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조직에 활력을 주는 묘약"'정보강국''수출 55억 달러' 실현 위해 뛰는 정보통신업계의 고수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
[리더탐구 성공의 조건] "비전은 조직에 활력을 주는 묘약"
'정보강국''수출 55억 달러' 실현 위해 뛰는 정보통신업계의 고수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03년 19조9,682억원, 2004년 22조6,514억 원, 2008년 37조7,608억원. 이것이 현재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의 규모이다.

대단한 규모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SW(소프트웨어)의 산업 규모는 세계 1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 0.9%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성장률 또한 놀랍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은 10.3%로, 중국(24.2%)과 인도(20.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충실한 수출 역군이기도 하다. 99년 6,000만 달러였던 SW 수출은 지난해 5억9,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SW 해외 수출액은 총 3억700만 달러에 달해, 올해 SW 수출 10억 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W 산업은 고용 창출에 있어서도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99년 6만2,680명에 불과했던 산업 종사자수가 지난해에만 13만1,455명으로 늘어났으며, 2008년에는 22만8,603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은 베이비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세대 산업의 육성을 돕고자 만들어진 기관이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ㆍ Korea IT Industry Promotion Agency)이다. 이 기관은 ‘정보 강국 2007’의 기치 아래 세계 10위 정보 산업 수출, GDP에서 SW비중 3%, 수출 55억불의 비전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 곳의 수장이 고현진 원장이다.

- 겸손한 엘리트의 도전의식

그의 첫 인상은 시원하다. 큰 키에 벗겨진 머리, 약간은 장난기가 있는 맑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경기고 졸업, 서울상대 졸업, 한국은행 입사, IBM, 썬 마이크로시스템, MS 사장을 거쳐 지금에 이른 사람이다. 얼핏 보아서는 아무런 굴곡 없이 엘리트 코스만을 밟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엘리트 코스만을 밟은 사람 특유의 오만함과 딱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쉽게 얘기를 걸 수 있는 인상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경남 중학 시절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몇 년간 공부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2년 뒤에 경기고에 진학한다. 재수를 해서도 가기 힘든 학교를 온갖 고생을 하고, 제대로 뒷바라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간 것을 보면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슨 고생을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에는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아버님께 미안해서란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 자신이 강해졌다는 사실만은 숨기지 않는다.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사람들은 조그만 장애와 고난에도 흔들리고 좌절한다. 어려운 사람에 대해 배려가 부족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초년 고생이란 힘들기는 해도 많은 교훈을 준다. 본인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하게 되고, 인생이 어떤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전통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고 승승장구 했지만 겸손한 데는 어린 시절의 고생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그는 도전적인 사람이다. 상대 출신인 그가 정보 통신 업계의 고수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첫 직장은 한국은행이다. 좋고 안정적이긴 했지만 늘 비슷비슷한 일을 하는 은행이 그에게는 따분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모든 품의서는 손으로 정서를 해야 했는데,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그에게 이런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주변에 IBM을 다니는 후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늘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곤 했다. 솔직히 IBM이 무얼 하는 회사인지는 몰랐지만, 해외 출장 한 번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한국은행에 다니는 그에게 후배의 행태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IBM에서 금융권 출신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났고, 그는 지체 없이 응시한다. 당시 최고의 직장인 한국은행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지루하던 그는 과감하게 실행한다. 그리고 정보통신 업계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 세상에 눈을 뜨게 한 영업

IBM에서 그가 처음 한 일은 금융권을 상대로 한 영업이었다. 모든 시스템을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 팔던 IBM은 고객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영업에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 업의 경험이 없는 IBM으로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그 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채용해 교육을 시킨 후 금융권을 상대로 영업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고, 고 원장은 첫 케이스가 된다.

한국은행에서 IBM으로 옮기자, 그 동안 숨어 있던 도전 의식이 솟구쳤다. “개인의 자율적인 권한과 책임, 그리고 자유 경쟁적인 분위기는 금융 기관에서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였지요. 무언가 내가 직접 판매해야 한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나로부터 커다란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은행에서 모양새 잡아가며 일하던 그로서는 난생 처음 해 보는 영업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남에게 물건을 판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입니다. 그 사람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물건을 팔 수 없거든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영업을 하다 보니 세상에 대해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영업을 통해 개안(開眼)을 한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업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있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남에게 물건을 팔아 본다는 것은 세상을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이다. 갑(甲)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온 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늘 대접만 받아왔기 때문에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쉽다. 그는 영업이란 을(乙)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이 뜨인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그를 만든 것이다.

- 성취감과 비전 심어주기에 주력

그는 비전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다. 현재 얼마 받고 있느냐,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느냐 보다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고 이 일을 통해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조직의 비전이란 것도 개인의 비전과 연결이 될 때 비로소 성과가 나는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또 비전을 위해서는 상사에게도 도전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하던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지루해지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거나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IBM을 떠나 썬 마이크로로 옮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 관리를 위해 해외 지사로 보내줄 것을 원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자 예전 상사를 만나 상담을 하다 썬으로 가게 된 것이다. “월급에 대해 협상하지 말고, 포지션에 대해 협상하세요.” 그의 제안이다. 또 가정에서도 비전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가정 경영도 가만히 있으면 재미없고 지루합니다. 가족들에게 비전을 주어야 가정에 활력이 넘칩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고생을 했으면 해외 여행도 시켜주고, 가끔 깜짝 이벤트도 벌이고, 공돈도 집어 주고…. 그래서 가족으로 하여금 무언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비전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의 책임이기도 하지요.” 가정 경영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에 가장 성실하고 충실한 사람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최고의 직장을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MS의 사장으로 있을 때는 MS 사장으로 최선을 다했다. 윈도우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윈도우의 전도사로 일하면서, KT에 5억불 투자를 권유해 이를 성사시켰다. 지금도 그 일에 대해서는 긍지를 갖고 있다.

그가 원장으로 취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시민 단체들은 반대를 했다. 소프트웨어의 독점적 위치를 갖고 있는 MS 출신이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이 되면 MS에 유리한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완전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 운영 체계의 완전 반대편에 있는 리눅스의 보급에 가장 앞장 서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이익 측면에서는 리눅스같이 오픈 소스로 운영 체계를 몰고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 자신에게 냉정하고 타인에게 관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정통부 산하에 있는 기관이라 관료적인 냄새가 날 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자신, 외국인 회사샬엔옐煇걋?몸에 뱄기 때문이다. 외국인 회사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이 많고 고생을 많이 한다. 국내 회사들이 부장만 되면 뒷짐을 지고 무게를 잡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 사장 역시 부지런함으로 정평이 나있고 권위적이란 말과는 담을 쌓고 지낸다. “자신에게 냉정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그의 좌우명도 그런 생각을 드러낸다. 그의 경영 철학이다. “천재도 없고 요행도 없습니다. 조직의 발전은 뛰어난 소수가 리드할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조그마한 창의력이 누적되면 더 큰 발전이 가능하지요. 당장 나타난 성공이 요행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철저한 준비의 결과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요행은 없습니다.”

그는 골프의 영웅 아놀드 파머를 좋아한다. “아놀드 파머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를 성취한 사람이지요. 단순히 골프뿐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취미와 성과를 함께 이룬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더욱 부럽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골프가 취미이다.

이 외에 냉ㆍ온욕으로 건강 관리를 하고 가끔 술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런데 일선에서 물러나면 해 보고 싶은 일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란다. 나이가 들더라도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인 듯 하다.

미래에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그런 산업을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사람이 고현진 원장이다. 부디 그 동안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국을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만들어 주시길….

한근태 서울종합과학대 교수


입력시간 : 2004-11-18 11:07


한근태 서울종합과학대 교수 kthan@ass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