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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윤형주 한국가수권리찾기협의회 대표
"가수 권리, 노래 가치만큼 귀중"
권리 사각지대서 소홀히 다뤄지는 풍토 바로잡아 올바를 가수 위상 세워야






지난 3월5일 오후 5시,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분수광장. 윤형주 작사 작곡의 ‘조개껍질 묶어’(라라라)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국내에서 포크 송

노래비는 처음으로, 보령시가 여름철 바닷가에서 흔히 부르는 이 노래가 대천 해수욕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로 시작하는 그 노래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바닷가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그에게는 이런 히트 곡이 80여 개가 있다. 이 뿐 아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라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CM 송이라는 이 노래 이외에 1,400여 곡의 CM 송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주는 느낌을 한 마디로 ‘부드러움’이라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영원한 청년, 통기타 가수 1세대
귀공자 풍의 수려한 외모, 애수와 발랄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 언제 어디서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 밤마다 잠을 못 이루게 하는 뛰어난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DJ), 최초의 남성 듀오인 트윈폴리오 등등. 1960년대 후반기에서7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년 문화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통기타 가수 윤형주를 두고 하는 말 들이다. 윤형주는 팬들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상 지워졌다.

그런 그가 ‘돌연’ 한국가수권리찾기협의회 대표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보통 ‘무슨 무슨 찾기협의회 대표’하면 우선 투쟁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대표는 흔히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주먹 쥔 손을 힘차게 내지른다. 어쩐지 그에 대한 이미지와 잘 맞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다.

“권리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뜸 그가 되물어왔다. “저는 피땀 흘려 노력한 뒤에 얻게 되는 귀중하고 존엄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 가수들은 그 소중한 권리를 묻어두고 살아왔습니다. 권리에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인줄 알면서도 그 권리를 찾는 방법을 몰라 놓쳤든, 아예 모르는 채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간에 분명 가수들은 그 동안 많은 권리를 잃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배 가수들의 노후복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 가수들의 권리와 대 화합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수하면 먼저 화려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서고, 팬들은 환호한다. 고급 승용차는 기본이다. 수입이 그 만큼 많다. 그런데 무슨 권리를 더 찾겠다는 것일까. “가수들 중에서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이 있는 가수는 전체의 5% 미만입니다.” ‘외화내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윤 대표의 고민과 활동이 시작한다. 음반을 하나 제작하려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가수의 고유 자산은 목소리다. 노래가 히트하면 가수와 곡조를 기억하지 작사ㆍ작곡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데 작사ㆍ작곡자, 제작자, 가수 중 가수만이 권익보호를 위한 단체가 없다. 작사나 작곡의 경우 지적 소유권이라는 인식이 확립되어 있으나 가수는 瀏망?않다.

“스웨덴의 팝 그룹 ‘아바’는 볼보자동차의 연간 매출액을 능가했습니다. 그만큼 가수가 국민들 정서나 문화 등 사회 전반 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나아가서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를 비롯해 음반제작자와 가수를 저작인접권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작권자와 음반제작자는 자신들의 지위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데 반해 가수는 자신의 권리를 알지도 못한 채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윤 대표의 표정은 진지해졌고, 목소리는 차분해졌다.

“요즘 라이브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음악은 MP3로 다운을 받아 틀고 영상은 TV 프로그램을 그대로 녹화해서 스크린에 띄웁니다. 노래방에서는 가수들의 동의 없이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도 모르는 저급의 동영상이 줄기차게 나옵니다. 항공기와 고속철도, 대형 쇼핑몰, 지역 유성방송, 인터넷 방송 등에서도 줄기차게 노래가 흐릅니다. 컴필레이션 음반도 정상이 아닌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해 바로 잡고,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꼭 이런 식으로 집단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갈수록 떼를 지어 떼를 쓰는 것이 심해지고, 그러면 뭔가 억지로라도 얻어내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1958년 설립된 가수협회가 1962년 가수분과위원회로 격하된 지 43년이 지났습니다. 이런 체제에서는 가수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물줄기는 바로 돌려야 하고, 그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합입니다. 1년 전부터 선ㆍ후배 가수 몇 명씩 만나 의견을 나누고 모임을 준비하다 지난해 12월부터 고문단과 추진위원을 구성해 본격적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자랑스런 가수 위상 남기는 일
그 다음부터 윤 대표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집단적으로 농성이나 시위를 하면 ‘효과’가 크다는 것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입니다. 협의회를 호텔이나 또 다른 화려한 장소에서 마련하지 않고 국회에서 연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협의회는 ‘가수 권리찾기 공청회 및 선포식’을 지난달 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했다.

또 최근 발족한 가수노조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며 비판적인 것 등은 이런 맥락에서다. 200여 명의 가수들이 참여한 협의회의 설립 취지가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 땅에서 노래하는 모든 가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가수권리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교육 홍보를 추진하고 관련 부처 및 단체와의 협상을 통해 가수를 권리를 바로 알고 찾아서 선배들의 노후복지와 품위유지는 물론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수의 위상을 물려준다.’

초 일류급 가수의 방송 1회 출연료가 30만~40만원에 불과해 다른 분야와 너무 차이가 나는데도 윤 대표는 계속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합법적으로’ ‘합리성을 중시하며’ 등을 강조했다. 그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까. 그런 그가 왜 대표를 맡았을까.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장로다. “선후배들이 저에게 대표를 맡긴 것은 그 동안 저의 활동 때문인 것 같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 이외에도 방송이나 사회 활동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구요.”

윤 대표는 1년에 5개월 정도는 해외에서 보낸다. 50%는 비즈니스에, 40%는 봉사활동에, 10%는 연예활동에 쓴다. 한국 사랑의 집 짓기 운동본부, 한국 소아암 협회 등의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10%만 가수인 그가 대표를 맡은 것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 위에서 잠자고 있는데 누가 대신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 주고 찾아주겠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다. 그래서 “협의회를 이간하고, 모함하여 가수들의 대 화합을 방해하는 불순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나 단체가 있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떠밀리다시피 해’ 대표를 맡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긴다고 했다.

색안경 낀 시각에 부담, 내 꿈은 선교사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비를 그가 개인적으로 조달했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뭔가 다른 개인적인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그는 다만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그 동안 정치에 대한 권유를 적지 않게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부터 였죠. 그러나 그 때마다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너무 아까워서 였죠. 예스라고 해야 할 때 예스라고 하지 못하고, 노라고 해야 할 때 노라고 못하는 것이 친옳治?아닙니까. 그것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이 우리 집안의 가훈 비슷한 것입니다.” 그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6촌 동생이다. “조기 유학을 간 막내 아들이 스스로 군대에 가겠다며 귀국했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하자 주위에서 ‘정치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수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집안은 정치할 집안이 못됩니다.”

윤 대표는 2003년 7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가족 콘서트를 열었다. 예비 사위를 포함해 온 가족 7명이 무대에 섰다. 카네기홀 역사상 가족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모든 가정에게 희망과 기쁨 그리고 꿈을 주기 위해서’가 콘서트 기획 의도였다.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권리 찾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곧 물러납니다. 나중에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윤 대표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스타 마케팅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는 일찍이 가창의 중요성을 깨달아 권리를 더욱 상승시키며 실력 있는 가수들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뒤늦었지만 우리도 이제부터는 가수의 권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집중적인 육성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대중들은 보다 질 높은 대중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  


입력시간 : 2005-07-2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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