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세월의 퇴적 고스란히 모아놨죠"한국 최초 인물전시 전문 미술관 내시영정 등 아주 특별한 작품들로 가득

[한국초대석] 93뮤지엄 구삼본 관장
"두터운 세월의 퇴적 고스란히 모아놨죠"
한국 최초 인물전시 전문 미술관 내시영정 등 아주 특별한 작품들로 가득


서울의 번잡함을 벗어나 북으로 치달은 자유로는 지금 단풍에 벌겋게 취해 있다. 휴전선 너머 임진강 물 냄새가 곧 날아 들 것 같은 경기도 파주시 해이리의 ‘아트 밸리’까지 가는 길은 외지인에게 묘한 기대감으로 다가 온다.

그 곳,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의 예술마을 헤이리에 새 식구가 하나 더 늘어 났다. 강우석ㆍ박찬욱 감독, 윤도현 밴드 등 이 시대 한국인의 감성을 이끌어 가는 예술인들 327명의 작업 공간이 즐비한 곳이다. 10월 23일, 그 곳에 새내기가 하나 동참했다. ‘93 뮤지엄’.

건물은 최신식이지만, 속에는 두터운 세월이 퇴적돼 있다. 원래는 족자로 드리워져 있던 것이, 그의 눈에 띄는 바람에 손질을 거쳐 유리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관장 구삼본(49) 씨의 이름을 따 만든 미술관에 가지런히 쌓여 우리의 어깨를 툭툭 치는 이야기들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들.

- 발품과 손때 묻히며 수집한 작품

얼른 봐서는 흔히 보던 옛 초상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자. 으레껏 있는 뭔가가 없다. 미염공(美髥公)이라며 관우가 자랑하던 수염까지는 못 될 지언정, 턱에 터럭이 하나도 없다. 조선 시대에 면도가 행해졌을 리도 만무하고…. 주인공은 바로 내시다.

임진왜란때 선조를 의주까지 모시고 간 덕에 1604년 공신으로 봉해져, 도화원 화원이 왕명으로 초상까지 그렸다는 김새신(金璽新)이 비단에 그려진 장본인. 한국 유일의 내시 영정을 그 곳에서 볼 수 있다. 2001년 KBS1 TV의 ‘진품명품’ 시간에 나가 권위자들로부터 감정가 1억8,000만원을 받은 문화재급 고화다.

세조 때의 무신 손소(孫昭)의 초상화 역시 뭔가 다르다. 공신에 책록됐을 당시인 1477년(성종 8년)에 그린 그림이 풍상으로 닳아지자, 1743년(정조 19년)에 훼손이 심한 얼굴과 가슴 부분을 새로 그린, 개모도(改模圖)로서의 특성이 역력하다.

527년 전과 261년 전의 그림 상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작품이라고 구 씨는 말했다. 문익환, 장준하 등 재야 인사들이 역대 대통령 초상과 나란히 진열돼 있는 복도를 지나면 20세기 초엽 한국인, 유럽인, 중국인 등의 생생한 흑백 사진과 필름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렇듯 관객들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기존의 고미술 전시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에 다음 작품을 재촉하게 된다. 김흥수 화백 등의 누드화를 지나면, 어느덧 ‘에로틱실’이라는 데까지 다다른다.

전시작 모두에 구 씨의 발품과 손때가 배어 있지만, 이 방의 작품들은 더욱 각별하다. 예를 들어 일본 에도 시대의 시리즈 춘화집(12점). 일본 춘화 특유의 과장적이고 노골적인 성애 장면이 열 두 달을 상징하는 화첩에 펼쳐진다. “알고 있던 고미술상한테서 좋은 물건이 들어 왔다고 연락이 와서, 당장 달려가 1,000만원 정도로 사 온 거죠.”

전시돼 있는 19~20세기 인도의 춘화 역시 직접 가서 사 온 것들.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티벳의 남녀 나신 조각도 2000년 현지에서 구매해 온 것들이다. 한편 한국 최초의 춘화 사진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은 1910년경 일본 사진사가 조선의 기생과 건달을 모델로 찍은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또 복제품이긴 하지만, 폼페이 벽화의 성화(性畵)나 절대왕정기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 횡행하던 섹스의 실상을 전해 준다.

- 남한 땅 최북단 미술관

630평의 땅에 미술관, 별관(아틀리에 겸 신작 전시실), 야외 공연장 등 3개동으로 이뤄진 미술관은 남한땅 최북단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할 수 없게 한다. 하기사 세월의 때가 켜켜이 쌓인 널찍한 한옥까지 한 채 있으니, 그리 잘 못 된 것은 없다. 바로 서울 명륜동땅에 있던 80년 묵은 한옥 한 채를 재개발 직전에 해체 공법으로 옮겨 와 본래 모습대로 고스란히 복원, 현재는 고미술품을 전시하거나 전통차를 판다. 이름하여 구삼재(丘森齋). 자신의 이름을 딴 것.

이 별나다면 충분히 별날 법도 한, 보여 줄 게 너무 많아 오히려 두서 없이 비치기도 할지 모를, 한국 최초의 인물 전시 전문 미술관을 세운 그는 누구인가? 지금껏 그의 삶은 미술과 관계 있는 것, 전혀 무관한 것 등 둘로 선연히 대비된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에서 활동하면서 미대를 꿈꿨으나, 집안이 어려운 데다 반대도 심해 처음에는 엉뚱한 길을 걸었다.대학서 축산과를 나와 입대했고, 지금처럼 휴전선이 멀지 않은 강원도 양구에서 2년동안 군 생활을 했다.

그의 의식을 미술쪽에 묶어 둔 것은 대학 시절, 친구와 선후배의 거개가 미대 출신이었다는 점과 그대로 직결된다. 주태석(홍대 서양화), 이상일(대구 가톨릭대 미대 학장), 이원희(계명대 서양화), 재불 화가 황호성ㆍ곽수영 등의 중고등 선후배의 이름을 그는 주섬주섬 건져 올렸다. 1990년, 그는 직장 생활 10년을 정리했다.

이후 10년간 서울 청담동에서 ‘갤러리 포커스’(현재 이목화랑) 시절이 이어졌다. 1995~97년에 걸쳐 30여회 펼쳐졌던 ‘베트남 작가전’은 그의 곡창적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베트남은 100년 동안 프랑스 지배하에 있으면서, 에콜 드 보자르(Ecole de Beaux Arts) 분교를 갖는 등 예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나라죠. 한국 예술이 서양을 모방한 일본에서 연원한 것과는 좀 다르다 이거죠.” 그러나 기나 긴 전쟁탓에 미술품 가격은 아예 형성조차 돼 있지 않았다는 데 착안, 일급 작가 비우 샹 파이(1988 작고)의 작품을 중점 수집했다.

2년동안 현지를 오가며 부지런히 수집한 300여점은 자신의 화랑에서 틈틈이 전시, 거의 매진시켰다. 현재 남아 있는 30여점 역시 93뮤지엄에서 언젠가는 전시할 품목이다. 1997년, 그는 국내 최초로 TV를 통해 미술품 경매를 시도했다.

- 국내 최초로 TV통한 미술품 경매

‘삼구 쇼핑’이라 이름 붙인 케이블 TV 프로에서는 그가 직접 출연, 그림을 팔았다. 1주일에 1~2회 출연해 운보, 박수근, 장욱진 등 거장들의 작품을 매매시켰다. 그렇게 2년 하고 나니, 자신이 직접 미술관을 꾸려 나가고 싶어 진 것. “그 전부터 인물화를 테마로 잡고 열심히 모아갔죠.” 그런데 왜 ‘구삼’인가? 그렇게 의식적 수집을 시작한 때가 1993년이었기 때문. “90년 이후 화랑 경영을 해 보니 제일 팔리지 않았던 게 인물화더군요. 그래서 값도 쌌고….”그래서 모아 인물화가 2,000여점을 헤아린다. 이중 절반 정도가 전시되고 있다. 물론, 전시장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것은, 공교롭게도 본인의 이름 앞 부분인 이유도 있다.

미술품 전시에 종사해 오면서, 한 번 곁길로 갔던 적이 있다. “1999년 IMF 사태가 터졌을 때는 너무 힘들더군요.” 그래서 인기를 끌었던 베트남 미술전에서 종잣돈을 만들어 그 해 ‘선 벤처 파트너스’라는 벤처 투자 회사를 만들었다. 보안 회사인 ‘

Secure Soft‘ 등 30여개 유망 업체에 주식을 투자, 목돈을 형성한 것. 그는 “국내에 100여개 산재한 사설 미술관ㆍ박물관들은 너무나 힘들다”며 “재정적 지원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선진국의 사설 미술ㆍ박물관 수는 2,000여개 수준은 넘는다고.

이 미술관의 입장료는 6,000원. 주말이면 하루 평균 400여명이 가족 단위로, 평일에는 50~70여명이 든다. 일부 작품의 특성상 19세 이하는 밖에서 자연을 호흡하게 유도한다. 그도 그럴 것이, 휴전선이 코 앞인 이곳은 풍광 좋고 공기도 유별나게 달다. 딸만 셋 둔 그는 큰딸 유미(23)를 든든한 후계로 생각하는 눈치다. 아버지의 뜻을 이을 요량으로 대학에서 문화재 보존과를 전공, 학예연구원으로 쓸 요량이다. www.93museum.co.kr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4-10-27 18:01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