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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서울연극협회 초대회장 채승훈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에 서다
페미니즘의 새로운 비전 제시한 작품 <데드 피쉬> 무대에 올려






“하루 8시간 꼬박 연습했어요. 무더위속 이열치열로는 그만이었죠.” 막 올리고 보니, 만원을 기록하는 객석.

10년만의 폭염 한 가운데서 연출가 채승훈(49)씨가 빚어 올린 넉 달은 그런 것이었다. 산울림소극장 특유의 저 무지막지한 임영웅식 연습을 그 또한 답습한 형국이 됐다. 그렇게 한 편의 ‘산울림표 연극’이 탄생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만원 사례로 답했다. ‘데드 피쉬’.

8월 14일 막을 올려 놓은 그는 이제 객석의 위치로 돌아 와, 두 달 동안 부대껴 온 네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여유를 즐긴다. 5년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 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배종옥을 비롯, 추귀정 정세라 소희정 등 네 명의 배우들은 그의 말마따나 “온 몸을 불사르며 연기”했다. 그들의 앙상블은 객석을 에누리 한 푼 없이 장악한다.


- "관객들에게 다가 가고 싶다"

그는 개성 강한 연출력으로 각인된 사람이다. ‘햄릿 머신’ 등 그가 만든 무대는 미학적으로 잔혹하고 또한 파괴적이었다. 그것은 일정 부분, 세상과 거리 두기의 방식이었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이번 연극은 양식적으로 말한다면 전통적 리얼리즘극이다. 실험성은 논외라는 뜻이다. 자기 연극의 전환점은 아니라면서도, 그는 “(이번 연극을 통해)관객들에게 다가 가고 싶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꼭 10년전처럼, 그가 산울림소극장과 다시 만났다. 대표 임씨가 먼저 연출을 제의했다. “작품은 내가 고르라는 말씀이었어요. 산울림이 지향하는 여성주의와 품격에 맞는 작품이면 좋겠다는 단서와 함께.” 5월, 그는 산울림의 지향점을 잘 아는 서경대 영문학과 송현옥 교수에게 작품 추천을 의뢰했고 윤색(드라마터그) 작업을 거쳐 현재 한국인의 성정에 맞는 모습으로 거듭나게 했다. 리얼리즘에다 페미니즘이라니, 이전의 채승훈에게서는 짐작도 못 할 변신이다.

산울림소극장에서의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구멍의 둘레’(1994년 3월), ‘거미 여인의 키스’(1994년 12월) 등 두 편의 전작이 있었다. ‘구멍의…’는 유부녀의 정체성 찾기를, ‘거미…’는 평화를 갈구하는 두 남성 동성애자를 그렸던 작품이다. 그러나 본격 페미니즘 연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다시 산울림의 연습 무대에 선 그는 산울림표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포스터 앞에 임영웅씨와 마주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편안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나의 친구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해. 그런데 그들은 그걸 싫어 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란 물론 남성들을 가리킨다. 극의 말미, 남성 중심의 사회에 절망을 느끼고 자살을 택하는 주인공 피쉬(배종옥 분)가 유서로 남긴 편지다.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 대목입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서는 여성 운동이 좌절될 수 밖에 없다는 고통스런 사실을 암시하죠.” 그 말대로, 1980년대에 영국서 씌어졌던 작품(팸 젬스 작)은 여성들의 급격한 사회 진출 등 21세기 한국적 상황과 절묘하게 아귀가 들어 맞고 있다.

임영웅씨와 함께



통념에 저항하고 불행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 그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표정, 그것들은 바로 채승훈표 연극의 징표다. 무대에서 그것은 관념성과 난해성을 두루 겸비한 작품으로 현실화됐다. 그것은 결국 당대와 불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가 이번 작품처럼 페미舊趾?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결국 통념적 질서에 대항하는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결국엔 여성을 차별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도 진정한 혁명을 이루지 못 한 게 현실이죠. 그래서 여성들간의 동지애라는 데 초점을 맞췄을 때만 여성 운동은 가능하다는 매시지를, 이 연극은 담고 있어요.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갈등하고 피해를 입는다는 기존의 페미니즘 작품에서 탈피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최초예요.”

1993년 극단 창파를 창단해 무대에 올렸던 작품이 결국은 페미니즘 연극이었다. 오필리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성의 좌절을 그린 ‘햄릿 머신’(하이너 뮐러 작)의 얼개가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란 것을,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의 하나로서 관심을 갖고 좋아했을 뿐이다. 페미니즘이란 것에 대해 그는 뮐러식의 회의론자인지 모른다. “여성해방이란, 빙하기가 돼야지만 도래하는 것이라고 뮐러는 말했죠.” 암담한 전망. 그 뿌리는 기질적이다.


- 보이지 않는 힘에 저항했던 젊은 시절

그의 젊은 시절은 반항적 몸짓으로 가득하다. “억누르는 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체질적으로 저항했어요.” 치명적으로 불행했다는 말 한마디로, 그는 그 시절을 봉쇄해 두려 했다. 동국대 국문과 74학번으로 대학원을 연극과로 나온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잠시 있다, 극단 에저도와 신협 등지에서 연출부 수업 시절을 거쳐 1987년에 자신의 극단 반도(反徒)를 만들었다.

‘쌍씨’로 그는 ‘광기와 폭력의 연출가’라는 관작을 수여 받았다. 안치운 김방옥 오세곤 등자신의 작품을 심도 있게 다뤄 준 평론가들을 제외하고는 그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 했다. 그 말은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평론적 어투로 치환시킨 것이었다. 요즘 같으면 ‘엽기 연출가’라고 불리웠을 터이다. 연출 작업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라고 해야 하루에 고작 서너 마디가 다였으니. 술도 좀체 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과 다른 것만 찾았으니. 시대와 역사는 인간을 배반한다는 생각은 아마 그 꼭두서니에 자리할 것이다.

극단 반도도 대중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소리가 슬슬 나오던 1994년이었다. 심철종 남명렬 등 강한 개성의 배우들과 의기투합해 새 극단(‘창파’)을 만드는 것으로 갑론을박을 차단했던 것은. 연극적으로는 순수한 아방가르드를 더욱 추구했다. 창파의 첫 작품 ‘꽃잎 같은 여자, 물 위에 지고’는 상징의 극치였다. 식민, 매판 자본, 수탈 등에 의해 얼룩진 한국의 역사를 대사 한 마디 없이, 오브제와 몸짓만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거의 시에 버금가는 대사를 자신이 직접 쓰기도 한 ‘마의태자’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럽다.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역사의 저 무표정한 수레바퀴, 시간이 흐르수록 더욱 늘어가는 정신적 타살자 등등 암울한 이미지로 가득찬 그 작품은 지난 2월 상연됐다. 그러나 워낙 난해해 12일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내 기록을 남긴다는 데 의의를 둬요. (난해하다지만)볼만한 사람들은 보는 작품이죠.” 애착이 많이 간다는 말을 한은 걸 보니, 언젠가는 다시 만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배우는 관객을 보고 싶어 하는 법. 그들은 채승훈의 작품만 하면 너무 삭막해 진다며 변신을 촉구했다. ‘ 첼로와 케찹’(김영화 작), ‘ 사모의 왕국’(정우숙 작) 등 보다 대중적인 작품을 올리기도 했던 것은 바로 그 같은 요구 때문이었다. 예술이 숙명적으로 맞닥뜨려 온 대중성 – 예술성 논쟁이 극명하게 재현되는 느낌. “저도 마음속으로는 그런(대중 친화적인) 작품이 좋지만, 강박관념 때문에 기피하죠.” 그 같은 마음을 두고 그는 “예술적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다. 어쨌거나 연기자의 힘을 새삼 확인해서 좋았고, 관객도 동원했으니 즐거웠던 경험으로 남아 있다.


-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 놀랄 지경

바로 그 같은 기억이 그를 ‘데드 피쉬’의 작업으로 몰고 갔다. “제 연극의 전환점이라고까지 할 거야 없지만, 이제는 관객들에게 다가서고 깊은 마음입니다. 뭣보다 관객이 들면 배우들도 신이 나니까 말이죠.” 만만찮은 연습을 위해 모두 자신의 일정을 걷어 치우고 땀흘린 배우들에게 얼굴도 한껏 서는 느낌이라는데. 잘 하면 불가지론, 못 하면 회의론에 가까운 예술관을 가진 그가 변하고 있다는 징표일까.

지난해 발족한 서울연극협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3년 임기동안 자신이 일궈내겠다는 사업안에 많은 연극인들이 표를 던진 까닭이다. ‘시민속으로, 남북으로, 세계로’를 내건 공약의 비전 덕분이리라. 연극 배우 박정자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그 사업의 구체적 방안은 △구립(區立)극단 설립 △서평(서울-평양)연극제 개최 △연극인 복지 재단 설립 △대학로 문화지구 조성 등 하나 같이 연극인들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카리스마의 연극 배우 박정자씨가 위원장.

“작품에서는 절망이 많았지만, 현실에서는 희망을 주고 싶은 것”이라고 그는 ‘변신의 변’을 달았다. “서울의 연극인들이 참여하고 대화한다는 사실에서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요.” 그는 자신은 뒤로 빼겠다고 한다. 비슷한 취지로 몇몇 선배들이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믿음에서다. 최근의 변신이 놀라운데? 그는 “저의 변화에 저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라며 답을 대신했다.

그는 말했다. “너무나 힘들고 외롭게 살아 왔으므로, 사람들과의 소중한 기쁨을 버릴 수 없다. 나는 소시민이 좋다”고. 여기에 덧붙이는데, “연극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참회하는 것. 결국 정화 의식”이라고. 수원대 연극영화학부에서 6년째 교수로 재직중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8-2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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