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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
삶을 통해 예수를 만나는 바람의 휴머니스트

어느 새 3시간여가 후딱 지났다. 10년은 족히 묵었을 법한 구식 겨울 코트 차림에 봉두난발을 한 그와 나눈 대화의 시간이다. 별나다면 별나고, 낯설다면 낯선 한 사나이의 삶이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육화(肉化)되는 데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맑은 눈매와 썩 잘 어울리는 수염, 크게 웃을 때면 가지런히 드러나는 하얀 치아는 그 주인이 참 선량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러주기에 족하다. 얼굴에서 마음이 읽히는 사람.






자유혼, 평화, 그리고 사랑의 실천
그의 집은 3대째 목사다. 당연히 그는 목사다. 그는 고백한다. “예수를 통해 저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어요. 제 말과 행동이 한국서는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을 지 모르지만, 나는 무엇보다 가장 예수의 정신을 따른다고 믿어요. ”목사의 아들이었던 고흐나 헤세처럼 자신 역시 자유혼, 평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임의진(39) 목사. 자신의 천직보다는 화가, 음악가, 음악 평론가, 시인, 농부, 여행자 등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그의 얼굴에서 선골(仙骨)을 느꼈다면 착시였을까.

‘뭐 하는 사람이야고 물어들 보신다/아마도 긴 수염과 자유분방한 옷차림 탓이리라/화가냐 도예가냐 음악가냐 아니면 산중에서 도를 닦냐/…그렇다 대충 다 맞다’(‘나도 몰라’중). 아닌게 아니라 본인도 모를 법 하다. 2004년 11월에 발행된 시집 ‘사랑’(샘터 刊)에서 밝힌 그의 정체성이다. 그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 하고, 사람이 사람 답지 못 하고, 돈으로 지배된 세상에 대해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대로 한 달만에 다 쓴 책”이라고 말했다.

“시처럼 살고 싶다”는 그의 희구는 이런 식으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지난해 12월 6일 대학로에서 가졌던 공연장에서의 그는 완전히 풍류 시인이었다. 박남준 시인, 포크 음악가 김두수, 인도 음악가 박숨결 등 심상치 않은 사람들에서 록 밴드 ‘곱창전골’과 로커 손병휘 등이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 ‘사랑’이란 제하로 펼쳤던 콘서트였다. 그가 기타를 치고 포크 곡 ‘일곱 송이 수선화’를 간절히 부르는데, 네살박이 아이가 서글프게 우는 풍경이 벌어졌던 자리였다. 그날 자신이 그린 그림도 팔려 4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모두 국내의 기부단체로 돌아 갔다.

이번에 전남 강진의 양광 좋은 언덕배기에 있는 그의 남녘교회를 떠나 번잡한 서울로 온 것은 하나의 꿈을 완결짓기 위해서다. ‘고래의 꿈’(가제)이란 제목으로 올 상반기중 출판될 명상 – 여행집의 최종 작업을 위해서다. 자신의 이름으로 나오는 다섯번째 책(열림원 刊). 생태와 친환경이 화두가 된 이 시대의 요청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바로 전에 나왔던 책을 보자. ‘예수 동화’란 두 권 짜리다.

마치 동화처럼 그림이 풍부하고 활자체도 커, 신약을 읽기 쉽게 다시 쓴 책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이 책은 그러나 결코 만만찮다. 현재 한국의 주류 기독교측에서 보자면 거북살스러울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혼인잔치의 기적, 이어오병의 기적 등 성서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기적 담론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또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사랑을 나누는 등 신이 아닌, ‘인간 예수’의 모습이 전편을 차지한다.

“한국의 기독교 신앙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근본주의로 경도돼 있어요.” 미국 개신교의 영향으로 성서의 절대성을 믿는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금껏 근본주의자들의 반박은 늘 들어왔던 터라, 이제는 신경 안 쓰죠.”근본주의라면 이라크 전쟁을 통해 귀가 아프게 들어 왔던 말 아닌가. 이슬람에 붙어 다녀야 제격일 것 같은 말이 기독교 진영에도 적용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반성적 작업의 결론이 ‘인간 예수’.



최근 미국이 보여 준 행태는 종교의 탈을 쓴 집단 광기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부시가 재선된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재선까지 밖에 못 하게 돼 있으니까요.” 참고 어디 한 번 지켜보자는 말인데…. 미국에는 힘은 없지만 평화적인 기독교도가 훨씬 많다는 믿음이 그 인내의 근거다. “미국의 속국처럼 지내다 보니 한국의 기독교도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거죠.” 그 말에는 자신의 언행이 유독 한국에만 오면 사이코나 괴짜의 그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다.

어깨춤 임의진의 교회를 향한 쓴소리
그래서 그의 지인들은 그를 가리켜 목사가 아닌 ‘어깨춤’ 임의진으로 부르는 것일까. 목회 경력 10년으로 현재 안식년에 있는 임 목사는 “교회가 아닌, 내 삶을 통해 예수를 만나고 있다”며 그 동안 어느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절실하게 느꼈을 한국 교회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 않았다. “한국의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선택했다. 한국 교회가 믿는 것은 돈과 권력이다. 건물 지상주의가 바로 그 증거다.”

그렇다면 그가 1995년 1월에 세운 현재의 교회를 보자. 부친이 “목사 없는 교회가 바닷가에 있다”고 해 가 보니, 교인이라곤 할머니 신도 10여명. 목사가 왔다는 말에 할매들은 귀하디 귀한 참기름을 퍼 주었다. “그 뇌물 때문에 10년을 있게 된 거죠, 허허.”이제 그의 교회 신도는 40여명으로 불었다. 그 중에는 의사도, 선생님도 있다.

그의 교회는 장로교단 중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 받는 ‘기독교 대한 복음 교회’에 속한다. “진보 교회요? 내세를 이유로 교세 확장 등 현세적 가치에 치중하는 교회가 아니라, 자유ㆍ평화ㆍ통일을 지향하는 교회죠.”그는 프락시스( Praxisㆍ실천)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북송 장기수 환송 예배(1999년), 무등산에서의 환경 음악회 ‘풍경 소리’(2002년부터), 통일 기원 음악회(1995년부터) 등이 그 외연(外延)일 터. 그의 남녘교회가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통일 교회라고 불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뿐만 아니라 1999년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종교인 모임’을 발족해 진화 스님 등과 함께 공동 대표로 있고, ‘녹색대학’에서는 이사로 잡지 ‘녹색 연합’에서는 편집 위원으로 있으니, 언필칭 진보 교회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형은 그에게 최초의 신앙
그의 소년 시절은 슬픈 기억 하나로 가득 차 있다. 한살 위의 형은 다운 증후군 환자였다. 그는 “병신 동생”이라며 따돌림 당했고,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의 교회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이 제멋대로 붙인 “병신 교회”라는 딱지는 소년의 영혼에 깊은 슬픔을 박아 놓았다. 형이 17세로 세상을 떴을 때, 그에게는 형이 예수로 다가왔다. 새벽 기도 등 갖가지 규율을 지켜야 하는 목사를 가장 싫어 했지만 신학대를 택한 것은 형에 대한 속죄의 일부였다.

서울의 한신선교 신학대학원에서 그는 마르크시즘에 깊이 빠졌다. 이번에 발표된 시 ‘가방에 시집을 넣고 다니던 아이’는 불심 검문에서 마르크스 주의 서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끌려 가 구타당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쇤베르크에 깊이 빠져 있던 그는 이른바 운동권의 정서와 도저히 공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자보 원안을 작성하는 등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그는 PD계열 중에서도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추종하던 뜨거운 피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당시의 비밀 급진 세력이었던 사노맹과 이성적으로 합치됐으나, 근원적으로는 아니키스트였다. 예술가 아니면 히피로 그를 보던 가까운 친구들의 시선이 더 정확했을 지도 모른다.

고향 강진에서 방위 복무를 마친 1992년 비교적 자유주의적(진보적)이란 평을 듣는 기독교 대한 복음 교회에 적을 둠으로써 집안의 업을 이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목사와는 다른 목사관(觀)을 갖고 실천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구판장에 가서 막걸리 마시며 애환을 다독였고, 다방에서 돈을 떼먹은 아가씨를 찾아다 화해시켰다. 독특한 프락시스였던 셈이다.

그는 헌금 받는 게 몹시 싫다고 한다. “신도한테는 나라에 세금 잘 내라고 하죠. 성직자들도 노동해서 돈 벌어야 해요. 모두가 춥게 사는데, 스님들이 방 따습게 하는 걸 이해 못 해요.” 그러나 환경 운동의 동지였던 무등산 증심사의 일철스님이 간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그는 투병에 도움을 줄까해 음반 ‘산’ 을 발매해 투병에 도움을 주려 했다. 결국 준비 도중 세瓚?뜨는 바람에 그 음반은 추모 음반이 돼 버린 셈이지만(리버맨).

그는 머뭄이 없다. 바람처럼 산다. 역마살에 20살부터 여행을 다녀 6대주를 다 가 봤다.주로 자는 곳은 기차 아니면 자판기 옆. 영락없는 국제 노숙자를 자처한 것. 그 결과가 ‘여행자의 노래’ 등 여행기다.

사람끼리 사랑하는 길을 찾아나서다
그는 한국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울 멋진 명함을 갖고 다닌다. 최근 유화, 크레용, 파스텔 등으로 그린 어떤 남자의 초상화(A4 용지 두 배)를 엽서 크기로 다시 만든 것이다.

그림 제목은 ‘존 레넌’. 자세히 볼수록 그 얼굴은 성화(聖畵) 속 예수의 얼굴과 희한하게도 닮아 갔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볼수록, 그림속의 행색은 임의진이란 남자의 얼굴이 그리고 있는 궤적이기도 했다. 이것은 임의진의 독특한 삼위일체론일까? 상식의 그물로는 쉽사리 포착되지 않는 그가 드디어 착시의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뒷장 백지에다 특이한 필체로 뭔가를 쓱쓱 적어 주는데,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 495 남녘교회’라고. ‘임의진 어깨춤’이라며 어린이 같은 글씨체로 서명까지 해 주었다.기자는 우선 난감했다. 결국 이것이 명함일텐데, 딱히 보관하자니 마땅찮았던 것. 결국 명함철 크기에 맞게 구겨서 넣어 두는 수 밖에.

각설하고, 이 추운 겨울, 따뜻한 햇살이 저미게 그리워져 올 때면 그의 ‘남녘교회’에 한 번 가 볼 일이다. 운 좋으면, 쌀밥에 고깃국을 대접 받을 지도.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칼릴 지브란, 헤르만 헤세, 화담 서경덕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될 지도. 1998년 독일의 ‘쉬피겔’지가 ‘아름다운 교회’로 선정, 세상에 소개했던 교회에 가서 주인과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맑아지리라.

그는 요즘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생명ㆍ평화에 대한 글을 쓰지만 이념주의자는 아녜요. 사람끼리 사랑하는 길을 찾아 나선 휴머니스트라는 게 더 그럴듯한 표현일 겁니다. 목사가 된 것도 사람이 좋아 그랬으니까요.”친구처럼 지내는 아들 해빈(10)에게 젖과 꿀이 될 글을.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12-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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