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이 남자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연극 서 깊이있는 연기로 진면목 보여

[스타 줌인] 배우 유오성
거침없는 이 남자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연극 <테이프>서 깊이있는 연기로 진면목 보여


연일 90% 이상의 객석 점유율로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는 연극 ‘테이프’(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는 영화 스타 유오성(38)이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공연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연기가 개판이라면 부끄럽겠죠. 하지만 전 자신 있어요.” 거침없고, 솔직하다.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말 한 마디 붙이기도 어려울 법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편견에 불과하다. 연극이 끝난 뒤 분장실에서 만난 그는 날카로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줄무늬 티셔츠에 파란 야구 모자를 쓴 모습은 갓 스무 살 청년을 연상시킬 정도로 경쾌했다. 화법도 천진하다. 인터뷰 좌석을 위해 손수 의자를 나르고 음료수를 내오며 후배를 향해 농을 건넨다. “이런 걸 잘해야 출세하는 거야.” 공연을 즐겁게 이끈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 했다.

1992년 연극 ‘핏줄’로 데뷔한 뒤, ‘칠수와 만수’(1997년) 공연을 끝으로 충무로로 활동 무대를 옮겼던 유오성이다. 8년 만에 연극 무대 복귀 소감을 묻자 “한 번도 연극 무대를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매체가 다를 뿐 연기는 똑같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연극 ‘테이프’에서 그는 마약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면서도 자원봉사 소방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주인공 ‘빈스’ 역을 맡았다. “개망나니 같지만 강한 이면 속에 순수한 매력을 가진 ‘빈스’ 역에 유오성 이외의 인물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연출가 최형인(극단 한양레퍼토리 대표) 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물 만난 고기’ 같다. 달랑 런닝셔츠에 팬티 차림으로 무대를 누비면서도 객석을 휘어잡는다. 관객들의 평가를 떠나서 그 자신에게 이번 공연은 “배우로서의 실존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연극 무대는 가장 솔직해요. 연기하는 그대로 드러나니까.”

김보영·김경식과 호흡 "정말 신나요"
그가 연극 ‘테이프’에 흔쾌히 출연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배우는 연기 잘하는 사람과 함께 공연할 때 정말 신나거든요.” 이번 연극에는 한양레퍼토리의 간판 배우인 김보영(에이미 역)과 김경식(존 역) 씨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한양대 5년 후배이기도 한 김보영을 가리켜 “개인기로 주목 받으려는 게 아니라 전체 작품을 조망하는 양질의 배우”라고 추켜세운다. “뽀사시 포장된 모습으로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는 배우들이 요즘은 많은데 그런 연기자를 만나면 정말 돌아버려요. 반면 보영이는 살아 움직이는 실질감이 있어 최고죠.”

극 중 마약에 찌든 가난뱅이의 모습은 그의 대표작인 영화 ‘친구’의 캐릭터와 일견 흡사한 점도 있다. 어쩐지 삶에 찌든 하류 인생 역이 그에게는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질곡이 많은 하류의 삶은 상처를 쉽게 받지만, 그 만큼 자기자신에게 솔직해요. 조금만 올라가면 체면 때문에 많이 가리잖아요. 개인적으로도 뺀질뺀질한 캐릭터는 별로 안 좋아해요.”

영화 ‘친구’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최근 출연한 영화 ‘도마 안중근’과 SBS 드라마 ‘장길산’에선 고배를 맛본 그. 아픔이 컸던 건, 단순히 낮은 시청률 수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 정말 열광하며 읽었던 소설이 ‘장길산’이에요. 드라마가 잘 됐다면 많은 사람들이 소설도 한 번 읽어볼까 했을 텐데…, 다른 버전의 확대재생산을 막은 것 같아 속상하더군요.”

“자기 점검을 위한 장으로 2년에 한 번은 반드시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유오성. 연기자로서의 진가는 그같이 치열한 배우 정신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올해로 연기 생활 13년째.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으냐”는 우문에, 현답을 내놓는다. “한 번도 어떤 배우로 남고자 한 바 없어요. 저보다는 그저 작품 주제가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죠.”


배현정기자


입력시간 : 2005-08-11 20:26


배현정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