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영화에서 패전처리 전문투수로 '고달픈 인생' 그려내

[스타줌인] 이범수
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
영화<슈퍼스타 감사용>에서 패전처리 전문투수로 '고달픈 인생' 그려내


키 169cm, 몸무게 70kg, 작은 손. 게다가 왼손잡이….

애초부터 투수로서 될성부른 싹이 없던 야구 인생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팀에 왼손 투수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로 발탁된 감사용(47). 그의 등판은 곧 그 경기를 ‘버린다’는 것을 뜻했다. “회식 끝나고 혼자 하는 설거지와 같다”는 패전처리 전문 투수. 그가 나올 즈음이면 TV 화면은 돌아갔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화배우 이범수(34). “소시민의 웃음과 눈물 표현에 적격”라는 평을 듣는 그는 그러한 감사용과 닮은 점이 꽤 많다. 키 171cm에 몸무게 67kg, 명백히 꽃미남 과는 아닌 개성(?) 외모. 그래서인지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해 ‘태양은 없다’로 얼굴을 알리는 데만 8년. 2002년 ‘몽정기’로 명실상부한 ‘주연’으로 발돋움한 뒤에도 여전히 그에게 돌아오는 역은 양아치(정글주스ㆍ2002), 조로증(早老症) 환자(‘오! 브라더스’ㆍ2003), 소심한 버스기사(‘안녕 UFO’ㆍ2004) 등 화려한 인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

17일 개봉하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감독 김종현ㆍ제작 싸이더스)에서 타이틀 롤 ‘감사용’으로 분한 이범수의 모습은 그래서 ‘리얼하다’. 연기이면서도, 연기 같지 않은….

“어느 ‘잘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재미 없었을 것 같아요.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는 과정, 그것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진솔하게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슈퍼스타 감사용’은 야구를 소재로 했지만,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야구인생 5년 동안 1승 15패 1세이브라는 초라한 전적을 남기고 사라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패전투수를 따스한 시각에서 조명했다. 이범수의 정의로는 “야구를 소재로 한 휴머니즘 영화”다.

그의 연기 인생과 겹쳐지는 대목이 많은 까닭에 과거 무명시절 고생담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그는 “대답해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다”고 기대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저만 고생한 게 아닌데 쑥스럽잖아요. 인생에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얼마나 될까요?”

그의 말마 따나, 여러모로 그와 똑 닮은 감사용 연기 역시 마음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이번 역을 맡기 전까지 감사용은 물론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 시절(중1 무렵) 그가 응원했던 팀은 삼성 라이온즈와 빙그레 이글스. 발음이 예쁘다는 것과 그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회사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감사용으로 분한 그를 곤혹스럽게 한 복병은 정작 따로 있었다. 다름아닌 감사용이 좌완 투수라서 왼손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는 것. “처음 왼손으로 야구공을 던지는 것이 마치 투포환을 던지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 뿐이 아니다. 매일 200개 이상의 공을 던지며 독하게 연습했다면서도 “내 몸 중에 내 의지대로 안 움직이는 마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렇다면 감사용이 그토록 간절히 1승을 올리고 싶어했던 만큼, 그가 절실히 이루기 원한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선 ‘대학 입학’이었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입학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요. 자아가 완성되고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 즈음에 작으나마 목표를 설정해서 이룬 거니까 그에 비견할 만 하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교과서적’ 답변. 하지만 인터뷰용 입바른 소리만은 아닌 듯 했다.


- "스스로에게 박수를 칠 수 있어야"

“넘어지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나 일어나 한 발짝 내딛는 자세가 중요하다” “결과를 떠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칠 수 있으면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한다” 등 실패를 극복하는 명언을 연신 쏟아내는 그는 진정한 ‘진지맨’.

추석 대목에 개봉, 어느 정도의 대박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도 “흥행 스코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몸서리처지게 싫다. 흥행= 말초는 아니지만, 영화의 철학이나 깊이가 전제되지 않은 흥행은 무가치하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 그가 따뜻함을 자신하는 영화라면, 단순 오락보다 한 차원 높은 ‘감동’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멜로 영화를 보고 난 뒤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처럼,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인생은 열심히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면 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거죠.”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9-15 11:21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