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으ㅢ 연기로 쏟아낸 파스텔톤의 감성적 울림영화 로 데뷔 14년만에 첫 스크린 도전상처를 가진 스물 아홉 정혜의 사랑과 아픔 치유과정

[스타 줌인] 배우 김지수
무표정의 연기로 쏟아낸 파스텔톤의 감성적 울림
영화 <여자, 정혜>로 데뷔 14년만에 첫 스크린 도전
상처를 가진 스물 아홉 정혜의 사랑과 아픔 치유과정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자신이 생겼어요.” 배우 김지수(31). 연기 경력 14년차.

그녀의 ‘첫 영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3월 10일 개봉하는 영화 ‘여자, 정혜’(감독 이윤기, 제작 LJ필름)는 1992년 SBS 2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지수가 13년을 넘긴 지난 해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스크린 외출에 나선 작품이다. 브라운관에서 비교적 안정된 기반을 구축한 배우로서, 그 동안 스크린에 곁눈질 한 번 하지 않았던 이력이 새삼 화제다. “일단 찍고나 보자는 마음으로 출연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소신 있는 배우 김지수의 스크린 데뷔작 ‘여자, 정혜’는 이런 그녀의 신념을 반영하듯, 개봉 전부터 독특한 색채의 작품으로 영화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넷팩상’(NETPAC)상을 차지하며 관심을 모았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지닌 29세 여자인 정혜가 새롭게 찾아온 사랑의 기운을 통해 마음을 여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언뜻 생각하기에 공히 작품성에 매달렸을 것 같아 보이는 영화는,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영화적 안목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김지수의 설명 그대로 “예술 영화도, 상업 영화도 아닌” 모호한 경계선에 위치한다. 대중적인 코드의 화려한 볼거리를 갖춘 것도 아닌 데다, 심오한 메시지도 없다. 게다가 아직 충무로에서 검증 받지 않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고루 갖춘 작품이 여지껏 영화 한 편 출연하지 않은 제게 들어올 리가 있나요?”

배우 김지수의 재발견
그녀는 현명한 연기자다. 과욕은 버리고, 고집할 것은 고집했다. “오로지 정혜라는 무덤덤한 여자의 감정에 모든 걸 기댄 작품이에요. 별 다른 흥행 코드도, 남녀 배우가 주고 받으며 끌고 가는 힘도 없고. 소위 ‘어디에 묻어 갈 수 없는’ 영화죠.”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부담감에 더해, 대중을 흡인할 만한 코드를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을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뒤늦게 영화를 하겠다고 나선 이상, 내 힘으로 끌고 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단조롭고, 너무 평범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을 카메라는 고집스럽게 쫓아 간다. 그러나 어떤 자극적인 영화보다 더 진한 울림을 남긴다는 점이 영화의 최대 미덕이자, 감상 포인트다. “철저한 상업 영화인 ‘러브 액츄얼리’를 보고 하루 종일 행복한 기분에 휩싸였던 적이 있어요. 그 때 느꼈어요. 좋은 영화라는 게 별 게 아니구나.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은 강한 인상을 지니게 된다면, 깊은 여운을 지니게 할 수만 있다면….”

연기자에게는 지독하리만큼 잔인한 영화였다. “연기하면서 울고 웃으며, 조금이라도 감정을 더 표출하려 하는 게 연기자의 본능인데 ‘여자, 정혜’는 그 모든 감정을 빼고 연기할 것을 요구했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면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딱 죽을 맛이었어요.” 촬영 종료 이후, 그녀는 딱 한 번 용기를 내어 겨우 영화를 봤다고 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보고 있으면 질식할 것 같거든요.”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를 묻자 ‘멋있는 양아치’ 역이라고 주저 없이 답한다. “엽기보다는 서정적인 작품에 더 끌려요. 최민식 선배의 영화 ‘파이란’ 강재 같은 역을 꼭 해보고 싶어요.”

마냥 여리고 곱상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녀는 주변에서 “남자 같다”는 얘기를 곧?兀쨈? 수상 스키와 스킨 스쿠버 같은 운동을 즐기는 소문난 스포츠광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을 가졌지만, 외모를 가꾼다고 유난스레 호들갑을 떠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다. “먹고 싶은 게 있는데 피부에 나쁘니까 자제해야지,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속 편하게 사는 게 남는 거죠.”

그러한 털털한 성격 덕분인지, 김지수의 얼굴에선 영화 첫 데뷔작의 개봉을 기다리는 초조함조차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 왜 이렇게 안 떨리죠?”라고 되묻기도 한다. “솔직히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세간의 평가에 그리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는다는 그녀는 “감정을 빼는 연기를 처음 배웠다는 점만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충무로에서 ‘배우 김지수의 재발견’이라 떠들썩하게 격찬하는 영화에 대한 평가를 오로지 관객의 몫으로 돌렸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3-08 19:5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