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진의 왜곡하고 있다"투명한 정치·국가운영 도움주기 위한 것…YS 겨냥설은 오해

[인터뷰] 회고록 펴낸 박철언 전 의원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진의 왜곡하고 있다"
투명한 정치·국가운영 도움주기 위한 것…YS 겨냥설은 오해


박철언 전 의원이 출간한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랜덤하우스중앙 발행)이 화제다. 서점가에서는 정치ㆍ사회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출간 1주일 만에 4쇄를 찍었고, X파일에 요동친 정치권은 회고록의 파장에 또다시 일희일비하고 있다.

회고록은 제5ㆍ6 공화국과 김영삼ㆍ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20년 간에 걸친 격동의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사초(史草)에 버금 하는 꼼꼼한 기록으로 여야 정당과 인물들의 면면을 그대로 드러내 상황에 따라서는 X파일 이상으로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칠 조짐이다.

언론과 거리를 두던 박 전 의원은 17일 대구에서 올라와 “내 ‘진의’가 왜곡되는 것 같다”며 본격적인 인터뷰에 처음 응했다. 그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회고록을)섣불리 재단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있다”며 “회고록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 고 강조했다.

"회고록, 있는 그대로 봐달라"
그는 회고록을 낸 이유를 우리 정치가 깨끗해지고 국정운영이 투명해져 선진정치로 나아가는데 밀알이 되려는데 있다고 했다. 또 YS를 겨냥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시안적인 정치적 음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자신의 회고록이 최근의 X파일에 비유되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불법적인 도청자료와 역사를 위한 고백록을 비교할 수 있는가”라며 불쾌해 했다.

서울 논현동 박 전 의원 사무실에서 2시간에 걸쳐 회고록에 담긴 진의와 세간의 엇갈린 시각 사이의 간극을 들어봤다.

- 회고록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회고록을 펴내게 된 동기는.

▲지난해 3월 정치현장을 완전히 떠난 뒤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서 선진민주정치 시대로 나아가려면 정치가 보다 깨끗해지고 국가운영과 권력운영이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1980년부터 제5ㆍ6 공화국, 김영삼ㆍ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중요한 정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그 시대 생생한 기록과 증언을 남길 때 현직에 있는 국가경영의 주역을 비롯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주역들이 역사와 국민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갖고 깨끗한 정치, 투명한 국가경영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봤다. 선진 외국에선 일반화한 예이지만 중요 공직을 지낸 사람이 회고록을 집필하는 것은 후세를 위한 역사와 국민에 대한 책무라고도 생각한다.

- X파일 정국에 책이 나온 것을 두고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회고록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또 하나의 X파일’ 또는 ‘박철언 X파일’ 식으로 보도를 했는데 참으로 유감스럽고 시기적으로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X파일은 국가기관이 범죄적인 방법으로 도ㆍ감청한 유력인사들 간의 대화를, 그것도 국정원의 전직 직원이 사적인 목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내 회고록은 공직자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들거나 공직수행 상 있었던 공무수행과정을 국민들의 알 권리에 부응하여 공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른 역사의 정립을 위해서는 바른 기록과 진실된 사실의 기록이 중요하다는 고뇌와 고민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출판시기도 그렇다. 지난해 17대 총선 때 마지막으로 무소속 출마를 생각하다가 탄핵정국으로 정상적인 선거가 어렵다고 보고 3월 31일 ‘이제는 무대를 떠나려 합니다’라는 공식성명을 통해 정치현장을 완전히 떠난 뒤 4월부터 바른 역사를 위해서는 바른 증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회고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년 3개월만인 올해 6월 중순, 1,106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탈고하고 사흘 뒤인 15일 랜덤하우스중앙과 출판계약을 맺었다. 8월10일 책이 출판된 것은 계약일로부터 8주후인 2005년 8월 11일에 출판, 시중에 공급하기로 한다는 출판계약에 따른 것이다. 7월 후반에 ‘파일 정국’이 터질 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그리고 책을 다 만들어 놓고 출판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많은 억측들과 오해가 생기지 않겠는가.

- 회고록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YS 시절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것에 대한 ‘보복‘ 내지 ‘앙갚음’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회고록으로 과거에 깊은 인연을 맺었던 YS와 많은 분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데 대해서는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하지만 회고록을 두고 YS에 대한 앙갚음이니 공격이니 하고 얘기하면 너무 섭섭하다. 1992년 YS 집권 후 나에 대해 늘 ‘정치보복 대상 1호’ ‘구속대상 1호‘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1~2년 공부하고 오라거나 자료를 갖고 타협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도피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았다. 93년 정치보복으로 1년 4개월 간 투옥됐는데 YS를 공격하려 했다면 출소 직후 YS 재임 중에 할 수도 있었다. 지금 YS가 대통령을 그만둔 지 7년 여가 지나 정치 자금 주고받은 것도 공소시효가 다 지났다. YS에 대해 앙갚음할 생각이 있으면 그 때 터뜨리지 무엇 때문에 참았겠나.

- 회고록에 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YS를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하자 YS가 큰절을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 노 전 대통령에게도 확인했나.

▲노태우 대통령은 대권을 YS에게 넘긴다는 얘기를 나한테는 91년 4월부터 했다. YS가 차기 후보로 낙점 되자 노 대통령에게 큰절을 했다는 얘기는 김복동 전 의원에게서 들었는데 김 전 의원이 거짓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또 YS는 감성적인 분인데 차기 후보로 낙점 되는 순간 인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YS에게 40억 준 것 외에도 추가로 건넨 돈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책에 나온 그대로 이해해달라. 당시 YS는 야당 총재로 아랫사람을 많이 거느리다 보니 많은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야당의 협력도 구하고 장차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지원금ㆍ정치자금을 노태우 대통령 지시에 따라 심부름한 것이다. 요즘 잣대로는 불법 자금을 준 노태우 대통령도 잘못됐고, 그것을 받은 YS도 잘못됐고, 전달한 나도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DJ와는 그런 상황 아니었다"
- 당시 제1야당 총재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자금은 없었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DJ는 보수대연합을 이야기하자 이를 거절했다. 혹시 다른 분이 DJ에게 무엇을 전달했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또 YS와는 여러 차례 만났지만 DJ를 만난 회수는 굉장히 적다. DJ와는 주로 남북문제, 민족문제, 북방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여소야대 정국이다 보니 국가운영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YS는 다정다감한 분이어서 이러저런 구체적인 얘기를 나눴지만 DJ와는 드라이한 대화가 오갔다.

- 회고록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DJ가 미국으로 갈 때 7만∼8만 달러를 환전시켜줘서 내보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DJ 측에서는 환전 편의만 제공받았다고 한다. 어느 쪽이 사실인가.

▲전두환 대통령이 그 말을 할 때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당시 외화 7만∼8만 달러 환전은 굉장히 어려웠는데 DJ쪽 주장대로 환전의 편의를 봤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전 대통령과 DJ, 이희호 여사 뿐이다. 꼭 전두환 대통령이 7만∼8만 달러를 줬다는 것이 아니니까 DJ 얘기가 사실일 수 있다.

- 회고록에 40대 검사가 대법원장 후보를 면접하고 대법원 판사를 면접시험을 봤다는 내용에 대해 자화자찬이라는 지적과 함께 논란이 일고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책에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는데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 후보들 면접이 아니라 사실은 일종의 면담이었다. 당시 인사권자인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만날 수 없으니까 나와 우병규 정무수석, 손진곤 민정비서관을 시켜서 만나보라고 했고, 당사자들의 집이나 호텔에서 면담한 결과를 대통령의 법률담당 참모로서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 새로 찍는 판에서는 이 부분 바로 잡을 예정이다.

-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것도 면담 후인가.

▲책에 나온 대로다. 당시 이회창 판사를 잘 아는 손진곤 민정비서관의 의견을 많이 경청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일선 정보기관과 법조 중진들의 부정적인 의견에 따라 이 판사의 국가관을 거론하며(소수 판결을 많이 낸 이?등) 주저했지만 “대법원 판사 후보이면 국가관에 문제가 없고 법원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 판사 같은 젊고 소신 있는 사람이 대법원 판사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했다.

- 회고록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친위 쿠데타를 도모하려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와 관련, 최근 차기 대선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고건 전 총리가 안기부 안가(安家)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당시 고건 의원은 그런 엄청난 일을 한다고 하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선거법안을 연구, 작업하는데 관여한 정도다. 전 대통령이 혁명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재창출 하기 위한 ‘비상선진계획’은 장세동 안기부장, 육군참모총장, 보안사령관, 그리고 나 4인 정도만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전 대통령이 실제 제2의 비상조치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혼란스런 정국을 겨냥해 고도의 심리전을 편 것으로 보인다. 내가 군 지휘관도 아닌데 4인 모임에 참여 시킨 것은 전 대통령이 과격한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때 나에게 브레이크, 제어판 역할을 해달라는 보이지 않는 주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 회고록에 대해 일부에서는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것은 회고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 읽어 보신 분들의 얘기인 것 같다. 책의 서문이나 에필로그에도 밝혔듯이 내 과오까지 포함해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억 나는 것만 하더라도 책 앞 부분에 법무관 임용시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 육본 인사운영감실의 배명국 중령에게 부탁한 것이나 6ㆍ29선언을 제의한 주체를 노태우 전 대통령에 포커스를 맞춰왔지만 실제 주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란 사실을 부끄럽게 밝혔다. 또 안기부 직원의 입장에서 대통령 선거에 관여하여 월계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던 구체적인 선거법 위반행위를 고백했고, YS에게 40억 원을 전달한 것도 밝혔다. 그 밖에도 책 여러 군데 나와있지만 회고록이 개인의 참회록이 아니다 보니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회고록을 내면서 내 자신이 여러 면에서 부덕하고, 미흡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독자들의 충고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 일각에서는 월계수회라는 방대한 조직을 움직이고 노태우 정권의 실세로 통했는데 정치자금에서 과연 깨끗할 수 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정치를 활발하게 하면서부터는 자금이 필요했고 가까운 친지나 기업인 등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정한 청탁을 조건으로 하거나 이권을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고백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할 게 있어야 고백할 것이 아닌가. YS 정부 시절 정치보복 대상 1호, 구속대상 1호로 찍히면서 내 주변의 200여 명의 계좌를 철저하게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온 게 없다.

"도청에는 직접 관계하지 않아"
- 회고록에는 5ㆍ6공 당시 도청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최근 X파일과 ‘미림팀’이 논란이 되면서 역대 정권의 도청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 전 의원은 85년 안기부장 특보로도 일했는데 당시 도청 움직임을 알고 있지 않았나.

▲나는 도청과 관련해 직접 관계한 적이 없고 구체적 선상에도 없어 그 내막을 알지 못한다. 안기부장 특보로 있을 때도 주로 남북 문제, 공산권과의 수교 준비와 접촉, 국가 비상시기에 있어서의 법과 제도 준비 등을 담당했기 때문에 일선 공작을 하거나 공작정치와는 상관없다.

- 요즘 MBC TV ‘제5 공화국’에 자주 등장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MBC가 역사드라마를 하면서 한번도 연락이 없다가 최근 회고록이 출판된 뒤 한차례 전화를 해왔다. 가끔 TV를 보는데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마음이 무겁다. 적어도 역사물, 그것도 등장인물이 생존해 있는 역사드라마를 할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신중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약력> 경북 성주 생(1942년). 경북고ㆍ서울대 법학과 졸업(65년). 제8회 사법시험 합격(67년). 서울지검 검사(78~80년). 대통령 정무비서관, 법률비서관(80~85년). 안기부 특별보좌관(85~88년). 청와대 정책보좌관(88~89년). 정무장관(89~90년). 체육청소년부 장관(90~91년). 국회의원(13~15대, 88~2000년). 한반도 통일문화재단 이사장(현)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8-24 16:2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