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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이화 민중사학자
"과거사 정리해야" 여전히 카랑카랑





“내 인생 길은 비정상으로 가득 찼어.”

왼손잡이에 160㎝ 안팎의 깡마른 체구에서 풍기는 강단이 서릿발 같은 민중사학자 이이화(67) 선생.

그는 1937년 대구에서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유랑지식인’으로 불리던 주역의 대가인 야산(也山) 이달(李達). 그는 신학문 근처도 못 가게 한 척사(斥邪) 계열의 선비였던 부친 밑에서 숨도 못 쉬고 컸다. 결국 나이 열 다섯에 가출했다.

그는 부산 여수 광주 등을 전쟁 통 고아처럼 떠돌다 초등학교는 생략하고 고등학교 문턱을 겨우 넘어 대학에 갔으나 돈이 없어 중퇴했다. 대학 졸업장도 학위도 없지만 선생은 40여 년 독학으로 한국사 연구에 몰두했다. 암울했던 1980대 민중사학의 들불을 놓았던 원로 역사학자를 만나보기 위해 18일 20년 넘게 살고 있는 경기 아차산 자락 아치울 마을의 집을 찾았다.

선생은 한 달여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수술은 잘됐고 그 후 경과도 좋다. 조금 수척해 보이지만 평소의 해맑은 얼굴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하다. 얼마 전엔 상하이임시정부 청사에서 있은 8ㆍ15 기념행사에 단장으로 거뜬히 다녀올 만큼 활력을 찾았다.

차 한 잔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점심으로까지 이어졌다. 수술 이후라 노심초사 바깥양반의 건강을 살피는 ‘마나님’의 눈을 피해 집 아래 식당으로 옮긴 선생은 기자에게서 담배 한 대 뺏어 물고 맥주 한 모금까지 즐긴다. 애초에 뭘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선생이 아닌 것이다. 평생을 야인(野人)으로, 반골 ‘자유인’으로 살아 온 선생의 이력이 엿보인다.

먼저 선생은 최근 과거사 진상 규명 논란과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화해의 큰 디딤돌을 놓았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60년 간 방치한 과거사를 정리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생은 지금 과거사 정리에 여러 잡음이 있지만 잘 마무리 한다면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민족사의 진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어 끊임없이 풀어내는 선생의 개인사는 민중의 삶 그 자체였고, 한국사 이야기는 단지 흘러간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어릴 적 선생은 이발소 보조, 여관 사환 등 별별 일을 다 하며 드문드문 학교를 다니면서 틈나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때 읽은 소설 나부랭이가 나중에 글 힘이 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품팔이로 생계를 돕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불교시보’에 첫 직장을 잡는다. 여기서 선생은 민족의 수난사를 목도하고 한국 역사에 대한 눈을 떴다.

이후 동아일보 출판부에 근무하면서 여러 한국사 학자를 만나며 본격적인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국역연수원에 들어가 한문을 다시 다졌고 뒤이어 민족문화추진회와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전 해제작업을 했다. 또 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작업도 했다. 이들 직장이 그에게 석사, 박사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의 인생만큼 선생의 학문 역시 거친 들판을 걸어 온 것이다.

▲ 프로필
- 1937년 대구 출생
- 광주고(7회) 졸업
-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중퇴
- 불교시보 근무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해제위원
- 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
-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역사비평' 편집인
-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 고구려역사문화재단 상임공동대표
- 한국전쟁 전후 학살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 주요 저서: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한국사 이야기' '한국의 파벌' '허균의 생각'

그 흔한 학위 하나 없이 학문하기가 어떠했느냐는 물음에 선생은 “역사학계가 그렇게 편협하지 않다”며 일반인들의 짐작을 일축한다. 한때 이단시 됐던 그의 사관 탓에 다툼도 있었지만 진보적 역사학자들과는 서로 밀고 당기며 여태 함께 해 왔다. 오히려 학위증이 없으니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선생의 학문 길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것은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시절. 그는 1994년 동학농민전쟁 100년을 맞았음에도 변변한 논문 하나 내놓지 못하는 한국의 강단 역사학계에 대단히 실망했다. 이때부터 선생은 그 동안 민중의 역할을 누락시킨 역사를 뒤집어 읽으며 동학농민혁명사를 비롯한 한국 통사(通史) 연구에 90년대를 온통 투신한다. 이렇게 시작해 10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 2004년에 탈고한 22권의 통사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펴냄)’다.

“좋아하는 사람, 술, 사회생활을 딱 끊고 이를 악물고 의병처럼 전북 장수 산골로, 김제 월명암 1평 반짜리 골방으로 숨었다”는 선생은 당시의 10년 고생을 달게 회고한다. 지독히 추운 겨울에는 손이 곱아 책장이 잘 안 넘어갔다. 그럴 땐 자기 글이 언제 세상 빛을 볼지 기약도 없이 죽으라 공부만 했던 조선 실학자들을 생각했다.

그는 젊어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이름 석자가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말년의 그는 부친에게서 배운 한학과 척사적 절개, 귀천을 따지지 않는 평등사상이 오늘날 선생의 사관(史觀)을 성립시킨 바탕임을 받아들인다. 이로써 돌아가신 아버지와 길고 긴 불화를 씻어냈다. 물론 민중사적 사관은 늘 어렵게 살았고 또 어려운 사람들과 어울려 온 그의 야인적 삶에 기인한 바 역시 크다. 선생은 그의 민중사관에 대해 “계급 투쟁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박한 인권 중심의 휴머니즘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사관이 대개의 진보 사관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한국사 이야기>는 민족사와 민중, 생활사를 쉽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썼다고 평가된다. 남다른 그의 사관이 <한국사 이야기>에 온통 녹아 있는 것이다.

근래에 일제 식민지배의 영향을 둘러싼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 사이의 예민한 논쟁에 대해 선생은 서로에게 취할 것이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식민지 근대화론은 여전히 소수 연구자의 이론임을 전제한 뒤, 몇 가지 실증적인 연구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경제사관에 지나치게 치우쳐 정신사적 측면을 소홀히 다룬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면 식민지 수탈론은 민족주의 사관의 지나친 영향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선생은 41살에 늦장가를 들어 1남 1녀를 뒀다. 첫째인 아들은 지금 2년 째 가출 중이다.서울대에 잘 다니다 뜬 금 없이 영화감독 하겠다고 해서 좀 모질게 나무랐더니 사단이 난 것이다. 선생은 부자의 불화도 부전자전이 된 셈이라며 허허 웃는다. 대학 1학년인 딸은 벌써 골수(?) 운동권이다. 선생은 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데모하고 다닐 터이므로 막을 일이 아니라며 손을 내젓는다.

평생을 초지일관 독학으로 일관한 선생은 “나의 존재가치는 저술”이라 못박는다.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신의 역사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동학농민전쟁사’를 제대로 정리할 계획이다. 또 파란만장한 선생의 개인사를 사회사적 전개 형식으로 회고하는 자서전도 구상하고 있다.

인터뷰 끝머리에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도올 김용옥의 1인 프로그램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를 본 적 있냐고 하자 그냥 피식 웃는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5-08-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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