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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상지대 김정란 교수
우리사회를 향해 서습없이 칼을 들이댄 열혈지성





결국, 최신작에서부터 그에게 접근해 들어 가기로 한다. 그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 데는 그 편이 가장 수월해 보이므로. 교수, 칼럼니스트, 행동주의자 등 그가 우리 사회를 향해 펼쳐 온 풍경의 한 컷, 한 컷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싶으면서도 서로 외떨어진 편린이다. 요컨대 그녀는 다층적이다. 그렇다면 명징한 이미지로 고착돼 있는 시어들 속에, 그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닦아 두지 않았을까? 미상불 그녀는 시인이기도 하므로.

‘나는 딴전을 피운다 그녀를 따라 갔다간 살아 남지 못 할 것 같은 불안을 이겨 내지 못 한다 나는 딴전을 피운다 늘 그렇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매혹되어 있다’(말, 길).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듯, 쉼표 하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대목은 어떤가. ‘그러나 이성(理性)인 눈물을 진실로 믿게 될 때까지 나는 세상의 거지가 되어 세상의 처마 아래에서 떨면서 밤을 세웠었다. 비명이 나지막한 노래가 될 때까지…’(어린 왕들의 말). 시인들이 만드는 문화 웹진 ‘이스끄라’(www.iskraweb.net)의 2월호에 발표한 최신작이다.

김정란(52ㆍ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잘 들어 맞는 헌 옷처럼, 그에게 가장 편안한 호칭은 아마도 저 ‘교수’일 지 모른다. 어느 한 편에서 보자면 대단히 골치 아픈 교수이겠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어느덧 50줄로 접어 들었으니, 타협을 모르던 자신의 언행을 두고 저렇듯 매혹의 결과라며 눙쳐보려 하는 걸까?

천만의 말씀. 그에게는 열혈의 도가 조금도 눅지 않았다. 세상과 불화케 한 그의 뜨거움이란 이를 테면 이런 것들(최신작들이 실린 웹진의 이름이 러시아 혁명기에 볼셰비키가 펴낸 잡지의 제호를 그대로 따 왔다).

빨갱이가 된 행동주의자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한창 격론을 불러 일으켰을 당시, 서울 시청 앞에서 폐지 반대 시위를 벌인 국내의 보수 교회에 대해 퍼부은 일갈을 보자. ‘예수는 당대의 빨갱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 포털사이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게재됐던 글이다.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대형 교회의 무책임한 복음주의, 보다 직접적으로는 예수대신 미국을 섬기는 교회를 공격화기 위해 예수의 본질을 격한 어조로 상기시킨 것. “평소 문제가 많다고 느껴 온 한국 교회가 마침내 그 같은 집단 행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밤에 1시간만에 썼죠. 통곡처럼 터져 나온 글이었어요.” 현직 목사를 포함, 100여통의 격려 메일을 받은 그 글은 개신교 인터넷 뉴스 도메인 뉴스 앤 조이로 옮겨져 더욱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같은 해 12월.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에 대해 한나라당이 간첩 시비를 걸자, 같은 면을 빌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예광탄 하나를 쏘아 올렸던 것. “박근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자 박정희 씨에게 묻는다. 당신 아버지가 그토록 숱하게 조작해서 고문하고 찢어 죽였던 수 많은 가짜 간첩들의 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21세기 벽두에 또 다시 간첩 타령을 하고 있는가?”라며.



“야, 이 빨갱이 년아. 아직도 안 죽었냐?”역시 보수는 강인했고, 그 레토릭은 강렬했다. 1991년 대학 재단 비리를 보다 못 해 행동을 개시한 교수들의 진두에서 활약하던 그를 겨냥해 재단측이 뱉었던 그 말을 다시 듣게 되다니. 우편향의 논조를 펴 오는 어느 신문에 맞서 전개돼던 ‘안티 조선’ 운동의 선두에 선 그를 두고 보수 세력이 내뱉은 언사라며 당시를 돌이킨다. “강준만 씨의 영향이 가장 컸죠. 강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를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같은 주장을 받쳐주는 움직임이 문단에는 없다는 말을 듣고 결행했던 거죠.”

공교롭게도 자신의 문학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싹트던 때였다. 데뷔 25년만에 처음으로 번듯한 문학상, 소월문학상을 막 수여 받은 때였다. 거대 언론의 횡포, 침묵하는 다수에 분노한 그는 조굼瞿맡坪?인터뷰를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개마고원에서 발행하는 ‘인물과 사상’ 등의 지면을 빌어 그 ‘아픔’을 논리화시켜 갔다. “저의 대(對)사회 발언은 그 즈음 본격 시작했어요.”

‘불온한 반항인’으로 ‘빨갱이’를 규정 지을 수 있다면, 그 내력은 상지대 재단 비리를 둘러 싸고 교수들의 행동이 시작된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보따리 장사(시간 강사)로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상지대에 출근하던 당시, 사학 재단의 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험 답안지 채점에 일일이 관여하던 때였다. “집권당 소속 의원이던 재단 이사장이 새벽 서너시에 교수급 직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런 짓 말라’며 협박하던 시절이었어요.”집요한 공작에 지쳐 자신도 지쳐 교수협의회 탈퇴서를 써 주리라 마음먹던 그 때, 통근 버스에서 졸고 있는데 선친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졸고 있는 딸에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이었다. 그는 ‘니가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책망의 뜻으로 읽었다. 이후 그는 소위 불온 교수의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다. 70명의 철야 농성자가 15명으로 줄어 들었지만, 그는 재단 비리를 고발하는 유인물을 돌렸다. ‘닭장차(시위대 연행 차량)’에 실려 구치소 신세도 졌다. 비리 재단과 4년을 싸운 결과 그는 승리했고, 정치와 사회에 비로소 눈 떴다. 그를 추인한 것이 강준만 씨의 글이었다.

안티조선운동 후유증 여전
그러나 안티 조선의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 온다. “이후 6년 내내 주요 잡지로부터 원고 청탁은 받지 못 했어요. 2월 중순에 한 문예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은 해빙의 조짐일까. “개인적으로 친한 시인한테 들은 얘긴데, 일부 문예지는 아예 ‘그 여자와 놀지 마라’라는 말까지 했다는군요.” 어찌 그런 일이? 그는 “문학이 갖는 상징의 권력성이 공고한 때문”이라 했다. “저더러 ‘문학 평론 쓰지 마라. 다칠까봐 그런다’며 조언해 주는 사람도 있었죠.” 문학 평론을 두고 상징의 거래, 곧 정치 행위라고 하는 연유다.

그가 자신의 사회 평론집 제목을 ‘분노의 역류’라고 붙인 데는 그 같은 ‘정치’ 행위가 버젓이 행세하는 한국땅에 대한 공분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국회의원들이 보인 모습이 그를 촉발시켰던 것이다. 그의 뜨거운 언어를 접한 사람들은 “안으로 와서 정치 하라”며 제의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일도양단. “내가 정치를 못 한다는 건 내 스스로 알아요. 용기가 없어요.”

그래도 현정권에 고언을 하고픈 모양이다. “(노무현 정권은)대국민 설득 작업을 너무 등한시해요. 수구 세력의 에너지는 많이 떨어진 만큼, 자신감을 갖고 초심대로 진행해 달라는 거죠.” 단, 현 정권이 내세우는 합리주의가 도를 지나쳐 몰가치적ㆍ기능적으로 변해가는 점은 경계해야 할 것이란 충고다. 이기준 파동을 돌이켜 보라는 거다.

그의 ‘분노’는 헛되지 않았다. 자신을 모독하는 시를 문예지에 발표한 기성 시인과 잡지의 편집자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 훼손 등의 재판 1심에서 승소, 각각 2,000만원씩의 배상금 판결을 최근 받은 것이다. 송사 사건을 알게 된 네티즌들이 재판 비용으로 쓰라며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 300만원이 거둔 승리여서 더욱 값지다.

예수쟁이 집안 딸의 기독교 비판
기성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그는 자신의 표현을 빌면, “대단한 예수쟁이” 집의 딸이다. 아버지는 영락교회를 세운 장로였으며, 어머니는 전도사. 부모는 어린 딸에게 “무엇이든 네가 납득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라고 할 것”을 가르쳤다 한다. 성심여고 2학년 “이미지의 습격을 받은” 그는 시인이 되어야 함을 운명적으로 느끼고 고전을 엄청나게 탐독했다. 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72학번)에서 시의 아름다움보다는 인식 기능에 눈 떴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서울대 불문학과 김현 교수의 애제자로, 훗날 남편이 되는 동갑의 서정기 씨를 만난 것이 그 무렵.

김춘수 시인으로부터 “너는 이미 시인”이라는 평을 받았으나,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 등 생활에 쫓겨 1978년 에어 프랑스 서울 지점에서 근무했다. 1982년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따낸 남편을 따라 그르노블에서 5년을 살았으나, 사는 게 아니었다. “교포들 덕에 여기서 빌리고, 저기서 꿔다 살았죠. 차도 없이 끼니는 절반만 채웠어요.”빈한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둘 다 시간 강사. 잠재적 실업자 부부였던 셈이다. 남편의 친구인 황지우 시인이 지하에 세榕?사는 부부한테 한 말. “쌍(雙) 박사, 잘 살아라. (그러더니 그에게는)나무 뿌리보다 낮은 곳에 살 때, 좋은 시 많이 쓰십시오.”지금의 몸매는 당시 허기를 초콜렛으로 속이다 보니 간염에 걸려 비대해진 탓이라고.

역시 어머니는 어머니다. 두 아들 이야기 할 때 톤이 약간 올라가는 걸 보면. “큰 놈 범석(26)은 서울대 생물학과 나와 군대 갔고, 둘 째 재석(21)이는 일본 공연도 하고 음반도 낸 펑크 록 밴드 ‘스파이키 브래츠(Spiky Brats)’의 베이시스트죠.”

구할 수 있다면, 1997년 펴낸 시집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 돌아 보네’를 읽어 볼 것을 당부했다. 말마따나 고요한 분노의 시선으로 가만히 돌아 보는 자, 바로 시인 김정란이다. 그의 자기 규정. “약간 좌편향한 중도죠.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라고나 할까요?”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5-03-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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