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문학의 속살 엿보기죠"우리시대 작가 20명과 함께 엮어냈던 사랑방 정담 활자화

[한국 초대석] 고려대 김화영 교수
"유쾌한 문학의 속살 엿보기죠"
우리시대 작가 20명과 함께 엮어냈던 사랑방 정담 활자화


“제가 여기 모실 손님들의 명단을 만들 때, 두 분이 잘 어울린다거나 혹은 전혀 딴판이라거나 하는 기준을 가지고 선별을 했습니다. 전연 딴판인 경우로, 김춘수 선생님과 고은 선생님이 얼마나 판이한가를 잘 보셨을 겁니다.” 소설가 김영하와 조경란과 함께 정담(鼎談)을 나눌 때 했던 말이다. 바로 위에 나온 네 작가들만 하더라도 한국 문학의 거개를 얽을 법도 한데, 거기에 무려 20명의 작가들이 더해진다. 그것도 현역에다 1급으로만.

2002년 가을부터 겨울로 이어진 석 달 동안 대학로 문예진흥원 강당에는 때 아닌 열기가 그득했던 것은 어찌 보면 극히 당연한 일이다. 작가들이 털어 보인 흉중은 따스했고, 대화는 투명했으며, 그들만이 구사할 수 있을 촌철살인의 표현은 그대로 청중의 마음에 꽂혀 무르익은 공감의 꽃을 피워 냈다. 군데군데 터지는 웃음보는 개콘(개그콘서트) 따위에 쫓겨 이 시대가 잃어 버린 웃음의 변증법을 새삼 떠올리게 하기에 족했다. 매회마다 두 시간 가까이 펼쳐진 대화의 마당 한가운데에 김화영(64ㆍ고려대 불문학) 교수가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사랑방 정담(情談)의 원근법이 최근 활자로 고착돼 개성적인 기록물로 되살아 났다. ‘한국 문학의 사생활’(문학동네 刊). 소설가 김동리가 썼듯, 1ㆍ4 후퇴 이후 피난처 부산에서 작가와 평론가들이 모여 문화적이 자아내는 그 무엇의 아련한 향에 취하게 해 주던 다방 밀다원(蜜茶園)의 21세기 버전이라 해도 좋을 법한 정경들로 가득하다. 이청준 - 이승우, 황지우 – 이인성, 성석제 – 심상대, 김주연 – 장영희, 김원우 – 이문열 등 같은 듯 다른,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버디(buddy)들이 그의 유연한 진행을 중심으로 평균 1시간 30분 동안 풀어 놓은 문학의 속살은 약간의 참가비를 내고 매회마다 자리를 메워 준 150여 관객들을 살찌웠다. 그 행운아들을 가리켜 그는 “일급의 비밀 결사단”이라 한다.

한국문학에 반성의 기회 부여
“내가 좋아하는 연상ㆍ연하의 소설가들에게 미리 연락해 얘깃거리가 많을 법한 작품을 정해, 완성되기까지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생각해 주십사 라고 부탁했죠.” 하나의 완벽한 언어 구조물로 존재하기 십상인 문학 작품이 스스로를 열어 보이는 통로가 그렇게 해서 트인 것이다. 프랑스 등지에서는 발생론(genèse)이나 이문(異文) 노트(variante) 등 의 이름으로 공식화된 연구 분야이다. “그 동안 우리가 되외시했던 방법론을 이렇게 도입해 본 것은 한국 문학에 반성의 기회를 주자는 의미였어요.”6순의 나이지만, 연하의 작가들에게도 항상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아 온 그의 특장점이 여지없이 구현된 것이다. 무엇보다, 대화의 쌍(雙)을 공들여 엮은 만큼이나 청중의 호평이 쇄도하니 거 이상 기쁜 일이 없다.

지금 연구실에 있는 가시 오가피 드링크 한 박스는 당시 좌담에 한 번 참석해 본 뒤 그 감흥을 잊지 못 한 어느 건강 음료 회사 사장이 떨어질만하면 부쳐 오는 것이다. 10여 박스를 헤아리고 있다. 또 매번 끝나고 나서 대학로의 허름한 소주방에서 가졌던 ‘2차’자리는 얼마나 흐뭇한 기억인가. 신이 오른 어떤 청중은 20여명의 저녁 식사를 내기도 했다. “유대에 대한 갈증”이라고 그는 말했다.

근 100일 간의 만남 가운데 가장 즐거웠던 것은 청중이 오가는 대화를 알아 듣고 약속이나 한 듯 폭소를 터뜨릴 때였다. 책에도 기록돼 있듯, 시대의 입담꾼 성석제 – 심상대 순서에 접어 勇?정담의 기록은 ‘함께 웃음’이라는 말로 번번이 차단된다. 그러나 폭소 사이사이 그가 징검다리 넘듯 찔러 주는 멘트는 기민한 놀림으로 하나의 결론부를 향해 가고 있음을 본다. “김영하 씨는 이야기가 농담하듯 재미 있고도 솔직하죠. 반면 이야기 도중 휴지부가 유달리 많은 신경숙 씨는 눌변만이 주는 감동을 느끼게 했죠.”그런 순간 순간들은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문예진흥원의 인터넷 도메인에 석달전부터 목록을 띄워 두는 식의 예고 방식이 주효했다. 국문학 박사로부터 건네 받은 발제 성격의 글을 함께 게재해 보다 진지한 논의가 가능했다. 허튼 구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대화에는 혹여 의심스런 대목이 나올라치면 일일이 작가들에게 전화 걸어 확인을 거친 김 교수의 엄정함도 한몫 단단히 했다. 김주연(독문학자) - 장영희(영문학자)라는 이질적 커플과 나눈 좌담이 더욱 진지하고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다상량과 폭넓은 이해의 덕이었을 것이다.

그는 말을 주고 받는 것을 즐긴다. “프랑스 유학 시절, 책은 무지 어려웠는데 강의는 쉬웠죠. 책은 죽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토론과 인터뷰를 즐기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문학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는 믿음을 갖게 된 연유와도 무관치 않다. 그 자연스런 연결 고리가 바로 문인들의 사(私)생활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다분히 반(反)시대적이다.

문학이 사라져가는 문인들의 대화
시대에 대한 논박은 이어진다. “요즘 얘기가 사라진 것은 TV 때문이죠. 문인들도 어쩌다 술자리를 갖게 되면 문학 이야기는 안 해요.” 그는 한국에서 갈수록 도를 더해 가는 정치 과잉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이 그렇게 된 것은 매체가 너무 발달했기 때문이죠. 인터넷이란 게 결국 전부 장사판인데….” 이 시대가 거기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

정년 퇴임을 1년 남겨둔 그는 요즘 60여년만에 갖게 될 진정한 자기 시간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무척 많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한다는 계획은 여전히 그를 6순의 소년으로 만든다. “이번 겨울 방학 동안(1월 16 ~ 26일) 사진 작가인 중앙대 임영균 교수와 다녀 온 소감을 여행기로 펴 낼까 해요.”블라디보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영하 20~30도는 여반장으로 넘나드는 곳이다. “여행의 참 의미는 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곳을 가 보는 데 있으니까요.”그는 그래서 통역도 없이 부딪친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철도의 개념이 확장돼 언젠가는 부산 – 리스본을 잇는 철길을 보게 되길 바라는 것은 그의 당연한 꿈이다.

그것은 곧 “구체적 지구 횡단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매여 있다 보니 세계와의 접속이 항상 추상적이었잖아요. 서구 문명을 구체적으로 느껴야 해요.” 그가 말하는 추상성이란 비행기 여행이 좋은 예다. 마케도니아,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어느 곳, 그리스와 흑해 등지를 그는 ‘구체적으로’ 여행하고 싶어 한다.

이제 평론집이나 에세이집 같은 책에 필력을 집중할 생각이다. 특히 손과 발 등 몸에 관한 책을 꼭 쓰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동서양의 고전들을 다시 정독하고자 하는 꿈도 있다. 최근 양평의 한적한 곳에 부인이 지어 둔 화실에 자신의 서재를 하나 꾸몄다고 한다. “독서량이 세 배는 늘어난 것 같아요. 우리 삶이 신문이나 TV의 노예가 돼 버렸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게도 됐죠.”

작년 여름 파리에 가서 민음사에서 출판할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1차로 번역했다. 민음사에 세계 문학 선집으로 이미 내 놓은 ‘마담 보봐리’‘태평양의 끝’의 뒤를 이을 책이다. 그는 오랜 발효 기간을 중시한다. 번역을 끝내면 그냥 묵혀 놓고는 한참 뒤에 펴보는 식의 작업이다. ‘지상의…‘의 경우, 이번 겨울에 번역을 고친 뒤 해설을 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탁월한 산문가이자 문화 감식가
김 교수가 정말 하고 싶어 했던 말은 이 정도 아니었을까? “아주 시련 많고 수고가 많은 땅에서 문학을 한다고 하면, 서 너 편 정도 남겨 놓고 죽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뭔가 좀 남겨 놔야 합니다. 그래서 후세에 비판도 받고,칭찬도 받고, 잊혀지기도 하면서 세상속에서 화려하고 다채롭게 열러 가지 교향악을 만들어 내는 존재로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맨 첫 시간, 고은 – 김춘수와의 대담 말미에서 했던 말이다.

수 많은 작가들과 흉중을 털어 놓으며 나눴던 무수한 언어의 핵심을 첫머리에다 그렇게 눙쳐둔다. 이제 그는 또 다른 행로를 재촉한다. “탁월한 산문가이자 문화 감식가”라는 기존의 평을 한 권의 책으로 새삼 입증한 그의 정년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 있으면 정말 좋은 점이 있단다. “상가나 결혼식을 일일이 안 챙겨도 되니까요.”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2-23 11:13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