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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정현백 교수
"불완전한 민주주의와 더 싸워야"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맞선 학자로서의 분석에 의무감






“우리의 일상 속 멘탈리티에 녹아 있는 군국주의의 잔영, 그리고 평화 운동에 대해 깊이 파헤치고 싶었어요. 예를 들자면 히틀러 통치 당시 나치의 하급 당원들이 파시즘을 지지른 게 과연 자의였나, 타의였나 같은 문제를 탐구했겠죠.”방금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 온 정현백(51)교수의 모습은 총총 쌓여 있는 책 더미와 너무도 어울려 보인다. 단정히 커트 해 바싹 빗어 올린 머릿단 역시.

그리움처럼 남아 있는 숙제들을 주섬주섬 주워 올리게 한 질문이었을까? 여늬 책상물림의 삶을 거부한 그의 본령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역시 결코 만만찮은 대답을 들려 주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함성과 대오의 선두에 서기를 마다 않는 사람이다. 그를 만나, 학문은 신념이 돼 주저 없이 현장으로 나아간다. “학문의 추상성과 모호성을 녹여, 현실과 만난다는 의미죠.”

가까운 예로 지난 9월 13일 30여개의 시민단체가 공동 주관했던 대회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사회’가 끝난 후 국회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행진. 다름 아닌 선두 대열에서 그를 보게 된다. 사단법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상임 대표로서의 신분이었다. 마치 유럽의 좌파처럼, 오랜 세월을 격렬한 토론과 집회의 중심에 서 있어 온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 내 모습이)9시 뉴스에서 보이더라고 주위에서 반농담조로 말 하더군요.”

- 성매매 문제는 폭력의 고리를 봐야

최근 나라를 달구고 있는 성매매 문제가 한국 여성 운동의 수장인 그를 어찌 비껴 갈 수 있을까. “자발적 매춘이라들 하지만, 실제로는 채무 관계로 묶여들 있어요. 자, 보세요.” 산하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센터인 ‘새움터’에서 2001년 발표한 ‘경기도 지역 성매매 실태 조사 및 정책 대안 연구’를 건넨다. 특히 미군 기지의 주둔지인 파주시와 평택시를 홍등으로 물들이고 있는 각종 성매매 업소들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읽는 이를 업소 칸막이 속으로 들이밀 듯 하다. 뭣보다, 여연이 발표한 종사자의 숫자가 형사정책 연구원 발표치의 7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국가와 시민 사회 사이를 가르는 골이 너무도 깊다는 것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사람들, 특히 언론이 헷갈리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다. “졸지에 생계 방편이 없어진다며 성매매 여성들과 포주들이 벌이는 시위 등 집단 행동이 이 사회 곳곳에 창궐한 성매매의 실태를 호도할 수는 없는 거죠. 인터뷰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들 3,000여명은 동원됐어요. 더욱이 자발적 매춘이라 하더라도, 속을 들여다 보면 채무 관계죠.”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포주에서 조폭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고리라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여성 운동, 보다 정확히는 여성 평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6ㆍ15 정상 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 그 간의 통일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국제 평화 운동의 자극속에서 본격 출범했던 거대한 흐름이다. 2005년 1월을 만료 기간으로 해서, 3년째 맡고 있는 여연 대표라는 자리는 그 같은 흐름의 핵심이다. 여연의 제의를 받아 들이기 직전까지 해 왔던 일은 ‘평화를 만드는 여성의 해’의 대표.

반전과 평화 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 등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 일에 앞장 서고 있었다. 2002년 금강산에서 ‘남북 여성 통일 대회’를 개최했던 일, 2003년 ‘밝은 정치 네트 워크’를 구성해 여성 국회 의원수를 5.9%에서 13%로 높였던 일 등을 큰 성과로 꼽는다.

그가 걸어 온 생은 학문과 현실이 실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1971년 서울대 사범대 역사 교육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서양사학과 대학원으로 적을 옮겨 ‘역사의 간지(奸知ㆍVernunft)’를 보다 깊이 파악하고자 했다. 1978년 독일 에큐메니컬 장학 재단의 초빙으로 그 곳 보쿰대로 가 독일 현대사를 공부한 그는 독일 역사 최대의 아이러니인 나치즘과 대결했다. 시간이 축적돼 현재에 말을 거는 유럽의 뒷골목들을 특히나 좋아 하게 된 때였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기인 1970년 전태일이 자살한 사건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화여고에 다니며 김흥국의 소설 ‘순교자’에 감동돼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파고 들려던 그에게 그 사건은 노동자에 대한 부채 의식이 돼 다가왔다. 그는 “‘위수령 세대’인 71학번은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 한국 여성 운동의 새 장을 열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역동성을 공부할 수 있는 분야는 당시로서는 서양사뿐이었다. 그것이 노동 운동사였고, 곧 사회주의였다. 결국 당시 군사정권하의 한국서는 공부할 수 없던 분야라는 뜻. “국사학은 왕조 중심의 정치사뿐이었죠.” 당시 독일의 인기 연구 주제였던 ‘혁명과 개혁 사이의 독일 노동자 문화 운동(1890~1914)’으로 학위를 딴 그는 1984년 귀국해 1년반 동안 경기대 사학과를 거쳐 성균관대로 왔다. 때맞춰 창작과비평사에서 창간한 무크지 ‘여성’에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지금의 그를 예감케 한 단초였다.

그것은 일천한 한국 여성운동의 새 장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1860년대 이태영씨를 중심으로 한 호주제/가족법 폐지, 1970년대에 촉 발된 여성노동자 운동 등 한국 여성 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증표였다. 자유주의 혹은 급진 운동의 두 형태로 나타나기 십상이었던 여성 운동이 빈민 여성 문제 등 민중 여성의 운동으로 업 그레이드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성폭력 방지 특별법’(1993)과 ‘가정 폭력 방지법’(1997) 등 기존의 여성 인권 관련법에 이어 그의 주도로 지난 9월 23일 ‘성매매 방지 특별법’까지 제정됨으로써 한국은 비로소 여성 인권 관련 3대 법안을 갖게 된 것이다.

“후발국으로서 이중혁명(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모두 성공시킨 한국은 매우 희귀한 케이스죠. 그러나 불완전해요.” 더 이상 올바른 성장을 멈춘 그 곳에서, 그는 앞으로 나아 가고자 한다. “한국 사회의 불완전한 민주주의적 요소들과 싸워 나가야 해요.” 장애인, 한부모 가족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부당함에 대해 학자로서 이론적 분석을 가하는 작업을 말한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 고교 교사 김정자, 소설가 윤영수 등 타분야에서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열혈 동지들이다.

또 200여 언론인들이 모여 현재의 문제를 고민하는 네트워크인 ‘21세기 여성 포럼’과도 밀접한 관계다. 전 대표였고, 현 운영위원이다. 오는 11월의 대화 모임에서는 법조인 강지원 – 김영란 부부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을 게스트로 불러 활발한 토론을 벌일 계획..

그는 결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살지 않는다. 2남2녀의 둘째딸로서 8순 부모를 모시고 산다. “독신이란 선택의 하나죠. 그러나 인간은 공동체적으로 살아야 하죠.” 운명의 길이 어긋났건, 시간의 화살이 비껴갔건, 통념의 덫이 싫었건, 결혼을 하지 않은 그는 그러나 타인끼리 모여 사는 생활공동체(꼬뮌)에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 공동체적 가족모델 정립 시급

“현재 한국이 갖가지 가족 해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의 가족이 지나치게 이기적ㆍ반사회적 방향으로만 나아갔기 때문이죠.”그는 대안적 가족 모델을 제시했다. “혈연 중심주의를 깨고 평등한 가족 모델로 나아가야죠.” 그는 상호 협력하고 상호 보완해 가는 공동체적 가족을, 이 사분오열의 늪을 지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원래는 교사 운동을 하려 했으나, 장학금에다 비행기표까지 제공한다는 데 마다 할 수 없더군요. 또 훗날 여성 운동에 관여하게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세미나를 지도해 주던 후배들의 요청에 못 이긴 탓이죠. 과연 역사의 간계가 있나 봐요.”

내년 1월이면 그의 임기는 끝난다. ‘노동 운동과 노동자 문화’, ‘통일 교육과 평화 교육의 만남’ 등 발간때마다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4권의 단행본을 남긴 그의 저서 목록도 머잖아 겨울잠을 깰 때가 됐나 보다. “임기 마치면 연구에 전념하겠다”는 다짐까지 들려주는 걸 보니.

그러나 조금 변했다. “이제는 일반 대중을 위한 쉬운 글을 쓸 계획이예요.”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 등 2개 중앙지와 부산ㆍ대구 매일 등 5개 지방지에 부지런히 기고 했던 그가 학문과 현장 경험을 포괄해 엮어 낼 새 글은 희망의 전언이리라. 386보다 낭만적일지 몰라도 도덕적 의식은 강한 ‘위수령 세대’의 시대적 책무이기도 하리라.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10-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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