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는 미래산업의 핵"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 성장 가능성 무궁무진한 신종사업

[리더탐구 성공의 조건] 서병문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 원장
"문화콘텐츠는 미래산업의 핵"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 성장 가능성 무궁무진한 신종사업


2004년은 문화 콘텐츠 측면에서 기록할 만한 해이다. ‘ 실미도’에 이어 ‘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계는 화려하게 부활했고, 그 동안 계속되던 한류 열풍은 피크에 달했다. 욘사마에 이어 혼사마(이병헌)가 일본 열도를 휩쓸고 있고 각종 뮤지컬과 연극에도 많은 관객이 몰리고 있다.

이런 문화 콘텐츠 산업의 중심에 있는 곳이 바로 한국 문화 콘텐츠 진흥원(KOCCAㆍ Korea Culture and Contents Agency)이다. 이 곳은 문화관광부 산하 재단 법인으로 문화콘텐츠산업을 총괄 지원하는 곳이다. 애니메이션, 음반, 캐릭터, 출판만화, 게임 등 문화 콘텐츠와 관련한 업계와 유관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수립하여 중소 콘텐츠 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기획, 제작, 공급 마케팅 등에 대한 원 스톱 종합 서비스 체제를 구축이 목적이다.

그 곳의 대표를 두 번째 맡고 있는 사람이 서병문 원장이다. 그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가장 열렬한 전도사이다. 시간만 있으면 그가 하는 말이 있다. “ 이젠 문화 산업의 시대입니다. 지난 1980년대가 정보를 중심 가치로 한 소프트 웨어 시대였고 90년대는 지식을 가치로 하는 네트워킹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문화 콘텐츠로 산업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D램 반도체의 비중은 50%, 조선은 40%, 자동차도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콘텐츠분야는 아직 1% 안팎에 머물 정도로 미미합니다. 그 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 세계문화시장 점유율 5%대 목표

현재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의 시장 규모는 약 12조원으로 세계 시장의 1% 수준이다. 부문별로도 음반 산업이 0.83%, 애니메이션 산업이 0.84% 등 대부분 1%에 못 미치고 있다. 그가 가진 비전은 이런 문화 콘텐츠 산업을 수년 내 세계 시장 점유율 5%대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화 콘텐츠 산업은 미래에 한국민을 먹여 살릴 신수종(新樹種)산업이 될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CDMA기술을 기반으로 한 IT 산업인 것처럼.

그는 독특한 경력의 사람이다. 아니, 매우 도전적인 사람이란 표현이 적합하다. 공대를 나와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을 두 번씩이나 그만 둔 면에서도 그렇다.

그는 부산의 평범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 났다. 부모님께서는 공부를 시키겠다는 열의는 강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아무도 서울로 유학 보내지는 못했다. 덕분에 형제는 모두 부산대를 졸업했다. 그는 부산공대 섬유과를 다녔는데 이유는 취직하기 가장 쉬웠기 때문이란다. 졸업 후에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취직을 했고 거기서 10년간 근무했다. 당시 KIST는 매우 안정적이고 대우가 좋아, 누구나 꿈꾸는 그런 곳이었다. 월급이 일반 기업의 거의 3배에 달할 정도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83년도에 삼성물산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오랫동안 고민한다. 심지어 그의 상사는 그의 마음을 잡기 위해 해외 연수까지 강제로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끈질긴 삼성의 삼고초려와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의식 때문에 그는 삼성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그것이 인생을 바꾼 큰 사건이 된다. 그는 삼성에서 신규 사업을 펼치는 일을 주로 한다. 홈 비디오를 만드는 ‘ 스타맥스’와 영상 프로덕션인 ‘ 스타 비전’을 만들었고, 95년에는 삼성 영상 사업단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후 PCS 사업 추진 단장을 거쳐 97년 미디어 컨텐츠 센터장을 맡아 문화와 IT를 아우르는 독특한 경력을 쌓기도 했다. 그러다 2001년 문화콘텐츠 진흥원이 생기면서 그에게 참여를 권유하자, 초대 진흥원장을 맡은 데 이어 이번 2004년 10월 연임된 것이다.

그를 보면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 간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 공대를 나온 사람이 웬 문화 콘텐츠?’라고 의아해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의문점이 풀렸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아버지를 닮아 그 역시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그의 아들 역시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어, 현재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경남중학을 다닐 때 미술반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사생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파스텔화와 수채화를 특히 좋아했다.

- 문화 콘텐츠 산업의 전도사

하지만 미술로 평생 밥을 먹고 사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였다. “환쟁이를 해서 어떻게 먹고 살거냐” 하는 벽에 부딪힌 그는 공대로 전공을 바꾼다. 하지만 그런다고 예능에 대한 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규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그런 끼는 발휘되고 영화산업과 문화산업 등에 재능을 발휘한 것이고, 오늘날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도사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의 브랜드는 도전이다. 만일 그가 기존의 것에 안주했다면 지금의 서 원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늘 새로운 곳에 도전한 사람이다. KIST에서 첫 부서는 고분자연구실이었다. 2년쯤 근무한 그는 공학을 연구하는 것 보다는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경제분석실에 매력을 느껴 사간 전보를 신청한다. 이곳에서 그는 신규 사업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지금은 흔해진 벤처, 벤처캐피탈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곳도 이 곳에서였다.

마침 그 때 삼성은 신규 사업 개발에 대한 필요를 갖고 그와 접촉한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삼성처럼 터프한 곳에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삼성에서도 한 가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면서 문화 콘텐츠 사업 분야가 미래 산업이란 것에 더욱 확신을 가진다. 정부가 미래의 유망산업이 문화 콘텐츠 산업이란 사실을 깨닫고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을 만들면서 그를 영입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01년 당시 삼성전자는 사상 초유의 이익을 내며 임원들에게 많은 스톡 옵션을 부여했던 해이다. 진흥원장직을 수락한다는 것은 수십억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의 도전을 감행한다. 대단한 용기이고 도전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가 늘 승승장구하며 지내온 것은 아니다. 삼성으로 옮긴 그는 케이블TV 사업을 제안하고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는 문제 등 온갖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호텔을 대상으로 케이블방송을 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대량 생산을 하기 전에 파일롯 테스트를 해 보자는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삼성의 계열사인 신라호텔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개선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침 88 올림픽을 하기 때문에 시간마저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데드라인을 넘겼지만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는 항복했다. 이미 수 십억원의 비용은 사용을 했고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도 못한 상태였다. 몇 달간 거의 잠도 자지 못하고 고생만 잔뜩한 상태였다. 그냥 KIST에 있을 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그는 사표를 가슴에 품고, 사업 포기를 제안하고자 이필곤 사장을 찾아간다.

이 사장은 뜻밖의 얘기를 한다. “ 손실 금액은 얼마인가? 그 동안 손해 본 것은 수업료로 생각하고, 다시 한 번 해 보지 않을텐가?” 힘을 얻은 그는 스위스그랜드 호텔, 플라자 호텔, 워커힐 호텔 등의 케이블TV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성공시킨다. 그러면서 회사에 기여하기 시작한다. 신라 호텔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 뛰어난 기획력, 신규사업의 귀재

그는 신규 사업의 귀재이다. 그래서 주도면밀하다. 그는 KIST 시절부터 신규 사업에 대해 공부를 하고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그가 삼성 시절 작성한 사업 제안서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타자기도 없어 일일이 손으로 쓴 것이지만 얼마나 치밀한지 모른다. 사업의 개요는 무엇이고, 위험 요소는, 투자 비용 및 회수에 대한 것은, 외국의 사례는 등등…. 처음 쓴 제안서가 임원회의에 상정되었고, 그의 제안대로 여러 사업이 착착 진행된 것을 보면 그가 작성한 제안서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정부 산하 단체의 특징 중 하나는 비효율이다. 그리고 대체로 분위기가 무겁고 어둡다. 사명은 멋지고 그럴 듯 하지만 운영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목동에 있는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공무원, 관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칸막이도 유리로 되어 있어 시원하고 활기에 차있는 느낌이다. 서 원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투명성과 청렴이다.

그는 이를 제도로 만들었다. LG카드와 공동으로 지원자금의 사용내역을 파악할 수 있는 '사업비 카드제'가 그것이다. 사업비를 미리 카드로 주되, 항목별로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 기기구입비 얼마, 회의비 얼마 하는 식으로. 이렇게 되면 예산 전용이 힘들게 되고 자연스레 맑고 깨끗해 진다는 것이다.

미래는 누구도 확실히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 어떤 정책이 옳은 것이고, 어떤 사람이 정말 애국자인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등의 문제가 특히 그러하다. 진정한 애국자 중 하나는 국민을 잘 먹이고 입히는 산업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지금의 산업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자동차 산업과 제철 사업을 일으킨 사람, 조선 산업과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 사람, 정보 통신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모두 애국자이다.

그렇게 본다면 후대 사람들에게서 그런 평가를 받을 또 한 사람이 바로 서병문 원장이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미래 산업이 문화 콘텐츠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 사람과 궁합이 잘 맞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20년쯤 후 한국의 부를 일으킨 사람의 명예의 전당에 그가 올라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 교수


입력시간 : 2004-11-10 16:22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 교수 kthan@ass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