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2%의 폭력성이 영화적 끼로 발산악역전문배우로 새롭게 주목받는 중고 신인

[스타줌인] 배우 엄태웅
숨겨진 2%의 폭력성이 영화적 끼로 발산
악역전문배우로 새롭게 주목받는 중고 신인


“밋밋한 거보다 강한 게 좋죠.”

1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공공의 적2’에서 부패한 사학재단 이사장(정준호)의 오른팔로 나쁜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수행비서를 연기한 엄태웅(31). 짙은 눈썹과 대조적으로 가늘고 섬세한 그의 콧날과 입술에는 얼음장 같은 냉정함이 서려 있는 듯하다.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 연기에 딱 제격이다.

그래서일까. 엄태웅은 지난해 영화 ‘실미도’에서 31명의 훈련병 가운데 가장 반항적이고 터프한 이미지로 눈길을 모은 뒤, 영화 ‘가족’과 드라마 ‘쾌걸춘향’에서 연거푸 차갑고 강한 남자 역을 맡았다. 쉽게 말해 ‘악역’ 전문 배우인 셈. “악역 단골이란 얘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 전형적 악역 연기는 ‘공공의 적2’가 처음이에요. ‘실미도’나 ‘가족’ 때는 좀 센 역할이었는데, 이번 ‘공공의 적2’에서 부패한 돈에 인생을 건 야만적인 면모를 보여드리게 된 거죠.”

엄태웅은 1월 18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공공의 적2’ 기자시사회 직후, 자신의 악역 연기에 대해 “얼굴에는 강함이 있는데, 몸에는 아직 부족하다”며 수줍어 했다. 반면 ‘센’ 역할을 줄곧 맡아온 이유로는 “강한 이미지도 배우로서 좋은 재산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또 제 안에 그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미지 고착화를 걱정하지는 않아요.”

배우 8년차?…배우 엄정화는 친누나
사뭇 여유 있는 말투처럼, 그는 알고 보면 오래 묵은 배우다. 최근에야 영화 ‘실미도’를 통해 얼굴을 알렸지만, 그의 경력은 녹록치 않다. “8년 전 영화 ‘기막힌 사내들’(98년)에서 국밥집 종업원으로 연기를 시작했어요. 연기자를 꿈 꾼 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고요.” 연기 실력을 쌓고자 대학의 전공을 연극영화과로 택했고, 대학로 연극 무대에도 섰다. 그러나 ‘실미도’에 출연하기까지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그저 누나인 배우이자 가수 엄정화의 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최근에는 확 달라졌다. 지난해 말에는 KBS 단막극 ‘제주도 푸른 밤’의 열연으로 KBS 연기 대상에서 단막극 특집상을 거머쥐었는가 하면, 요즘 장안의 화제를 뿌리고 있는 KBS 미니 시리즈 ‘쾌걸 춘향’을 통해서 당당히 주연 배우로 올라섰다. 이 드라마에서 몽룡을 향한 춘향의 사랑을 빼앗기 위해 악역으로 변해가는 설정이지만, 현대판 변학도답게 ‘능력 있고 깔끔한’ 면모로 인기 몰이 중이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학도가 그렇게 멋있었냐?”, “젠틀한 학도와 춘향을 맺어달라”는 엄태웅의 연기에 매료된 팬들의 성화가 빗발친다.

“예전에는 오디션을 보면 ‘칙칙하게 생겼다’고 하더니 요즘은 ‘눈빛이 살아 있다. 표정이 좋다’고 해요. 또 전에는 ‘평범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연기 폭이 넓어 보이는 얼굴이다’고 하더군요.”그는 이렇게 변덕스러운 세간의 평가에 대해 자신의 내부에서 답을 찾았다. “원인이요? 예전에는 준비가 부족했고, 자신도 없었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누나인 엄정화와 얼굴은 전혀 딴 판이지만, 연기자적 자질은 ‘함께’ 지니고 있지 않을까라고 그는 추측한다. “천부적 연기자의 DNA를 타고 났다”는 칭찬을 듣는 엄정화의 그 DNA를 자신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말. “한 번 연기에 몰입하고 나면 시원한 기분이 들어요. 평소엔 무척 내성적인데 연기 중에는 저도 모르게 과격하고 폭력적인 면이 드러나는 것도 그렇고요.”

외모는 ‘악역’감이지만, 그의 인생 철학은 ‘착하게 살자’일 정도로 엄태웅은 무척 여린 성격의 소유자. 때문에 “맞는 연기보다 때리는 연기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실제 영화 ‘공공의 적2’에서 악의 해결사로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촬영이 그가 골프채로 심하게 구타 당하는 장면을 찍을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그런 여린 감성을 지닌 때문이지, 엄태웅은 앞으로 가장 도전하고 싶은 역할로 섬세한 멜로 연기를 꼽았다.

“젊은 남녀의 알콩달콩한 사랑을 그린 ‘이쁜 멜로’ 말고, 아프고 절절한 삶이 녹아 있는 ‘아픈 멜로’를 좋아해요. 연기자로서 좀 더 준비가 되면, 영화 ‘파이란’의 강재(최민식) 같은 역을 꼭 해 보고 싶어요.”

배현정기자


입력시간 : 2005-01-26 16:25


배현정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