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의 예술혼 카메라에 담은 '또 다른 장인'

26년 간 한 작가의 예술과 삶을 보듬고 살아온 방송카메라기자가 뒤늦게 성찬을 받는다. 작가의 고향인 마산에서 세계적 조각가 문신(1923~1995)과 순연한 삶을 함께 해 온 정견(53ㆍ마산MBC 부국장)다.

정씨는 오는 15일 ‘거장 문신’이라는 작품으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제19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 대상’을 받는다.

‘거장 문신’이 그러한 평가를 받는 데는 요즘과 같은 디지털시대에 며칠, 또는 몇 달 만에 뚝딱 만들어 내는 여느 작품과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한땀 한땀 26년을 수놓은 땀의 결정체여서 작품에는 진한 사람 냄새가 난다.

‘거장 문신’은 1979년 문신이 프랑스의 귀화 요청을 물리치고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처음 정씨와 문신은 카메라 기자와 작가라는 무덤덤한 거리를 두고 만났다.

5~6년 간 정씨가 문신의 예술에 심취, 소통하면서 거리는 사라졌다. 그 후로 정씨의 카메라는 늘 문신의 조각을 찾아 동고동락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카메라는 쉬지 않았다.

26년 간 정씨의 카메라는 5차레에 걸쳐 문신을 담았다. 무엇이 카메라를 문신에 묶어 두었을까. 정씨는 문신 작품의 독창성이 카메라의 생명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한다.

카메라는 문신 작품이 해외에서 세계적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국위를 떨칠 때 덩달아 신났지만 국내서 미술계의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배타주의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에 누구보다 안타까워 했다.

7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파리 근교의 라보넬 고성을 수리하다 조각에 눈을 뜬 문신이 자전거에 태극기를 꽂고 다닐 정도로 조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했건만.

정씨는 지난 9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문신 조각전 개막식에 다녀왔다. 문신과 헤어진 지 10년만에 해외에서의 만남이다. 그때 정씨는 마음속으로 두 번 울었다고 한다.

문신 작품에 대해 보인 뜨거운 관심(11월30일까지 100만명 이상이 관람)에 감격해서, 그리고 국내의 무관심에 대한 울분이었다고 한다.

‘거장 문신’은 문신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유럽 및 국내 활동과 작품세계, 스페인 발렌시아 비엔날레 행사와 유럽 첫 작품이었던 프랑스 발카레스 해안 야외조각품의 의미,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사후 평가는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는 문신의 치열한 작가정신은 여전히 정 부국장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