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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점포개발 전문가 장경순
대박 미루고 오는 점포 사냥꾼
편의점 개발에 관한 한 타의 추종 불허, 300여 업장 탄생시켜


그는 사냥꾼이다. 한번 찍은 ‘먹잇감’은 놓치는 법이 없다. 가족에겐 일찌감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내 얼굴을 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해두었다. 경력 11년차. 심지어 이 경지에 와 있다. “괜찮은 후보지를 발견하면 저희 눈에는 이미 그 점포가 편의점으로 바뀌어 장사하는 광경이 보입니다. 그 (상상 속의) 편의점에 사람들이 들어서는 모습, 물건을 사 들고 계산대에서 값을 치르는 것까지 마치 실제 상황처럼 생생하게 보이지요. 실제로는 전연 다른 가게인데두요.”

장경순(36)씨는 점포사냥꾼이다. LG유통 CS사업부 개발1팀 팀장을 맡고 있는 점포개발 전문가다. 영업은 영업이지만 물건이 아니라 가게를 통째로 사거나 바꾼다. 그중에서도 편의점 개발이 그의 전문분야다. 자사에 수익을 더해 줄 새 편의점 부지를 찾는 일에서부터 사전 시장조사, 부지 매입, 개점, 사후 서비스까지 편의점 신설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동네 주변에 갑자기 전에 없던 편의점이 문을 열었다거나 옷가게 주인이 편의점 주인으로 변신해 앉아 있다면 그 뒤에는 장씨와 같은 점포개발자들의 땀이 숨어 있다고 보면 된다. 장씨의 개인 기록만으로도 그간 세상에 심어놓은 편의점이 약 300개. 한 달 평균 2, 3군데씩 편의점을 탄생시킨 셈이다. 상권(商圈)의 지도를 바꾸는 이들이다.


- 거리가 일터, 구두 다섯켤레 닳으면 1년

공식적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건 1주일에 두어번 정도다. 조사 내용을 분석하거나 내부 보고, 회의 때를 빼고는 종일 거리에 살다시피 한다. 각자 맡은 담당구역을 수시로 돌며 ‘먹이가 어디에 많을지’ 후보지를 물색한다. 적어도 30~50군데쯤은 항상 비축돼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래봐야 실제로 개점까지 이르는 건 그중 5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닳아 없애는 구두가 1년에 최소 3켤레, 많으면 5켤레쯤 된다. 그나마 제화기술이 발전한 덕에 요즘 그 정도다. 내내 볕을 안고 돌아다니다 보니 얼굴도 대개 새까맣다. 약국이든 빵집이든, 건물 1층에 있는 점포는 모두 이들의 탐색 대상이다. 어딘가 마음이 끌리는 점포자리가 보이면 간이조사를 통해 1차로 옥석을 걸러낸다. 후보지로부터 반경 150m로 원을 그려 일대의 유동인구와 경쟁점 수 등을 파악한다. 혹시 저당이 설정된 곳은 아닌지 관할 등기소 등 관련 관청을 찾아 법적인 문제도 빠짐없이 확인한다.

간이조사만으로도 대략적인 예상 매출액이 파악된다. 예상 수익이 높은 후보지는 곧 본격적인 포획준비에 들어간다. 아르바이트생들까지 고용해 간이조사보다 훨씬 치밀하고 복잡한 정밀조사를 진행한다. 정밀조사는 짧으면 3일, 길면 1주일씩 걸리기도 한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해 이튿날 새벽 2시15분까지 2시간마다 15분씩 해당 점포를 드나드는 유동인구나 차량 수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 회사들이 입주한 인근 빌딩이나 아파트 등 주변 시설물과 인구수를 파악할 때에도 상근자와 비상근자, 남녀 비율, 연령대 등 세밀한 사항까지 최대한 꼼꼼이 살핀다. 후보지 통과율을 알기 위해 부근의 건물이나 지하철, 버스 정류장 등에서 나온 사람들을 몰래 졸졸 따라다니기도 한다. 빌딩의 입주자 수를 파악할 땐 맨꼭대기층부터 한층 한층 걸어 내려오며 일일이 각 방문을 열어본다. 누군가 ‘뭐 하는 사람이냐?’며 수상해하면 요령껏 다른 핑계로 둘러댄다.

잠복형사가 따로 없다. 그 와중에도 해당 점포 주인이나 인근 경쟁점에 정보가 노출될세라 최대한 사람들 눈을 피해 조사를 마쳐야 한다. 2시간마다 후보지 상황을 체크할 때도 대개 그 옆의 슈퍼마켓이나 후보지가 잘 보이는 건너편 건물 2층 커피숍쯤에 자리를 잡는다.

가끔은 엉뚱한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노점상들에게 ‘비밀 단속반’으로 오해받아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차량 수를 확인하다 말고 제 발 저린 불법주차 운전자들에게 주차단속요원으로 몰려 곤욕을 치른 일도 있다.

가장 힘든 때는 역시 여름과 겨울이다. 그중에서도 겨울이 가장 싫다. 지번도를 바탕으로 후보지 일대의 건물과 그 이름을 빠짐없이 적어넣어야 하는 ‘상세도’를 작성할 때 제일 고역이다. 아무리 살을 에는 추위라도 현장에서 상세도를 그릴 땐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벗어야 한다. 볼펜을 쥔 손이 금세 꽁꽁 얼어붙어 곱는다. 빙판길에 미끄러지기도 일쑤. 너무 힘들어 가끔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한숨이 날 때도 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겨울을 잘 보내야 1년이 무사하다.


- 예상 매출액 분석, 적중률 80%

조사한 자료를 전문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한 뒤 약 2시간후면 제법 정확한 예상 매출액 분석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적중률 80%, 나머지는 경험과 직관의 몫이다. ‘명당’이 가려진 뒤에는 해당 점포 주인이나 부지 소유주와의 협상전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든 주인을 설득해 점포를 사들이거나 또는 점포 주인이 직접 편의점으로 업종을 바꿔 운영하는 것,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갑작스런 매매 제안이 당사자들에게 당장 달가울 리 없다. 대개 열명 중 여덟명은 거부반응부터 보인다. 건네준 명함을 면전에서 집어던지는 이도 있고, 아예 일언반구 상대조차 안 하거나 큰 소리로 면박을 주는 이도 있다. 좋은 자리는 누가 봐도 탐이 나는 법. 한 점포를 두고 경쟁 유통업체들끼리 각축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 자리다 싶어 찾아가 보면 먼저 다녀간 타사 점포개발자들의 명함이 수북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럴 때 포기하거나 좌절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이 일은 최소한 1년 이상 길게 내다보고 준비해야 결과가 나오는 일입니다. 협상력과 정성이 관건입니다. 제 경우엔 일부러 경쟁사 직원들이 잘 오지 않는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택해 찾아가 바쁠 땐 짐도 함께 날라주고, 문 닫을 땐 셔터를 내려드리는 등 꾸준히 인간적인 신뢰를 쌓으면서 결국 협상에 성공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력중 나름대로 자랑스러워 할만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일단 마음먹은 후보지는 한번도 뺏긴 적이 없다는 겁니다.”

3년 걸음 끝에 따낸 자리도 있다. 오래 전 그가 개점시켰던 서울의 모 편의점. 원래 그곳엔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조명가게가 있었다. 건물주의 거절에도 굽히지 않고 장씨는 끈덕지게 쫓아다녔다. 명절마다 선물을 사들고 찾아간 지 3년째 되던 어느날, 마침내 반전을 맞았다.

‘당신이 준 꿀 몇병 얻어먹고 내가 가게를 내준다’는 칭찬 섞인 농담과 함께 건물주가 기꺼이 자신의 부지를 내주었다.

의정부의 한 슈퍼마켓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매일 밤마다 12시 무렵이면 점포 주인의 집 앞에 서 있던 끈기의 대가였다. 1주일만에 문이 열린 뒤 내내 냉담하던 주인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 그 자리에 불러내 장씨 앞에 세운 뒤 ‘너도 이 사람(장씨)처럼 세상을 살아야 한다’며 그의 열성에 탄복해했다. 장씨 자신에게도 일의 보람을 깊이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

당사자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지면 장씨네 회사의 경우 ‘입지 평가 패널’이라는 독특한 자체 평가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마지막으로 거치게 된다. 이 심의까지 무사히 합격점을 받아야 비로소 실질적인 편의점 개점작업이 착수된다. 심사가 워낙 까다로와 이 과정에서 탈락되는 후보지도 적지 않다. 무사히 개점한 뒤라도 자신이 개발한 편의점에 관한 한 개발자는 거의 평생 애프터서비스의 책임을 맡는다.


- 노력에 따른 정직한 결과, 운은 없다

“이 일에는 운이란 게 없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정성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나옵니다. 한가지도 쉽게 되는 것이 없습니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그는 92년 현재의 회사에 입사했다. 첫 1년을 편의점 매장에서 보낸 뒤 ‘자신이 일한 만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도전적인 일’을 찾고 있던 그에게 ‘점포개발 부서로 가보라’고 누군가가 가르쳐줬다. 그처럼 스스로 자원해 점포개발 업무를 맡는 경우는 지금도 그리 흔치 않다. 그만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된 길이다. 동종업계 전체를 통틀어도 10년 이상 경력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과정이 어려운 만큼 자신의 손으로 발굴한 후보지가 마침내 자사의 로고를 달고 문을 열 때 그 성취의 쾌감 또한 더없이 크다. 그가 5년 가까이 담당했던 서울 종로구의 경우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자사 편의점 대부분이 그의 헌팅 작품들이다. 일 매출?200만원만 넘어서도 성공한 것으로 불리는 현실에서 일매출 700만원대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린 모 편의점도 그에게 뿌듯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예나 지금이나 평일 귀가 시간은 보통 자정 무렵이다. 이틀 전만해도 새벽 3시에 퇴근했다. 팀장이 된 뒤엔 수하의 후배 6명을 코치하느라 전보다 더 바빠졌다. 그나마 가장 노릇을 해줘야 할 주말에도 일거리만 터지면 현장으로 나간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습관은 점포개발자가 된 이후에 얻은 직업병이다. 길을 걸을 때도, 운전 중에도 자꾸만 시선이 주변 상가쪽으로 빠진다. 이 때문에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는 일이 점포개발팀에겐 허다하?


- 신입사원에게 협상 노하우 전수

장씨는 신입사원 교육 때마다 협상과 접근법을 가르치는 강사이기도 하다. 협상의 고수가 말하는 이런 철학은 또 어떤가? “후배들에게 우리는 항상 포카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협상 상대를 만나든 내 쪽에서 내밀 수 있는 카드가 7개 정도는 반드시 준비돼 있어야 하고, 그 중 3개는 상대가 알고 있더라도 나머지 4개는 상대가 전혀 알 수 없는 나만의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구요. ”

카드가 꼭 거창할 필요도 없다. 내친 김에, 약 8년전 그가 써먹었던 비밀카드 한 장을 공개해본다. “회사에서 승인된 건 8천만원인데, 점포 주인은 1억원을 고집해 계속 협상이 지연되던 어느날 ‘오늘 승부를 보지 않으면 더 이상 가망이 없겠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담판을 짓기로 마음먹은 그날 밤, 출발 전에 김밥으로 얼마간 요기를 한 뒤 점포를 찾아갔습니다. 예상대로 여전히 같은 얘기만 반복된 채 시간이 점점 흐르자 점포주인이 도저히 배가 고프고 피곤해서 안되겠다며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결론을 지어주시고 가셔야 한다’고 제가 계속 붙들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새벽까지 쫄쫄 굶고 피로에 지친 점포주인이 8천만원에 승낙을 했습니다. 사실 그 순간을 노리고 저는 미리 식사를 하고 찾아간 거였거든요(웃음).”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4-08-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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