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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초대석] 한국예술종합학교 오명훈 교수
"저예산 독립영화는 숨은 보석"
우리시대 성 풍속도 그린 영화<선데이 서울>제작
독립영화 쿼터제 주장






“우리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은 큰 희망임에 틀림 없습니다. 독립 영화를 고수해 온 김기덕 감독으로보자면 분명 해외에 자기의 마니아가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한 번 입증됐잖아요?”제 61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 집’이 이룩한 쾌거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때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오명훈(55) 교수가 석관동 캠퍼스에 흩날리는 가을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맨 앞에는 물론 ‘관객 몇 백만 돌파 운운 하는 사실보다’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제 5회 서울 필름페스티벌(9월 15~22일)의 출품작(26개국 265편)중 독특한 주제와 영상 감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의 감독이다. 8월말 스위스의 실험 영화제인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비디오 형태로 출전, 첫 상영돼 현지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국내로 들어 와 보니 상황은 역전. ‘로카르노 영화제’ 진출 당시 블록버스터에 넋이 나가 있었던 국내에서는 그나마 단신 한 줄.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10월초까지 국내 6개 도시 순회의 예술 영화 전용 극장 등지에서 상영을 가졌으나, 결과는 뻔했다. 본디 지방은 예술 영화에 무관심한 데다 홍보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블록버스터 매표소 앞에 경쟁적으로 오래 서 있기 시합을 즐기는 한국 관객은 숨은 보석을 굳이 찾아 보지 않으려 하니.


- 감각적인 영상으로 관객 흡인

10여년만에 메가폰을 다시 잡고 만든 71분짜리 극영화 ‘선데이 서울(Sund@y Seoul)’은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 관객을 강요하지 않는 작법으로 사람을 묘하게 흡인하는 작품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性)의 실상을 압축해 낼 3가지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모았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선정 저널리즘에 실렸던 기사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드라마를 배제한다.

남녀의 전라 장면 등에도 불구, 섹스 이야기가 저처럼 건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세상과의 충돌 작업을 훌륭히 수행해 내는 셈이다. 초록거북이들이 게걸스런 식욕을 과시하는 모습을 불길한 예언인 양 틈틈이 삽입, 하나의 굵은 흐름을 놓지 않는 이 영화는 현재 한국 사회의 성 풍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중산층의 권태, 다양한 통로로 열려져 있는 성적 일탈의 가능성을 건조한 영상으로, 그러나 포르노그라피 직전의 수준으로 보여 준다. 불륜 현장을 들킬까봐 아파트 가스관을 타고 도망치다 떨어져 죽는 여자도, 모텔에서 마지막 정욕을 허망하게 불태우는 교수와 여제자도 있다.

컴퓨터 채팅이 불륜을 조장한다는 가능성에도 시선을 주는 이 영화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 독특한 영상 처리로 모든 관객을 관음증의 네티즌으로 몰고 간다. 호텔 침대에 누운 젊은 불륜 커플의 행위가 점점 클로즈업되더니 마침내는 극단적으로 확대된 PC 화면이 되는 식이다. 제목에서 골뱅이(@)가 거저 들어 간 게 아니다.

2000년에 기획, 2002년에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작을 신청해 4 대 1의 경쟁을 뚫고 2억을 지원 받았다. 나머지 2억을 위해 그는 집을 담보로 1억4,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6,000만원은 가까운 친척들로부터 개인 투자 형식으로 충당했다. “이익 나면 돌려 준다. 단, 원금 보전은 장담 못 한다. 주식 투자한 셈 쳐 달라”는 반공갈조. 그렇게 부도 수표가 남발됐다. 추후에 상업 영화 만들 때 최우선 순위로 모시겠다는 말은 기약 없는 이자였던 셈이다. 제작비 3억원의 초저예산 영화 한 편이 그래서 싹 틀 수 있었던 것.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아들이자 영상원의 동료 교수인 이승무씨가 넉 달 걸려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원작자인 셈이다. 그 재료가 됐던 에피소드는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취재하고 개발해 취합됐다.다시 감독과 작가의 협의를 거쳐 최종 완성된 시나리오는 2003년 1월 ~ 3월 동안 그의 집을 중심으로 촬영에 들어 갔다. 사는 사람의 집을 빌리는 게 가장 힘들다는 현실적 이유때문. 1991년 단편 ‘처용가’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 있었던 현장 감독일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소시적의 꿈을 찾아, 그는 다시 길 떠나기로 했다. 또 다른 버전의 ‘헐리우?키드’를 위해.


- 또 다른 버전의 '헐리우드 키드'



진해에서 태어 났던 그는 어릴 적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 했다. 신상옥 감독의 열성팬이었던 터라, ‘지옥문’이나 ‘천년호’ 등 1960년대 나온 신 감독의 작품들은 빼놓지 않았다. 혼자 가서 보다, 너무 무서워 도중에 나온 적도 있을 정도였다.

‘장렬 633’이란 프랑스의 전쟁 영화도 아직 그의 뇌리에 있다. 이어 1966년 부모를 따라 상경한 그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2류 극장들이었다. 명륜극장, 천일극장 등지에서 ‘샤브리느’같은 미성년자 불가 영화를 뜻도 모르고 찾아 다녔다. 집에서는 아들이 밤늦게 극장을 기웃거리라고는 꿈도 못 꿨다.

도심의 극장은 세상의 하드보일드한 삶을 아무런 여과없이 소년에게 들이댔다. 종로에서 돈암동까지 전찻길을 따라 가노라면 그 유명한 ‘종삼(종로 3가) 창녀’들이 남자들의 옷소매를 잡아 다니는 풍경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벌레를 없애려 DDT 세례를 퍼붓던 미도극장 한켠에서 그는 담배를 배웠다.

바로 앞에서는 휴가길 군인들과 손님 잡으러 나온 창녀들이 농탕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영화속으로, 삶의 진실속으로 빠져 들어 갔던 것. 해군 장교로서 완고했던 부친은 마구 쏘다니던 아들을 어떻게든 앉혀보려 5학년때부터 과외 선생을 붙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선생이 주로 했던 일은 극장으로, 만화방으로 제자를 찾아 다닌 것이 고작이었다.

의대로 진학할 것을 종용하던 부친의 뜻을 거르고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택한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영화와 사진쪽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본격적인 길은 1987년 미국 뉴욕주립대 영화과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 한국 최초의 졸업생이 된 것으로 시작했다.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그 대학 후배.

“당시 한국 유학생들 가운데는 미지왕이 많았어요. 아, ‘미친 놈 지가 왕이라고’를 줄인 말이죠.”한국 영화판에 뒤어 든 것은 1993년 KBS 특집 드라마에서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을 하면서였다. 이 감독이 만든 최초이자 최후의 TV 드라마 ‘너의 뺨에 입맞추리’가 그것. 이듬해에는 뉴욕서 알게 된 김종학 감독이 연출한 SBS TV ‘모래시계’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거머 쥔 작가에게 전권이 주어지는 TV 시스템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는 199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추진중이던 산하 영상원 설립 멤버로 일하다, 현재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의 경험적 영화론. “영화는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도대체 예측을 할 수 없다. 결국 보는 눈의 폭이 넓어야 한다.” 과연 10년 후에도 ‘택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가 살아 있는 영화로 남아 있겠는가를 묻는 그의 말끝은 동원 관객수 경쟁으로 귀결된 한국 영화의 허실을 파들어 가고 있었다. 또, 50~60대 관객은 아예 허수로 취급하는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의 강퍅함을.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처럼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예요.”

임권택 감독과 강제규 감독 사이의 공백을 메울 감독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지적이다. “장선우, 배창호, 이장호, 박철수, 정지영 감독은 이제 낡았다고만 치부하는 게 제작자들의 한계죠. 30~40대 제작자들은 그들의 축적된 경륜과 힘을 무시하고 보죠. 이제는 투자자가 아니라, 에이전시라고들 하데요. 배우 매니지먼트 사(社)랍디다.” 이 상태라면 암담할 수 밖에 없다고 오 감독은 말했다.

영화 <선데이서울>의 한 장면

“독립 영화(저예산 영화) 쿼타제를 실시할 때가 됐습니다. 정부의 바람직한 개입, 진정 의미 있는 스크린 쿼타를 실시해야 할 때가 된 겁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측에서 나서, 예술 전용 극장을 확대하자는 것. “구민회관 같은 정부 산하 공연장을 적극 활용하고 홍보를 지원하는 겁니다. 올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예술 영화 한 편당 1억을 지원, 멀티 플렉스 등을 통해 상영토록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사례는 그나마 숨통을 틔워 주는 일이죠. 관객들도 꾸준히 들고 있잖아요.”

그의 말마따나 이번 작품이 워밍업이라면 매우 성공적인 셈이다. ‘선데이 서울’은 영역을 널혀 가고 있다. 우선 9월 23일~10월 8일沮?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밴쿠버 국제 영화 페스티벌’에 초청돼 중국의 영화와 경합을 벌이게 된다. 이 영화는 또 DVD 버전으로도 제작, 원하는 사람에게는 독특한 관람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 만화 '바리데기' 영화 작업

좋은 반응에 고무된 오 교수는 현재 밀린 숙제를 해 치우는 심정으로, 새 작업에 들어 간 상태. 뉴욕서부터 욕심을 냈던 방학기 작가의 만화 ‘바리데기’를 시나리오 작업까지 완료한 상태다. 원작자 방씨는 지금도 조언자로 관여하고 있다.

“민초들의 이야기면서, 매우 에로틱하기도 해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죠. 상업성과 예술성이 공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 싶군요.” 단, 이번에는 메이저급 제작사를 상대로 제작 관련 문제를 먼저 해결짓고 나서 구체적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라며 단서를 단다. ‘선데이 서울’ 만드는 데 혼자 북 치고 장구쳐야 했던 일이 아직 생생한 탓이다. “철저히 일반 상영을 지향한다”는 차기작은 빠르면 내년 가을게 크랭크 인.

오래 간직 해 온 꿈이 있다. “철 없던 시절, 영화와 극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일들은 내게 의미 깊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어요. 당시 그 경험들을 언젠가 한 번은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군요.” 잘 하면 1960~70년대 한국을 그린 독특한 사회사 하나가 탄생할 전망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9-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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