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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초대석]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영문학)
"문화 오역국 불명예 벗어야"
엉터리 번역에 일갈…번역이란 대상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뒤따라야
국가적 프로젝트로 그리스 라틴 고전 200권 변역 제의하기도






얼마 전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지음. 창비 발행)라는 책이 발간됐다. 우리 시대 번역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 영미 명작 번역의 현실을 분석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검토한 책 527종 가운데 추천 본으로 선정된 것은 총 62종(검토 본 중 11%)인데, 그 중에서도 신뢰도가 매우 높은 최고등급을 받은 종수는 단 6종에 불과했다. 결국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완역 본 가운데 10권 중 1권 정도만 믿을 만한 번역인 셈이다.

표절이 가장 많았는데, 표절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번역의 정확성이나 가독성 면에서 믿고 추천할 만한 책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동안 엉터리 번역본을 가지고 문학 공부를 하거나 꿈을 키워왔던 것이다.

이런 번역 문제에 대해 성균관대 이재호 명예교수(영문학)만큼 긴 시간에 걸쳐 집요하고 치밀하게 비판해 온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 교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말한다. 최고 번역가이자 그리스 로마신화의 붐을 일으켰던 소설가 이윤기 씨에 대해서도 오류가 많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또 영한사전은 문제 투성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 뿐이 아니다. 신문기자나 논설위원이 쓴 기사나 사설, 칼럼 등에도 틀린 곳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가히 전방위적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 교수는 “우리는 아직 문화 오역의 한복판에 있다”고 단언한다. 해방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우리가 서양문화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경우들이 수두룩하단다.

어이없는 '우리끼리 통하기'식 번역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번역이나 사전문제 등을 아무리 지적해도 고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통하면 된다’는 식이에요. 참, 어이가 없네요.” 이렇게 말하는 이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그러나 체념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감이 온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노기 비슷한 것이 섞여있기 때문일까.

문화라면 서양 문화, 동양 문화, 그리스 문화, 영국 문화, 미국 문화 등 광범위한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단어 혹은 구(句)도 문화의 원자 또는 분자로 볼 수 있다. 문화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자연히 번역이 개입하게 되고, 번역을 하려면 번역 대상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오역을 낳게 마련이다. 바로 여기서 이 교수는 출발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영어는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첫째, 한 단어에 의미들이 너무 많고, 둘째, 숙어가 다양하다. 우리 말 ‘잡다’의 정의는 8개이지만, 영어 ‘take’의 정의를 보면 타동사 80, 자동사 12, 명사 8개의 정의가 있고, 여기에 명사 숙어 1개, 자동사 숙어 24개가 있다. 셋째는 문법으로, 별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넷째는 발음이다. ‘A’에 11가지 발음이 있다. 발음에서 볼 때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가 세계어가 되지 않고 영어가 되었다는 것은 비극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윤기 씨의 경우를 든다. 이윤기 씨가 유명하다고 해서 어떤가 싶어 봤더니 신화의 ABC를 잘 모른다는 것 같다고 했다. 우선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길 잃은 태양 마차’에는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으로 나와 있지만, 그의 글은 엄격히 말해 번역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가미한 페러프레이즈(paraphrase)라는 것이다.

원문에 없는 날조된 것이 수두룩하고 설상가상으로 틀린 것이 많다. 또 탈락도 심하다. 발음 표기가 잘못된 것도 있다. 구체적으로 교과서는 처음(1~31행)부터 오비디우스의 스토리에는 없는 거짓말로 시작된다. 물론 이집트에 헬리오폴리스란 도시가 있었고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지만, 이집트 사람들이 숭배했던 신은 헬리오스가 아리라 태양신 ‘라(Ra)’ 혹은 ‘레(Re)’였다.

또 ‘헬리오폴리스에 그리스도도 어린 시절에 잠깐 머물러 산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는데, 원문에 없는 거짓말이다. 오비디우스는 예수보다 39세나 위였고, 이스라엘에 예수가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성경에는 예수가 이집트로 간 것만 나와있지 헬리오폴리스에 갔다는 말은 없다.

이런 식으로 조목조목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이 교수의 지적이 있자 교과서는 2004년 판에서 ‘이 글은 옮긴 이가 내용 구성 및 표현의 효과를 위하여 원전과 다소 다르게 더하거나 뺀 부분이 있음’이라고 각주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더 불쾌한 표정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최근 펴낸 ‘문화의 오역’이란 책에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사랑을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신들의 마음을 여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길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을 대표적 예로 들고 있다.

최고 번역가의 조건은 자기나라 말 잘 알아야
그러면 현재 누가 최고의 번역가인지를 질문했다. 대답은 안하고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번역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을 나열했다. 첫째는 외국어보다도 자기 나라 말을 더 잘 알고, 더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는 외국어 원문을 읽지 않고 바로 번역된 자기나라 말로 저자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둘째, 동양인에게 부족한 헬레니즘(그리스 로마 신화, 문학, 사상)과 히브레이즘(성경)에 관한 기본 지식을 쌓는 것이다. 서양 여행 중 없는 시간을 쪼개 박물관 미술관 등을 찾았을 때 그 쪽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 신화나 성경을 주제로 한 예술품에 그리 크게 감동하지 못한 경험을 아마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 교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다.

셋째, 번역을 해 보면 백과사전적 지식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사전을 갖춰야 한다. 넷째는 사전을 펼쳐 단어의 어원을 보는 버릇을 기르면 문장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 좋은 번역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번역은 제2의 창작이 아니라 창작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래서 한 사회에 좋은 문학가는 많아도, 좋은 번역가는 그리 많지 않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리고 나중에 그의 책을 읽으면서 너무 감상에 젖어 그런 것일까.

영어사전에 대해서도 신랄하기만 하다. “우리 사전은 태반이 유통기한 지난 어묵을 제조일자 표시만 바꿔 새로 파는 식입니다. 국어사전보다 더 많이 보는 영어사전이 건축물에 비유하면 부실공사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올해 초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영한사전 비판’(궁리 발행)이라는 책을 냈다. ‘7개 사전에서 발견한 오류들을 중심으로 살펴 본 우리나라 영한사전의 슬픈 현실’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출판사는 사전 초판을 발행하면 영어선생 들에게 한 권씩을 돌립니다. 그것을 받고 우연히 들춰보다가 놀랐습니다.”

1970년 ‘뉴우월드 콘사이스 영한사전’에서 ‘sir’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그런데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경(卿)’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급한 김에 사전 뒤 여백에 메모를 해 두었다. 이 교수가 보여준 너덜너덜한 그 사전에는 연필로 그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고, 그것이 35년 작업의 시작이었고, 그 결실이 올 초 나온 책이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냐 하면, 번역 말에 순 우리말이 대개 빠졌다는 점입니다. 또 실제로 쓰는 우리말 대신 다른 말이 들어있고, 우리말 단어로 옮겨야 할 것을 설명식으로 풀어놓은 것도 문제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혹시 일본 사전을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너무 많이 참조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시인도 부인도 안 했다. 그렇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뜻일까.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 최근에 나온 영한사전에 ‘쓰나미’ 가 없다는 것이다. “사전 편찬은 출판사에게만 챨昞?수 없습니다. 국가가 반드시 지원해야 합니다.”

"오역은 국가적 망신"
이 교수는 박사가 아니다. 그 돈 있으면 책 사고, 논문 쓰겠다는 생각에 그랬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번역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번역에 대한 관심은 1967년에 낸 영시 대역 시집 ‘장미와 나이팅게일’이 계기가 됐다. 번역 시를 보니까 원래 시와 너무 떨어져 있었다. 그의 전공은 영시이지만, 관심 분야는 무척 넓다. 그의 아파트 서재 한쪽 면은 각종 비디오가 채우고 있다. 1,200개나 된다. 신자는 아니지만 영문학 공부에 꼭 필요할 것 같아 성경도 열심히 봤고, ‘성서의 영문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지금까지 50여권의 저서가 있다.

“오역은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그냥 놔두면 그 피해는 갈수록 커집니다. 국가적 망신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가 말하는 오역 방지 대책은 단순히 기술적으로, 기계적으로 오역을 막자는 것이 아니다. “전국에 일본어학과가 88개 있는데 서양 문화의 근본을 연구하는 서양고전학과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화 오역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서울대에 서양고전학과를 설치해야 합니다. 또 국가에서 서양 고전 번역 프로젝트로 그리스 라틴 고전 200권 정도 번역할 것을 건의합니다.” 이를 ‘문화입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나간 해석일까.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  


입력시간 : 2005-07-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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