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인식 깨기가 가장 힘들었다저가 화장품 '미샤'로 국내·외 뷰티업계에 새 바람 일으켜뉴욕 맨해튼 매장 오픈 계기로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도약 야심

[한국 초대석] 에이블씨엔씨 서영필 대표
'싸구려' 인식 깨기가 가장 힘들었다
저가 화장품 '미샤'로 국내·외 뷰티업계에 새 바람 일으켜
뉴욕 맨해튼 매장 오픈 계기로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도약 야심


5월4일,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쌀쌀한 날씨임에도 2,000여 명의 인파가 이제 막 문을 연 화장품 상점으로 몰려 들었다. 맨해튼 5번가는 세계적인 쇼핑ㆍ패션의 1번지다. 페라가모 등 명품과 H&M 등 유명 패션 브랜드가 즐비한 곳이다. 이 곳에 한국의 한 중소 화장품업체가 매장을 열었다.

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로 알려진 ㈜에이블씨엔씨(ABLEC&C)가 주인공으로, 한국 화장품 회사로서는 처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급품을 파는 것으로 유명한 곳에 값 싼 제품을 앞세운 가게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것이 아니라 당당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80평이라는 적지않은 규모의 점포 앞에는 ‘500개 품목이 5달러 이하’라는 입간판이 힘차게 나부낀다. 정면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맨해튼 한 가운데에 매장을 개설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맨해튼 5번가는 전 세계 패션ㆍ뷰티 관계자들이 매장과 브랜드 하나하나를 24시간 주시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성공한 브랜드는 미국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세계 진출을 보장 받을 정도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미샤가 이곳에 진출했다는 것은 따라서 본격적으로 전 세계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강한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이 회사 서영필(41) 대표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의욕만 앞서 무작정 매장을 연 것은 아니다. 사전에 철저한 시장 조사와 소비자 분석을 기반으로 수익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만 점포를 개설한다는 것이 미샤의 기본 방침이다. 맨해튼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한달 이상 유동인구를 성별ㆍ연령별로 철저히 파악했다. 그 결과 20대에서 30대 여성을 주 대상으로 하고,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보다는 매장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접촉한다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높은 품질·낮은 가격으로 승부수
무엇보다 ‘높은 품질, 낮은 가격’이라는 장점을 훌륭히 살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화장품 용기에 성분을 표시해야 하고, 소비자들은 성분을 꼼꼼히 비교한 후 구입을 결정한다. 미샤가 합리적 소비에 익숙해 있는 이곳 소비자들에게 환영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맨해튼점은 개장 이후 하루 평균 8,000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연내에 뉴욕 소호 및 서부 지역 등 미국 내에만 5개 이상의 매장을 낼 계획이다.

우리나라만큼 고가품, 명품이 활개를 치는 나라도 많지 않다. 화장품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 유명 백화점 1층 노른자위는 이들 제품의 매장이 독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래 층에 있던 점포들은 밀려나야만 했다. 세계적 브랜드임을 내세우는 화장품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우리나라를 뻔질나게 찾고 있다. 고가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팔리기 때문이다. 또 한국 여성들의 화장에 대한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바로 이웃인 한국에 시집 온 일본 여자들이 한국 여성의 지나친 화장에 놀랐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한국 여성들은 시장에 갈 때, 심지어는 실내 수영장에 갈 때도 화장을 한단다. 깨끗이 지우고 물에 들어가야 하는 데도 말이다.

화장에 대한 지나친 신경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의 잘못된 인식이다. 화장품은 비싼 것이 좋다는 정도가 아니라 싼 것은 비지 떡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존의 대蓚耽骸?싸워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화장품은 비싼 것이 좋고 값이 저렴한 화장품은 싸구려라는 소비자들이 화장품에 대해 갖는 선입견을 깨야만 했다. 그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서 대표는 지난날을 회고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샤는 ‘저가’를 무기로 싸움터에 뛰어 들었다. 길거리에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그런 제품이 아니라 번화한 장소의 번듯한 매장에서 팔면서 3,300원의 가격표를 붙였다. 주변에서는 성공에 대해 반신반의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렇다. 매출액은 지난해 1,100억원을 넘었고, 올해는 1,500억원이 목표다. 올 1ㆍ4분기 당기 순이익은 40억원에 이른다. 점포는 2002년 3월 이대 앞에 처음 문을 연 이후 현재 약 270개에 달하고 있다. 놀랄 만큼 급속한 성장이다. 화장품 업계의 선두 격인 태평양이 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빠른 속도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미샤는 소비자들이 정해준 '합리적 가격'
미샤 제품에 대해서는 ‘저가’보다는 ‘합리적 가격’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화장품은 생활용품이다. 생활용품은 비쌀 이유도 없고 비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샤는 저가 전략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가에 판매하는 것이다”는 것이 서 대표의 신념이다.

미샤의 가격은 이 회사가 만든 여성 포털 사이트인 뷰티넷 회원, 즉 소비자들이 직접 정해준 것이다. 초창기 제품 홍보를 위해 뷰티넷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용 감상을 올리면 배달료만 받고 화장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미샤의 품질에 만족한 회원들은 제품을 구입하기를 바랬다.

온라인에서 적립한 포인트로는 필요한 화장품을 모두 사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에 뷰티넷에서는 회원들에게 배달료인 3,000원을 제시했다. 여기에 부가세 300원을 더해 3,300원이라는 미샤의 가격이 결정됐다. 회사가 책상 위에서 각종 자료를 놓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기존 화장품과 너무 가격 차가 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서 대표의 설명은 명확하다. 화장품의 내용물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성분은 다 똑같다. 보통 제품가의 5~7%가 원료비인데 반해 용기나 포장 비용이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장품 특성 상 외관을 화려하게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미샤는 내용물에 충실한 대신 용기를 유리에서 값이 싼 플라스틱이나 튜브로 교체하고 제품을 넣는 종이포장을 없앴다. 여기에 온라인과 브랜드샵이라는 직접 판매 방식을 도입해 유통 마진을 줄임으로써 3,300원이라는 가격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서 대표는 화장품의 가격 인하는 앞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 판매 증가에 따른 생산원가 절감으로 미샤의 몇몇 제품은 가격을 내렸다. 또 특별한 요인이 없는 한 5년 전인 2000년 가격과 2005년 6월의 가격이 같다. 아직도 미샤의 최고가 품목의 가격은 9,800원으로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저가 전략’은 서 대표의 오랜 경험의 산물이다.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한 서 대표는 졸업 후 화장품 회사의 연구소에서 근무해 화장품 제조과정을 잘 알았다. 그런데 화장품에 들어가는 원재료비는 얼마 안 되는데 실제로 화장품은 비싸야 잘 팔렸다. 이런 현실을 보고 직접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 싸게 판다면 성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
그의 경영철학은 단순하다. 기업은 사회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닌다는 것이다. 직원과 고객들을 향한 무한 책임을 생각하면 기업 경영에 있어서의 사명감과 진솔함이 절로 생긴다고 토로한다. 소비자들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 있었고 제품의 질이 좋지 않았거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만들기 쉬운 제품만을 생산했다면 오늘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분석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이 바로 그가 스스로 생각하는 성공 요인인 것이다.

미샤의 브랜드 이름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에서 따왔다. 우리가 자랑하는 첼리스트 장한나를 무척 아끼는 마이스키는 여러 번 내한 공연을 가져 국내에 많은 팬이 있다. 한복 차림의 사진을 음반 표지에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로 한국과 친숙하다.

무척 서정적인 연주가 특징으로, 그의 정신세계로 대표되는 음악적 정열과 진실함이 미샤의 기본 토대를 이루고 있다고 서 대표는 설명한다. 화장품 브랜드로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브랜드 상징으로 꽃을 사용했고, 전체적인 브랜드 색상은 빨강으로 통일해 신생 브랜드의 힘과 도전정신을 내보이고 있다. 화장품 업계의 ‘붉은 악마’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낌웰옥熾?수 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서 대표의 경영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미샤가 내실을 튼튼히 하는 것 만큼이나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해외시장 개척이다. 2004년 호주 시드니 1호점을 시작으로 한 해외 매장 수는 현재 호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몽골 베트남 멕시코 미국 등 8개국 29개로 늘었다. 올해 안에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도 새로 진출해 12개국에 80여 개의 점포를 확보, ‘세계 50대 화장품 기업’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관세 등으로 국내보다는 30~50%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지만, 현지 시장을 기준으로 하면 우수한 품질에 비해서는 저렴한 가격이어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거품을 제거하겠다며, 독과점이 심하고 고가품에 대한 선호도가 유난히 높은 화장품 시장에 ‘저가’라는 승부수를 던진 미샤가 얼마나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을 지는 미지수다. 서 대표는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행동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앞날을 자신하고 있지만, 소비자들 마음만큼 쉽게 변하는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시장이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시장이 어디까지 변해 어떤 모습을 갖출지,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06-15 19:43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