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핵심은 음양오행"

[한국 초대석] 한글 연구 한의사 김명호
"한글의 핵심은 음양오행"

수도권 중ㆍ고교생들은 훈민정음을 가장 가치 있는 문화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지난달 20~26일 수도권 중ㆍ고교생 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화재에 가치순위를 부여한다면 귀하가 생각하는 우선 순위는’에 대해 66%인 332명이 훈민정음이라고 답했다.

이어 석굴암, 조선왕조 실록, 해인사 장경판전, 판소리, 수원 화성, 종묘 제례 및 종묘 제례악 등의 순서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글날은 돌아왔고, 지나갔다. 이제는 공휴일도 아니다. 어느덧 그저 기념식이나 하는 날 정도로 점차 인식되고 있다.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중 유일한 창제문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한다.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아니 곧 말 문이 막힌다.

“누구나 아는 한글이지만, 아무나 모르는 한글이기도 합니다.” 한의사면서 한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비로한의원 김명호(58) 원장은 한글의 현실에 대해 한 마디로 이렇게 잘라 말한다.

“세종대왕이 천(天)ㆍ지(地)ㆍ인(人)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배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그토록 뛰어난 문자가 되게 하였을까. 이런 의문이 그의 한글 연구 출발점이다.

그리고 결론은 ‘훈민정음’이다. 김 원장은 훈민정음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음양오행이다.

“세종대왕 23년(1443년) 12월에 나랏말 표기를 위해 28자로 된 문자 체계를 창제해 훈민정음이라고 했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 26년 9월 이 문자 체계에 대해 세종대왕이 직접 작성한 글과 집현전 학사들에게 짓게 한 새 문자 체계에 대한 해설과 표기의 용례, 곧 해례를 합쳐 책으로 간행한 것입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게 되어 새 문자 체계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에 관한 책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의 설명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해례본의 체제는 세종의 어제(御製)와 집현전 학자들의 해례로 이루어졌습니다.

어제 부분은 훈민정음 28자의 예시와 그 사용법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으로 되어 있으며, 한글 창제의 동기와 목적을 밝혔습니다.

해례 부분은 제자해(制字解)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合字解) 용자례(用字例) 등으로 구성됩니다. 해례의 끝에는 정인지의 훈민정음서(후서)가 있습니다.

이 후서는 한글 창제 동기와 목적을 자세히 밝히고, 한글의 우수성을 설명한 뒤에 세종의 명에 따라 집현전 학자들이 해례를 짓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까지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들 중에서 창제된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고, 그 문자의 창제 원리를 설명한 것이 전하는 것 또한 훈민정음이 유일합니다.”

김 원장이 이런 훈민정음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이다. 대학 친구인 유홍준 현 문화재청장으로부터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복사한 2~3페이지 정도를 보니 참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이 일어 당장 책을 샀다. 어제 서문은 학교 다닐 때 배워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해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감동했다. 해례 첫 구절에 ‘천지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문화 중 현재까지 살아있고 앞으로도 생동하게 될 ‘한글’ ‘한국 음식’ ‘한의학’의 원리는 모두 음양오행인 것이다.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필독서

“훈민정음은 한글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려워 일반인들의 경우 쉽지가 않습니다. 일부 관련 학자들 외에는 잘 알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게다가 훈민정음에서 명확히 밝힌 한글을 만든 원리의 핵심 내용인 음양오행에 관한 내용은 국내의 국어학자들도 소홀히 다루어 왔습니다. ”

김 원장은 그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음양오행을 잘 모르거나, 또 하나는 음양오행을 점성 무술 미신 등으로 여겨 부끄러워서 그랬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음양오행은 사주팔자나 관상, 미신이 아니라 사고의 패러다임입니다. 음양은 낮과 밤을, 오행은 계절을 각각 개념화한 것입니다.

왜 낮과 밤이 있고, 계절은 왜 바뀌면서 반복하는가는 옛날부터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동양에는 음과 양의 원리가 있어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계절은 목ㆍ화ㆍ수ㆍ금ㆍ토라는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에 따라 5계절이 발현한다는 것입니다. 음양오행이 맞고 틀린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례 첫 문장에 나오는 음양오행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음양오행 원리를 소홀히 한 것은 서양 학문의 관점으로만 훈민정음을 해석하고 분석한 결과이며, 서양 학문의 관점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음양오행 이론은 무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어 교과서에서도 훈민정음은 내용의 일부분을 소개하면서 막연히 과학적이라고만 할 뿐 원리의 핵심인 음양오행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우리는 한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내용은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최근 ‘한글을 만든 원리’(학고재 발행)라는 책을 펴냈다. ‘누구나 아는 한글 아무나 모르는 음양오행’이 부제다.

“세계 유일의 ‘체계 음소 문자’인 한글의 ‘체계’가 무너져 방치되고 있어도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한글의 체계가 한글 맞춤법에 의해 무너져 있는데도 왜 오래 전부터 그렇게 써왔기 때문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까.

왜 국어 교과서에서 한글을 만든 원리는 음양오행이다 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있을까,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누가 해주기를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안 한다면 내가 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한글의 제자 원리를 적용한 휴대폰 자판 배열과 손가락 한글 배우기’다. 휴대폰에는 12개의 문자 단추가 있는데 이 제한된 문자 단추의 휴대폰으로 모국어를 가장 편리하게 전송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 국민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글을 만든 원리에 따라 제작한 휴대폰 자판은 없으며, 제자 원리에 따라 휴대폰 자판을 배열하면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음과 모음을 각각 왼손과 오른손의 손가락 마디에 배치하면 손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 자모 합리적 순서로 되돌려야

김 원장은 한글 맞춤법 제2장 ‘자모’에 나오는 순서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한다. 세종대왕이 만든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순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반 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체질에 안 맞아 한의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중동 건설현장에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36세부터 입시공부를 해 37세에 동국대 한의학과에 진학했다. 이제는 한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사회가 알고 싶어 사회학과를 택했고, 사람이 알고 싶어 한의학과를 선택했다.

또 한글이 재미있어 한글에 매달리고 있다. “전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더 하는 것입니다. 한의사가 왜 한글 공부를 하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사고가 경직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깊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글 박사냐 아니냐를 물으면 안되고 한글에 대해 어떤 부분을 연구하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책을 내는 데 많은 고충을 겪었다. 몇 군데 출판사와 접촉했는데, 모두 거절 당했다. 이번에도 순탄치 않았다.

출판사측을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판단하느냐”며 1시간 넘게 설득했다. “원고 들고 쫓겨난 경우가 弧?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서럽고 슬펐지만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한 출판사와의 출판 계약 경우를 설명했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교재를 제공하는 것’을 이념으로 해 사전, 회화ㆍ참고서, 이(異)문화 이해ㆍ해외사정에 관한 서적, 문학萱菅??岵?발행하고 있다는 산슈샤(三修社)라는 출판사가 이 책의 발행 사실을 알고 번역 출판을 제의, 사흘 만에 계약을 맺었다.

초판 3,000부에 선인세는 인세 지불액의 50%다. 국내 출판 2,000부보다 많다.

“앞으로 정보처리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글?뛰어난 장점은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라고 자신하는 김 원장은 “최고의 문자를 사용하는 우리 국민은 문자에 관한 한 최고 국민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음운학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 원장이 바라는 것은 한국이 음운학의 중심이 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다. “군인들한테 총을 안 주고 나라를 잘못 지켰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10-11 19:26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