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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탈북자 대학생 주성일
한 없는 삭임과 절제로 내면의 아픔 치유
미래에 따른 불안과 고독 '독하게' 감내
철저한 자기절제로 냉정한 자본주의 체득 중


“작년에 4만원 주고 한 거예요. 친구들 하는 것만큼은 해 보자는 마음이었죠.” 하기사 노랗게 머리 염색도 해 보았는데, 귀 뚫고 18K 짜리 귀고리 하는 정도야.

주성일(23)은 서울 사람이 다 됐다. 그럼에도 나름의 징표가 더 필요했던 것일까. 지금 하고 있는 귀고리가 바로 적응 과시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는 뚫지 않았다. “코를 뚫으면 그건 양아치죠. 양아치란 말뜻을 아느냐고요? 날라리란 뜻 아녜요?” ‘양아치’란 2003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서 처음 접한 남한 말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아파트 안에 펼쳐진 풍경은 한국의 여늬 20대와 다를 바 없다. 최지우의 사진을 한쪽 벽 가득 붙여 놓았다. “내성적이고 강인하고…뭣보다 굉장히 이쁘잖아요. 북한 여배우로 치자면 오미란 정도랄까요?” 사실, 그는 북한 있을 때 ‘겨울 연가’를 전부 다 볼 수 있었다. 고위층만 몰래 보다 외부로 유포돼 돌던 비디오 테이프 덕분이다. 북한 어투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서울 말투를 일찍 체득한 데에는 그 같은 ‘사전 오리엔테이션’ 덕분이 크다.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만큼 잘 정돈된 실내 풍경이 암시하듯, 그는 자기 절제가 강하다. 견고한 일상은 북한에서의 군대 생활에서 자연히 체득한 것이면서, 미래에의 불안과 고독을 감내해 내기 위한 자신의 방식이리라.


- 목숨 건 엑소더스

북한서 혹독한 병영 생활을 할 때 들었던 “독한 놈” 소리가 톡톡히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죽음의 고지’를 완전 군장으로 하루에 열댓번은 오르내려야 했던 북한에서의 훈련병 시절, 부상을 당해 무릎께가 종기로 퉁퉁 부어 올랐던 적이 있었다. 결국 분대원의 도움을 받아 벌겋게 달군 칼로 상처를 후벼 판 후에야 겨우 치료됐다. 당시 중대장의 입에서 감탄처럼 절로 나왔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출신 성분이 좋았던 덕에 16살의 나이로 특수 부대인 개성 지역 민경(민사 행정 경찰)에 들어 가 헌병 – 사단장 연락병 – 보위부 정보 통신병 – 대남 방송국 요원 등을 거쳐 DMZ에서 근무했던 세월의 요체를 단 한 마디로 압축하면 그 세 글자가 나온다. 별탈없이 6년의 복무를 마치면 그토록 소망해 오던 보위 대학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의 방송 실수로, 그는 평소 아끼던 후임병 탁은혁과 함께 월경을 택했다. 하필이면 김정일의 환갑날, 은혁이 남한 방송을 녹음해 뒀던 테이프를 실수로 대남 방송에 내보내는 실수를 저질렀고 가혹한 문책은 불 보듯 했던 것. 두 사람은 차라리 목숨을 걸었다. 인민 초소에서 국군 초소까지는 겨우 1㎞ 남짓. 문제는 북측에서 중앙분계선까지의 300m였다. 4개의 고압선이 죽음의 선을 긋고 있는 곳이다. 1만 볼트, 8,000 볼트, 6,000 볼트, 2,000 볼트 등 4개의 고압선을 통과해도 가시 철책선과 지뢰의 숲을 통과해야 했다. 경비병들을 50도짜리 술로 곯아 떨어트린 두 사람은 고압선 사이를 짝지발로 걸어 가다 일을 당하고 말았다. 바로 5미터앞에서 은혁이가 두 개의 고압선 사이에 걸려 처참하게 즉사했다. 다시 50m 거리의 지뢰밭을 넘으니 ‘중앙분계선 2780호’라는 팻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훗날 그는 당시 상황을 두고 “순간순간이 일년 맞잡이였다”고 표현했다.

“북한군 2군단 직속 민경부대 대남방송국 조장으로 있었습니다. 계급은 상급 병사(병장) 이름은 주성일, 생년월일은….”

2002년 2월 19일 밤, 그야말로 정신없이 중앙분계선을 넘어 국군 초소로 가서 귀순자임을 밝힌 뒤 국군에 연행돼 사단 지휘부 조사실에서 그가 밝혔던 관등 성명이다. 조사관은 전혀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가 월남했던 도라산역을 몇 시간 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거듭남의 징표치고는 별난 우연이었다.


-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기

그는 지금 한국의 대학생 03학번이다. “국제 사회와 국제 관계, 북한 문학의 이해, 한국 정치의 쟁점 같은 과목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입학해서 영어로 하는 수업이나 자본주의의 정치ㆍ경제를 주제로 하는 수업 등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받은 학점이 1학년 1학기에는 C제로, 2학기는 C플러스. 그러나 2학년 1학기는 B제로(3.2)다. ‘국제 사회와 국제 관계’, ‘북한 문학의 이해’, ‘한국 정치의 쟁점’ 등을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꼽는다. “정치나 언론쪽으로 코드가 맞아요.” 현재 한국 사회의 유행어를 아무 스스럼 없이 구사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아픔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 다니다 보면 용돈 받으며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죠.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소원인 저는 때로 설움에 북받치기도 하죠.” 아르바이트 하느라 좋은 수업, 예를 들어 ‘매스컴의 이해’ ‘북한 정치사’ 등을 놓쳐야 하는 처지를 말한다. 그 동안 적잖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호프집 서빙, 공사장 인부, 치킨 배달, 행사 도우미, 신문 배달, 붕어빵 장수 등. ‘태극기 휘날리며’와 ‘호텔 코코넛(9월 개봉)’ 등 영화에서는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은 판문점 관광 센터의 가이드로 8개월째 있다. 외국인들을 인솔하며 자신의 근무지였던 DMZ 일대(오두산 통일전망대, 임진각, 도라산 전망대 등)를 안내하는 일이다. 그 일로 한달 15~20만원 받는 게 수입의 전부인 셈. 학교 다닐 때는 한끼에 1,700원 하는 학교 식당 밥으로 하루 끼니를 해결한다. “지금처럼 방학 때는 하루 한두끼로 살아요. 라면이 질릴 때요? 고기나 생선은 엄두도 못 내는 대신, 돈 적게 들고 푸짐한 콩나물 두부 김치찌개 달걀 같은 것들을 먹죠.”

요즘 그는 하루에 6시간은 공부한다. 영어가 기본인 사회에 왔으니, 오후 1시~6시까지 토플을 붙들고 산다. 또 중요한 것은 정치학을 위한 사회학과 북한학 공부. 통일부, 연세대 통일연구소, 교보문고 북한 관련 코너 등은 아예 그의 공부방이다. 특히 요즘처럼 더운 날엔 교보문고 만한 곳이 없다. ‘CIA 북한 보고서’ ‘통일 문답’ ‘통일과 문화’ 등을 눈치 봐 가며 뗐다. 현재 한국에 나와 있는 북한학 서적들의 약점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대부분 미국서 입수한 자료를 근거로 했는데, 특히 2000년 이전의 자료는 아예 제외됐더군요. 남북 관계를 적과 민족이라는 추상적 이분법에 의존, 터무니 없는 추상화와 과장이 한둘 아녜요.”


- 21세기 북한의 현실 바로 알리기

그는 그래서 두 번 째 저작의 테마를 21세기 북한의 현실로 잡고 자료를 수집ㆍ정리중이다. 첫 책은 탈출 과정과 북한의 일상을 생생히 서술한 ‘DNMZ의 봄’(시대정신刊)이다. 지금 그가 구상하는 책은 문제의 본질을 향해 심도있게 나아간다. 전공으로 택한 정치학에 보다 충실한 리포트가 될 것이다. “탈북, 체제 위기, 부정부패 등의 현실을 근거로 북한 체제가 과연 종속할 것인가를 파고 들 작정입니다. 탈북자를 위한 NGO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해서.” 그는 북한 사회를 비판의 도마위에 놓으려 하지는 않는다. 북한은 자기 정당성을 가진, 나름의 완벽한 사회라는 생각이다. 정작 문제는 5,600여명을 헤아리는 탈북자를 외면하는 남한에 있다는 것이다.

“1인당 3,600만원의 정착 지원금(가족일 경우는 800만원씩 추가)만 주고는 몰라라 하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죠. 지금까지 남한은 탈북자 중 한 사람도 제대로 감싸 안지 못 했어요. 탈북자들을 진정한 사회 성원으로서 받아 들이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요. 탈북자들 상당수는 당장 힘들어도 중국에 있다 미국으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집값과 가재 도구비는 물론, 남한에 들어 오기 위해 브로커(한국인ㆍ조선족ㆍ중국인)한테 500~1,500만원씩 떼이는 돈 등을 빼고 나면 주머니는 턱도 없이 얇아진다는 것. 게다가 조선족은 취업시키지만, 탈북자에게는 일자리를 주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묘한 편견도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 “북한에는 다뜻한 정이 있어요. 남한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면 남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아요. 탈북자의 정착금이 내 세금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탈북자는 나보다 못 하다는 의식 같은 것 말이죠.” 다음 말은 어떤가? “2년 됐는데, 옆집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너무 충격적이죠. 이제는 저도 길들여져 (그런 일엔)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니까.”


- 탈북자 모임 활동으로 상처 달래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됐음을 잘 안다. 술에 관해 두 가지 철칙을 세워둔 것은 그래서다. “1주일에 두 번 이상은 술 안 마시기, 리포트 마감일은 술 안 마시기죠.” 친구들이 먹자고 애원하다시피 해도 안 마신다. 그는 술이 세다. 과 동료들과 마실 때면 보통 4차(밥 – 호프집이나 고기집 – 노래방 –막걸리)는 거뜬히 해 낸다. 그러나 두어살 정도는 어린 과우들과 술 마시기가 싫어지면 혼자 마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소주 너댓병은 해치운다. 그는 그것을 두고, “다른 체제와 동화하려면 내 욕구를 억누르고 컨트롤 해야 한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두고 온 가족들(부모와 여동생) 생각 때문에? 그는 고개 저었다. “만일 저로 인해 불이익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면 나는 자살했을 겁니다.” 생사 정도는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무엇보다, 가족이 무사하리라 믿는 것은 김정일의 ‘광폭정치(연좌제 폐지)’가 가장 큰 근거다. 정작 그를 폭음으로 내모는 것은 코앞에서 처참히 죽은 은혁의 이미지가 매일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잠자리 들면 악몽이, 눈뜨면 현실이 두려워요. 죽을 때까지 편하지 못 할 겁니다.” 700여명의 회원을 둔 탈북자 모임인 ‘백두 – 한라 협회’의 부회장 활동으로 그 마음을 애써 달래고 있다. 통일부 웹사이트를 통해 탈북자 수를 매일 체크하는 것도 같은 연유. “최근의 대거 입국은 예외적이고, 보통 한달에 100~120여명 수준이라고 보면 돼요.”교수가 꿈이라는 그는 “먹고 살기 바빠 해 낼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다, 이 냉정한 사회에 홀홀단신으로 와서 무너지지 않고 2년 버텼다는 게 대단한 사실이라는 것을.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남하한 또래의 북한인 10여명 중 지금 학교 다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다. 북한서도 알아 주던 ‘독한 놈’ 아닌가!

거처 곳곳에서는 교회가 발견된다. “주일날 교회 가는 게 낙이죠. DMZ 방송을 통해 맨 처음 존재를 알게 된 뒤로, 남하해서 조사 받으며 본격적으로 다니게 됐어요. ” 특히 여러 경로를 통해 가족들이 자신의 탈북으로 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게 됐다고 한다. (그를 찾아 갔던 날은 공교롭게도 작은 소원을 성취하는 날이었다. 그 동안 가장 부러웠던 비데기를 설치하는 날. 인터뷰가 잠시 끊겼던 건 그래서다. 1년 동안 모아 둔 40여만원이 그것으로 날아갔지만 그는 흐뭇한 듯 했다. “부모와 함께 여유로운 삶을 사는 친구들 집에는 비데기란 게 있었죠. 그걸 들여 놓은 것은 일종의 보상 심리 아닐까요?”)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8-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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