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불멸의 이정표 남겨야죠"KBS 대하극 타이틀 롤 맡으며 연기인생 최고의 꽃 피워

[스타줌인] 김명민
"내 인생 불멸의 이정표 남겨야죠"
KBS 대하극 <불멸의 이순신> 타이틀 롤 맡으며 연기인생 최고의 꽃 피워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은 그를 위해 준비된 것일까. 1996년 SBS 공채 6기로 데뷔해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연기생활 9년째에 접어 들어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KBS 2TV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깊은 감정선의 연기로 얼굴을 알린 김명민(31).

9월 4일 첫 전파를 탄 KBS 10대 기획 100부작 대하 드라마 ‘ 불멸의 이순신’(극본 윤영수 윤선주, 연출 이성주 한준서)의 타이틀 롤을 맡아, ‘중고 신인’ 전성 시대를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이 드라마는 모든 국민이 너무나 잘 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이지만, 신성화된 영웅 이야기가 아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고뇌하며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인간’ 이순신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훈의 ‘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는 “홀로 고뇌하는, 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 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 영웅의 인간적인 면 재조명

그렇다면 어린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 O순위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을 끌어 내릴 지 모른다는 우려는 없을까? 그의 답은 분명하다. “ 박제화한 전설적인 영웅을 인간적으로 재조명해서 보면 더욱 존경심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 솔직히 그 동안 제가 알고 있던 이순신이란 영웅이 눈물을 흘렸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 센 척’하는 영웅이 아니라, 혈육의 정도 느끼는 한 인간이란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거북선을 실물 그대로 재현하는 등 제작비만 총 350억원에 달하는 대작.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 긴장은 많이 했지만, 조금씩 이순신에 다가가고 있다”는 말로 자신감을 에둘러 내비쳤다. 세간의 관심이 쏠린 이순신 장군의 자살 논쟁에 대해서도 “ 자살 같으면서, 자살처럼 보이지 않게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 이순신이 왜 갑옷을 벗고 북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심정을 시청자들에게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 상황 때문에 연기의 감정선을 놓치는 것”이라는데, 여기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지난 6월 촬영에 들어간 탓에 찌는 듯한 삼복 더위에 갑옷을 겹겹이 껴입고 ‘수행’에 가까운 곤욕을 치르느라, 종종 감정선을 놓칠 때가 있었다는 것. “ 한 장면 찍는데 4~5시간 걸리는 게 예사였죠. 그나마 한 나절에 한 장면이라도 찍으면 다행이고요.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감정선이 끊어질 까봐 갑옷조차 벗지 못하고 있다 보니, 나중에는 지쳐서 정신적으로 해이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첫 방송 직전 시사회를 끝내고는 “실망, 대실망”이라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 고증에 너무 철저해요. 20kg이나 되는 갑옷의 무게를 좀 줄여 달라고 했더니 고증을 거친 것이라고 퇴짜를 맞았어요.” 계급에 따라 무게도 다르다는 것.

그는 신인급에 가까운데 대작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까닭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작인 ‘꽃보다 아름다워’의 연기 호평에 대해서도 “그 작품은 다른 대선배(고두심, 배종옥 등)님들 드라마이지, 제가 크게 부각된 부분은 없었다”며 겸손을 늦추지 않는다.

그의 어깨는 무겁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한다는 임무는 차라리 가볍다. ‘태조 왕건’ 이후 ‘제국의 아침’과 ‘무인시대’ 등에서 시청률 하향에서 벗어나지 못 한 KBS 대하사극의 체면을 살려놓아야 한다는 짐까지 떠 안고 있다.


- 중고신인의 전성시대 활짝

이제 100일 갓 넘긴 아들의 얼굴을 일단 뒷전에 둘 각오를 할 정도로 일체의 사생활을 접은 게 바로 그 때문이다. 극중 맹장인 송희립 역을 맡은 베테랑 연기자 김명국은 “ 이순신은 누가 맡아도 연기하기 힘든 배역”이라고 위로하며 “ 명민이가 연기 톤을 설정하는데 엄청 신경을 쓰고 있어 지켜보는 이들도 안쓰러울 정도”라고 그의 피땀어린 노력을 대신 전달했다.

그러나 김명민의 태도는 단호하다. “내 젊음을 사르기에 충분하다. 치열한 만큼 행복한 나날”이라며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의 심정을 내비친다. 그 열정이 ‘태조 왕건’을 뛰어 넘는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지, ‘불멸의 이순신’은 또 하나의 즐거운 호기심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9-08 14:04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