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절반의 스승은 책"책에서 찾은 혁신의 길, 독특한 시간관리도 성공의 밑거름환경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 희망 잃지 않는 '유쾌한 박카스'

[성공의 조건] 철도시설공단 정종환 이사장
"내 인생 절반의 스승은 책"
책에서 찾은 혁신의 길, 독특한 시간관리도 성공의 밑거름
환경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 희망 잃지 않는 '유쾌한 박카스'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조직이 관료조직이다. 그런 공공조직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이 정종환이다. 그는 거대한 관료조직 철도청을 민간기업처럼 친절하고 빠르게 혁신했다. 민간기업에서나 하는 식스 시그마를 철도청에 최초로 도입해 품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후 제주국제 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을 하면서 제주도에 면세점을 만들었고, 고속철도공단 이사장으로 철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철도 설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철도시설 공단의 이사장으로 또 하나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철도시설 공단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그를 만났는데 첫 눈에 반해(?) 인터뷰 요청을 했고 그는 이유도 따지지 않고 화끈하게 허락해 주었다. 좋은 인터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에게 마음이 끌려야 하는데 그가 바로 그랬다.

- 자신감으로 충만한 완벽주의자

그는 전형적인 입지전적 인물이다. 충남에서도 오지이기 때문에 충남의 알프스란 별명을 가진 청양이 그의 고향이다. 부모님은 무학,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도시락 싸 갈 형편은 못 되는 그런 가정에서 성장했다. 대학은 엄두를 내지 못해 아예 청양농고를 들어갔다. 하지만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한이나 없게 대학 시험이나 한 번 보라는 부모의 권유에 난생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고대 정외과에 응시했는데 합격해 오늘에 이른 사람이 바로 정종환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그에게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수성가한 사람 특유의 고집이나 아집,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과 오기 같은 것이 없다. 객관적으로 숱한 고생을 한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듯 하다. 오히려 부잣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성장한 그런 느낌마저 준다. 푸근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그를 보면 부모의 자성예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4남 1녀 중 차남인 그에게 아버지는 많은 힘을 주었다. 힘겹고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지속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집 뒤에는 충청도에서는 제법 높은 축에 속하는 오서산(791미터)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서산(烏棲山) 정기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우리 집안을 크게 일으킬 것이다.” 지속적으로 그런 자성예언을 들은 덕에 그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어려운 위기 속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다. 한 번도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서산은 그에게는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 책임감과 원칙 중시

그는 일에 관한 한 완벽주의자이다. 대강하는 것이 없다. 하나를 하더라도 꼼꼼하게 조사하고 철저하게 공부해서 최고의 것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초년 공무원 시절 홍보용 필름을 만들기 위해 관련 영화를 며칠 밤을 새워 전부 보고 꼼꼼하게 만들어 관련자를 놀라게 한 사건은 유명하다. 내가 강의한 날도 그랬다. 며칠 동안 노사협상을 했고 전날은 최종 협상 때문에 밤을 꼴딱 세웠단다. 하지만 아침부터 2시간 동안 하는 강의를 맨 앞자리에서 메모까지 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밤을 새웠으니 사무실에서 눈이라도 붙이면 좋으련만…

그는 일과 책임감을 중요시한다. 일을 열심히 하면 승진은 저절로 된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여러 조직과 나라 꼴이 말이 아닌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보다는 정치를 중요시하고, 책임질 사람들이 제대로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상사와의 마찰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 번은 상사가 자기에게 먼저 보고를 하지 않고 장관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며 서류를 내던지며 화를 내는 사건이 있었다. 관료사회에서 상사에게 대드는 것은 터부시 되고 있었지만 그는 지지 않고 따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장관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 물어보는데 어떻게 합니까?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까? 나중에라도 보고를 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사건으로 그는 다른 부서로 쫓겨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는 늘 마지막에 가까스로 승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빨리 성공을 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그 일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돈을 쫓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한다. 대신 일을 좋아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쫓아온다. ”부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승진과 성공도 돈과 같은 것이 아닐까? 성공을 쫓는 자는 성공을 못 하고, 성공보다는 일을 쫓는 자에게 성공이 오는 것.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사무실은 각종 책으로 온통 둘러 쌓여 있다. 책이야말로 오늘날의 그를 만든 스승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취미인 책 읽기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철도청장이 된 후 경영에 관한 책만 800권을 보았다.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책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은 책을 만든다. 그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그의 시간관리 기법은 독특하다. 관심이 있으면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다.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하루가 48시간이고, 별다른 관심이 없이 어영부영하는 사람에게 하루는 몇 시간 되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하루가 48시간 이상 된다. 등산을 하다 산 전문가가 되었고, 등산하면서 본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식물도감 공부를 하여 야생화 전문가가 되었다. 심심풀이로 듣던 고전음악도 일정 경지에 도달해 갖고 있는 CD, LP만 4천장이 넘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 지나가는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관심 있게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최근에는 백제역사와 불경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그는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이고 스토리텔러이다. 같은 얘기를 해도 그가 하면 재미있다. 이런 재능은 타고난 것이다. 학창시절 웅변대회에서 상을 탄 것이 증거이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잘 개발했다. 관광, 교통, 항공 업무를 하던 교통부 과장시절부터 그는 강연을 다녔다. 다른 것보다 관련 조직을 설득하는 차원에서 다녔는데 좋은 훈련 과정이 되었다. 강연 비법은 철저한 준비이다. 그가 늘 두려운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마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보면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면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라는 데일 카네기의 말이 생각난다.


-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별명은 박카스다. 대학시절,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에너지를 준다 하여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를 만나보면 단번에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늘 웃고, 친절하고, 다정하다.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쉽게 친밀감이 느껴진다. 에너지가 넘친다. 언제 힘드냐고 물어보자 별로 그런 기억이 없다고 이야기 해 사람의 기를 질리게 한다. 재충전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도 열정적이고 재미있게 살다 보니 재충전의 필요성도 못 느낀단다. 사실 별 것 아닌데도 경제가 어렵다, 청년실업이다 해서 땅이 꺼질 듯 한숨 쉬는 사람들은 그의 이런 자세에게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늘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는 가족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고향 동급생과 결혼해서 아들만 셋 둔 그는 참으로 많은 신세를 부인에게 졌다. 연속으로 고시에서 물을 먹고 낙담한 그를 일으켜 세운 것도 부인이고, 졸업 후 백수가 공부를 하게끔 고시 뒷바라지를 한 것도 부인이다. 공무원의 박봉으로 생활이 안 되자 출판사를 다니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것도 부인이다. 부인은 능력을 인정 받아 그 회사에서 상무까지 진급을 했는데 자신이 국장이 되자 회사를 그만 두게 했다. 고급 공무원이 아내를 고생시킨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이다. 계속 회사를 다니게 할 걸 괜한 짓을 한 것 같다고 후회를 한다. 자식에게 너무 엄격해 과외공부 한 번 안 시키고, 군것질 같은 것도 일체 못 하게 했다. 자신이 너무 엄격해 자식들이 정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오스틴에서 공부를 마친 큰 아들은 엘지에드에, 영국에서 공부한 둘째 아들은 항공우주산업에, 경희대를 나온 막내 아들은 컨설턴트로 잘 성장해 주었다. 미안해 하지만 부인과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이다. 사실 그만큼 고생을 하면서 산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워?먼 거리를 공부하면서 걸어 다닌 덕에 두 손 다 동상에 걸렸고,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의심한 적도 없고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잘 살고 있지만 자신의 삶에 감사한 적이 없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고, 되는 이유보다는 안 되는 이유를 찾고…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 고난이란 것은 잘만 극복하면 정말 약이 되는 것이다. 그를 만나고 오는 발길은 유난히 가벼웠다. 에너지로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근태 한국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입력시간 : 2004-07-29 11:54


한근태 한국과학종합대학원 교수 kthan@ass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