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너무나도 끔찍한 '생체실험'

끔찍한, 너무나도 끔찍한 '생체실험'
[한국 초대석] 패스트푸드의 폐해 몸으로 실증한 환경운동가 윤광용

대입 수능 시험을 막 끝낸 수험생들을 위한 각종 문화 이벤트가 속출하고 있다. 뮤지컬, 연극, 콘서트 등 수험 준비에 찌든 학생들을 위한 여러 엔터인먼트 가운데 유독 하나가 톡 튄다. 입이 미어 터져라 감자 스낵을 마구 넣어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있는 어떤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돼 있다.

슬랩 스틱 코미디에나 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비치기 십상이지만, 실은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고발하기 위해 벌어진 실험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국내 개봉을 전후해 인터넷상에서 불법 복제 파일로 인기를 끈 기록 영화 ‘수퍼 사이즈 미’의 한 장면이다. 롯데리아, 맥도널드, KFC , 버거킹, 파파이스…. 대문밖으로 나가면 어디든 깔려 있는 초국적 인스턴트 식품점들. 고소하고 달콤한 그 맛에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목을 매단다. 그것을 원도 한도 없이 먹어 본 사람이 있다. 환경정의 시민참여국 윤광용(31) 간사.

“(저와의)비교 대상군(群)으로 예정돼 있던 건강한 미혼남들이 막상 실험 예정일이 닥치자 고개를 가로 젓더군요. 건강이 악화된다면서요.”그러나 그는 24일 동안의 ‘생체 실험’을 버텨냈다. 패스트푸드에 관한 통념과 맞부딪치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것이 실은 얼마나 유해한지를 온 몸으로 알리기 위해. 패스트푸드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실증하기 위해. 급격한 체력 저하가 예상되는 일이었다. 6년전부터 안전한 먹거리와 대안먹거리 운동을 벌여오던 장본인이기에 그 폐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행하기로 했다.

한국판 <슈퍼 사이즈 미>

10월 16일,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5가 환경정의 사무실.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사 온 햄버거 세트를 먹는 것으로 실험은 시작됐다. 이후 하루 세 끼 모두가 햄버거 중심의 세트 메뉴(개당 4,000원)였다. 아침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다 먹고, 점심과 저녁은 동료가 사 주는 걸로 세 끼를 때운 뒤 6시30분에 퇴근하는 나날이었다.

간식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샐러드나 닭 튀김, 물도 패스트푸드점의 것으로만 마셨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팔지 않는 것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는 것. 김치찌개, 쭈꾸미구이, 소주 한 잔에 힘을 얻던 사람으로서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은 실험 이틀째.

“구토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1주일까지 가더군요. 그럴 때면 햄버거는 밥, 감자 튀김은 김치, 콜라는 된장이라고 세뇌시켰죠.” 그래서였을까, 보름쯤 지나니 콜라가 잘 먹히더라는 것. 맨 처음에는 느끼함을 가시려 마셨는데, 얼마 지나니 콜라 자체가 좋아 지더라고.

그런데 콜라밖의 음료는 왜 제외됐을까? “세트 메뉴의 음료수는 콜라밖에 없었거든요. 분명 콜라와 패스트푸드 간에는 상승 효과가 있는 가 봐요.”그 와중에도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 들러 각종 신체 지수들을 쭉 체크해 갔다. “24일째 되니 심각한 적신호가 나타났어요.” 간 지방 수치가 급격 상승한 것.

사실 실험 10일째 그의 몸 상태를 체크하던 의사가 그만 둘 것을 종용했던 터였다. 이어 23일 째, 의사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100을 넘긴다며 중단을 강력히 요청했다. 더 이상 버텨 볼 도리가 없었다. 회원들과의 토의를 거쳐, 다음날 오전에 실험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이틀 동안, 그는 또 다른 거부 반응에 시달렸다.

몸은 그 사이, 부드러운 음식에만 길들여져 있었던 것. “집에서 된장찌개, 밥, 김치, 김을 먹고 출근하는데, 속이 심하게 당기며 잘 안 받아 주더라구요.” 실험전 77㎏이었던 몸グ蹈?80.6㎏으로 늘었는데, 정작 문제는 체지방 증가(5㎏)와 근육량 감소였다. 간 지방(GPT) 수치가 급격 증가한 데 대해서는 의사들도 정확한 설명을 못 하더라고.

돌아 오는 길은 힘들었다. “실험 끝내고 사흘째부터는 몸이 무겁고 일손이 안 잡히더니, 하루에 화장실을 세 번씩 드나들었어요. 오전에는 정상변, 오후에는 설사…. 쾌변의 느낌은 전혀 없었죠.”신경정신과에도 들러야 했다. 혼자 먹는다는 것, 또 그 결과를 일일이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에 평소 낙천적이던 그가 짜증을 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는 햄버거 따위는 절대 먹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험을 위해 또 햄버거를 먹던 어느날,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내 몸은 망가져 가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무신경하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어요.”신경정신과까지 찾아야 했던 피해의식, 우울증, 무기력증 등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 그는 회복 프로그램을 실행중이다. 헬스클럽에 나가 트레이너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다. 술은 자제해 가며, 유기농 식사를 중심으로 쌈밥 등의 요리를 해 먹는다. “완전 회복에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해요. 또 요요 현상까지 치료하려면 1년반이.”

망가진 몸, 회복에 6개월

이 같은 국내 초유의 ‘생체 실험’이 제기된 것은 지난 7월 환경정의 시민연대의 산하 모임인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에서 였다. 그러나 그들은 NGO 단체가 견지해야 할 ‘운동의 건강성’때문에 차일피일 미뤄 오던 차였다. 실험이 끝난 뒤의 회복 프로그램은 물론,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됐던 것은 그래서다. 그 와중에 나타난 결정타가 바로 모건스 폴록 감독의 ‘수퍼 사이즈 미’였다.

비판적 독립영화 감독인 폴록(35)은 지난 10월 부산의 국제영화제 현장에 참석했다. 당시 윤씨를 비롯한 환경정의 회원 3명이 그를 20여분동안 인터뷰한 것. 실험중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지가 불안했던 윤씨는 선배격인 그에게 집중 질문했다. 또 본디 비만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다, 어떻게 지금처럼 안티 패스트푸드 운동에 앞장서게 됐는지도 물었다.

내심 불안감이 남아 있던 윤씨를 실험으로 성큼 들이민 것은 “행운을 빌어요(Good Luck!)”라는 비장한 격려의 말이었다. 모친의 반대를 예견한 말이었을까.

실험 돌입 사흘전까지,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설득해야 했다. “사무실에 따지겠다는 어머니를 간곡히 설득했죠. 과격한 방법이지만 짧은 시일안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요.”모친은 결국 허락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대졸후 모 투자컨설턴트사에서 일하다 돈에 너무 민감한 사람들이 싫어, 2001년 이 시민운동 단체 들어 온 그는 NGO 재수생이다. “재직중인 사람이라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아 탈락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회사를 그만 둔 뒤 재수로 들어 온 데예요.”그러나 NGO는 동시에 힘든 투쟁의 길이다. 박봉에다 짧은 재임 기간 등 현실적 조건에, 사귀고 지내던 애인이 떠났다 한다.

그러나 ‘생체 실험’ 이후, 환경운동가로서 그는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각급 학교나 환경청 등지의 강의가 줄 잇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9일 KTF가 사원 연수 과정중 펼치는 ‘패스트푸드의 폐해’ 역시 그가 맡을 강의다.

이번 생체 실험의 파장은 컸다. 지금까지 모두 100여회의 인터뷰에 응했고, TV에는 두 차례 출연했다. 그의 느낌. “시민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결국 건강 문제더군요. 당초의 우리 의도는 환경 문제를 부각시키자는 것이었는데…. 결국, 매스컴의 전략이 성공했다고 봐야죠.”

문제 제기 방식이 선정적이었음을 그도 반성한다. “환경운동가가 생명을 해치면서까지 (실험을)했다는 데에 비판의 목소리가 아직 들립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환기 효과는 있지 않았나요?”

거대 기업과의 효과적 싸움 방법

소영웅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막강한 거대 기업과의 싸움에서 NGO가 취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었다고 믿어요.” 햄버거가 비만의 원인이라며 다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만든 기업체들이 과연 아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에 진정한 문제가 있다는 것.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패스트푸드란, 어린이들조차 자본 증식의 계기로만 보는 기업 논리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는 말이다. 적어도 인공감미료 사용 여부 등을 알 수 있도록 성분을 공개해, 소비자들에게 진정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이기도 했다. 또 환경정의가 꾸준히 요구해 오는 바, 어린이 시청 시간대에 패스트푸드 광고를 금지해 달라는 데 대해서도 진진한 답을 요청했다.

어쨌거나 패스트푸드를 포식한 그는 지금 대가로 회복 프로그램을 실행중이다. 헬스 클럽에 나가 트레이너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다. 술은 자제해 가며, 유기농 식사를 중심으로 쌈밥 등의 요리를 해 먹는다. “완전 회복에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해요. 요요 현상까지 치료하려면 1년 반이 걸린다더군요.”

막강 자본의 초국적 인스턴트 식품 군단이 펼치는 파상 공격앞에 윤광용씨는 덤의 세월을 들여야 한다. 그 시간을 한국인 전체 인구에 곱하면, 한국이 패스트푸드의 유혹에 빠져 허비한 기회 비용이 산출될까?

그런데 대입 수능을 마치고 펼쳐진 ‘슈퍼 사이즈 미’란 영화의 홍보 전략을 한 번 보자. ‘수험표를 보여 주면 영화 관람료와 팝콘을 각각 1,000원 할인해 준다’고. 이제 시험 고개는 넘겼으니, 기름에 절이고 튀긴 옥수수나 먹고 영화나 보면서 군살이나 찌우라는 말씀?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고발하기 위해 만든 영화를 패스트푸드의 홍보에 쓰는 국내 상인들의 무신경, 혹은 무지는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작은 결심. “햄버거도 햄버거지만, 앞으로 콜라는 절대 안 먹을거예요. 1.5리터에 설탕 45스푼이 들어 가 있잖아요.”인터넷상의 다음카페에서 ‘안티 패스트푸드’라고 입력하면 그 간의 일지와 각종 관련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4-11-23 17:22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