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 이끌 '독일의 대처'

[피플]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
대연정 이끌 '독일의 대처'

독일 기민당의 여성 당수인 앙겔라 메르켈(51)이 차기 독일 총리에 올랐다. 그가 이끄는 대연정은 다음달 중순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기민ㆍ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은 17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본격적인 연정 협상을 벌여 정책을 조율한 뒤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요식절차이긴 하지만 하원에서의 총리 선출 표결도 남아있다.

경제대국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독일의 국운이 한 여성의 어깨에 걸린 셈이다. 메르켈은 2차 대전 이후 최연소,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수식어 외에도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독일 최초의 과학자 출신 총리 등 숱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한마디로 ‘정치적 신데렐라’다.

1954년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몇 달 만에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구 동독 지역인 브란덴부르크주의 작은 마을 템플린으로 이사 갔다. 라이프치히 대학을 나와 물리학 박사로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일했다.

메르켈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동독 민주화운동단체인 ‘민주변혁’에 가입한 것이 계기로, 이후 콜 전 총리의 발탁으로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4년 환경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메르켈은 정치 입문과 함께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지원을 많이 받아 ‘콜의 양녀(養女)’로도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영국병을 고쳐 경제 회생의 기반을 마련한 대처 전 수상에 비견되는 정치지도자로 떠오르면서, 최근 별명은 ‘독일의 대처’다. 대처 수상처럼 정치감각과 수완이 여느 남성 정치인들 못지않은데다가 강한 뚝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과학자 출신 총리’답게 정확하고 성실한 것이 그의 정치 스타일이다. 장황함 대신 간결한 말투가 특징이다. 이번 선거 유세 기간 슈뢰더 총리와 맞붙은 자리에서 “총리, 거짓말하고 있군요.” “약속했지요? 그런데 그 약속을 어겼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실업자 500만명을 쏟아낸 슈뢰더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대처에 비견되지만 약한 카리스마가 약점으로 지적된 그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핸디캡을 보완했다. 그 중에서도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의 변화가 주효했다.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등의 머리를 매만진 우도 발츠가 메르켈의 커트머리를 만들어냈다. 딱딱하고 촌스러운 옷도 벗어 던졌다. 이런 세련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유권자들을 끌어당기는데 성공적이었다.

정치적으로 급부상 한 때는 기민당이 비자금 스캔들로 흔들리던 1990년대 중ㆍ후반이었다. 98년 총선에서 기민당이 패배하자 당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0년 4월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다.

메르켈은 그의 ‘정치적 아버지’ 콜의 정계 은퇴를 주장하면서 당의 비자금 스캔들을 수습하고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제 2의 라인강 기적’을 장담하고 있는 그가 과연 독일병을 고칠 수 있을지, 그리고 영국의 대처처럼 철녀(鐵女)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10-17 15:24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