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화두는 'X와 Y'로 통한다욕망과 소비의 주체로서 여성의 관심 영역 대부분 포괄필진 15명 동원해 남녀관계 등 구체적·실증적으로 풀어내

[한국 초대석] 여성포털 ‘젝시 인 러브’ 정현경 대표
여자들의 화두는 'X와 Y'로 통한다
욕망과 소비의 주체로서 여성의 관심 영역 대부분 포괄
필진 15명 동원해 남녀관계 등 구체적·실증적으로 풀어내


태초에 X와 Y가 있었다. 둘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 둘이 조합된 염색체 XX와 XY가 여자와 남자를 이루듯, XYinlove(사랑에 빠진 X와 Y)는 필연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현상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는 인터넷 도메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한 당찬 여성 CEO가 만든 성 관련 도메인이 닳아 빠진 인터넷 섹스 담론장에서 한여름 장맛비처럼 다가 온다. ‘젝시 인 러브’. 풀어 보면 ‘사랑에 빠진 남과 여’ 쯤 되겠다(www.XYinLove.co.kr). 대표 정현경(33). 섹스라는 문제를 다루되, 지천으로 널려 있는 인터넷 성 정보와 궤를 달리 하니 ‘섹시’가 아니라 ‘젝시’다. 예를 들어 이런 것.

첫 만남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은 평균 11개월. 정확히 말해 남자는 245일, 여자는 330일로 드러났다. 피임 방법으로는 남자의 50%, 여자의 42%가 남성 콘돔을 선호하는 한편 성공률이 낮은 질외 사정법을 사용하는 사람도 남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38%에 달한다는 것. 그러니 여자 중 낙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은 20%, 2~3회는 12%라는 결과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런 즉, 한국의 낙태율이 태아 4명 중 한 명꼴이라며 2002년 뉴스위크지가 내지른 망신살을 피할 길이 없다.

이번 조사는 6월 한 달 동안, 이 포털 사이트의 무료 회원 70만명 중 1690명(남자 750명, 여자 940명)이 ‘스킨쉽 & 섹스’ 등에 게재된 알림을 보고 참여해 펼쳤던 설문의 결과다. 섹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양 상업적으로만 남용되고 있는 한국에서 섹스가 있는 사실 그대로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 동안 한국에서 섹스란 상업적으로 남용되거나 정치적으로 오용되기 일쑤였다. 정 대표는 “범람하는 성 문화에 비해 성에 대한 지식은 그 속도를 못 따라 간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성의 실체적 진실 접근 노력

‘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라는 이름에 값하는 이 조사는 앞으로 1년 단위로 업 그레이드 될 계획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성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비로소 접근하게 된 것이다. 섹스란 정책 개발용도 흥미 유발용도 아닌, 삶 자체의 문제라는 명제가 한국적으로 실증된 셈이다. 이 밖에 여성들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단답형 설문도 있다. 연인(배우자)과 가장 길게 떨어져 지낸 날수를 입력하면 ‘○님은 ○명 중 ○등입니다’는 답을, 또 ‘나는 하루에 그(또는 그녀)에게 ○번 전화한다’는 질문에 답을 넣으면 유사한 형식의 답을 보여 주는 식이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요즘 20~30대에게 저보다 더 효율적인 ‘자기 객관화’가 있을까. “결국 커플과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게 되죠.”

“ 여성 최대의 관심사란 결국 사랑, 스타일(멋), 인생, 이 세 가지로 집약된다는 사실을 나는 잡지 경험 10년으로 터득했어요.” 그가 보는 바, 페미니즘의 요체다. 그의 페미니즘은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다. 다시 예를 들어 보자.

7월 3일 아침 8시부터 기흥에서 벌어졌던 올해 미스코리아 예선 심사에서 그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위촉돼 차를 몰고 새벽길을 달렸다.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 4시간은 메이컵에 바치는 후보들을 보니, 미란 노력의 산물이란 사실을 절감했어요. 학벌을 인정하는 것처럼, 노력에 상응하는 댓가란 사실말이죠.” 대회 당일 ‘미의 상품화, 노력 없이 얻는 혜택, 얼짱 문화’ 등의 이유?반대 시위를 벌였던 안티 미스코리아 회원들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제 생각에는 육체 자본도 당당한 자본이예요. 또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인 거고요. 아름다움에 대한 여자의 욕구는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이고 자기 계발 욕구죠.” 당당한 건 그녀다.

그의 이름 석 자는 외롭지 않다. 앞에 인터넷 벤처 기업 CEO라는 수식어가 든든히 호위해 주니. 그것은 곧 시대 읽기다. 출발부터가 그랬다. 2000년 10월, 여성을 겨냥한 포털 사이트가 봇물을 이루던 때였다.

“ ‘ 마이 클럽’, ‘ Woman Plus’, ‘ 여자와 닷컴’ 등 족히 80개가 벤처 붐에 업혀 각축하던 때였죠.?1위의 마이클럽이 자산 가치 100억이었을때, 그는 10억으로 출발했다. 여성 잡지 ‘She’s’와 결혼 정보지 ‘She’s Bride’에서 쌓은 실무 경험과, 이제는 전자 출판 시대라는 대세 판단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가능케 했다. “거대 도메인들이 하는 식의 1회성 사업에는 미래가 없다고 본 거죠. 제 1의 수입원은 광고, 두 번째는 컨텐츠, 세 번 째는 인터넷이라는 식으로 순위를 매겼어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은 것.

“디지털을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굴뚝 산업의 보수성을 파고 든 거죠. 이제 상품의 가치는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잘 때울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니까요. PC 앞에서는 대안과 가능성이 무궁한데, 이제는 미장원에서 접속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거죠.” 이 시대는 의사 결정권자들이 디지털로 여성 정보를, 일종의 킬링 타임용으로 얻는다는 사실에 착목한 시대 읽기였다. 단적으로 말해, 상품의 가치가 어떻게 시간을 잘 때우느냐(killing time)에 달려 있다는 판단.


- 여성 포털의 3대 강자

욕망하고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관심과 문제 영역을 거의 모두 포괄하고 있는 그의 포털 사이트는 현재 정립(鼎立) 상태. 그 많던 유사 도메인들은 다 죽고, 현재는 마이 클럽, 젝시 인 러브, 팥쥐 등 세 개가 선두 각축을 벌이고 있다. 위기의 순간? “문 열고 2003년 봄까지 힘들었어요. 특히 2000~2001년의 벤처 붐 당시 급여가 엄청나게 올랐지만 후발 업체인 우리 회사는 따라갈 수 없었죠.”

그는 사원들에게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은 몇 백만원의 임금보다 ‘경력’이라는 사실을 재삼 강조했다. 그 결과, 부침이 이 동네에서 사원 이탈률이 거의 없는 것은 성공한 회사의 커리어를 준다는 제 비전에 동의한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의 회사보다 10배 이상 투자한 회사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내고 있는 현실을 예로서 제시하기도 했다. 회사의 비전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해 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프레젠테이션에 임한 CEO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그는 또 여타 벤처 기업들의 속내를 열정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접근은 항상 학문적ㆍ경험적이다. 그가 이 사업에 큰 기대를 거는 데에도 그 같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 “자, 제가 왜 인터넷에 승부를 거는지 보세요.” 지난 2월 한국인터넷 정보 센터가 2003년 실측한 통계치를 근거로 발표한 자료를 컴퓨터에서 꺼내 보였다. 인터넷이란 신매체가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지만, 실제 투여되는 광고비는 바닥 수준이라는 것. 매체에 접촉하는 시간은 TV(62%) –인터넷(29%) – 신문(2.5%)인데도 광고비 점유율은 각각 52%(2조3,671억) – 6%(2,700억) – 42%(1조8,900억)이었다는 ‘ 기현상’이 제시돼 있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내내 학생회장이었어요. 대학은 미국 USC(남가주대)에 들어가 마케팅을 전공했죠.” 우리 식으로 치면 92학번. 상위 1%에 드는 성적으로 우등상(Academy Award)를 받고 학업을 모두 끝내기까지 거린 시간은 7학기. 보통 9학기 걸려 수료하는 과정이다. 현재와 같은 인터넷 기업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잡지 ‘She’s Bride’의 마케팅 사업부에서 잔뼈가 굵어지면서부터 였다. “ 광고라는 험악한 세계에서 일하던 1998년, 직접 인터넷 기업을 경영해 보겠다는 꿈을 키우게 됐어요.” 그리고 광고 대행사 ‘웰컴’의 AE(Account Executiveㆍ광고기획자)로서 1년. 매체와 광고의 메커니즘을 속속들이 익힌 기간이었다. “화장품에서 승용차 광고까지 한국 광고판의 속내를 많이도 배웠죠.” ‘소리가 차를 말한다’는 카피로 기억되는 대우 레간자 등 승용차와 화장품 광고를 하면서 감을 키워 온 것.


- 잡지 광고계에서 잔뼈 굵어

그녀에게 벤처 정신이란 흔히 보듯, 자신감이나 되바라짐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역할 모델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정자, 상자, 은자”라고 말하는 부친 정상은(58)씨는 국내 최초의 사설 컴퓨터 교육 기관인 중앙정보처리학원 원장이다.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익숙했던 것이나, 사업의 세부적인 각론에서 상대적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것 등이 부친 덕이었다. 그가 “회장님”이라 칭하는 부친은 1995년 당시 국내서는 미개 분야였던 인터넷에 선구적으로 주목했던 사람이다. 이화여대 전산학과 교수로 재직중일 당시 한국일보 창업주 장강재 회장과 친하게 지냈던 부친에게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던 경험은 사회와 함께 가는 테크놀러지를 화두로 갖게 했다.

정 대표 특유의 공경 어법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여성 포털 사이트들이 ‘폼 나게’ TV 광고를 빵빵 때리는 그 사람들을 부러워 말아라. 네게 필요한 개척 비용을 대주고 있다고 여겨라. 절대 성급하게 올 시장이 아니다.” 그 말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현재 기자 4명, 외부 필진 11명 등을 갖추고 있는 ‘젝시 인 러브’의 자랑은 남녀 관계를 삶속에서 풀어 간다는 것. 한준에 50여개의 기사를 생산, 업 그레이드 한다. ‘ 일과 사랑’이란 화두로 여자의 삶을 풀어, 남과 여, 궁극적으로는 부부 관계에 가정과 사회의 원동력이 있음을 매우,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풀어 간다. ID와 비밀 번호를 부여 받으면 보다 업 그레이된 성 문제와 그 해결책에 접근할 수 있다.

그녀는 “요즘 닷컴으로 먹고 사는 것만도 고마운데, 작년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섰다”며 “ 앞으로 남녀 관계 등의 문제에서는 오프 라인쪽으로도 진출할 생각”이라고 확장 계획을 내비쳤다. 또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사랑학 ‘러브 핑키’ (교학사 펴냄)등 단행본 출판 사업도 생각중. 7월 들어 KTF를 통해 하루 4회 방송 서비스중인 모바일판 ‘젝시 인 러브’도 짭짤한 수입을 내고 있다(한달 1,500만원선).

인터뷰는 숫제 한 판의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무엇을 물어도 척척 정리된 답을 제시할 것 같던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렌즈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지를 다 안다는 듯, 그녀는 사진 기자의 요구를 받고는 기대치 이상의 화면을 제공했다. 그 모습에 기자가 “모델급 CEO”라고 한 마디 거들자, “그림 너무 좋죠?”라며 한 수 더 떴다. 대전에서 놀이 공원 ‘꿈돌이 랜드’를 경영하는 김판진(33)씨가 남편. 아들 진성(2)이 있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07-15 11:33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