 생활하다 보니, 그야말로 전세계 종교의 실체를 접한 셈이죠.” 스님, 중동 지방의 교수, 유대인, 인도 학자 등이 한 달에 한 번씩 갖던 세미나는 현재 그가 주재하는 종교 세미나의 모델이다. 이어 1981년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비교종교학 강좌를 개설하면서 서강대는 독특한 학풍 하나를 갖게 된 것이다.


- 향심(向心) 수행, 생활속으로 종교를

“현각 스님과 강의했던 ‘참선과 삶’이 좋은 일례겠네요.” 이제 한국에서는 저명 인사가 된 현각 스님은 선생의 제의를 받고는 “비교종교학적 접근 방식이 좋다”며 흔쾌히 승낙했다는 것. 예술의 어법을 빈다면 장르 구분을 뛰어 넘는 선생 특유의 수업에서는 무당의 제의(祭儀)까지 자연스레 포섭한다. 인류학자 김성례 박사의 강의 때 당집에 가서 무당의 굿을 보고 설명을 듣기도 한 것이 하나의 사례. 국내 최초의 비교종교학적 학풍이 이렇게 해서 배태된 것.

요즘 선생이 힘을 쏟는 테마는 환경 윤리. 성균관대 최성범 교수의 유교, 해주 스님의 화엄경, 그리고 선생의 도교 사상 등 기초한 범종교적 환경 윤리는 생태 운동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할 전망이다. 최근 한국의 사회 상황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모든 면에서 균등해 지고 싶다는 욕구가 실현되는 과정이라 봐요. 노자는 이미 ‘도덕경’에서 말했죠.” 높은 것은 눌러 주고 낮은 것은 들어 올려 준다(下者擧之有餘者損之)는 구절을 일컬음이다.

선생이 제시하는 마음다스리기법 한 가지. 중세 수도자들의 기도법을 현대화한 ‘향심 (向心) 기도(centering prayer)’가 그것이다. “앉아 기도하다 5~10분 걸으면서 기도하는 방식이죠. 출ㆍ퇴근하면서도 실천할 수 있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권하고 싶군요.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방법으로서.”

선생은 그 걷기 묵언 기도에서 무엇이라 욀까? “예수님” 또는 “예수님 저와 함께”다. “그게 바로 행선(行禪)”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교의 몸을 한 불자의 마음, 바로 그것. 존 레논이 “종교간의 벽이 없는 세계”를 노래했다면(‘이매진’), 선생은 이렇 듯 그 길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 이후, 선생은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행선하고 있을 것이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6-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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