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존엄성과 난치병 함께 구할 수 있는 길 모색"

염수정 주교가 하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이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얼마 전 생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이 염 주교다.

생명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윤리적으로 논란이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대신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인간 존엄성에 부합하면서 난치병 환자를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는 성체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생명의 신비 기금을 마련키로 했다. 전 세계 가톨릭 교구의 성체줄기세포 연구기금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또 3억원의 ‘생명의 신비상’도 제정했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공적을 세운 사람이 대상이다.

과학기술이 창조질서 거스리면 안돼

천주교가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요즈음 발표되는 몇몇 결과들은 온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이 난치ㆍ불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면서 국민의 관심사로 등장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긍지를 갖고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연구와 진보들이 참된 의미에서 인간에게 봉사하고, 나아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부합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성체와 배아로 나뉜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연구로 인해 각광 받고, 또 주목 받는 분야는 배아쪽이다. 그러나 천주교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얼마 전 가톨릭신문과의 특별대담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다. “인간 배아는 존엄한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배아를 파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올바르지 않으며 기어코 중단되어야 합니다.”

김 추기경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명백히 반대의견을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김 추기경은 “교회가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 때문이 아닙니다”며 인간 배아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윤리도덕이라고 강조했다.

또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유명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의 연구성과에 대해 그저 박수를 칠 수만은 없습니다”고 말했다.

교회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편협한 종교적 입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미 많은 주교들이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많이 주셨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염 주교도 추기경과 같은 견해다. 날로 확산하는 생명경시 풍조가 배아를 물질로 본다고 지적한다. “배아를 ‘생명의 신비’로 보지 않습니다.

물질이므로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철저한 유물론 입니다.” 염 주교의 설명 겸 비판은 이어진다. “과학기술은 언제나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존중하고 실현하는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이 특정한 인간 집단의 욕망 충족이나 권력과 명예의 실현을 위해 다수의 힘없고 무고한 인간 생명을 희생 시키고, 더욱이 자연생태계를 오염 시키며, 끝내는 존엄한 인간의 실존을 위협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학은 윤리적 규범과 한계 안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으로 인간 생명을 조작하는 생명공학의 전체 과정 안에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사진=임재범 기자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비윤리적인 인간 생명의 조작을 금지하는 국가적 세계적 차원의 법적 규제를 엄격히 갖추어야 합니다.”

인간생명 조작은 비윤리적

염 주교는 1973년부터 시작된 모자보건법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법 시행 32년 후의 지금 현실을 보십시오. 그야말로 죽음의 문화가 온 한국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낙태 연간 약 150만건 이상, 저출산, 노령화 사회, 자살률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출산 해소만을 위해 2006~2007년 7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자보건법이 산모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경제성장을 위해 산아제한을 한다면서 실시한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자명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 추기경은 앞의 특별대담에서 지난 3월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 법률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염 주교도 역시 같은 의견이다. “금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벌써부터 여성들의 난자 매매 및 대리모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법률은 특히 윤리적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고 했다. 배아의 경우를 보자. “배아의 개념을 수정란 및 수정된 때부터 발생학적으로 모든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까지의 분열된 세포군으로 규정한 것은(2조 2항) 일부 생명공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배아는 엄연한 인간 생명체이며 따라서 그 시초부터 당연히 보호 받아야 할 인간 존재 입니다. 이렇게 배아는 온전한 인간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배아 등의 생성, 연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제 11조 이하의 내용은 전면적으로 재검토, 금지되어야 합니다.

체세포 핵 이식으로 생성한 인간 배아 및 인간 수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잔여 배아를 이용하여 줄기세포를 추출한다든지, 괴물세포를 만들어 내는 동물의 난세포와 인간의 체세포를 결합한 이종간 교잡행위 역시 당연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염 주교는 100억원이라는 거금을 줄기세포 연구에 투입하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이를 종교와 과학의 갈등으로나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계속 부탁했다.

“정부는 요즘 생명공학(BT)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볼 때 정보기술(IT)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BT를 가지고 돈을 벌자는 것이죠. 둘을 결합하면 더 좋고요. 우리는 정권을 상대로 시비를 걸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훼방 놀 생각은 더욱 없고요. 가톨릭은 정책에 대해 지적하는 것입니다. 공동선을 위해 생명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최소한 국민을 오도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어쩌면 일반 국민들은 성체세포와 배아세포를 명확히 구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들 연구를 통해 난치병이나 불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정도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 연구 진전에 그렇게 환호하고, 기대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인간 생명으로 봐야 하는 것이냐에 있다.

결국 윤리적인 차원이고 판단이다. 다시 김 추기경의 말을 들어보자. 추기경은 한 인터뷰에서 가톨릭이 성체줄기세포 연구 지원, 낙태 반대 등 생명윤리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한창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부터 천주교는 산아제한과 낙태합법화를 반대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성서에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다른 모든 것을 얻는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모든 걸 내걸다시피 해서 생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체줄기세포 연구, 임상실험에서도 큰 효과

사진=임재범 기자

이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이유를 자세히 밝혔다. “줄기세포는 크게 나눠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가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체줄기세포가 윤리적으로 저촉이 안되고 연구 임상실험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연구하자는 것이죠. 인간 배아는 결국 인간 생명입니다. 인위적으로 배아를 만든다고 해도 배아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그것은 인간 생명입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간 생명을 해치는 것은 문제입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국내 61개 교단과 20개 단체가 가입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최근 배아줄기세포 연구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신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가톨릭과 같다. 배아도 인간 생명이라는 생각에서다. 연구과정에서 폐기되는 경우는 물론 줄기세포를 얻어낸 배아도 결국에는 죽이게 되는 것이므로 명백한 살인이며, 환자의 생명연장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기적 세태가 우려된다고 했다.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모두 배아줄기세포만 생각합니다. 생명을 고려하지 않는 물질만능이지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훨씬 더 많이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데, 혹시 한국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염 주교는 가톨릭이 결코 난치병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이번에 생명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치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생명위원회는 앞으로 크게 세 분야의 사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첫째는 가톨릭 세포치료 사업단으로,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와 임상 및 치료다. 둘째는 기획홍보단으로,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대내외 홍보와 교육이다. 세째는 생명운동으로, 생명을 존중하며 생명의 문화를 이루기 위한 학술, 법률, 종교간 협력, 시민연대 활동 등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과학적 진리도 있지만, 자유를 갖고 실천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이란 반드시 난치병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통이 있어도 더 깊은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상업주의, 경제 제1주의, 유물론 쪽으로 너무 급속히 나가고 있습니다. 신앙과 이성은 서로 모순이 아니라 보완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