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곳에서 평화를 얻었다"

[한국 초대석] 15년 히말라야 순례 의사 임현담
"난 그곳에서 평화를 얻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큰 집을 가지고 있었네/ 눈을 들어 보니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잘 커가는 아이/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좋은 차를 가지고 있었네/ 눈을 들어 돌아보니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당당한 명예/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을까// 신이시여, 신이시여, 나는 어디에 있나요/ 신이시여, 신이시여, 나는 어디로 가나요/ 나는 떠나가야 한다네, 나는 가야 한다네/ 그대 품으로, 그대 품으로/ 내가 살고 있는 신, 당신의 가슴 안으로…>

15년 동안 매년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넉 달씩 히말라야를 순례해 온 서울 필 방사선과 임준(50) 원장(필명은 임현담)이 쓴 글이다.

이 글을 보면 임 원장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진정한 자기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즉시 돌아왔다. 이제는 그만큼 확고한 행복관이 섰다는 것일 게다.

“예전에는 돈이 많고, 나이에 비례해 통장도 가지고 있고, 좋은 차도 굴리고, 누구나 보면 부러워할 아내와 자식이 있고, 평균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 명예도 있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

대체로 그런 것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복과 물질은 같은 주파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여여(如如), 즉 늘 있는 같은 상태가 행복이라고 봅니다. 많은 만큼 걱정이 있습니다.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고 그것이 좋은 상태입니다.”

임 원장은 이 같은 것들을 인도와 히말라야에서 얻은 지혜라고 했다. “그곳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왕이 되어 수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황금의 궁전을 갖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행복하지 못하다. 마음을 다스려야 행복하다.’

지극히 평범한 것 같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또 히말라야에서는 아예 행복이라는 말 자체를 거부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같은 뿌리에서, 주관적 의미에서 나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내 자산이 산이 되는 느낌이었다."

임 원장이 히말라야를 찾은 이유도 단지 산이 좋거나,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잘 나가던 30대 중반의 개업의였던 그는 전공상 다른 병원에서 의뢰한 환자들을 많이 접했다.

특히 암 환자들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은 나한테도 반드시 온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것과 같은 강한 충격을 느꼈다. 그 다음부터 고민으로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늘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인도에 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90년 당장 배낭 하나만 둘러메고 인도로 갔다.

황당하고, 먼지 많은 곳을 헤매고, 화장터까지 찾았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그냥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3개월 후에 다시 갔다.

갠지스 강가에서 새벽 추위에 떨고 있는데 한 노인이 추운 것은 강물 때문인데, 강물은 히말라야에서 흘러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히말라야는 우리의 천국이니 한번 가보라고 했다. 이틀동안 버스를 타고 히말라야로 향했고, 그것이 히말라야와의 운명의 만남이었다.

“히말라야는 그 동안 보아왔던 산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히말라야를 보는 순간 죽음 돈 명예 등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산만 보였습니다.

하얀 산을 보니 내 자신이 산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산과 나만 남고, 가족 등 모든 인연은 끊어졌습니다.”

다음부터 매년 길게는 4개월 정도 아예 병원 문을 닫거나 다른 의사에게 맡긴 후 히말라야를 찾았다.

인도의 최고 성산 난다데비, 네팔의 캉첸중가 초모랑마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밧 등 그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짐꾼들과 숙식을 같이 하면서 산사태로 이도 부러지고 급류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히말라야는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임 원장의 이런 히말라야 체험은 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2002년에 나온 ‘히말라야 있거나 없거나’는 히말라야의 총론격이다.

그 거대한 설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를 말한다. 또 ‘시킴 히말라야’(2004년)는 히말라야 동쪽 끝 아름다운 비경의 탐험이다.

최근에는 인도신화를중심으洸糖뻑燦蔘┝柰냘?권짜리‘가르왈 히말라야’를 펴냈다. 히말라야는 인도와 네팔 국경인 칼리강을 중심으로 크게 네팔쪽에서 보는 네팔 히말라야와 인도쪽에서 보는 가르왈 히말라야로 나누어지는데, 가르왈 히말라야는 힌두교와 시크교의 성지다.

이 지역을 순례하면서 만난 각종 신화와 함께 현지 사람, 풍물, 지리, 문화를 소개하고, 수행자이자 여행자로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기행문이다.

비슈누신에게 헌정된 도시인 하드리와르에서 참다운 자아를 일깨우는 아자밀라의 신화로 시작한 순례 여정은 25개 장소를 거친 후 천재지변과 우주의 종말이라는 주제가 담긴 난다데비에서 그친다. “인도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일원론입니다.

브라흐마이건 비슈누이건 시바이건 많은 신들이 모두 하나의 신의 서로 다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신이건 자기에게 맞는 신을 통해 최종적으로 신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히말라야는 정복의 대상이 아닌 삶 자체

임 원장이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10권 가까이에 이른다. 사진은 직접 찍었다. 6~7년 전부터 시작한 사진은 전문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금 구사하는 현지어가 사진 찍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 앞으로도 계속 3권을 낼 예정이다. 히말라야를 국제적 분류법에 따라 나누어 무슬림의 펀잡 히말라야, 불교 왕국인 히킴 히말라야, 힌두교인 가르왈 히말라야 등이다.

각 지역이 모두 성격이 다르다. 히말라야 고봉을 중심으로 쓴 책은 세계적으로 적지 않다. 하지만 동서 2,500㎞, 남북 3,000㎞의 거대한 히말라야를 일일이 답사하면서 그곳의 자연과 삶, 문화를 담아낸 것은 그의 책이 거의 유일하다.

“인도 신화에 사막을 가로질러 우물을 발견한 나라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삶이 뭐냐, 죽음이 뭐냐는 문제에서 우물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아직 물을 마시지는 못했습니다.”

임 원장은 6,000m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산악인과는 다르다.

그는 되도록 천천히 오른다. 그러면서 주위 풍경을 보고, 현지인들의 삶을 보고, 인생을 생각한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보는, 그런 잘못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히말라야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그는 가톨릭에서 힌두교, 불교로 종교를 바꿨다. 가톨릭은 모태 신앙이었다. 중학과 고교도 가톨릭 계통을 다녔다.

대학 졸업 후 개업하기 전에는 여의도 성모병원에 근무했다. 그런데 인도에 가서 저 사람들이 왜 저러고 다니나라는 생각에 힌두교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불교 공부로 이어졌다.

몇 년 전만해도 국내에서 힌두교를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논문조차 많지 않았다.

게다가 힌두교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주위의 시선이 뭔가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변했다. 책도 많고, 논문도 쏟아지고 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모임도 생겼다.

임 원장은 자신을 반은 힌두교, 반은 불교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가톨릭이나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진료실에는 예수상이 버젓이 놓여있다. “어떤 종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에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옷 가계에 가 보십시오. 그곳에는 무척 옷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병원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온다. 자신에게 맞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또 우파니샤드를 공부하면서 신라시대 승려 혜초가 727년에 지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한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에 몰두하고 있다.

이 책에는 당시 인도 및 서역 각국의 종교와 풍속, 문화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그는 이 책을 밑줄을 치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필명 임현담(林玄潭)은 지리산 칠불사 통광 스님이 지워준 것이다. ‘숲속에 있는 깊은 샘이 되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한없이 주어라’라는 의미다.

그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이 이름을 좋아해 직업상으로는 본명을 사용하지만, 책이나 산에 갈 때 등에는 필명을 쓴다.

'만원계' 만들어 히말라야 오지마을 도와

임 원장은 주소가 www.himal.pe.kr인 홈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히말라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 이 홈 페이지의 첫 머리는 ‘정치 경제 그리고 이념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피濫척?

대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 우리의 전부인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로 시작한다. 정치 경제 이념은 결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녹색연합에서 제안한 ‘만원계’(회원 1인 당 매달 1만원씩 내 지원)를 만들?히말라야 오지인 낭기마을 돕기에 나서고 있다.

10명이면 지원이 된다고 했는데 현재 100명이 모였다. 한 달에 100만원으로 나무 심고 직업학교 만드는데 쓰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안타푸르나에도 이 돈으로 나무가 심어지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병원을 장기간 비우고 산에만 다니면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슬쩍 물었더니, 현지에서는 돈을 거의 안 쓴단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이제는 제발 돌아만 오라고 바란다고 덧붙였다. 히말라야에 완전히 빠져 그곳에 정착하지 않을까 해서란다.

“한번 히말라야를 본 사람은 예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한번 갔다 올 때마다 사람이 달라지니까 결국 집안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능동적 수동’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배의 속도를 물 흐름에 맞추면 주변 환경을 즐길 수 있으나, 빨리 가거나 역류하면 제대로 못 본다는 것이다.

인생에 불만을 갖지 말라, 세상은 바꿀 수 없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라라는 말은 그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한다.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의료계에 위장 취업한 산악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만약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산악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치면서 받은 느낌은 그는 의료인도, 산악인도 아닌 듯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진정한 행복을 끝없이 추구하는 구도자 같았다.

<우리들의 죽은 벗들은 어느 곳에 있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와 운명의 법칙은 일치하는가?/ 영혼의 수효는 유한인가? 무한인가?> (보들레르의 ‘나목’에서) 그가 즐겨 읊고 있는 시다.

이상호 편집위원
사진=김지곤 기자

입력시간 : 2005-10-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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