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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사진작가 이선민
"싸늘한 한국적 축제의 모습이죠"
가장 현실적인 가족풍경, 사진으로 담아낸 한국인의 일상들






이 독특한 전시회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는 평범한 관객과 작가 사이에 오간 대화를 슬쩍 옮기는 편이 효과적이겠다.

“△페미니스트 아니세요? - 우리의 일상이란 이즘(ism)이 아니죠.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렇게 비쳐지지 않기를 바랬었는데. 한 번 쭉 보세요.

△인위적으로 찍은 거예요? –친한 사람들의 부모님이죠. 연출은 없어요. 그 분들이 카메라를 낯설어 하셨죠.

△어떻게 카메라로 찍는 걸 허락했을까가 가장 궁금해요. 참 평범한 집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너무 솔직한 작품들이예요.”

6개월 된 딸을 업고 전시장을 찾은 30살 난 어느 주부와 작가가 나눈 대화다. 아무래도 사진 속의 모습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으리라. 사진 작가 이선민의 ‘여자의 집Ⅱ’는 한국인들이 너무나 쉽게 접하는 일상의 풍경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가장 평범한 한국인들이 오히려 흠칫 자신들을 돌이켜 보게 하는 이상한 힘을 가졌다.

역시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계층은 중년 여성들이다. 바로 지난 추석때의 풍경이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할머니도 찾아 와 한 마디 떠들썩하니 거든다. “야, 저 지짐, 두껍고 넙적하니 참 맛 있겠네”라며. 그들에게 사진 속의 풍경은 아무래도 즉물적 관계다. 어떤 사진들일까?


TV에 박힌 시선, 낯설지 않은 모습
이상하게도 여기서는 아무도 서로를 응시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조차 아예 없는 것인지도. 그럼에도 조그마한 공간에 모여 있는 그들. 아무래도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겠다. 가만히 보면 그들은 결국 다들 서로 외면하고 있으니.

말할 때나 함께 있을 때, 되도록이면 눈을 맞추려는(eye-contact) 현재의 서구화된 바디 랭귀지 문법으로 보자면 이들은 숫제 ‘웬수지간’일 터이다. ‘시선(視線)의 정치학(政治學)’을 주창한 철학자 미셸 푸코가 보았다면,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체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특이한 현장’이라며 관심을 피력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혈연으로 묶인 그런 사람들이 조그마한 방에 옹기종기 앉아 있다. 대청마루가 있는 시골집에서도, 창밖으로 도시의 풍경이 펼쳐지는 고층 아파트에서도, 모든 등장 인물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기는 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군데로 고정. 소파에 앉은 할아버지도,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앉힌 아버지도, 한복을 차려 입고 베개를 깐 채 엎드린 딸 아이도, 모두 시선을 한 지점에 모으고 있다. 모두의 시선을 하나로 비끄러맨 ‘상전’은 누굴까? 다름 아닌 TV다.



바로 저것이 우리 명절 때, 한 차례 주(主) 행사가 끝난 뒤의 일반적 풍경일 터이다. 거기에 한복을 입고 기세 좋게 고스톱 치는 남자들 몇이 끼어 있었으면 더욱 사실적(寫實的)인 장면이 됐을 텐데.

어쨌거나, 전시회장에 내걸린 대형 사진 15점에는 모두 그런 장면만 포착돼 있다. 잔칫날하면 쉽사리 떠올리기 일쑤인 흥겨움 같은 정서는 배제된 채, 차가운 사실주의적 풍경들만이 병치돼 있다. 싸늘한 가족, 서글픈 가족 풍경은 묘하게도 결국 현재 가장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축제의 모습이 됐다. 명절날이면 으레 펼쳐지는 정황을 인화지에 고정시켜 놓으니, 이렇듯 낯설지 않느냐고 그의 렌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테마예요. 당시 ‘리빙 룸’이란 제하에 펼쳐졌던 단체전에 출품했던 제 작품들이 저의 ‘여자의 집Ⅰ’인 셈이죠.”사진 작가 이선민(36)씨의 이름 석 자 앞에 ‘여류’란 말이 붙는다면, 관행적인 의미를 벗어나 당당한 자의식의 주체라는 뜻으로서 이리라.


3대가 사는 집 대상으로 작업
앞의 전시회장을 채웠던 작품들은 이번처럼 세 세대가 공존하는 사진이 아니었다. 30대 주부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췄던 그 작품들은 엄마 – 아이라는 최소한의 세대가 일궈내는 집안 풍경을 통해 권태롭고 피로한 현실을 보여 주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유행 광고 문안이 절대 다수 주부들에게는 얼마나 허구인가를 폭로하기에 족했다. 말하자면 상업적 페미니즘의 천박성을 렌즈의 진실로 전복한 것이었다.

삼대(3代)로 외연을 확장한 이번 전시작들에서 그 같은 숨가쁨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뒤로 물러 선 여유라고나 할까요.” 2003년 10월 문예진흥원에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해 프린터, 여행 비용, 액자 준비 등에서 약간의 재정 보조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여유의 현실적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2004년 1월~9월 동안의 현장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진 장비를 갖춘 인류학적 현장 탐사가 벌어졌다. 추석, 생일, 제삿날 등 축제의 현장에 카메라를 걸머 지고 찾아 간 것이다. 3대가 한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요건이었다. 물론, 그 집의 어른들게 허락을 얻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현장을 포착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예를 한 번 보자. ‘이순자의 집’이라 명명된 시리즈 작품이다. 사람 이름은 집안의 연장자인 시할머니의 것. 제목서부터 페미니즘의 입장을 선언한 셈이다.

근래 없었던 무더위라는 지난 7월, 경상북도 의성의 한 집이었다. 그러잖아도 보수적인 고장인데, 한 집의 속내가 렌즈앞에 드러나는 일에 어느 누가 달가와 하랴.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서클의 남자 선배한테 일찌감치 매달렸다. “제삿날이 언제냐? (그날 가서 촬영할 수 있도록) 가족들과 상의해 연락 달라”며. 그리고는 몇 개월 동안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보통 바깥에 내보이기를 꺼리는 제삿날을 외부에다, 그것도 조명이 구석구석 내려 쪼이는 상황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필요했던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 밖에 서울, 가평, 양양 등지에서도 그 같은 가부장적 관습은 여전히 엄수되고 있었다.


그녀들의 시선 오롯이 담아낼 때 있을 것
“2002년 그룹전 이후 8년만에 처음 갖는 전시회네요. 앞의 작업(‘여자의 집Ⅰ’)이 준 경험 덕에 더 차분히 생각하게 됐어요.”제사, 생일, 명절 등에 맞춰 각각 사흘동안 작업했다. 거의 인류학적 현장 작업(field work)에 맞먹는 준비와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집 일에 팔 걷고 나서 함께 하는 천연덕스러움도 마다 않았다.그 만큼 대상과 친밀해 지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다는 말이다.

“한 번 찍을 때, 몇 백 컷도 마다 않았어요. 정신 없이 빨리 빨리 직었어요.” 숨가쁘게 셔터를 눌러 대는데, 누가 신경 쓰겠는가? 그래서 전시작들에는 카메라의 기계성이나 조명의 인위성 같은 데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피사체들의,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작품들에는 기발한 착상도, 그 흔한 포스트모던적 이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들이, 가장 한국적인 인간들이 지극히 한국적 정황속에서 있을 뿐이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사진 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그의 작품에서는 사진속의 사진 등 독특한 구도와 착상이 주제를 선명하게 하고 있다.

공 들인 시간과는 달리, 전시회는 곧 끝난다. “돈이 없어서…”라며 작가는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잘 팔리지 않는 주제를 작품화했다는 가벼운 자책일까. 12월 1~7일까지 꼬박 이레 동안만 펼쳐지고, 훗날을 기약했다.

네 살, 일곱 살 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창작에 투여해야 할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는 그러나ㅜ 이번 전시회 덕에 더욱 견고한 작업관을 갖게 된 듯 했다. “작업은 촬영한 것만큼 이뤄지죠. 확실해질 때까지는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아요. 나의 진실을 보여 주고프니까요.”그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선에는 인간의 내면이 투영돼 있다. “시선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여자는 당당한 여자라 생각하는데, 이번 작업에서 주부나 어머니의 시선은 그렇질 못 했어요.” 한국에서 모든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의 길은 아직 그만큼 멀리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12-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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