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 선 사람들의 지푸라기가 돼야죠"다중채무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재기의 길 터줘

[직업의 세계] 신용불량문제 상담가 이상수
"벼랑끝에 선 사람들의 지푸라기가 돼야죠"
다중채무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재기의 길 터줘


매일 새벽 여섯시면 이상수(49)씨는 한강변을 질주 중이다. 평일엔 10km, 토,일요일이면 성산대교에서 잠실운동장까지 40km를 달린다. 조깅 15년, 마라톤 5년. 몇해전 보스턴 마라톤에도 당당히 출전한 아마추어 이상의 아마추어 마라토너 이씨지만 그에게도 40km 장거리는 여전히 만만치않다. 2,30km 지점이 최대 고비다.

“ 그 순간엔 내가 왜 이걸 해야되나, 뭐하러 이 힘든 일을 하고 있나, 너무 힘들어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잘 참고 견딘 뒤 마침내 완주하고 나면 '오늘도 해냈구나' 그 성취감과 자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 와중에도 여러 얼굴이 떠오른다. 마라톤을 꼭 권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그의 본업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 고통스런 터널, 지나면 좋은날 올 것

“ 신용불량자들에게 꼭 마라톤을 권하고 싶습니다. 일정거리를 지날 때까지는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그 터널만 지나면 엄청난 성취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절대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용기를 갖고 문제를 헤쳐나가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이씨는 신용회복위원회 명동 상담팀장이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신용불량자들이 희망으로 찾아가는 마지막 비상구다. 빚을 지고 이를 갚지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방문객 수가 하루 평균 700명에 이른다. 2002년 10월에 문을 연 이곳은 본인의 의지와 능력을 가진 다중채무자들에게 상환 유예 제도를 적용해 제 2의 인생을 터주고 있다.

상담팀 이씨의 출근시각은 아침 8시반이다. 신용불량자 등재 여부 등을 조회할 수 있는 금융권 전산망이 가동되는 시각이다. 그 사이에도 이미 새벽바람부터 찾아와 상담을 기다리는 이들이 열명쯤 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몇백명은 족히 수용될만큼 빽빽이 의자를 붙여놓은 상담신청자 대기석이 금새 꽉 찬다.

이들을 맞을 상담팀 인력이라봐야 손가락으로 헬 만큼 적다. 과거 금융권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50대 자원봉사자들이 5명, 사이버 상담팀이 3명, 실질적으로 객장에서 직접 방문객들을 맞아들이는 일반 상담원은 팀장인 이씨까지 포함해 고작 5명 정도다.

방문한 순서대로 상담이 이뤄진다. 신용회복 지원 자격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상담팀의 주 임무다. 빚이 많다고 무조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신용불량자로 정식 등록된 경우라야 할 것. 신용불량자란 은행이나 카드사 등에 건당 30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연속으로 연체했거나 액수와는 상관없이 총 3건 이상 3개월 연속해 연체한 경우 등에 해당된다. 신용불량자중에서도 개인별 채무액수와 소득 수준, 부양가족수 등을 바탕으로 상환능력을 평가해 구제 대상자를 가린다.

일단 신용회복 지원 신청이 가능한 사람들은 그들대로 단체로 60명씩 모아 집단상담에 들어간다. 위원회에서 어떤 도움을 주게 되는지, 신용회복 지원신청서를 작성하는 요령과 주의사항 등까지 모두 설명하고 나면 1시간반쯤 훌쩍 지나간다. 이같은 집단상담만 하루 대여섯 차례 치뤄진다.

한쪽에선 신청 자격에서 결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1대1 상담이 쉴새없이 이어진다. 채무액수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어 현실적으로 상환능력이 불투명하다거나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지 않은 등의 이유로 신청 자격을 얻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들대로 부스안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마주앉아 개별상담을 진행한다. 비록 당장은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없다하더라도 빚을 청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아 함께 고민하며 답을 주고 받는다.

팀장인 이씨는 이 모든 일들을 총괄하여 돌보는 한편, 필요한 경우 직접 상담을 맡기도 한다. 방문객들이 유난히 많은 날이거나 상담하기 까다로운 상대를 만났을 때 직접 상담에 뛰어든다.


- 속엣말 터놓고 얘기할 상대역

“ 다들 사정이 딱한 분들이지요. 거의 공통적으로 몇 번씩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예요. 상담을 하다가 우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동안 채권 추심이나 협박 등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어디가서 한번 속시원하게 터놓고 얘기나눌 상대도 없다보니 저희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감정이 복伺?우시는 거예요. “

신용회복 신청 자격이 주어진 이들의 기쁨이란 말할 나위 없다. 위원회를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표정부터 달라진다.

“ 어떨땐 바닥에 엎드려 저희에게 큰절을 하시는 분도 있고, 기쁨에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하시는 모습이 바로 눈에 띕니다. 상담실을 나가면서 곧바로 친구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릴 때 보면 마치 대학입시에 합격한 수험생처럼 그렇게 흥분하고 기뻐하실 수가 없어요. “

그럴만도 하다. 신용회복 신청서를 접수한 뒤 신청비용 5만원을 입금하고 나면, 위원회와 금융기관들의 협약에 따라 바로 그 순간부터 이들에 대한 은행의 채권 추심이나 독촉, 협박 등이 일체 금지된다. 더 이상 고통과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신, 약 3개월 후 상환 방법이 최종 확정되고나면 그때부터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을 치러야 한다. 약속한대로 성실히 차근차근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만일 이후에도 3개월간 연속해서 약속을 어기면 모두 원위치로 돌아간다. 이럴 경우 위원회에서도 더 이상 재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 대개 신청후 6,7개월째가 이들의 고비다. 당장의 해방감에 들떠 처음엔 철저히 약속을 지키다가도 시간이 지나 조금씩 긴장이 풀리면 지난 고통을 잊어버린 채 다시 씀씀이가 헤프던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이들도 아주 가끔씩 나타난다. 사람의 습관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상담을 하다보면 곧잘 인생상담과 겹치기도 한다. 절박한 빚더미에 몰리기까지 저마다 숨은 사연들도 많다. 지난해 언제인가 식당 보조원으로 일한다는 한 40대 후반 여성이 이곳을 찾아왔다. 보증을 선 일이 잘못돼 약 4천만원의 빚을 떠안아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보증을 선 과정부터가 너무나 기구했다. 그녀는 어릴 때 낯선 할머니로부터 유괴를 당해 이를테면 '유괴범' 집안의 딸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자랐다. 결혼해 독립한 얼마뒤까지도 전연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이 '양부 아닌 양부'인 아버지가 외도로 뒤늦게 자식을 낳은 뒤 나이가 들면서 상속문제가 거론되자 갑자기 그녀에게 '너는 내 딸이 아니'라며 '호적을 파 가라'고했다. 청천벽력같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결국 남편과도 불화가 시작돼 이혼을 맞고 말았다. 뒤늦게 생부, 생모를 찾아나섰지만 이미 어머니는 사망한 뒤였고, 아버지는 재혼해 이복동생을 키우고 있었다.

그나마 혈육이라며 이복동생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지내던 중 사업을 하겠다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보증을 서 준 것이 화근이었다. 사업이 망하면서 혼자 힘으론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빚과 신용불량자의 낙인을 떠안게 되었다.

절친한 친구에게 문상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직장도 잃고 이혼까지 당한 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택시기사. 그런가 하면 외모 콤플렉스가 불행을 부른 29세 여성도 있었다.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생각에 항상 괴로웠던 이 여성은 온갖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다이어트 제품을 사들이는 것으로 잘못된 출구를 찾았다. 일용직 공무원인 자신의 수입도 아랑곳없이 카드빚을 얻었다. 위원회를 찾아왔을 때 이미 그녀의 빚은 9천만원에 이르러 있었다. 엄청난 빚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어 이 여성은 법의 구제를 받을 수도 없었다.


- 불황이 만든 선의의 신용불량자 많아

“ 전체적으로 보면 과소비나 사치 등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는 전체의 1%도 안될겁니다. 대개 자녀의 학자금이나 생활비 때문에 빚을 진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돈을 벌던 가장이 갑자기 실직했다거나 이혼하는 등, 정상적인 가정의 틀과 역할이 깨졌을 때 결국 이런 문제로까지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

상담원은 그리 편안한 직업이 아니다. 눈만 뜨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사람들속에 파묻혀 있다. 게다가 모두가 벼랑 끝에 매달린, 절박하고 애처러운 이들이다. 끊임없이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상대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것도 하루종일 거의 선 채로 일한다. 몸도 마음도 여간한 체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실제로 입사 한두달만 지나면 지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본다. 퇴근시각도 보통 저녁 8,9시쯤이다. 방문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딱히 종료시간을 정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레 8시 무렵이 되면 상담신청자들의 대기석이 텅 빈다. 단 한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남아있는 한 문을 닫지 않는다.

금융권에서는 일찌감치 정착된 주 5일제 근무도 이곳에서만큼은 예외적이다. 모양만 당직제로 바꾸었을 뿐, 토요일에도 방문객들에게는 평일과 다름없이 문이 열려 있다. 진심으로 자신의 역할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일을 맡기 어렵다.

“ 일 자체는 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없지만, 제일 애가 타고 마음이 힘들 때는 너무나 처지가 딱해서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은 분인데 당사자의 여건상 저희로서도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없을 때, 그럴 때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래도 저희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보다는 손이 미치는 곳이 훨씬 더 많다는 것, 이곳에서 희망을 얻고 돌아가는 분들을 볼 때 저희들도 뿌듯합니다. “

이씨는 모 화재보험사에서 23년간 근무한 뒤, 2002년 이곳의 설립과 함께 합류해 보람과 봉사의 인생을 시작했다. 신용불량자들과 함께 한 지 약 1년반. 그리 길지않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위원회 내부적으로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다. 고통받는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 초창기의 복잡하고 번거롭던 절차들이 대폭 간소화되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방문자들의 얼굴에 담겨져 있다.

“ 이곳을 찾는 분들의 표정이 예전보다 많이 밝아졌습니다. 위원회의 역할이 점차 많이 알려지면서 이젠 전처럼 몇 년씩 혼자서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자신을 도와 줄 곳이 있다는 기대와 희망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찾아드리는 것도 결국엔 스스로 일어설 희망과 용기이구요. “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8-06 14:16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