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소액기부는 '사랑발전소'

신한카드 홍성균 사장은 금융계에서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유명하다. 그의 경영은 보라는 듯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홍 사장은 고객과 종업원 모두가 만족하는 ‘재미 경영’(Fun & Joy)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또 사회공헌 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끝없이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내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폭 넓은 독서가 밑받침 한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최고 경영자(CEO)다.

CEO는 일단 바쁘다. 늘 시간에 쫓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일까. “1년 전쯤 현대카드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쟁사가 본, 밖에서 본 현대카드’라는 내용이었죠. 강의 후 ‘1주일에 책을 몇 권 읽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현대카드 사장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는 남의 것을 그대로 옮기면 컨닝했다고 페널티를 받는다. 그런데 경영자는 그렇지 않다. 책이나 논문을 완전히 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다이제스트를 주로 읽는다 라고 말입니다.” 어떤 책이라도, 특히 고전일수록 요약본은 피해야 한다는 일반론과는 정 반대다. 그것이 CEO의 책 읽기라는 것이다.

직원만족이 곧 고객만족

내친 김에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일단 베스트 셀러 중심입니다. 한 번 훑어보지 않을 수 없죠.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블루오션 전략’, 잭 웰치 GE회장의 책 등이 인상에 남습니다.”

하지만 홍 사장이 강조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다. 그는 조직론, 그 중에서도 상하위 문화간 충돌이나 노사간 갈등 등 조직 내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갈등의 발생과 조정, 해결은 항상 생각하는 화두다. 경영학의 고전인 버나드의 ‘경영자의 역할’이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의 저술 등을 항상 옆에 두고 있는 이유다.

“경영자는 시대적 상황과 이론에 모두 밝아야 합니다. 역사를 알아야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文)ㆍ사(史)ㆍ철(哲)이라고 하는데, 각각 200, 50, 50권씩은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후배 경영자나 경영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샐러리맨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란다. 그 자신 ‘백화쟁비독서향(百花爭比讀書香ㆍ백가지 꽃의 향기가 독서의 향기에 미치지 못한다)’이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두고 있다.

그는 독서가 무엇보다 사고의 폭을 넓히고 유연하게 만든다고 했다. 신입 직원 면접 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복잡한 도로에서 택시와 자가용이 양보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자가용이라고 대답했다. 택시는 생계 수단이니까, 택시타고 가는 사람은 바쁘니까 등이 이유였다. 그렇다면 자가용타고 가는 사람은 안 바쁘고, 덜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인가.

시간당 가치를 따져보면 누가 더 높을 것인가 등을 물으면 대개가 우물쭈물했다. “외국 여행 때 만났던 한 택시기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도로는 내 직장입니다. 운전하기 좋고 쾌적한 도로를 만드는 것은 이따금 운전하는 자가용 운전자의 몫이 아니라 도로를 직장으로 삼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양보한다는 것이죠.”

이 질문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CEO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산다. 그래서 제대로 CEO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 홍 사장은 가볍게 웃었다.

‘재미 경영’은 홍 사장의 경영 이념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즐겁고 기뻐야 한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종업원이 만족해야 한다.

이는 가장 편안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친숙한 생활을 구현하는 신용카드로 연결된다. 여러 군데에서 쓰여 너무나 유명한 말이지만, ‘모든 생활금융서비스를 카드 한 장으로, 고객 한 명에게 모든 것을(All in One, One for All)’이 회사 모토다. 홍 사장은 이제는 이러한 개념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데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2002년 6월 회사가 설립될 때만해도 이 용어를 쓴 기업이 거의 없었죠.”

만사무여위선락(萬事無如爲善樂ㆍ세상 모든 일이 선을 행하는 즐거움만 못 하다)’은 홍 사장이 마음에 새기고 있는 또 하나의 글귀다.

‘재미 경영’과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맞물려 신한카드만의 특이한 기부문화를 만들어냈다. “기부를 하면 엔도르핀이 팍팍 나와 기분이 마냥 좋아집니다. 또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 어딘가에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월급쟁이는 막상 기부를 하려고 해도 어디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았습니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절대의무

홍 사장은 이제 우리 기업들은 ‘사회 공헌은 기업의 의무’라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말연시에 자선 단체 등에 기부금 얼마를 전달하는 것은 기부의 참뜻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기부문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일본 등을 살펴본 결과 최근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이 바로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기부처의 인터넷 홈 페이지를 통해 신용카드 온라인 결제를 한다든지, 자신이 적립한 포인트를 기부처에 전달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신한카드가 국내 단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기부금이 필요한 단체에서 가장 바라는 형태의 기부는 소수의 거액 기부가 아니라 다수의 소액 정기 기부자로 이루어진 안정적인 기부금 모집 구조였다.

그것이 기부의 본래 의미에 더욱 다가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동안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다. 바로 그 점을 홍 사장은 포착했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기부문화를 정립할 수 있는 곳은 신용카드사라는 확신아래 신용카드 회사가 할 수 있는 기부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홍 사장의 기본 목표는 ‘다수의 소액 기부문화 정립’이다. 해마다 일정 시기에 캠페인을 펼치는 것과 같은 이벤트성이 강한 행사가 아니라 고객들이 원하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앞당길 수 있도록 자신이 지향하는 바와 잘 맞는 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신한카드 기부의 특징은 확장성과 다양성에 있습니다. 즉 약간의 심사를 거쳐 고객이 원하는 단체나 개인을 무한대로 기부처로 등록할 수 있고, 자선단체뿐 아니라 반사회적 성격만 아니라면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기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확장성과 다양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자선단체,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당 및 정치인, 즐거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예인 및 운동 선수 등으로 기부처를 확대하는 것이다.

신한카드는 서태지닷컴멤버십카드, 동방신기바이올렛카드 등 연예인 팬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카드를 출시했다. 이런 카드에 자신의 포인트를 전달해 활동을 활성화하는데 일조하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즐거운 세상을 앞당기는 행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제휴해 9월부터 적립 포인트를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설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의원 후원회가 기부처로 등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기부 컨셉트를 하나로 모은 신한 아름다운 카드는 카드 사용액의 0.5%를 적립해 원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다.

이 사업에 동참한 스타벅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에서는 기본 0.5% 외에 추가로 0.3%가 더 적립된다.

CEO는 직원과 '소통' 원할해야

홍 사장은 얼마 전 자신의 사무실을 20평에서 4.5평으로 대폭 줄였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평당 1,000만원의 임대료를 줄인 것’이라며 그냥 넘어갔지만, 거기에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CEO 사무실 위치에 대한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햇볕이 잘 들지않는 등 제일 나쁜 위치여야 하고, 엘리베이터 바로 옆과 같이 모든 사람의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

또 북향이나 서향같이 가급적이면 밖이 잘 보이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회의실과 응접실은 바로 옆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직원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고, 사장의 업무를 즉시 알릴 수 있다. 정보는 서류만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를 좋아하고, 잘 친다. 골프업계와 금융계에서 알아주는 고수다. 그를 두고 한 프로골퍼는 ‘손쉽게, 힘 안들이고 치는 골퍼’라고 할 정도다.

그는 골프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 골프 묘미 중의 하나가 리스크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업경영도 리스크를 관리하며 초우량 기업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골프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현대사회의 최고 경영자는 우수한 골퍼와 마찬가지로 신중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골프에서 배운단다. 핸디 8인 그의 골프관은 ‘골프는 즐기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단점이 ‘서울 깍쟁이’라고 했다. 고향은 충청도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남한테 신세지기 싫어 아예 부탁하지 않는다,

속은 따뜻한데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인다, 뭐 그런 것들이다고 했다. 여기에 여자한테 팔 씨름이 질 정도로 힘이 부족하고, 고스톱을 못치는 것 등도 단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심각하게 ‘은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등산 낚시 골프 여행 등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다.

그러러면 평생 익숙했던 것하고 인연을 끊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단다. 그래서 신한그룹의 사랑방과 같은 조그만 카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오피스텔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도쿄 지점장을 지낸 일본 통답게 일본의 상도(商道)를 완성한 이시다 바이칸(石田梅岩)의 말로 끝을 맺었다. “어떤 직업, 어떤 일이라도 인격수양의 길이라 생각해야 하며 고객이 있는 한 사업은 영원하기 때문에 눈앞에 놓인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