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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필룩스 노시청 회장
"빛은 예술이자 상품입니다"
조명을 문화로 승화시킨 빛의 전도사, 100억 들여 감성조명체험관 개관






경기도 양주군 외곽에 자리한 필룩스(www.feelux.com) 본사. 공원인지 공장인지 구분이 안 간다. 중국 본토에서 가져온 맷돌로 보도블록을 대신하고 곳곳에 잔디를 깔았다. 인공호수에서 뿜어져 나온 시원한 물줄기는 형형색색의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빛은 곧 문화입니다. 조명으로 어둠을 밝힌다는 단순논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 내면에 잠들어있는 감성을 조명으로 일깨울 때입니다.”

노시청 회장(53). 그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연면적 약 3,000평에 달하는 조명전시장을 본사에 구축한 것.

국내 조명전시장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게다가 조명기기를 단순히 진열해놓은 공간쯤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곳에는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150석 규모의 멀티미디어실과 등잔박물관, 조명체험관 등으로 구성돼있다.

특히 조명체험관에는 병실, 교실, 거실, 회의실, 미술관 등 조명기기가 들어가는 각종 공간을 주제별로 꾸며 놓았다. 주변상황에 따라 어떤 색감의 조명기기를 써야 가장 훌륭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지 비교 체험할 수 있다. ‘감성조명체험관’으로 이름 붙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필룩스는 이 전시관을 만드는데 약 100억원을 투입했다. 2001년 9월 착공한지 3년 만에 일궈낸 결실이다.


- 빛은 인간의 감성을 깨우친다

“조명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백번 설명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노 회장이 감성조명 체험관을 짓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주변 투자자들이 은근히 반대했다. 연매출 500억원인 회사에서 전시장 하나 만들려고 100억원이나 쏟아 붓는다는 게 납득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필룩스의 전매특허격인 ‘SIH(Sun In House) 시스템’을 개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스템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의 분위기를 안방에서 연출한다’는 개념이 적용됐다.

해가 떠오를 때부터 대낮의 환한 분위기, 일몰 당시의 느낌까지 버튼 하나로 조절토록 만든 것이다. 햇빛이야말로 인간의 감성을 일깨우는 가장 적당한 조명이란 설명이다. 여기에는 심리치료의 일종인 ‘라이팅 테라피 기법’이 적용됐다. 빛이 활기, 안락함 등 인간 심리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 착안한 기법이다.

노 회장은 빛의 이 같은 성질을 이용해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며, 신체와 마음까지 건강하게 만드는 감성조명을 마침내 개발해냈다. 세계적인 특허감이란 자부심에 어깨가 들썩였다. 특허청 등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서류심사과정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왜 그럴까를 곰곰이 따져봤다.



종이에 적은 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SIH시스템을 들고 가서 이게 어떤 아이템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시켰다. 특허청 공무원들은 비로소 “아하, 바로 이거구나”라며 공감했다. 무릎을 탁 친 건 노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빛의 진가를 보여주자’고 다짐한 것도 이때부터다.

“다이어트하고 싶은 사람은 주방의 조명을 파란색으로 바꿔 보십시요. 음식이 영 볼품없게 보입니다. 식욕도 뚝 떨어질 겁니다. 온 가족이 담소를 나누는 거실에서는 가급적이면 주황색 조명을 쓰십시오. 형광등 불빛은 신경을 날카롭게 만듭니다. 하지만 공부할 때는 형광등 불빛이 좋습니다. 집중력을 높이고 사람을 긴장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합니다. 재벌그룹 사장단 회의는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연매출 수 십조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이런 중요한 회의장이 호텔객실처럼 우아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조명이라면 이는 당장 바꾸어야 합니다.”


- 조명이 기업 잠재적 매출 극대화

노 회장은 조명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잠재적 매출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빛으로 정신병 등을 치유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색채요법이 이미 보편화됐다는 것이 노 회장의 설명이다.

“햇볕이 드문 북유럽에서는 우울증환자가 겨울에 급증한다고 합니다. 햇빛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나라는 계절성 정서장애를 조명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조명은 노년성 치매인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도 효자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잠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합니다. 보호자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끔찍한 사고를 칩니다. 병 수발을 하는 가족들로선 엄청난 스트레스임에 분명합니다. 이를 개선키 위해 치매 환자들에게 3,000룩스 이상의 밝은 빛을 집중적으로 쬐게 합니다. 환자와 함께 야외로 나가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 일반인처럼 8시간 동안 푹 자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조절하면서 치료를 돕는 것입니다.”

노 회장은 생활이 풍족해질수록 조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예쁘게 생긴 등 기구를 산다고 해결될 부분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조명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천장에 전등기구 하나 달랑 매달아놓은 게 전부입니다. 눈이 부실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게 됩니다. 얼굴에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무슨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시력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전력낭비일뿐더러 바람직한 조명환경과도 거리가 멉니다. 조명을 바꿔야 인생이 바뀝니다.”

노 회장은 간접조명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필룩스의 주력상품은 직경이 검지 굵기에 불과한 T5형광등이다. 마대자루 만한 일반 형광등을 간접조명용으로 쓰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노 회장의 설명이다.

“누구나 만들 줄 아는 분야는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처음엔 우리도 고전했습니다. 상품이 눈에 번쩍 들어오긴 하지만, 막상 돈 주고 사려면 망설이고 괜히 잘못 샀다가 고장만 나면 어쩌나 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필룩스의 모태는 1975년 설립한 보암전자재료연구소다. TV 등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기초소재를 주로 취급해왔다. 그러다 노 회장 자신이 조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1992년 회사 이름을 아예 필룩스로 바꾸면서 조명분야에 진출했다. 필룩스(Feelux)는 영어로 ‘느끼다’란 뜻의 ‘Feel’에 조명의 밝기단위인 ‘룩스(Lux)’를 결합해 만들었다.

역사는 짧을지라도 필룩스가 그 동안 거둬들인 실적은 그야말로 ‘알토란’이다. 100건에 육박하는 국내외 특허가 이를 말해준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성적표다.


- 중국 진출, 이이제이 선략으로 승부수

필룩스는 지금도 부품 소재업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 관련 설비를 중국으로 넘긴다는 복안이다.

중국시장에는 한·중 수교 이전인 1986년에 상륙했다. 지난 3월에는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 50억원을 투입, 조명연구소인 ‘산동필룩스전자연발유한공사(山東碧陸斯電子硏發有限公司)’준공식도 가졌다. 이 연구소는 부지 1만평에 연면적 3,000평 규모의 5층짜리 건물로, 모두 35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오랑캐를 오랑캐로 다스린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옛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승부하려면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중국인의 감성에 맞는 품목을 개발해야 합니다. 연구진을 전부 중국인으로 채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 회장은 연구개발이야말로 인해전술이 절실히 요구되는 부문이라고 강조했다. 며칠씩 밤새워 일하는 승부근성이 필요하다는 것.

“중국제품이 국내시장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싸게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국내 제조업계도 중국의 출현에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유럽회사들은 그들의 힘을 빌리려 중국으로 달려갑니다. 유럽 기업들은 중국에 인접해있고 문화적으로도 비슷한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경쟁하기 보다는 그들의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합니다. 그들의 힘으로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대신 우리는 그들이 만든 상품에 문화와 예술, 혼(魂)을 불어 넣는 일을 해야 합니다.”

노 회장은 조명기기 역시 문화상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품이란 인식으로 시장에 접근하면 고객이 곧 예술인이 된다는 논리다. 문화인이나 예술인의 안목은 매우 까다롭고 수준도 높다. 구미가 당기는 제품 앞에서 가격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런 개념으로 접근해야 국내 조명산업이 정체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노 회장은 거듭 힘주어 말한다.

“조명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루의 절반은 밤입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그리고 세상에 어둠이 존재하는 한 조명산업은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밤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법 아닙니까.”

::::: 인간 노시청을 말한다 :::::

노시청 회장은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넥타이는 특별한 일 아니면 좀처럼 매지 않는다. 2001년 12월 필룩스가 거래소에 상장한 직후부터 줄곧 그래왔다. 회장이 너무 반듯해 보이면 직원들이 어려워할 것 같아서다.

그는 엉뚱하게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생각을 뒤집어야 세상이 새롭게 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밀함에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럽다. 사업에 관한 한 흐트러짐이 일절 없다. 늘 단정하게 빗어 넘긴 그의 머리를 봐도 절도가 느껴진다. 육군 중위시절부터 이어져온 습관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주말엔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예전에는 골프를 조금씩 쳤지만, 필룩스 본사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로 거처를 옮긴 뒤부터 필드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산악 오토바이와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즐긴다. 승용차는 세단형이 아닌 밴을 타고 다닌다.

▲ 약력
* 51년 서울 출생
* 73년 연세대 전기공학과 졸업
* 75년 보암전자재료연구소 설립
* 82년 보암산업주식회사 설립
* 93년 중국 산동보암전기유한공사 설립
* 94년 BOAM U.S.A. INC 설립
* 95년 BOAM R&D(M) SDN BHD 설립
* 97년 중국 위해필룩스전자유한공사 설립
* 01년 필룩스 회장 취임


▲ 수상내역
* 85년 한국전자전 국무총리상
* 87년 한국기계전 상공부장관상
* 90년 우수 기계탑 수상
* 93년 1천만불 수출탑 대통령상
* 95년 자랑스러운 신한국인상
* 96년 경기도 중소기업대상
* 01년 2천만불 수출탑 대통령상
* 04년 한국전기문화대상 국무총리상




황인국 전기신문기자 centa19@electimes.com


입력시간 : 2004-09-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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