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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세원 EBS 이사장
"마이크는 내게 영원한 鄕愁"
1970~80년대 뭇 청취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밤의 여왕'
우수의 목소리는 '월북작가의 딸'로 살아온 恨과 그리움의 메타포


이번 호부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를 연재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 속의 스타, 우리의 현대사를 장식했던 인물 등의 근황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물들 중 오늘의 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weekly@hk.co.kr 02-724-2392~ 3)






“오랫동안 벼려왔던 레바논 여행을 혼자 갔다 지난 13일에 돌아왔어요.”

70, 80년대 뭇 청취자들을 잠 못 이루게 했던 ‘목소리의 연인’ 김세원(60) 씨에게 나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한 듯 하다. 21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순발력있는 대화 솜씨와 감추기 힘든 에너지로 여전히 현역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100만불짜리 목소리’가 건재하다. 그의 현재 직함은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장이다. 2003년 9월에 취임했다.

EBS 이사장을 맡게 된 계기를 묻자 “안 해본 경영 일이라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방송 40년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주변의 권유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게 됐다”고 한다. 좀 특이한 것은 이사장에 선임된 사실을 인사권자(방송위원회)의 통보에 앞서 신문보도를 보고 먼저 알았다는 것. 그는 비상근이지만 한 달에 2차례 있는 이사회 준비 등 만만찮은 업무 때문에 어느 때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전히 본업이라 자부하는 성우와 디스크자키 등 방송일 쪽으로 흐른다.

1964년 대학 재학 중 성우로 방송시작
김 이사장이 방송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재학 중인 1964년 TBC(동양방송)의 전신인 RSB(서울라디오방송) 성우1기로 들어가면서다. 대학시절 교내 방송 일을 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당시에는 드라마가 크게 유행했는데 드라마 인물 성우로서는 재주가 없었는지 고생 좀 했다”고 방송 초년생 시절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식모와 아역 연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며 웃는다. 김 이사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프로그램은 65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디스크자키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였다. 그 때 운 좋게 김 이사장은 코미디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99년 사망)’의 파트너로 프로를 진행하게 됐다. 김 이사장이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잡은 셈.

70년대 들어 김 이사장은 김세원 하면 떠올리는 TBC 라디오 ‘밤의 플랫폼’을 맡았다. 70~80년까지 밤 10시25분부터 시작해 15분 간 진행하는 짤막한 프로였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방송인 김세원의 출세작이 된 것이다. 차분하면서도 고품격의 목소리로 70년대의 밤을 설레게 했던 이 프로로 그는 ‘목소리의 연인’ ‘밤의 여왕’ 등 애칭도 얻었다.

김 이사장은 80년에 잠깐 방송을 떠났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탓이었다. 몸 담았던 TBC가 강제로 문을 닫게 되자 그는 잠시 도미(渡美)했다가 82년 MBC 아침 라디오 FM가정음악실 디스크자키로 복귀해 89년까지 프로를 진행했다. 70, 80년대가 소위 그의 방송인으로서 전성시대였던 셈이다. 그 후 80년대 말 들어 그의 삶은 방송보다 ‘사후에야 되찾은 아버지 김순남’과 함께 했다.

사실 김 이사장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 김순남’을 빼놓을 수 없다. 김 이사장은 ‘방송인 김세원’으로도 이미 유명했지만 40대 이후에는 월북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음악 작곡가 김순남의 무남독녀로도 친숙하다. ‘산유화’(1947년) ‘자장가’(1948년)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김순남의 음악은 월북한 탓에 금지곡으로 묶여 있다가 1988년이 돼서야 해금됐다. 김 이사장이 아버痔?죽음을 접한 것은 1986년 한 음악잡지에 실린 부고를 통해서다. “마치 어린아이가 들고 있는 풍선의 실이 딱 잘려 나간 느낌”이었다고 그 때를 토로한다. 실낱 같은 희망이 사라져버린 상실감에 모녀(어머니 문세랑ㆍ85)가 함께 한동안 몸져 누웠다. 이 후 김 이사장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중국으로 러시아로 오랫동안 순례하듯 혼자 여행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월북이라는 멍에 탓에 아버지가 있어도 있다고 말하지 못하며 숨죽여 살아왔던 한(恨)과 그리움에 대한 살풀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바쁜 남편(강현두 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스케줄에 매달릴 것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 취미가 됐다. 서울 토박이인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집터는 지금 정독도서관 앞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가 있는 곳으로 앞마당에 앵두밭이 있었다며 가끔 근처를 산책하곤 한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KBS FM 개국 40주년 기념 방송에 초청 받아 오프닝멘트를 하려다 목이 잠겨 정적만 흘려보냈다. 한동안 놓았던 디스크자키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청춘을 고스란히 쏟았던 일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결국 그는 가슴 찡한 ‘방송사고’를 친 셈.

영화 내레이터 등 왕성한 활동
보았던 것보다 들었던 것에 대한 기억이 더 깊은 것일까. 요즘도 ‘김세원의 목소리’를 찾는 데가 적지 않다. 김세원의 목소리는 곧 개봉될 영화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의 내레이터로 우리 곁을 다시 찾아 온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70, 80년대 청춘 세대를 사로잡았던 감미로운 ‘밤의 연인’이 소개되는 것이다. 또 10월에는 삼성 리움미술관 극장에서 공연되는 일본의 전통예술 공연 ‘노(能)’의 해설도 진행할 예정이다. 도쿄대학에 잠시 있을 때 일본 전통예술에 심취한 적이 있어 이 분야에 일가견을 갖게 된 것이 이번에 해설을 맡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만60세를 넘긴 나이에도 어떻게 이런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묻자 “규칙적인 생활습관”이라고 곧장 말한다. 늘 긴장해야 하는 방송인 생활 40년의 습관이 몸에 밴 탓인가. 그는 요즘도 5시간 이상을 자지 않는다. 몸가짐과 정신에 긴장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의 연인, 밤의 여왕’의 오늘의 모습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5-07-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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