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입에 물면 내가슴엔 별이 뜨죠"첫 앨범 내며 현란한 음의 향연으로 초대

[한국 초대석] 재즈뮤지션 전제덕
"하모니카 입에 물면 내가슴엔 별이 뜨죠"
첫 앨범 <전제덕 1st> 내며 현란한 음의 향연으로 초대


한 뼘도 채 안 되는 투츠멜로톤으로 그의 숨결이 드나들 때마다, 햇살보다 더 반짝이는 선율이 퍼져 나온다. 드디어 전제덕(30)이 첫 음반 ‘전제덕 1st’를 냈다.

이름 석 자 앞에 ‘시각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일쑤였던 그. 어떤 면에서는 그 같은 점이 강조되다 보니,그의 음악적 본령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됐던 것도 사실이었다.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휴먼 드라마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기나 한 듯, 자칫 오해의 소지마저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을 객관적으로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다섯 글자는 그를 이해하는 데, 아니 즐기게 하는 일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는 진실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지금 그는 완벽한 재즈 뮤지션, 독보적 스타일리스트로서 우리 앞에 서서 “자, 이게 진짜 내 음악, 한국에는 없던 하모니커 재즈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발매 jh).

어쿠스틱 하모니커 음악과 신디사이저로 합성된 하모니커 소리로 이뤄진 음악 사이의 차이가 뭐 그리 대수냐며 시큰둥하게 반응할 사람도 없지는 않을 터. 그러나 음반에 수록된 12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들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옥타브 반을 오가며 쏟아져 나오는 현란한 음의 향연. 자신의 본령인 재즈에서 살짝 비껴 나, 발라드에서 펑키를 소화한 팝적 정서까지 능란하게 주무른다. 취입을 위해 지난 8월 낙원상가에서 새로 산 21만원짜리 독일제 반음 하모니커(투츠 멜로톤)다.

노래 솜씨는 콘서트 등의 기회를 통해서 익히 알려진 터이지만, 이번에는 내친 김에 작곡까지 했다. “하모니커 입에 물면 내 가슴엔 별이 뜨고…(중략)…내 맘 속 숨겨둔 많은 얘기, 떠난 그댄 알고 있겠지” 아직 작사까지는 그의 몫은 아니지만, 곡을 쓰고 부르기까지 한 ‘나의 하모니커’다. 앞 못 보는 그가 들여다 본 내면에는 할 말이 참 많은가 보다. ‘재즈 싱어 송 라이터’로 거듭난 셈. “제가 작곡한 노래가 (수록곡 중에서)역시 가장 애착 가는군요.” ‘바람’과 ‘나의 하모니커’를 특별히 지목한다.

- "폼 나는 음반을 내고 싶었다"

‘바람’에는 음악가로서의 자의식이 가득하다. “대중지향적 음반이지만, 연주자로서 폼 나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이 음반을 본격 준비하던 4월을 돌이켰다. 재즈맨으로서의 자의식에 꿇리는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을 터. 하모니커와 기타가 빠른 선율을 똑 같이 연주하는 도입부는 팝이라기 보다는, 영락 없는 재즈다.

손가락 불구를 딛고, 재즈사에서 추앙받고 있는 집시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에게 헌정하는 심정으로 지었던 곡이다. ‘나의 하모니커’는 연주곡과 자신의 노래 등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을 만큼 특히 애착이 간다. 레게 스타인 밥 말리를 연상케 하는 레게 리듬이 힘차다.

“김현식이 하모니커로 연주했던 ‘한국 사람’류의 청승이 싫어요.”그러나 그가 사진을 찍는 동안 장난스레 연주한 뽕짝은 압권이었다. “물론 이처럼 대중이 좋아할만한 것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뭣보다 하모니커 하면 청승이라는 통념을 교정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런 것은 나중에 공연할 때, 여기 삼아 충분히 보여줄 수도 있다는 말.

요컨대 세계적 특별한 재즈 악기 취급을 받는 하모니커가 한국에서 한 사람의 달인을 만나, 자신의 위상을 처음으로 과시하게 됐다는 것. 현재 세계적으로 하모니커 재즈는 미국형과 유럽형, 둘로 나뉜다. 미국형은 거칠고 힘이 넘친다.

상당히 팝적인 연주를 들려 주는 윌리엄 갤리슨이 대표적. 한편 유럽형은 부드럽고 세련됐다. 투츠 틸레망, 안토니오 세라모 등이 발표하는 음반에는 모던 재즈의 대표곡이 한 두 편씩은 실려 있어, 자신들이 재즈의 적자임을 과시하고 있다. 수록곡들은 평소 존경해 온 틸레망 풍의 하모니커 연주가 가득하다.

이번 음반은 진작부터 화제였다. 10월 25일 출시를 앞두고, 그는 언론으로부터의 인터뷰 홍역을 톡톡히 치렀다. 9월, 모 신문사가 그의 음반 제작 소식을 듣고는 달려 와서 예외적으로 큰 머릿기사로 다룬 이래, 그는 지금껏 열두어 곳의 일간지와 긴 인터뷰를 했다. 여타 군소 매체와는 말할 것도 없다. “인터뷰가 쇄도해 오면서, 제 생각도 달라졌어요. 이제는 남들이 제 음악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때라는 거죠.” 분명, 인기를 즐기는 모습이 아니다.

- 전재덕 밴드 결성, 기념공연도 계획

그는 “앞으로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스타로 떴다는 사실보다는, 뜬 데 대한 책임감이 훨씬 큰 비중으로 다가오는 말이다.하여튼 확실한 것은 앞으로 많이 바빠지게 됐다는 점이다. ‘전제덕 밴드’(가칭)를 결성, 내년 2월부터 서울과 지방에서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을 펼칠 작정이다.

그는 진작부터 ‘얼굴 없는 인기인’이었다. 영화 ‘튜브’와 ‘똥개’, 몇몇 단편 영화 등에서 팬들의 기억에 남는 음악을 들려준 사람이 바로 그다. 이제 그는 대중과의 본격 접촉을 앞두고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음악을 너무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응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음반과 콘서트 등 나의 캐리어가 이제 본격 축적돼 가는 때가 온 것 같아요. 잘 생각해야지요.” 갓 서른을 넘겼지만 어떤 연륜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물놀이도 했고, 양악도 했으니, 저는 두 가지를 모아서 뭔가 새로운 걸 해야죠.”조금은 뜻밖에도, 그는 우리의 고유한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흔히 그러하듯 한낱 수사가 아니다. 국악을 비롯, 다양한 음악 장르와의 만남을 가능케 한 구체적 경험의 결과다.

본디 시각장애인 학교인 인천 혜광학교에서 교회 음악만 하다, 고졸 후에는 모친의 손을 꼭 잡고 방송, 음반, 콘서트장 등을 쏘다녔다. 하모니커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소울, R&B, 록을 특히 좋아 했던 그가 결국 만난 것이 재즈. 작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길로도 뛰어들게 된 것은 1992년부터 4년간 벌여 온 장애인 사물놀이반 다스름 활동에서 였다. 그 무렵, 손가락 불구의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를 알게 되고 그를 존경하게 됐다.

- 사물놀이 활동하며 재즈의 깊이에 매료

그러던 1996년, 사물놀이 콘서트장이었다. 한껏 신이 오른 그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 팝과 가요를 신나게 불렀다. 그렇게 2002년까지 사물놀이 천둥에서 리더인 장구잽이로 활동하면서 그는 재즈를 보다 깊이 알게 됐으나, IMF 외환 위기가 몰고 온 불황의 그늘 아래서 고전하다 2002년 천둥을 해체해야만 했다.

그 시기는 그의 음악적 모색기이기도 했다. 사물놀이 한울림을 통해 알게 된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인연이 닿아 ‘수요 예술 무대’ 등 TV 프로에 출연하게 됐던 때다. 그의 얼굴이 어딘지 낯에 익다고도 할 사람이 있는 것은 그래서다. 아니면 재즈 가수 정말로의 음반 ‘벚꽃지다’ 발표 기념 콘서트장에서 보았을 수도. 말로가 무대에서 갑자기 노래를 청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렀던 자리다. 당시 그런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은 하나의 팬 서비스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제덕 본인에게 이 음반은 오래된 숙제로 나아가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은, 비밥을 주조로 해 하모니커 음반을 만들기 위한 중간 디딤돌이라는 것. “찰리 파커에서 존 콜트레인까지, 투츠가 제대로 하지 못 한 진짜 재즈를 내 하모니커로 취입하고 싶은 마음이죠.”

- 관행 거부한 녹음방식, 빛나는 예외

제작 여담 하나. 녹음 스튜디오라는 데는 어떻게 보면참으로 삭막한 곳이다. 참여 뮤지션들이 각각 코딱지만한 방에 들어가 자신이 할 만큼씩을 녹음해 두면, 뒤에 녹음 엔지니어가 각 트랙을 조정 편집해 다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보편적 모습이다. 편집과 수정 작업을 위해서, 너무나 당연시 된 일이다. “엔지니어가 왕”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피아노와의 듀엣곡 ‘편지’를 취입할 때, 작은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제덕아, 우리 서로 얼굴 마주 보면서 연주해 보자.” 피아니스트 민경인이 7차 녹음에 앞서 불쑥 건넨 제의였다. 사실, 뮤지션들이 한 방 안에서 가까이 앉아 연주하게 되면 서로의 녹음 마이크에 상대방의 소리가 그대로 실리므로, 편집이니 수정이니 하는 작업이 애초에 불가능해 진다.

두 사람은 관행을 거부했고, 멋지게 성공했다. 일곱번째는 그야말로 둘이서 대화하듯 일사천리의 녹음이었다. 한 사람은 나안(裸眼)으로, 또 한 사람은 심안(心眼)으로. 그렇게 다시 한 번, 전제덕은 빛나는 예외가 된 것이다.

그는 11월 안으로 개설될 홈 페이지(www.jeduk.co.kr)에 많이 들러줄 것을 당부했다. 10월 20일 다음카페 내에 개설한 팬 카페에도 사람들이 제법 몰려 들었으니, 본격 홈 페이지는 또 다른 화제가 될 터이다. 그런데 현재의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음반 좀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전반적 불황속에 몇몇 가수들의 음반 시장 독식 현상이 은근히 그를 짓누르는 듯. 이번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옛 노래 팬이라면 추억의 듀엣 해바라기가 남긴 숨은 명곡 ‘시들은 꽃’이 반가울 지도 모른다. 겨울의 초입, 침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명징한 하모니커 음을 소편성 클래식 오케스트라 반주가 감싸 주는 ‘여름이 지나 간 자리’가 더 다가올 수도.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11-17 17:23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