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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조건] 그런포스 펌프 한국 CEO 이강호
끝없이 되뇌이는 화두 "나는 최선을 다 했는가"
육사 대표화랑 출신의 국제적 세일즈맨, 사회적 책임 다하는 탁월한 리더


그런포스 펌프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펌프 업계에서는 기린아이다. 덴마크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펌프 시장의 1인자다. 기술로 펌프시장을 제패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회사는 인간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장애인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고, 직원의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 회사는 2003년 1월 포춘지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회사의 한국 CEO가 이강호 사장이다. 그는 38세의 나이에 정년인 60세까지 고용계약을 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 처음 시작하여 매출액 420억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고 매년 20%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본사가 독특한 만큼 이강호 사장 역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 장군을 꿈꾸다 군복을 벗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육사는 매년 두 명의 학생이 100년 탑에 이름을 새기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대표 화랑이다. 리더십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뛰어난 것이 증명된 만큼 무난히 근무하면 장군이 될 확률이 누구보다 높다. 대표 화랑이었던 그는 개인적 갈등으로 대위 때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 처음 도전한 진흥요업이라는 회사에서 국제적인 세일즈맨의 자질을 드러내 1978년 당시 천 만불 이상의 도자기 수출실적을 올렸다. 이어 두 번째 직장인 하림통상이란 무역회사의 창립멤버로 뉴욕에 근무하며 5년 동안 1억불 가까운 실적을 올려 무서운 젊은이로 주목됐다. . 이어 세 번째 도전한 직장이 지금의 그런포스. 여기서도 그는 성공을 거듭하며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육사출신으로 비즈니스맨으로, 세 번의 직장생활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강호 사장.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 "차선은 없다" 부하직원 독려

그는 강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반장과 회장을 도맡아 했다. 늘 앞장서서 도전하고, 지휘하고, 길을 헤쳐나가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는 명예(Honor), 책무(Duty), 조국(Country)을 중요시 한다. 그런 그가 육사를 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와 좌절, 장애, 물러섬, 포기 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목표를 정하고, 군인정신을 발휘해 부하를 독려하며 실행하고 성과를 내는 것, 이것이 이 사장의 스타일이다.

“이 곳에서 늘 필요한 사람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자. 차선이란 없다. 전쟁에서 차선은 죽음이고 비즈니스에서 차선은 파산이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지금의 성공은 그 결과물이다.


- 평생의 인생관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라는 신념을 갖게 된 데는 카터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원자력 잠수함 요원을 선발하는 면접에서의 일. 당시 해군 대위였던 카터는 훗날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해군 제독생활을 한 레코버 대령에 의해 면접을 보게 되었다. 레코버 대령의 첫 질문은 “귀관은 해사생도 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지미 카터 대위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Yes, Sir”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음 질문은 “그러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가?”였다. 그 질문에도 역시 “Yes, Sir”라고 대답하긴 하였으나, 동시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생겼고, 잠시 후 머뭇거리며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라고 말을 바꾸어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레코버 대령이 엄숙히 되물었다. “Why not the best?(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결국 카터는 잠수함 요원으로 선발되었고 후에 미국 대통령까지 역임하게 되었는데 그 때 레코버 대령이 한 질문은 그의 평생의 인생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사건이 이강호 사장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 조국애와 자부심 키운 고교시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중앙 중고등학교의 최복현 교장이었다. 그 분은 일제시대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후에 서울시 교육감까지 지낸 교육자였다.

당시는 경기, 서울, 경복 등 공립이 상대적으로 좋아지면서 중앙은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중앙은 1963년 처음으로 후기입학을 실시했고 그 해 이 사장이 입학했다. 최 교장은 학생들에게 역사 의식을 불어넣었다. ‘우리 학교는 민족학교이다. 이 학교에서 3.1 운동을 준비했고, 6.10 만세운동을 선동한 학교도 우리학교다’라는 식으로. 또 경기나 경복에 못지않게 너희들도 머리가 좋고, 더 우수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켰다. 덕분에 그는 중앙이라는 학교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고 믿고 살았다. 또 최 교장은 후손을 양성하고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학생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매주 월요일 마다 “애국조회”를 실시했다. 덕분에 그는 6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에 참석했으며 그때마다 애국가 4절을 모두 불렀다.

그의 성공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외국어 특히 영어였다. 그의 인생은 영어와 함께 한 세월이었다. 육사 졸업 후에는 주한 미군 합동군사지원단 세파드(Shepard)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미군 장교들과 생활하며 자연스레 영어를 익힐 수 있었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무역을 해서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도 글로벌 기업의 CEO로서 일년에 몇 달씩 전 세계를 돌고 있다. 14년째 경영을 맡고 있는 이 회사 역시 전 세계 60개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어서 그룹의 공식 언어는 영어이다.


-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이 사장 생활의 양대 축은 운동과 공부이다. “육체적 건강은 땀 없이는 불가능하고, 정신적 건강은 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신념으로 그는 운동과 공부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헬스 외에 골프 등산 에어로빅 스키 등은 그의 생활의 한 부분이다. 회사 경영만으로도 바쁘지만 틈을 내 고려대학, 영국의 애쉬리지 대학, 스탠포드, 스위스의 IMD 최고경영자 과정을 졸업했고 동국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어떻게 시간을 내고,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에게 겸손을 가르쳐 준 사건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학생 회장선거 때의 일이다. 계속 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자신감에 넘쳐 아무런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개표 결과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하고 말았다. 이름이 “이강호”인데, “이강우”와 “이강오”라고 잘못 쓴 두 표가 개표되었고, 이것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자신의 오만과 자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해 벌어진 선거에서는 최선을 다해 선거 운동을 했고, 회장에 당선됐다. 그 사건으로 자만하면 안 되고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 일로 승부하고 일로 인정받은 풍운아

그는 풍운아이다. 재능이 있고, 리더십이 있고, 남들 눈에는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수많은 장애를 헤치고 오늘에 이르렀다. 아니 그런 고난 덕분에 지금의 성공을 거둔 것인지 모른다. 그의 삶은 평탄해 보이지만 결코 평탄치 않았다. 군인의 길을 포기하게 된데도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대표 화랑까지 한 사람이 군복을 벗을 때 얼마나 말 못할 사연이 있었겠는가. 아직도 그 사연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된데도 아픈 사연이 있다. 내부의 모함으로 어느날 갑자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쫓겨 오게 됐다. 당시 부인은 만삭이었다. 바로 그만 두고 싶었고, 그만 둘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바로 그만 두는 것은 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최선을 다해 일을 하기로 했다.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일로 승부하고 일로 인정을 받기로 하고 인정을 받게 되자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 때 그가 사장에게 한 말. “저 같은 부하를 다시는 못 구하실 겁니다.”

인재를 영입하고 양성하는 것, 사회와 호흡하는 것, 키워준 사회에 책임을 지는 것은 그의 경영철학이다. 맑은 물 지킴이 같은 환경운동을 벌이는 것이 그의 꿈이다.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 옆에 있으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 이강호 사장이 그런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 얘기를 들려 주고 싶어하는 泳耽?같이 있으면 비슷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강호 사장이 그런 사람이다. 70세가 넘은 부시 대통령이 점프를 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은퇴를 한 카터 대통령이 손자들과 놀다 뒤늦게 스키를 배워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멋진 리더를 꿈꾸는 이강호 사장, 그는 이미 탁월한 리더이다.

입력시간 : 2004-08-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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