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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
"일제 청산,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야"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상식의 벽을 넘어선 용기있는 학자
"일본군 위안부·징용자 수 과장"국민정서에 反한 주장으로 파문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54) 교수는 좀 ‘유별’나다. 최소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렇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당연히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반기를 든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 두 나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삐끗거리고 있는 때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연행자(징용 징병) 수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노동자의 저임금과 농촌 및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가 고성장을 이룩했다는 중ㆍ고교 교과서 서술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식민지 시대가 근대적 경제 성장의 출발이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놓아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이 교수는 지난해 9월 ‘MBC 100분 토론’에서 군 위안부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고 군 위안부 가운데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론의 호된 비난을 받는 등 한동안 고생을 했다.

모든 법 위에 군림한다는 ‘국민정서법’에 위반돼 지탄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교수는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다. 꾸준히 일반에 통하는 개념, 즉 통념에 도전하고 상식의 벽을 넘고자 노력한다. 일종의 터부에 맞선다.

그의 주장은 가끔씩 터져 나오는 돌발적인 일제시대나 일본에 대한 찬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각종 기록 및 통계, 증언 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가 그의 말을 무작정 흘려버릴 수 없게 한다.

통합과 갈등, 갈수록 커지는 간극
우선 최근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연행자에 대한 이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그는 지난달 23일 웹진 ‘뉴 라이트 닷컴’(www.new-right.com)에 기고한 ‘북한 외교관과 남한의 교과서가 빠져있는 허수의 덫’에서 위안부가 20만 명, 강제 동원된 사람이 840만 명이라는 김영호 북한 유엔대표부 서기관의 주장이나 위안부 수를 수십만 명, 강제로 끌려간 사람을 650만 명이라고 기술한 한국의 국사 교과서 내용은 정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군 수뇌는 전체 280만 명의 병사에 대해 150명 당 1명씩 군 위안부를 충원케 했다는 지령을 내린 적이 있어 이에 근거하면 군 위안부 총수는 2만 명이 된다는 것이다. 또 군 위안부 중 조선 여성이 가장 많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과 중국 학자들의 주장이 각기 다르다고 했다. 강제 징용에 대해서는 1940년 당시 20~40세 남성이 321만 여명이었는데 강제 징용자가 그 2배가 넘는다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덧붙여 당시 16~21세 조선 여자는 125만 명이라고 밝혔다. 그런 객관적인 수치에 따라 그 다음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국립 서울대 교수로서 그는 그냥 조용히 있으면 평생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욕먹을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전면에 나서는 것일까.

“일본의 행동은 명백한 전쟁 범죄입니다. 일본도 비준한 1918년의 국제법에서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대 전제입니다.” 그는 이 부분에 이야기가 이르자 목청을 높였다. 한일 양국이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얼마나 악랄했는지는 일단 제쳐두고, 역사 주체로서 조선 민중이 반성할 부분이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사관(史觀)에 대한 문제다. 그는 요즘 우리 사회의 흐름을 둘로 분류했다. 좌파 민족주의 입장에서 역사를 갈등지향으로 보는 측과 자유주의 실증적 입장에서 통합지향으로 보는 측이 그것이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좀처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제지배는 문명의 융합과정
이런 분위기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융합’이다. 100년 전 조선을 생각해 보자. 당시 조선 문명과 서구 문명의 충돌은 조선 문명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양 문명의 접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정된 배아가 하나의 성체로 바뀌는 과정이다. 그것이 융합이다.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나온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는 단순히 수탈ㆍ침탈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반 민족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신 문명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던 서로간의 융합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당시 시대가 지식인들에게 부여한 고민과 역할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과서에 대해 문제가 많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지난달 말 ‘교과서 포럼’의 ‘중ㆍ고등학교 경제 관련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라는 심 포지엄에서 노동생산성만큼 임금이 올랐고, 지난 40년간 중소기업은 10배로 늘었으며, 소득분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나쁘지 않고, 농촌에 대해서는 결코 차별적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가 그 동안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낙성대 경제연구소’ 의 핵심이다. 이 연구소는 2월 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중진국 함정 속의 한국 경제’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또 이 교수의 발언은 민족을 우선하는 사람들한테서 거센 비판을 받는다. 이런 것들이 겹쳐 그는 신자유주의자이고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대해 그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가 ‘뉴 라이트 닷컴’에 글을 실은 것은 그 쪽이 자신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식계는 좌파 민족주의와 우파 자유주의로 양분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19세기 조선으로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정확한 사실이다. 당시 실제로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위에 쌓은 논리는 사상누각일 뿐이라는 점을 그는 매우 강조한다.

그의 계속된 발언은 ‘국민적 정서’에 어긋나 뭇사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을 법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단호하다. 그 동안 공개적이고 학술적 반론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실증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고 했다. 전국을 돌아 각종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그것을 기초로 논문을 썼고, 발표했다. 그것이 밑천이어서 어떤 반박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었더니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배우면서 울기까지 했다는군요. 이것이 과연 올바른 과거사 청산 자세인지 모르겠네요.” 그러면서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포겔 교수를 끄집어냈다. 그 교수는 미 남북전쟁 전 남부 흑인 노예의 노동생산성이 북부 흑인 노동자의 그것보다 높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남부는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도덕적으로 패배해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반박이 있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도덕과 경제의 분리가 나온다. 도덕과 경제를 따로 떼어보는 것이 근대의 특징이고, 경제를 정량적 관계로 파악해야 비로서 민족과 도덕을 논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그의 주장이 결코 식민지 옹호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똑바로 알아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재차 힘주어 말한다.

지식인은 집단적 정서에 위축돼선 안돼
이 교수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질문이 미처 끝나기 전에 그가 답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용입니다.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죠. 법적 도덕적 의무를 이행 못하고 다수의 힘을 빌려 무작정 나오는 다수의 폭력이 가장 위험합니다.” 특히 지식인들이 집단적 정서에 위축돼 입을 닫으면 큰 문제라고 단언한다. 소수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거나 소수의 말이 정당한 근거 없이 매몰된다면 그것은 사회가 아직 민주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지식인의 발언에는 어떤 정신적인 제약이 없어야 하고 만일 그것이 시대적 정신에 맞지 않으면 처음부터 수용하지 않으면 된다?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 교수의 주장을 인정하느냐 않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 달렸다. 다만 그가 우리 사회에 대해 무엇이 진실이냐를 묻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보다 성숙된 사회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  


입력시간 : 2005-05-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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