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복은 춤꾼의 또다른 피부"몸에 꼭 맞으면서도 화려한 몸동작과 하나되는 무대의상발레 종주국 러시아도 인정

[한국의 장인들] 무대의상 전문 제작자 이기도
"발레복은 춤꾼의 또다른 피부"
몸에 꼭 맞으면서도 화려한 몸동작과 하나되는 무대의상
발레 종주국 러시아도 인정


무대 의상 전문 제작자인 이기도(62ㆍ솔패션 대표)씨의 첫 인상은 고운 옷과 거리가 멀다. 작고 다부진 체격, 열 살 무렵에 불과 2년만 살았다는데도 완연한 경상도 억양이 ‘싸나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헌데 이 ‘싸나이’는 30대 중반에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우연히 보고는 발레복에 반해 버렸다. “이런 옷이 있구나. 나도 저런 옷을 해 보고 싶다 그랬지요.” 다니던 양장점을 그만 두고 무대 의상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몸에 꼭 맞으면서도 무용수들이 숨쉬는 데에도 불편이 없어야 하고 굽혔다 폈다 화려한 무용수의 굴신(屈身)에도 쭉쭉 따라주는 발레복을 만드는 일은 양장 경력 10년을 무색하게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었다. 구박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그는 그 옷이 좋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90년대 중반에 이미 그는 옷으로 발레 종주국인 러시아를 밀어 냈다. 조역과 군무 옷만 그에게 맡기던 유니버설발레단이 그 때를 기점으로 주역의 옷은 그에게, 군무 옷은 러시아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많은 춤꾼의 몸을 피부처럼 따라와 주는 발레복을 그가 더 잘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취재차 찾아간 1월 26일에도 그는 러시아에서 만든 군무 옷이 무용수들에게 딱 맞지 않아서 손을 봐 주고 있었다.

그는 유니버설발레단에 전속된 의상 제작자이다. 한복을 발레복으로 바꿨대서 화제가 된 ‘심청’이나 화려한 색채의 의상이 무용수들의 기량 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던 ‘돈키호테’ 같은 발레의 공연 의상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다. 유니버설발레단 뿐 아니라 서울발레시어터 조승미발레단도 그의 옷을 입는다.

명동 양장점서 시작된 옷 만들기 인생
강원도 묵호 출신인 이 씨는 군대에서 제대한 65년 서울로 올라 왔다. “대학도 안 나오고 남과 같이 공부도 잘 하지 않은” 그로서는 뭔가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확고했다. 이 곳 저 곳 기웃거려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가 양장점에 들어 와 자기 밑에서 일을 배워 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해서 67년에 들어간 곳이 명동의 지의상실이다.

양장을 만드는 일은 크게 보면 재단과 봉제로 나뉜다. 재단은 몸을 재서 옷본을 종이 위에 그리는 패턴 작업과 그 패턴을 천으로 옮기는 재단을 포함하며 봉제는 그렇게 천으로 옮겨진 패턴을 꿰매서 옷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재단일은 재단사가, 봉제일은 봉제사(또는 미싱사)가 총괄한다. 봉제사는 우선 심부름제자를 거쳐 단추 달기 등 손바느질을 도맡는 마도메(손바느질이라는 뜻의 일본어)제자, 옷의 중간 시침을 맡는 중간 제자, 옷을 박을 수 있게 총정리 해 주는 상제자를 거쳐 미싱사에 이른다.

재단사는 처음부터 패턴과 재단을 배운다. 보통 미싱사는 재단사의 지휘를 받는데, 재단사가 봉제를 모르면 미싱사를 잘 부릴 수가 없다. 재단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이 씨는 그래서 친구로부터 재단 일을 배우면서 제자 역할도 거들며 양장 일에 입문했다. 3년쯤 하니 버젓한 재단사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양장점을 나와 다른 일을 해 보려고 장사에도 손을 대 보았지만 값을 후려치고 나면 얼굴이 후끈 달아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양장점으로 돌아왔지만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양장점 일도 그의 적성은 아닌 듯 했다. 그러다가 찾게 된 것이 발레복이었다.

70년대 중반에 서울에는 무대 의상 전문점이 두 군데가 유명했다. 그는 그 중 하나인 미즈의상실에 들어 갔다. 일본서 가져 온 투투(짧은 芟뭔?를 분해해 가면서 만드는 법을 독학했다. 양장점에서 익힌 실력은 무대복에는 통하지 않았다. 외려 방해가 됐다. 보통 양장은 몸에서 3인치 정도 여유를 두고 낙낙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무대복을 습관처럼 그렇게 하다보니 옷이 커서 욕도 많이 먹었다. 발레복에는 팬티가 붙어 있는데 다리 선을 깊게 파면 발레리노가 들어 올릴 때 손이 들어 갈 위험이 있고 덜 파면 발레리나들이 다리를 편하게 올리지 못한다. 적정한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몸에 딱 맞으면서도 숨쉴 때 불편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을 뒤로 확 젖힐 때에는 옷이 어떻게 따라가 주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연구 대상이었다.

숱한 시행착오 겪으며 발레복 연구
초창기에는 실수도 많았다. 발레리나가 몸을 젖히는 순간 옷은 따라가 주지 않고 어깨끈만 늘어나면서 가슴이 튀어 나오거나 발레리나의 등 지퍼가 터진 적도 있다. 외국 옷을 뜯어 보기도, 무용수들의 의견을 듣기도 한 끝에 그는 투투의 상의와 망사 치마 사이에 속주름을 넣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가로로 둥글게 속주름을 6겹 정도 넣어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주름이 접힌 상태로 있다가, 몸을 구부리거나 뒤로 젖힐 때면 그에 맞게 뒤쪽이나 앞쪽의 주름이 쫙 펴지면서 상의가 몸을 따라가도 옷이 받쳐 주게 한 것이다. 상의 양 옆에는 스판천을 일부 넣어 숨쉬기를 편하게 했다. 등 지퍼는 고리를 거는 방식으로 바꾸어 해결했다. 기실 고리를 거는 것은 기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편하게 작업하려고 하지 않았던 일. 그는 “결국 공을 들여야 할 때 공을 들여야 옷이 제대로 된다”고 말했다.

발레복을 만드는 일은 주로 외국 것으로 배웠지만 나름대로 개선 작업도 계속했다. 12단으로 무겁게 되어있는 투투의 망사를 8단으로 줄여 가볍게 했으며 망사가 계속 양 옆으로 쫙 펼쳐지게 해 주는 강철 링을 가늘게 하고 래커칠에서 코팅칠로 바꿔 무게를 줄였다. 상의의 절개선을 직선으로 똑바로 내려 긋지 않고 배 앞쪽으로 모이게 사선으로 그어 주어 더 날씬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도 그의 창안이다. 그는 지금도 “공연을 보고 있으면 저 부분은 저렇게 하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미즈의상실 실장 자격으로 86아시안게임 개회식 한국 무용 의상을 만들었던 그는 88년 독립해서는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그리스 의상과 기념 공연 발레 ‘심청’의 공연 의상을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 기념으로 공연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의상은 그가 가장 보람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유니버설발레단과 더불어 여러 가지 클래식 발레 의상을 만들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극적인 장면이 많다 보니 의상도 광범위하게 제작해야 했다. 발레단의 로이 토비아스 예술 감독이나 문훈숙 단장이 모두 러시아에서 의상을 맞춰 오길 원했으나 그가 고집해서 직접 해 보겠다고 했다. 6개월 동안 280벌을 만드는 강행군이었지만 완성된 후 토비아스 감독으로부터 “정말 만족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노고가 다 풀렸다고 한다.

그가 만드는 것은 발레복 뿐인 것은 아니다.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의상도 만든다. 발레복은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반면 오페라나 연극 의상은 묵직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극 계통이지만 뮤지컬 의상은 춤이 많기에 의상이 편해야 한다. 무대 의상의 수요가 많은 러시아나 미국 일본은 모두 발레나 오페라 가운데 한 군데만 전문으로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수요가 적다 보니 모든 것에 만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겐 문제가 못 된다. 무대 의상은 공연 날까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공연에 임박해서 제작사를 선정하는 경우가 잦다. 국립극장 소속 공연 단체들이 입찰제를 통해 제작사를 선정해서 가격을 낮춰야 선정된다는 부담감도 크다. “무대 의상은 작품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전문성을 보지 않고 가격만 신경 쓰는 입찰제는 문제 있다”고 지적했다.

2003년 패션디자인 분야 최초 명장에
그는 2003년에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최초로 명장으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국립창극단의 ‘제비’와 국립극단의 ‘인생차압’ 무대 의상을 만들었다. 현재는 3월에 공연될 국립오페라단의 ‘마탄의 사수’ 의상을 만들고 있다.

▲ 전문 소재가 없다

무대 의상을 만들면서 이기도씨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전문 소재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옷감 산업이 매우 발전했는데도 망사 같은 것은 일본을 못 따라가고 레이스의 질은 미국을 못 따라간다. 특히 금사나 은사 레이스가 질감이 투박해서 마(碼)당 9,000원인 국산을 마다하고 4만원이나 하는 미제를 수입해서 써야 한다.

발레복을 여미는 데 쓰는 고리도 미제는 안쪽으로 돌기가 나있어 한번 잠그면 잘 풀리지 않게 되어있는 반면 국산은 밋밋하게 되어있다. 사소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벤치 마킹을 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실험적인 원단을 제작하는 태도도 우리나라 업체들은 부족하다. 무대 의상만을 위해 독특한 문양의 무늬를 부탁해도 5,000야드 이상이 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업체들은 제작을 해 주지 않는다. 반면 이탈리아는 50야드나 100야드도 맡아서 제작해 준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가 패션에 관한한 세계적인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이 씨는 보고 있다.

서화숙 대기자


입력시간 : 2005-02-01 14:57


서화숙 대기자 hssu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