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와 숨바꼭질 중"

“문학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 평단은 순수문학에만 눈길을 줍니다. 그 동안 시대상황에 억눌린 채 길러진 엄숙주의 탓이겠죠. 문제는 신예 작가들도 모두 그 쪽으로만 몰린다는 겁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추리작가는 고작 10여명 밖에 안 돼요. 일본만 해도 무려 700명에 이르는데 말입니다. 문학도 영상 등과 결합해 산업화하는 시대에 순수만 고집해선 곤란하죠.”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 김성종(64)의 말이다. 추리문학을 마치 의붓자식 취급하는 우리 평단의 풍토에 대한 이의 제기인 셈이다.

‘여명의 눈동자’ ‘제5열’ ‘일곱 개의 장미송이’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쏟아냈고, 영화로 드라마로 문학의 영향력을 어느 작가보다 넓혀 왔건만, 평단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다.

그는 1974년 ‘최후의 증인’(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공모 당선작)으로 추리소설을 처음 발표한 이후 20여년 동안 48편, 권수로는 80여권의 추리소설을 써 왔다. 추리작가하면 곧 김성종이란 이름을 떠올릴 만큼 인기나 작품량에서 독보적이다.

객지에 세운 추리문학관, 부산의 문화명소로

그는 20여년 째 ‘객지 부산’에서 터잡고 살고 있다. 11월14일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추리문학관’(www.007spyhouse.com 해운대구 중2동)에서 그를 만났다.

‘추리문학관’은 1992년 그가 사재를 털어 세운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문학관은 4만 권의 장서와 300여 석의 열람식을 갖추고 있는 부산의 문화 명소다.

대충 손으로 빗어 넘긴 듯한 헤어스타일과 나이에 걸맞은 몸집을 지닌 그는 과묵했다. 복잡한 추리물에 침잠한 작가의 내면세계 때문이리라.

나선형 계단을 타고 5층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태평양과 해운대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있어도 지겹지 않을 만큼 명당이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보인단다.

자리에 앉자 “이 걸 짓는 바람에 꼼짝달싹 못하고 부산에 잡혔어요. 일종의 멍에지요.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며 추리문학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재산세에 교통유발 부담금까지 꼬박꼬박 내는, 늘 적자에 허덕이는 사설 도서관이라는 푸념이지만 그의 표정엔 도서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는 올 초부터 부산 국제신문에 ‘9ㆍ11테러’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를 연재 중이다. 9ㆍ11이 터지기 직전까지 미국과 아랍세계, 이스라엘 세력간의 암투와 피의 보복, 첩보전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계 요원의 활약상도 끼워 넣어 재미를 더했다. 소설 취재를 위해 지난 6월엔 보름 가까이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ㆍ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 등 테러 현장을 둘러봤다.

아랍 테러의 뿌리를 알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등 근ㆍ현대의 숨겨진 역사도 꼼꼼히 훑었다. 9ㆍ11 테러와 같은 예상할 수 없었던 세계적 사건도 추리라는 열쇠를 매개로 ‘필연의 현실’로 만들어 나간다.

김성종은 원래 전남 구례 사람이다. 거기서 고등학교(구례농고)까지 나왔다. 일제 때 중국에서 사업해 돈을 번 부친이 해방 전부터 터잡아 살아온 곳이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그는 작가이면서 정치인이었던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를 흠모해 대학(연세대 정외과)에선 정치학을 공부했다.

1969년 졸업과 동시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몇 군데 잡지사를 전전하다 1974년 발표한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 성공을 계기로 20여년 인기 신문 연재작가로 활동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지금 살고있는 부산과는 특별한 연이 없었다. 1980년대 초 부산일보에 소설을 연재하던 중 원고 가지고 왔다 갔다 하기도 번거롭고, 서울생활도 싫은 참에 훌쩍 떠나 온 곳이 부산이다.

20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제 부산 토박이가 다 됐다. 부산에 뿌리내리게 된 연유는 우선 그가 세운 추리문학관에 붙잡힌 탓이 크지만, 추리작가에게 국제 항구도시 부산이 풍기는 소설 같은 이미지도 한몫 했을 터이다.

그는 주로 낮에 쓰는 타입이다. 책상 앞에 태평양을 펼쳐 두고 뉴욕의 뒷골목이며 러시아의 외딴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추리의 세계를 그려냈을 성 싶다.

그는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선 무기 종류, 외국의 뒷골목, 레스토랑 메뉴 등 세세한 자료 조사가 필수적”이라며 추리소설이 단지 ‘추리’에 그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이야기 했다.

"연작 아닌 전작 써보고 싶다"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많은 작품을 써온 저력을 ‘신문 연재’라는 형식의 덕으로 돌린다. 20년 넘게 신문 마감시간에 쫓겨왔다.

신문에서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매일 흥미진진하지만 그는 매일 피를 말렸다. 쓰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았다면 버텨낼 수 없는 세월과 작품 분량이다.

신문 연재소설이 한참 인기가 있을 땐 같은 신문(일간스포츠)에 2개의 소설, ‘여명의 눈동자’와 ‘제5열’을 동시에 연재했던 믿기 어려운 에피소드도 있다.

‘제5열’은 불가피하게 ‘추정(秋政)’이란 가명으로 나갔다. 그런 시간을 보낸 탓인지 그는 “이제는 신문에 연재되는 연작이 아닌 전작을 한번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선 “잘 될지…”라며 말을 흐리고선 웃는다. 무언가에 늘 쫓기며 사는 것이 자신의 업이라도 된 듯한 표정이다.

김성종을 추리작가로 이끈 사람은 영국의 기자출신 추리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다. 김성종은 1970년대 초 포사이드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자칼의 날(The day of Jakal)’을 우연히 접하고선 피가 역류하는 경험을 했다.

‘바로 이것이다’라는 느낌이 머리 속을 관통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한발한발 그에게 접근해 가는 청부 암살자의 움직임은 세련됨과 박진감, 서스펜스와 스릴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치 ‘암살의 미학’을 보는 듯 했다고 회고한다.

포사이드를 전범 삼아 추리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추리작가가 됐다. 최근 그의 작품 ‘제5열’ 등은 일본어로도 번역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 미궁에 빠질 때 가끔 경찰 관계자들로부터 전화도 받곤 한다”며 웃는다. 추리작가로서의 유명세다.

그는 슬하에 아들 셋을 뒀다. 큰 아들 지수(29)씨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국내 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둘째, 셋째 아들 민수, 화수는 아직 대학생이다. 그의 살림집은 해운대 추리문학관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광안리에 있다.

* 추리문학관 안내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가는 길목인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추리문학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3, 4층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문학관 중 ‘셜록 홈즈의 집’으로 이름 붙여진 1층은 커피도 마시며 독서토론도 하는 카페처럼 꾸며져 있다.

벽면 책장에는 추리소설들로 가득하다. 2층은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휴식 공간으로도 쓰인다. 3층과 4층 역시 도서관 열람실처럼 꾸며져 있다.

벽면에는 책과 함께 앙드레 말로가 등장한 포스트며 세계적 작가들의 멋진 사진들이 걸려있어 문학관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다. 5층은 출입이 제한된 작가의 작업실이다.

5개 층 어디서나 대형 창을 통해 태평양과 해운대가 내려다 보인다. 지하층은 현재 비어 있다. 입장료는 4,000원이고 원두커피가 무료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